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17. 다녀오는 길



  한가위를 앞두고 외할아버지한테 다녀오기로 한다. 가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만만하지 않지만 즐겁게 길을 나서기로 한다. 벼이삭이 패어 고개를 숙이고, 배롱꽃이 흐벅지며 하늘빛이 고운 날 넷이 나란히 고샅을 걷는다. 우리는 숲바람을 안고서 버스를 탄다. 즐거이 바깥마실을 마친 다음에는 새롭게 숲바람을 가슴에 품으려고 이 길로 돌아온다. 대문 밖을 나서면서, 고샅을 걸으면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찬찬히 마음속에 별을 그린다. 언제 어디에서나 파란 바람 같은 숨결이 되도록 별을 그리며 걷는다. 2016.9.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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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시외버스에서 텔레비전은 꺼 주셔요

― 시외버스는 ‘12금’을 모르는가?



한가위를 맞이해서 고향을 찾아가는 분이 많습니다. 설에도 고향을 찾아가는 분이 많아요. 요즈음은 자가용을 모는 분이 무척 많은데,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는 분도 아주 많습니다.


자가용을 몰거나 기차를 탄다면 ‘텔레비전 걱정’은 없어요. 시외버스를 타면 언제나 ‘텔레비전 걱정’이 불거집니다.


한가위나 설이 아닌 여느 때에 한두 시간쯤 달리는 시외버스에는 텔레비전이 없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느 때에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은 너끈히 달리는 시외버스에는 으레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달리는 손님이 심심하지 않도록 텔레비전을 달아서 켜는구나 싶어요.


누군가는 시외버스로 너덧 시간을 달리면서 텔레비전을 볼 테지요. 그리고 누군가는 시외버스로 달리는 내내 텔레비전은 안 쳐다보고 잠을 잘 테고요.


이때에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텔레비전에 흐르는 방송이나 영화에는 모두 ‘등급’이 있어요. 열아홉 살이 넘는 나이라면 딱히 등급에 얽매이지 않을 테지만 열아홉 살이 차지 않는 나이라면 등급에 맞추어서 ‘아직 볼 수 없는’ 방송이나 영화가 있어요.


시외버스를 타는 손님은 ‘열아홉 살 넘는 어른’만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가위나 설 같은 때에는 ‘갓난쟁이’도 시외버스를 많이 탑니다. 어린이도 많이 타고, 푸름이도 많이 타요. 한가위나 설에는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많아서 여느 때보다 길이 막히니, 여느 때보다 몇 시간쯤 더 고속도로에 머물곤 합니다.


시외버스를 모는 분도 힘들 테고,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도 힘들 테지요. 그런데 가장 힘든 사람은 언제나 아기하고 어린이입니다. 어른은 어찌저찌 참거나 견디어 낸다고 하지만, 아기나 어린이한테 억지로 참거나 견디라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에요.


아기나 아이를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는 어버이는 겨우 아기나 아이를 달래서 재우지요. 그런데 이때에 시외버스 기사님이 텔레비전을 켠다면?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12금’도 ‘15금’도 아닌 ‘19금’이라고 할 만한 영화나, 이른바 ‘막장 연속극’을 큰소리로 튼다면?


부디 시외버스에서 텔레비전을 꺼 주기를 바랍니다. 시외버스 텔레비전으로 사람들이 영화나 연속극을 보도록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갑자기 큰소리가 터져나온다거나 거친 욕설이 흐르는 영화나 연속극을 버스에서 아기나 아이가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면 대단히 괴롭습니다. 무엇보다도 아기나 아이한테 도움이 될 일이 없습니다. 고단한 버스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은 폭력 영화나 막장 연속극에서 쏟아지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자다가도 놀라요. 잠들지 않고 잘 놀다가도 놀라요.


극장에서는 ‘12금’인 영화를 걸 적에 열두 살 밑인 아이를 들여보내지 않아요. 그런데 시외버스에서는 아기도 있고 어린이도 있는데 ‘12금’뿐 아니라 ‘15금’이나 ‘19금’인 폭력 영화나 막장 연속극을 큰소리로 튼다면 어떻게 될까요?


