숲집놀이터 132. 은행



  아이들하고 우체국에 갈 적마다 아이들 통장에 돈을 넣기로 한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던 지난해부터 비로소 이렇게 한다. 아직 아이들 통장에 돈을 넉넉히 넣지는 못하지만, 우체국에 편지나 책을 부치러 갈 적마다 큰아이 통장에는 만 원을, 작은아이 통장에는 이천 원을 넣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육아수당이 나오기에 이천 원씩 넣는데, 작은아이도 이듬해에 여덟 살로 접어들면 큰아이하고 같은 돈을 넣으려 한다. 큰아이가 여덟 살이던 때까지 두 아이 통장에 들어오는 육아수당을 다달이 찾아서 살림에 보태기에 바빴다. 지난해부터 두 아이 통장에 돈을 넣는 까닭이라면, 두 아이가 통장이나 돈을 맡겨서 나중에 어떤 일을 할 적에 쓰는 길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하고프거나 배우고 싶은 일이 있을 적에 목돈을 쓸 수 있도록 푼푼이 쌓으려는 생각이다. 이러면서 아이들 통장에는 두 아이가 저마다 “통장에 돈 넣으려고요.” 하고 말하면서 저희 통장에 찍히는 새로운 숫자를 읽도록 이끌려는 생각이다. 이리하여 나한테도 곁님한테도 통장이 하나씩 따로 있어야지 싶다. 살림 통장과 도서관 통장과 배움길 통장, 이렇게 세 가지가 따로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2017.3.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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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31. 마을살이


  설을 앞두고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워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람 자고 볕 좋은 한낮을 골라서 아이들하고 수세미를 들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한발 먼저 누가 와서 물이끼를 걷어냈어요. 얼추 이삼십 분쯤 앞서 다녀간 자국을 봅니다. 마을 할머님이 하셨겠네 싶어 미안하면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고흥에 깃들던 2011년 가을까지 늘 마을 할머님이 치우셨고,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늘 치워요. 그냥 돌아갈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빨래터나 샘터 바닥을 보니 다 치우지 않았습니다. 너른 빨래터에 퍼진 물이끼만 덜어냈을 뿐, 바닥에 쌓인 흙먼지나 다슬기 똥은 그대로입니다. 큰아이가 “다 안 치우셨네. 바닥이 미끌미끌하고 더러워.” 겉으로 보기에 깨끗한 척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바지를 걷어부치고 긴 웃옷을 벗은 뒤 신나게 바닥을 밉니다. 마을 할머님더러 바닥까지 말끔히 치우시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면 돼요. 이십 분쯤 바지런히 청소를 하고 삼십 분쯤 볕을 쬐며 놀고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마을에 살기에 마을살이가 되기도 하고, 마을을 푸르게 가꾸는 길을 함께 헤아리면서 마을살림이 되기도 합니다. 2017.1.26.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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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30. 여러 학교



  처음에는 집이 학교이다. ‘우리 집 학교’이다. 다음으로는 마을이 학교이다. ‘마을 학교’이다. 이다음으로 푸르게 우거진 숲이 학교이다. ‘숲 학교’이다.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슬기롭게 생각을 밝혀 책을 짓는다. 이제 ‘도서관 학교’이다. 우리 아이들은 ‘졸업장 거머쥐는 제도권’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다니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집 학교’를 비롯해서 ‘숲 학교’하고 ‘도서관 학교’를 다닌다. 마을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낼 적에는 ‘마을 학교’를 다닌다고 할 만하다. 이웃한테서 두레나 품앗이를 배울 적에도 ‘마을 학교’가 될 테지. 오늘날에는 학교라는 이름이지만 지난날에는 ‘마당’이라는 이름이었지 싶다. 마당에서 일하거나 놀며 배운다. 마당에서 어우러지면서 노래하고 웃으며 가르친다. 2017.1.1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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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29. 짓는 즐거움



  짓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산다. 짓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루를 연다. 짓는 즐거움이 없으면 저녁에 가만히 잠들지 못한다. 새로운 아침을 그야말로 새롭게 맞이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면, 잠도 밥도 모두 다 싫어하고 만다. 어버이는 스스로 짓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아이하고 살아갈 적에 아름답다. 아이는 스스로 짓는 즐거움을 어버이한테서 배우며 아침을 열고 낮을 누리며 밤을 맞이할 적에 튼튼하다. 무엇이든 짓는다기보다 놀이를 짓고 일을 짓는다. 웃음을 짓고 노래를 짓는다. 말을 짓고 생각을 짓는다. 서로 나누는 사랑을 짓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짓는다. 차근차근 지어서 찬찬히 나아간다. 2017.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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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28. 첫걸음



  한 해를 새롭게 여는 날이라고 한다. 2017년 1월 1일이다. 사회를 따르자면 오늘부터 우리 집 아이들은 ‘열 살·일곱 살’이 된다. 작은아이가 다달이 십만 원씩 받는 육아장려금은 올해로 끝이다. 작은아이는 이듬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갈는지 말는지 스스로 길을 고른다.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지난해 막날하고 그리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를 보면서 평상 가림막을 걷는다. 파란 물병에 물을 담아서 해가 잘 드는 곳에 놓는다. 마당하고 뒤꼍에 있는 나무한테 절을 하고, 간밤에 내린 서리를 둘러본다. 아침에 밥을 할 테니, 미리 쌀을 씻어서 불린다. 빨래는 빨래기계한테 맡겨 놓는다. 오늘은 어떤 새 밑반찬을 할는지 가늠한다. 자, 여기까지는 어제하고 같다. 그러면 이제부터 무엇을 새롭게 그려 볼까? 올해에는 어떤 살림을 지을는지, 오늘부터 아이들하고 무엇을 새롭게 배우고 가르칠는지, 나 스스로 어떤 배움길을 씩씩하게 걸을는지, 바야흐로 새롭게 첫걸음을 떼자고 다짐한다. 지난 한 해를 돌이키니 영어노래를 수없이 듣고 다시 들으며 조금씩 다시 귀가 트인다고 느꼈다. 올해에는 영어에 더 귀가 트이도록 하면서, 내가 일구려는 새로운 한국말사전도 알뜰히 여미자고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집김치를 바지런히 담그면서 스텐통을 제법 갖추었지만 아직 모자라다. 통스텐 김치통도 장만하고, 먹을거리를 여름내 겨우내 시원하게 건사하는 길을 생각하자. 한 걸음씩 내딛고 하나씩 배우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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