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91. 몸에 맞는 옷



몸에 맞는 옷을 찾기는 쉬울까? 어쩌면 쉽다. 그러나 마흔 살에 이르도록 ‘내 몸에 맞는 옷이란 뭐지?’ 하고 헤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누가 ‘쉰이나 예순 나이에 짧은치마를 입는다’며 손가락질을 하거나 흉을 본다. 그러나 쉰이나 예순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았기에 그 나이에 짧은치마를 입을 수 있다. 이이가 할머니이든 할아버지이든 말이지. 스스로 찾은 제 몸이 기뻐서 다른 사람 눈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몸을 누릴’ 수 있다면, 이이는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닌 제 마음길하고 마음속하고 마음결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새롭게 걷는 배움길이 된다. 제 몸에 맞는 옷이 아닌, 다른 사람 눈치에 따라서 맞춘 옷이라면, ‘우리 몸이 아닌 다른 사람 눈에 맞춘 옷’이라면, 이런 옷이 우리한테 좋을까? 기쁠까? 알맞을까? 아름다울까? 사랑스러울까? 아마 겉보기로는 멋져 보일 수 있겠지. 그래서 ‘그럴싸하다·그럴듯하다’ 같은 낱말이 있다. 겉보기로는 멋진 듯하지만 속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쳤다는 뜻이다. 우리 몸에 맞는 옷은 스스로 헤매면서 찾는다. 누구는 다섯 살부터 찾을 테고, 누구는 쉰 살에 이르러 찾는다. 또 누구는 백 살에 이르러 찾을 텐데, 백쉰 살이 되어도 그만 못 찾을 수 있다. 헤매는 길은 어렵거나 아프거나 고되지 않다. 헤매면서 길을 찾으니, 길을 찾은 뒤에 지을 엄청난 웃음꽃을 생각하면서 우리 옷을, 우리 몸을, 우리 마음을 찾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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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90. 알려준다



몰라서 묻는 사람한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할까? 한 마디를 들려주면 척 하고 받아들여서 알까? 아마 모르리라. 모르니까 한 마디로는 모자라고, 모른 채 있고 싶지 않아 ‘알려주는 사람’이 더 품하고 말미를 내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몰라서 묻기에 더 묻고 싶으며, 자꾸 묻고 싶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말을 훨씬 오래 길게 꾸준히 듣고 싶다. 말해 주는 사람 곁에 더 머물면서 품하고 말미를 나누고 싶다. 이리하여 알려주는 사람은 알고 싶은 사람한테 품하고 말미를 내어줄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품하고 말미를 쓰는 얼거리를 바로 헤아려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한테이든 이웃 아이한테이든 알려주는 사람은, ‘알려주는 어른이나 어버이로 자라기’까지 숱한 이웃이나 동무나 어른한테서 ‘품하고 말미를 나누어 받아’서 무럭무럭 배움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받은 배움사랑을 오늘 여기에서 여러 아이나 이웃이나 벗한테 알려주면서 품하고 말미를 즐겁게 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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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89. 숨



새벽에 일어나서 숨을 쉰다. 맨발로 마당에 선다. 맨발로 땅을 디디면 땅에서 무언가 나한테 올라온다. 팔을 하늘로 뻗으면 하늘에서 무언가 나한테 내려온다. 어릴 적부터 맨발로 뛰놀 적에 훨씬 신나고 기운난다고 느꼈는데,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맨발차림보다는 신을 꿴 차림이 익숙하다. 그러나 옛사람 자취를 보면, 옛사람은 어른이어도 일하거나 쉴 적에 으레 맨발이었다. 우리는 맨발살림을 잊고 맨손살림을 잃으면서 몸이 차츰 무거워졌을 수 있다. 숨을 쉰다. 하늘을 쉬고 땅을 쉰다. 바람을 들이켠다. 하늘을, 풀잎을 스치는 바람을,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내 몸을 드나드는 소리를 모두 마신다. 이 숨을 마시면서 이곳에 있으니, 저 숨을 마실 적에는, 그러니까 저 먼 별에 흐르는 숨을 마실 수 있을 적에는 별마실을 다녀오려나. 새벽을 지나 아침에 이르는 바람결이 곱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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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88. 쨍그랑