텔레비전을 꺼 주십사 하고 말씀을 여쭐 적에 바로 텔레비전을 꺼 주시는 기사님이 있으나, “다른 손님들이 보는데 끌 수 없지요” 하고 말하는 기사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손님들 가운데에는 어린이도 있으니 꺼 주십시오” 하고 다시 말하면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하면서 안 끄는 기사님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한동안 껐다가 슬그머니 다시 켜는 기사님도 있어요.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은 꼭 있어야 할까요?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을 꼭 달아야 한다면, ‘소리만큼은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 저마다 이어폰을 꽂아서 듣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욱이 명절에는 시외버스를 타는 아기와 아이가 많으니, 제발 명절에는 텔레비전을 꺼야 하지 않을까요? 정 명절 시외버스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싶다면 ‘어린이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틀 노릇일 텐데, 어린이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켜더라도 ‘소리는 이어폰으로 듣도록’ 꺼야 한다고 느낍니다. 자는 아이도, 또 자는 어른 손님도 헤아리지 않는 시외버스 텔레비전,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9.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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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6. 네가 좋아한다면



  작은아이가 조그마한 부채를 ‘내 부채’로 여기면서 갖고 다닌다. 혼자서 쥘부채를 잘 펴고 잘 접는다. 혼자서 즐겁게 부채를 부치고, 더워 보이는 사람한테 다가가서 부쳐 주기도 한다. 네 부채도 너희 부채도 아닌 내 부채가 하나 있으며 괜히 넉넉하고 즐겁다. 덥지 않아도 부채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더위를 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덥다고 하는 사람한테 시원한 바람에다가 즐거운 웃음을 나누어 줄 수 있으니 스스로 대견하다. 네가 좋아하니 네가 늘 쥐고 다닐 만한데, 네가 좋아해서 늘 손에 쥘 만한 놀잇감이라면 너한테 어버이가 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물려주어야겠지. 네 손에 ‘아무것’이 아닌 ‘즐겁고 사랑스러운 것’이 있을 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살림이 되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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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5. 엽서 쓰기



  다른 고장으로 혼자 볼일을 보러 다녀와야 하면 되도록 우체국에 들르러 한다. 다른 고장에서 바삐 바깥일을 보다가도 한 시간쯤 따로 말미를 내어 우체국에서 엽서 두 통을 쓰려 한다. 큰아이하고 작은아이한테 저마다 엽서를 한 장씩 쓰려 한다. 다른 고장 우체국에서 부친 엽서는 어느 날 문득 우리 집 우체통에 닿고, 두 아이는 우체부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서 “어? 편지 왔네?” 하고 올려다본다. 아이들한테 온 편지를 아이들 스스로 꺼내고, 아이들 스스로 읽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니 그림을 함께 넣는 엽서를 써 준다. 우리 발길이 닿는 데마다 즐거운 이야기가 흐르기를 바라고, 우리 손길이 닿는 자리마다 기쁜 웃음이 솟아나기를 꿈꾼다. 2016.8.2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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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4. 별바라기



  저녁에 아이들하고 가볍게 나들이를 나온다. 집하고 서재도서관 사이를 천천히 거닐면서 별바라기를 한다. 마당에 서서도 얼마든지 별바라기를 할 수 있는데 일부러 마을 한 바퀴를 크게 돈다. 논둑길에 셋이서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해 본다. 논둑길은 밤이 되어도 뜨끈뜨끈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얼굴로 쏟아지는 뭇별을 그냥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한 별에만 온마음을 쏟으면서 다른 별은 모두 눈에서 지워 보며 바라보기도 한다. 별자리를 그리기도 하고, 별똥을 비롯해서 별 사이를 마음껏 오가는 수많은 별을 가만히 좇는다. 냇물처럼 또는 구름처럼 보이는 별은 ‘미리내’인데 ‘별내’라는 이름도 붙여 본다. 고요하고 아늑하다. 이렇게 아이들하고 함께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이 별에서 저 별을 바라보는 밤이 홀가분하다. 2016.8.2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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