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상 하나 있으면



  걸상 하나 있으면 아무리 넓은 책방이나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아늑하다. 왜 그럴까? 고작 작은 걸상 하나일 뿐인데. 걸상 하나 없으면 아무리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갑갑하다. 더욱이 걸상 하나 없는 커다란 책방이나 도서관은 아찔하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지만, 책만 있고 걸상이 없는 곳은 아무래도 책방답지 않고 도서관 같지 않다고 느낀다.


  걸상은 더 많아야 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라도 얌전히 있으면 된다. 온몸을 가만히 맡길 걸상에 앉아서 온마음을 책 하나에 쏟을 수 있으면 된다. 2016.2.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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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시집은 낡은 이야기



  낡은 시집에는 낡은 이야기가 깃들었을까? 그러면 새로 나온 반들거리는 시집에는 반들거리는 새로운 이야기가 깃들까? 책꽂이를 새롭게 고치려고 책을 잔뜩 들어내어 옮기다가 《백제행》 2쇄를 본다. 나한테는 《백제행》 1쇄도 있고 2쇄도 있는데, 두 가지 판은 겉그림이나 판짜임이 다르다. 이제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춘 《백제행》인데 마지막 쇄를 찍은 겉그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2쇄 때 모습 그대로 흐르다가 판이 끊어졌을까?


  《백제행》을 펴낸 출판사에서 며칠 앞서 새로 선보인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읽었다. 새로 나온 시집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흐를 테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시집을 펴낸 시인이 걸어온 ‘예전 발걸음’이다. 예전에 나온 낡은 시집도 예전에 그 시집을 펴낸 시인이 그동안 걸어온 ‘예전 발걸음’이다.


  2016년 눈길에서는 2016년에 나온 시집은 ‘새’ 시집일 테고, 《백제행》은 ‘판이 끊어진 낡은’ 시집일 텐데, 2050년이나 2100년을 사는 사람들 눈길로 보면 두 시집은 어떠한 시집이 될까? 낡지 않은 이야기가 흐르는 낡지 않은 ‘낡은 시집’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2016.2.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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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 사진책을 말하기



  필립 퍼키스 님 사진책이 지난 2015년 12월에 새로 나왔다. 이 사진책을 다루는 인터넷서점은 아마 ‘알라딘’뿐이지 싶다. ‘안목 출판사 누리집(http://blog.naver.com/anmocin)’에 들어가야 비로소 필립 퍼키스 님 사진책을 주문해서 받아볼 수 있으리라 본다.


  언제부터였던가, 필립 퍼키스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나왔고, 이분 사진책이 날개 돋힌듯이 팔리지는 않았으나, ‘사진길을 걷는 이웃님’한테 포근하면서 부드러운 노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구나 하고 느낀다.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삶’을 밝히는 사진을 가르친 필립 퍼키스 님이기에, 이분 사진책은 여러모로 따스하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사진’을 말하는 사진책을 쓰는 필립 퍼키스 님이라고 할까. 이분 새로운 사진책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를 놓고 두 달 남짓 마음으로 삭히고 삭힌 끝에 오늘 낮에 드디어 느낌글 하나를 마무리지었다. 이 사진책을 놓고 글을 쓰기로 하고 출판사에 연락해서 ‘보도자료(비평/리뷰)로 쓸 사진’을 얻고서 이레가 지난 오늘 느낌글을 마치면서 여러모로 기쁘다.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글이 아주 술술 잘 풀렸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도 언제나 삶이다. 글이란 무엇인가? 글도 언제나 삶이다. 영화도 만화도 노래도 춤도 연극도 연속극도 모든 것은 언제나 삶이다. 삶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사진을 사진으로 마주할 수 있을 때에는 삶을 삶으로 마주하면서 그리는 손길·눈길·마음길이 된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필립 퍼키스 님 사진책을 꾸준히 펴내 주는 안목출판사 일꾼들한테 언제나 고맙다.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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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치우면서 읽는 시집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운다. 아이들은 아버지 둘레에서 신나게 ‘겨울 물놀이’를 한다. 손발이 시리도록 물이끼를 걷어낸 뒤에 손발을 말리려고 빨래터 울타리에 걸터앉는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시집을 펼친다. 손에 묻은 물기가 마른 뒤에 천천히 넘긴다. 겨울바람과 겨울볕을 함께 맞이하면서 읽는 시집이 싱그럽다. 시집에 깃든 이야기도 반갑다. 두 아이는 더 놀고 싶어 하지만, 이 겨울바람을 살짝 쐬고 들어가면 어떠할까? 우리는 우체국에도 나들이를 다녀와야 하지.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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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한 권을 아이들하고



  그림책 《꽃밭의 장군》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는다. 번역이 살짝 아쉬워서 몇 군데는 연필로 고쳐서 함께 읽는다. 마흔 쪽을 살짝 넘는 ‘이야기가 살짝 긴’ 그림책인데, 그림결이나 이야기결이 무척 상냥하면서 곱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이만 한 너비와 깊이를 드러내는 그림책이 아직 드물거나 없다고 느끼고, 이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게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책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담는 인문책도 재미있고,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그리는 사회과학책도 뜻있다. 그런데 어린이도 아주 쉽고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배우면서 깨닫도록 북돋우는 그림책은 재미랑 뜻뿐 아니라 사랑에다가 꿈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른들이 ‘글만 있는 인문책’도 꾸준히 즐기되, 아이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참으로 재미나면서 사랑스러운 삶터가 될 만하리라 하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손길로 아름다운 그림책을 쥐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우리 아름다운 어른들 무릎에 앉혀서 아름다운 눈길로 함께 읽는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책놀이요 책살림이 될까나.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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