  몸이 아파 일을 쉬고 병원에 들어가신 장모님을 고흥집으로 오시라 했다. 병원이 오히려 쉬기 어렵고 몸을 다스리기도 나쁜 줄 알기에 우리 시골집으로 오셔서 몸하고 마음이 얽힌 길을 제대로 다시 바라보면서 푹 쉬시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지낸 일을 듣는데,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고 싶어도 새벽 여섯 시부터 일어나야 하고, 아침은 거르고 싶어도 꼬박꼬박 세끼를 먹어야 해서 더부룩하며, 병실에 led불을 환히 밝히니 눈이며 머리도 힘드셨겠구나 싶다. 씻을 적 말고는 손에 물을 못 대도록 하면서 내가 밥을 도맡아 짓는데(여태 늘 그랬지만), 낮밥을 거의 다 지을 즈음 큰아이가 부엌에 와서 “내가 뭘 도울까요?” 하고 말하는 소리에 ‘행주로 접시 물기를 훔치다가 그만 떨어뜨려’서 쨍그랑 깨뜨렸다. 일을 거들려면 진작 와서 거들 노릇인데, 아무도 거들지 않거나 거들 수 없는 부엌에서 혼자 모든 살림과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잰놀림으로 움직이다가 큰아이 말을 듣고 ‘혼자 일하던 흐름’이 살짝 흐트러지면서 접시가 미끄러졌다. 뭐, 큰아이가 도울 일이 생겼네. “얘야, 깨진 조각을 비로 쓸어 주렴.” 다 쓸고 난 뒤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일을 도우려면 처음부터 와서 도울 노릇이란다. 너희가 아무도 안 도와서 혼자 일을 하니까 아버지는 혼자 하는 결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네가 갑자기 부엌에 와서 그런 말을 하니, 마음이 살짝 어긋났구나.” 큰아이가 잘못한 일은 없다. 다만 서로 한 가지씩 배운 아침나절이라고 여긴다. 고운 접시 하나는 제 몸을 바쳐 쨍그랑 깨져 주면서 ‘혼자 일하는 흐름’에 누가 불쑥 끼어들어도 마음이 안 흔들리도록 다스리는 길을 나더러 더 익히라고 알려주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언제부터 부엌일을 도우면 좋은가를 배웠기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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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87. 이 길 저 길



  곁님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을 적마다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웃음이 활짝 피어난다. 곁님이 어떤 말을 하느냐 하면, ‘남이 시키는 대로 쳇바퀴를 도는 쉬운 길’을 갈는지 ‘스스로 하루를 짓고 온삶을 그리는 어려운 길’을 가겠느냐 하고 묻는다. 이 말은 언뜻 듣기에 엉뚱해 보인다. 그러나 참말로 맞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 더없이 쉽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할는지 생각해서 하루를 착착 짓는 길은 더없이 어렵다. 그런데 더없이 쉬운 길은 더없이 따분하면서 늘 똑같다. 더없이 어려운 길은 더없이 재미있으면서 늘 새롭다. 이리하여 더없이 쉬우면서 따분한 ‘남이 시키는 대로 가는 길’은 어느새 어려운 살림이 된다. 더없이 어려우면서 재미있는 ‘내가 바라는 대로 그리며 가는 길’은 시나브로 수월한 살림이 된다. 삶을 두 갈래로 쪼개서 바라보자는 뜻이 아니다. 삶은 두 갈래로 갈릴 뿐이다. 시키는 길이랑, 스스로 하는 길. 따라가는 길이랑, 손수 짓는 길. 남 눈치랑 목소리를 듣는 길하고, 내 마음을 보고 읽으며 노래하는 길.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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