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72. 내가 내고 싶어



  면소재지로 택시를 타고 가서 한표쓰기를 하던 날, 처음에는 큰아이가 앞자리에 앉아 택시삯을 내기로 한다. 큰아이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 길인가를 똑똑히 말하고, 내릴 적에 “얼마 내면 돼요?” 하고 묻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작은아이가 앞자리에 앉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아까 탄 택시였기에 기사님은 우리가 갈 길을 아셨지만, 작은아이가 깜짝 잊었다. 그래도 내릴 적에 작은아이는 “얼마예요?” 하고 여쭙고는 제 지갑에서 택시삯을 꺼내어 치렀다. 택시 앞자리에 앉아 보면서 가는 길을 발하고 어깨띠를 두르고 삯을 내는 하루를 보내면서 새로운 살림을 배웠을까. 나도 어릴 적에 택시 앞자리에 앉아서 삯을 치른 일이 있었을까? 어렴풋이 떠오를 듯하기도 하고, 없었지 싶기도 하지만, 앞자리에 앉으면 어쩐지 어른스러워진다고 느꼈지 싶다. 아주 작은 걸음으로.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71. 해보려는



  해보려는 마음이 큰 줄 예전에는 잘 몰랐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비로소 하나씩 새로 배운다. 아이들도 여러 일을 해보는 길을 배우고, 어버이도 여러 일을 맞아들여서 차근차근 바라보아 풀어내는 길을 배운다. 아이들은 처음에 너무 낯설어 벅차다고 여기곤 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낯선 어떤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곤 한다. 낯설다고 여길 적에는 마냥 낯설어 못 하고 말지만, 해보려는 가벼운 마음일 적에는 참말로 가볍게 해내지 싶다. 아이를 가르치는 어버이란 자리이지만, ‘가르치는 길’을 배우고 ‘가르치는 몸짓이랑 말씨’를 배우며 ‘가르치는 기쁨’을 배운다. 그리고 함께 배우는 살림살이를 배우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70. 옷을 입기



  내 옷차림을 두고 뒷말을 하는 사람이 있단다. 점잖지 않게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며 뒷말을 한단다. 그런데 나는 ‘나시’ 아닌 ‘민소매’를 입는다. 뒷말을 하는 분이 내 차림새를 따지려면, 맨발에 고무신을 더 따져야 할 테고, 치렁치렁 긴머리를 다시 따져야 할 테고, 나룻을 깎지 않는 얼굴을 또 따져야 할 테지. 거울을 안 보고, 겉모습을 살피지 않으며, 입성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살림으로 나아간다. 속모습을 가꾸면서 마음밭을 살찌우고 옷짓기를 배우는 살림으로 나아가려 한다. 아무 옷이나 입지는 않되, 어느 옷이든 넉넉히 즐겁게 입는다. 무엇보다 사람은 틀에 박힌 차림새가 아니라, 생각을 새롭게 살찌우는 홀가분한 몸짓으로 살아야지 싶다. 점잔을 빼고 양복을 차려입고 자가용을 모는 겉모습을 보여야 일을 잘하거나 아이를 사랑하거나 어른다운 모습일까? 어른은 겉모습으로 따질 수 없다. 아이도 겉모습으로 읽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넋으로 다스리는 마음으로 삶을 짓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69. 눈뜨는 사람



  나는 아직 눈뜬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나는 앞으로 눈뜨려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눈뜰 줄 모르던 삶을 지나서, 눈뜨는 기쁨으로 상냥하게 살림길을 짓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눈뜨는 사람이 되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어야 할까? 늘 새롭도록, 늘 처음이도록, 늘 온힘을 내도록, 늘 노래를 부르도록, 늘 바람 같은 사랑이도록 꿈을 그려서 심어야 할 테지. 이러한 길을 갈 적에는 누구한테서나 고이 배운다. 이 길을 가는 동안 누구나 동무가 된다. 이 길을 가기에 풀님 꽃님 숲님을 이웃으로 둔다. 몸을 입는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는 슬기로운 숨결로 아침을 노래하고 저녁을 웃으며 마무르는 사람이 되자고 여긴다. 곁님을 만나 아이를 낳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뜻이라면, 바로 이 같은 하룻길, 눈뜨는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지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68. 웃기다



  하루 동안 어느 길을 어떻게 다녀야 하는가를 살피려고 밤늦게까지 헤아리고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하루를 열고는 드디어 저녁에 길손집으로 돌아와서 밥 차리고 씻고 빨래하고 나니 온몸이 욱씬거린다. 이튿날 아침에 먹을 밥을 미리 장만하려고 작은아이랑 마을 가게를 돌아다녔는데, 일본돈으로 630엔을 치르면 되는 곳에서 10000엔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으려 했다. 내 지갑에 1000엔짜리는 하나, 100엔짜리는 둘만 있어서 이튿날 쓸 생각으로 1000엔짜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싶어 5000엔짜리를 둘 내밀었더니, 내가 끝자리 0을 잘못 헤아렸더라. 그냥 1000엔 종이돈 하나만 내밀면 되었는데. 도시락집 일꾼은 끝자리 0을 잘못 셈한 이웃나라 사람이 매우 웃겼는지 도시락이 다 되어 내줄 때까지 웃음을 못 참네. 나는 오늘, 고단한 저녁에 누구를 웃겨 준 셈인가 하고 돌아본다. 그러나 온몸이 욱씬거리며 지치다 보니 셈하는 머리가 살짝 멈춘 셈이니, 우리 집 아이들도 하루를 옴팡지게 뛰놀아 다리힘이 다 풀리면 더 포근히 안아 주면서 일찍 자고 오래 쉬도록 달래 주어야겠다고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