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예쁜 책들



  내 눈에 예쁘게 보이는 책을 장만한다. 내 눈에 사랑스레 보이는 책을 읽는다.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책을 아이한테도 보여준다. 내 눈에 즐거워 보이는 책을 가슴에 포옥 안는다. 내 눈에 넉넉하게 보이는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넉넉한 마음이 되는구나 하고 느낀다.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 내가 쓰거나 엮는 책도 내 둘레 이웃한테 예쁘게 보이는 책이 될 수 있기를. 4348.7.1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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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과 거짓말 (표절)



  무엇이고 거짓말이고 무엇이 참말일까요. 누가 속이고, 누가 속았을까요. 문학이란, 삶을 밝히는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낍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아름다운 말로 밝히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문학을 누리거나 즐긴다고 느낍니다. 요즈음이 아닌 옛날에도 ‘다른 사람이 빚은 멋진 글’을 빌어서 ‘내가 쓰려는 글’에 따서 드러내는 일을 으레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따와서 쓰기’를 할 적에는, 누가 어디에 언제 쓴 글인가를 찬찬히 밝혔습니다. ‘예의’라기보다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생각을 글로 밝힌 이웃님이 있구나 하고 느껴서, 그 글을 기쁘게 옮기고 고맙게 밝힙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삶이라고 느낍니다.


  꼭 논문이 되어야만 ‘출처 밝히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시에서도 소설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내 이웃님이 빚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밝힐 수 있고, 이렇게 밝힐 때에 참말 서로 아름다운 사이(동무, 동료)가 되어, 문학을 더욱 살찌울 수 있겠지요.


  표절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대목을 어겨서, 서로 생채기를 받는 일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 말이나 글’을 으레 옮겨서 ‘내 생각을 밝히’곤 합니다. 내 이웃이 아름답게 쓴 글은 내 생각을 밝히는 자리를 더욱 빛내어 줍니다. 내 이웃이 사랑스레 쓴 글은 내 뜻을 드러내는 자리를 더욱 북돋아 줍니다.


  ‘출처를 안 밝히고 마음으로만 존중했다’고 말할 노릇이 아니라, 작품에 한 줄로라도 고마움을 밝힐 때에, 이웃 작가도 독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함께 빚는 문학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만하겠지요. 4348.6.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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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야 할 책인가



  서울로 바깥일을 보러 나오기는 했으나, 참말 서울 가는 버스표 끊을 돈밖에 없었다. 고흥에서 시외버스에 오른 뒤 여러 사람한테 ‘도와주셔요’ 하고 말씀을 여쭈었다. 인천에 사는 형하고, 서울에서 커피집을 꾸리는 이웃님이 마실삯을 보태어 준다. 서울에서 뵌 출판사 지기님이 마실삯을 또 보태 주었고, 서울에서 사진가로 일하는 분이 잠자리를 내어주었다. 출판비평 일을 하는 분이 낮밥을 사 주셨고, 사진잔치를 이끄는 분이 저녁밥을 사 주신다. 더없이 고마운 손길을 받으면서 서울에서 책방 한 군데를 들를 수 있었고, 책을 육만칠천 원어치 장만한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더 고르고 싶었으나, ‘고맙게 받은 돈’으로 책만 살 생각이니, 하고 스스로 되물으면서, 골랐던 책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또 책시렁에 내려놓았다. 새로운 책을 한 권이라도 이 마실길에 장만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우면서 기쁜가. 꼭 사야 할 책이었기에 산다. 꼭 사야 할 만한 책인가를 돌아본다. 꼭 사서 읽고 마음을 곱게 북돋우는 길에 이바지할 책을 장만해서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4348.6.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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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6-20 23:23   좋아요 0 | URL
신중함, 소중함이 느껴지네요.
선택받은 책들은 뿌듯할 듯 하네요~

숲노래 2015-06-21 05:15   좋아요 0 | URL
주머니가 가벼운 탓에
모든 책을 고르지 못하니
한 권씩 더 알뜰히 장만하는구나 싶어요...
 

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읽는다. 어떤 책을 내 손에 잡든, 내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인다. 꼭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않다. 꼭 어떤 책으로 배워야 하지 않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기에, 이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여서 내 삶을 새롭게 가꾸는 힘, 바로 슬기를 북돋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책을 손에 쥐어서 읽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서 기쁘게 생각을 살찌우지 않는다면, 책읽기가 아름다운 길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힘들다.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책이 곁에 있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이 훌륭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한다. 생각을 슬기롭게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스러운 책이 둘레에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사랑스러운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올바로 헤아리지 못한다. 꿈을 기쁘게 키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놀랍고 멋지며 알찬 책이 코앞에 있더라도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거나 번거로워 할 뿐이다.


  마음이 고운 사람이 모든 책을 고운 숨결로 어루만진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 모든 책을 착한 눈빛으로 밝힌다. 마음이 너른 사람이 모든 책을 너른 넋으로 어깨동무한다. 마음이 환한 사람이 모든 책을 즐거운 노래로 북돋운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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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실



  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오면, 두 팔 가득 책을 짊어진다. 한 권을 골라도 두 팔 가득 책을 품고, 열 권을 골라도 두 팔 한가득 책을 안는다. 가벼운 책이든 무거운 책이든, 적든 많든, 언제나 가슴으로 따사롭게 책을 품는다.


  즐겁게 장만한 책은 즐겁게 읽는다. 사랑스레 장만한 책은 사랑스레 읽는다. 고맙게 장만한 책은 고맙게 읽는다. 이리하여, 얄궂게 훔친 책은 얄궂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은 채 읽어야 하고, 우악스레 빼앗은 책은 우악스러운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읽어야 한다.


  책을 마주할 때뿐 아니라 책을 장만할 때에도 가장 너그러우면서 넓고 넉넉한 마음이 되도록 다스린다. 아이를 돌보거나 밥을 지을 때뿐 아니라 말을 섞거나 글을 쓸 때에도 가장 따스하면서 고운 마음이 되도록 추스른다.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 아름답게 꿈꾸는 삶을 짓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집안에 갖춘 뒤 틈틈이 읽고 또 읽는다. 책마실을 하는 사람은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찾으려는’ 마실을 누린다. 책마실을 아이와 함께 즐기는 사람은 ‘사랑을 짓는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밝힌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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