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 주는 사이



  우리는 책을 읽어 주는 사이. 네가 바라기에 읽어 주고, 내가 즐거우니 서로 읽어 준다. 나긋나긋 따사로운 목소리에 고운 사랑을 실어 책을 읽어 준다. 도란도란 마음꽃을 피우면서 차근차근 읽어 준다. 자, 들어 보렴. 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로 오늘 하루도 신나는 꿈을 함께 꾸어 보지 않겠니. 자, 함께 읽을까. 이 책에 깃든 이야기로 너랑 나랑 서로 아끼면서 기쁘게 뛰어노는 하루를 지어 보자.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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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노래하는 책



  삶을 곱게 바라보면서 그리는 시 한 줄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이 지구별 삶을 곱게 바라보면서 시 한 줄을 그릴 수 있으면 가을은 새롭도록 싱그러울 테지요. 가을바람을 새삼스럽도록 푸르게 다시 누리려고 시를 한 줄 손수 써서 읽습니다. 시인이어도 시를 쓰고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씁니다. 가수가 아니어도 노래를 부르고 가수여도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열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가을이라서 따로 가을내음 짙은 책이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든 기쁜 마음으로 집어서 펼칠 수 있다면 모두 ‘가을을 노래하는 책’이 됩니다. 내 마음이 가을을 노래할 적에 비로소 가을책이면서 가을사랑으로 거듭납니다. 4348.10.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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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을 ‘책’으로 할 수 있을까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책으로는 언제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낀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책을 길동무로 삼기는 하더라도, 삶은 책 바깥에서 이룬다. 아름다운 책을 읽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책을 손에 쥐는 동안 흐른다. 책을 내려놓으면 삶은 책하고 다르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가 삶에서도 흐르리라 여길 수 없다. 삶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함께 누리자고 여길 때에 비로소 책을 즐거이 맞이할 만하다고 느낀다. 책처럼 짓는 삶이 아니라, 삶을 짓듯이 책을 한 권씩 만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된다.


  그러니까, 인성교육이든 무슨무슨 교육이든 책으로는 할 수 없다. 오직 삶으로 할 수 있다. 직업교육이든 지식교육이든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 오직 마을이랑 집에서 삶으로 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삶터 구실을 하나도 못 하면서 오직 시험공부 하는 데에서 그친다.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는 학교라 한다면,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나 다른 여러 가지 교육을 할 만하다. 그러나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을하고는 동떨어진 채 ‘출퇴근하는 공무원’만 있는 학교라 한다면, 이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다운 마음결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성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삶자리에서, 그러니까 어버이랑 아이가 이웃하고 동무를 아끼는 하루를 누려야 한다. 숲·나무·풀·꽃이며 온갖 벌레·새·뭇짐승에다가 바람·해·별·달·구름 모두를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착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을 키우거나 가꾸거나 살찌울 만하리라 느낀다.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4348.10.2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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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5-10-21 12:00   좋아요 0 | URL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무척 공감 가는 글입니다.
가을에 가을 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근간이 되는 그런 교육이 몹시 그립습니다.^^

숲노래 2015-10-21 12:56   좋아요 0 | URL
곧 모든 곳에서
누구나 즐겁게 나눌 수 있기를 꿈꾸어요.

그러나 사회는 국정교과서 같은 바보짓을 일삼는데
슬기롭고 똑똑하며 착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어버이와 어른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해요
 

책방이 여기 있으니



  책방이 여기 있으니, 즐겁게 찾아간다. 여기에 있는 이 책방은 언제나 마을쉼터 구실을 하니,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쉬면서 느긋하게 책을 살핀다. 이 조그마한 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책터로 고운 숨결을 이을 테니, 바로 이 책방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새록새록 얻는 만남터로 거듭난다.


  책방이 여기 있으니, 마을이 한결 싱그러이 춤춘다. 여기에 있는 이 책은 언제나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래가 될 테지. 나는 노래를 부르려고 책방에 간다. 나는 노래를 함께 나눌 이웃을 만나려고 책방에 선다. 나는 노래를 짓는 슬기로운 숨결을 되새기려고 오늘 여기 이 책방에서 책시렁을 찬찬히 살펴본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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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책을 찾아서



  집에 책을 잔뜩 쌓아 놓고서 읽는 사람은 흔히 ‘집에서 책을 잃는’. 책꽂이에 꽂았는데 잃고, 책탑처럼 책을 쌓았기에 잃으며, 가방에 넣은 채 까맣게 잊어서 잃는다. 베개 밑에 두거나 깔개 밑에 둔 줄 잊은 채 잃기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뛰놀다가 베개 밑에 깔리기도 하니까, 뭐. 마당에서 책을 읽다가 퍼뜩 다른 일이 떠올라서 평상이나 짐에 올려놓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책을 잃기도 한다. 이래저래 잃는 책이 많다. 웬만한 책은 하루가 다 가기 앞서 찾지만, 이틀이나 사흘이 되도록 못 찾는 책이 있고, 어느 책은 여러 해 뒤에 뜬금없다 싶은 곳에서 찾기도 한다.


  어제오늘도 책 한 권을 찾느라 한참 온갖 곳을 뒤졌으나 책이 안 나왔다. 오늘까지 사흘째 책 한 권을 찾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아서 새로 한 권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놓았는지, 아니면 어디에 두고 잃었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녁해를 바라보면서 빨래를 걷은 뒤 우체국에 다녀온다. 작은아이가 잠들었기에 혼자 다녀온다. 작은 가방에 소포를 잔뜩 넣고 다녀온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서 집으로 돌아올 무렵, 문득 가방이 더 무겁다고 느껴서 가방 주머니 한쪽을 여니 ‘사흘 동안 잃어버려서 못 찾은 책’이 나온다.


  허허허. 너털웃음이 나오면서 빙그레 꽃웃음도 터진다. 이야, 드디어 찾았네.


  이제 앞으로는 책을 좀 잃지 말자. 무엇보다도 ‘집에서 책을 잃는 바보짓’은 좀 그만하자. 집에서 읽던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맣게 잊는 멍청한 짓은 오늘로 끝내자.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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