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놀이터 86. 버스 바닥 앉기



  작은아이가 참으로 ‘작은 아이’일 무렵에는 혼자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읍내마실을 다녀오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작은아이가 차츰 ‘작으면서도 야무진 아이’로 자라는 동안 두 아이를 혼자 건사하는 살림이 아니라 ‘즐겁게 잘 노는 아이랑 함께’ 읍내마실을 하는 나날로 바뀐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는 아직 퍽 어리기에 작은아이 혼자 군내버스에서 자리를 얻어서 앉히면 꼭 작은아이 곁에 붙는다. 큰아이는 이때에 퍽 서운하다. 늘 동생 곁에 아버지가 붙으니까. 그러나 큰아이가 어릴 적에는 늘 큰아이 곁에 붙었지. 이때에는 작은아이를 안거나 업은 채 큰아이 곁에 붙었지. 짐을 많이 들어 고단한 날에는 작은아이가 앉은 옆에 털썩 앉는다. 그냥 버스 바닥에 앉는다. 시골버스에서는 할머니들만 으레 이렇게 앉지만, 나는 시골내기로서 즐겁게 이래 앉는다. 아마 도시에서는 이렇게 하기에 수월하지는 않겠지? 도시로 마실을 가면 전철에서는 내가 먼저 바닥에 앉고는 무릎에 두 아이를 앉히곤 한다. 전철이나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자리를 웬만큼 차지해서 아이들을 감싸지 않으면 아이들이 참으로 고단하다. 내가 볼 곳은 아이들일 뿐,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씩씩하면서 즐겁게 버스 바닥에 잘 앉는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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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5. 놀고 싶어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놀고 싶어!”나 “놀래!”나 “같이 놀자!”이다.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들처럼 “놀래요!” 같은 말을 가장 자주 했다고 느낀다. 그러면 어른들은 이러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놀도록 할까? 함께 놀까? 놀이를 알려주거나 물려줄까? 노는 기쁨을 이야기할까? 놀이를 다룬 책을 건넬까? 모든 배움이나 가르침은 무엇보다 놀이가 바탕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모든 가르침이나 배움은 놀이처럼 이루어야 한다고 느낀다. 놀이에서 삶을 빚고, 놀이로 살림을 짓는다. 놀이로 사랑을 가꾸고, 놀이를 하는 손길로 숲을 보듬는다. 이러한 마음을 어른도 아이도 따사로이 품을 수 있는 하루를 꿈으로 꾸어 본다. 2016.2.1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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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4. 목소리



  즐거이 웃는 목소리일 적에 즐거이 배운다. 골을 부리는 목소리일 적에는 골을 부리며 배운다. 기쁘게 춤추는 몸짓일 적에는 기쁘게 노래하며 배운다. 잔뜩 찡그리는 몸짓일 적에는 잔뜩 찡그리는 몸으로 팔짱을 끼며 배운다. 가르치는 사람은 지식에다가 삶결을 온 목소리랑 몸짓으로 고스란히 가르친다. 배우는 사람은 지식을 못 배우고 온 목소리랑 몸짓만 고스란히 배우거나 물려받을 수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궁금하다면 내 모습이랑 몸짓을 거울에 비추며 낱낱이 바라보아야 하는구나 싶다. 2016.2.18.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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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3. 뜨개상자



  종이상자에 흰종이를 붙이면서 ‘뜨개상자’로 꾸미는데, 큰아이는 이 흰종이에 ‘씨앗 심는 아이’ 모습을 그린다. 씨앗심기를 하고 싶구나. 씨앗을 심어서 알뜰살뜰 키우고 싶구나. 어버이인 내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아이가 또렷이 밝혀서 알려주는 셈이네. ‘씨앗 심는 아이’가 상냥하게 웃는 뜨개상자에 고운 실을 담아서 뜨개질을 익힌다. 이제 처음으로 바늘을 놀리니 서툴지만, 날마다 하고 다시 하고 또 하고 거듭 하노라면, 솜씨 있게 무엇이든 바늘과 실로 지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배우면서 삶이 되고, 삶이 되면서 사랑이 되고, 사랑이 되면서 살림이 된다. 모든 살림은 즐거운 놀이에서 비롯한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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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2. 학교는 어떤 곳일까



  학교는 어떤 곳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이들하고 어버이가 함께 삶을 배우는 곳이 학교여야 하리라 본다. 함께 걷는 들길도 모두 학교가 될 테고, 함께 밥을 짓는 부엌도 모두 학교가 될 테지. 무턱대고 학교에서 시간만 보내게 하기보다는, 아이하고 하루에 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얼굴을 마주하면서 어버이로서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줄 수 있어야지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음껏 웃고 노래하면서 놀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아이답게 못 자라는 셈이리라 느낀다. 어버이라면, 또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학교공부나 시험공부에 앞서 스스로 즐겁게 자라도록 삶을 슬기롭게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신나게 뛰놀도록 북돋아야지 싶다. 다시 말해서, 학교는 기쁜 삶터요 배움터요 놀이터 구실을 하는 보금자리와 같은 데여야지 싶다.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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