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13. 어느새 배우다



  작은아이가 처음 아장걸음을 뗄 적을 떠올린다. 잘 걷지 못하겠다면서 앙앙거리기도 했고, 잘 달리는 누나가 저만치 앞서가면 빽빽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작은아이는 제법 잘 달릴 뿐 아니라 꽤 오래 걸어도 씩씩하다. 요즈음은 시멘트 논도랑 좁은 골을 혼자 올라타서 꽤 빠르게 걸을 수 있기까지 하다. 올봄까지만 하더라도 나더러 손을 잡으라고, 손을 잡아 주어야 좁은 골을 딛고 걸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혼자서 야무지게 잘 걷는다. 어느새 자라고, 어느새 배우며, 어느새 익숙하다. 어느새 깨닫고, 어느새 알아차리며, 어느새 잘한다. 나도 틀림없이 어느새 느끼면서 새롭게 배우는 살림이 있을 테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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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2. 이가 아파



  작은아이가 어제 이가 아프다고 한다. 이를 벌려 보라 하니 아랫니 오른쪽 앞 잇몸이 동그랗게 부었다. 곁님은 어릴 적에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나는 어릴 적에 이런 적이 잦았다. 영양소를 골고루 먹지 않거나 이를 제때 제대로 닦지 않아서 잇몸이 붓는다고들 말했다. 맞다. 그렇다. 여기에 몇 가지 까닭이 더 있다. 첫째, 밥을 즐겁게 노래하면서 먹지 않은 탓이다. 무엇을 먹든 활짝 피어나는 웃음꽃이 되어 누려야 몸에서 반긴다. 둘째, 고우면서 밝은 마음이 되지 않은 탓이다. 골을 자꾸 부린다든지 짜증을 자꾸 낸다든지 스스로 미운 마음이 되니 몸이 나빠진다. 셋째, 스스로 몸과 마음을 파란 하늘처럼 해맑고 고요하게 가꾸려 하지 않은 탓이다. 거미줄처럼 하늘빛을 닮은 거미줄처럼 몸과 마음을 해맑고 고요하게 가꾸려는 넋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영양소를 골고루’ 먹어도 몸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거나 다친 사람은 몸도 아프거나 다칠 수밖에 없고, 마음에 사랑이 아닌 골부름이나 짜증을 심는 사람은 ‘좋은 마음과 몸’이 아니라 ‘나쁜 마음과 몸’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얘기를 작은아이한테 찬찬히 이야기해 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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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1. 집안일



  햇볕에 평상하고 폭신걸상을 말리려고 내놓았더니, 아이들은 토끼 인형에 인형옷을 입혀서 함께 내놓아 말린다. 아이들은 ‘어른들 집안일’을 다 거들지 못하지만 ‘소꿉놀이’를 하듯이 흉내를 내거나 배운다. 오랜 나날 가시내가 집에서 맡은 일이나 살림이란 무엇이었나 하고 돌아본다. 집일이란 그저 고되기만 할까? 집살림에서 무엇을 배우거나 가르칠 만할까? 집에서 늘 하는 일은 어떤 뜻이 있을까? 집에서 어른들이 가꾸는 살림은 어떤 몸짓일 때에 아름다울까? 이모저모 하나씩 새삼스레 되새긴다. 하루가 그냥 하루가 아닌 줄을 새롭게 배우고, 날마다 아이하고 새롭게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힌다. 참말로 어버이는 재미있는 자리이지 싶다. 2016.8.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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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0. 뒤좇기



  아이들이 앞서 달린다. 아이들을 잡을 마음이라면 ‘쫓는다’고 할 테지만, 아이들을 잡기보다는 아이들이 앞서 달리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그 마음을 따르니, 나로서는 ‘좇는다’고 할 만하다. 요새는 아이들하고 마실을 할 적에 으레 ‘뒤좇는’ 어버이가 된다. 마음 놓고 자라는 아이들 뒤에서 조용히 좇는다. 아이들이 뛰고 달리고 날고 웃고 노래하는 모든 몸짓을 가만히 좇는다. 어제 걸었고 오늘 걸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헤아리면서 천천히 좇는다.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어버이로 살지만, 언제나 아이들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뒤좇는 동무로 이곳에서 함께 살림을 꾸린다. 2016.7.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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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09. 사회주의자



  우리 아이를 둘러싼 여느 어른들은 꼭 ‘사회주의자’ 같다. 집에서 신나게 놀도록 하고, 언제나 느긋하게 살림을 배우도록 하며, 날마다 새롭게 꿈꾸도록 천천히 가르치는데, 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기 때문에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 관계가 어렵고 말리라’ 하고 얘기한다. 아니, 우리 이웃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인가? 뭔 사회를 그리도 좋아할까? 그런데 나이가 무척 어린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사회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이들을 무턱대고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힘이나 생각이나 몸이 모두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그만 ‘푸대접(차별)’하고 ‘따돌림’이 생긴다. 놀이동무로서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이 아닌, 그냥 수업 진도에 맞추어 한자리에 뭉그러뜨리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약육강신 사회 관계’를 몸에 익힌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를 아이들 스스로 손사래친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가 아닌 사랑’을 배우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늘 즐거이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배우려 한다. 사회주의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보다는 ‘사랑둥이’나 ‘사랑쟁이’나 ‘사랑님’이 될 적에 아름다우리라 본다. 2016.7.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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