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볼 책

 

  서울마실을 하니 새삼스럽도록 ‘서울에 사람들 참말 많고마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참말로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합니다. 겨우 입에서 이 말을 안 터뜨리고 속으로 삭입니다. ‘아따 요로코롬 사람이 많으니 서울이 덥지’ 같은 생각도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뒤따를 즈음 생각을 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마실을 ‘수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오지 않았거든요. 내 할 일이 있어서 이 할 일을 즐겁게 하려고 왔어요. 전철에서 버스에서 길에서 문득 서서 눈을 감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다스려 봅니다. 다시 눈을 뜨고 수첩을 꺼내어 몇 마디를 적습니다. “바라볼 곳. 바라볼 것. 바라볼 님. 바라볼 집. 바라볼 길. 바라볼 넋. 바라볼 책.” 눈앞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자동차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면서 ‘구경놀이(관전평)’를 하겠느냐고 속으로 묻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가방에 챙긴 책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마음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곁에서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꿈과 파랗디파랗게 부는 바람을 바라보아야지요. 2016.8.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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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그릴 수 있는 살림



  틈틈이 꿈그림을 그려서 책상맡에 놓거나 부엌이나 마루에 붙입니다. 꿈그림을 그린 지는 이제 서너 해쯤 됩니다. 그동안 꿈그림을 딱히 안 그리며 살았습니다. 꿈그림을 새롭게 그리다가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꿈그림이란 내가 스스로 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담은 그림입니다. 내가 늘 생각하고 내가 언제나 되새기면서 즐겁게 나아가고 싶은 길이 바로 꿈입니다. 꿈그림이야말로 가장 먼저 그려서 책상맡에 붙일 그림일 테지요. 그렇지만 막상 꿈그림을 그려서 붙이자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어요.


  학교에서는 급훈이나 교훈이라는 글씨를 교실마다 붙여요. 이런 급훈이나 교훈으로 적히는 글씨는 ‘나쁜 글’은 없어요. 다만 가슴에 와닿기 어려운 글이기 일쑤예요. “하면 된다” 같은 글씨는 참으로 훌륭한 글씨이기는 하되 ‘뭘’ 하면 되는가를 밝히지 않아요. 또 ‘누가’ 하면 된다거나 ‘언제’ ‘어디에서’ ‘왜’ 하면 되는가도 밝히지 않아요.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사회에서 늘 길들여지는 굴레는 바로 “하면 된다” 같은 급훈이나 교훈이지 싶습니다. 말은 틀림없이 좋지만 알맹이가 없어요. “하면 된다”는 말처럼 참말 무엇이든 하게 이끌어 내요. 그렇지만 스스로 꿈을 그리면서 한 삶이 아니라 그저 밀어붙이는 얼거리로 “하면 된다”이기에 어떤 일을 해내고 나더라도 보람이 없어요.


  그냥 그림이 아니라 꿈그림을 그립니다. 추상화도 초상도 아닌 꿈그림을 그립니다. 예술도 문화도 아닌 꿈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을 마음으로 고이 담으면서 꿈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책 한 권을 읽을 적에 ‘더 많은 책’을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한 권을 발판 삼아서 즐거운 살림을 짓는 슬기를 가다듬겠다는 생각이 될 때에 참으로 즐겁습니다. ‘남들이 다 읽는 책’이나 ‘잘 팔리는 책’이 아닌 ‘사랑으로 읽어서 사랑을 지피는 책’을 두 손에 쥐고서 활짝 웃는 몸짓이 되려 합니다. 2016.8.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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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쉬고 읽고 쉬고



  고흥에서 서울로 오는 시외버스에서 책을 한 권 읽은 뒤 머리를 등받이에 폭 기대어서 눈을 감고 쉽니다. 머리에 들어온 이야기를 곰곰이 삭이고 나서 새로운 책을 한 권 꺼내어 새롭게 읽습니다. 새롭게 꺼낸 책을 다 읽고서 새삼스레 머리를 등받이에 폭 기대어서 눈을 감고 쉽니다. 이렇게 네 차례쯤 하며 책 네 권을 읽습니다. 고흥부터 서울까지 네 시간이 훨씬 넘는 널널한 마실길이거든요. 어제 하루 이처럼 책을 읽었다면, 오늘 하루도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버스길에 책 네 권쯤, 또는 대여섯 권까지도 느긋하게 읽을 테지요. 이러고 나서 우리 보금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아이들하고 어떤 놀이를 새롭게 지으면서 활짝 웃을까 하고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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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맛을 읽는다


  아이들한테 가만히 속삭입니다. 얘들아, 오늘은 어떤 날씨가 될까? 너희는 오늘 어떤 날씨이기를 바라니? 아이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속삭입니다. 자, 우리 하늘을 볼까? 자, 우리 바람맛을 느껴 볼까? 아침 낮 저녁으로 바람맛을 보고 햇볕맛을 보면, 날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그저 몸으로 누구나 알아차릴 만해요. 이러한 날씨는 마당에 설 때뿐 아니라, 마루나 부엌이나 방에서도 느껴요. 모든 바람은 온누리를 골골샅샅 흐르기에, 우리 마을이랑 집을 둘러싼 날씨는 내가 늘 마시는 바람결로 헤아릴 수 있어요.

  시골집에서 살며 마시는 물은 냇물이거나 골짝물입니다. 뒷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숲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땅밑으로 흐르는 물이니 땅밑물이기도 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흐르는 이 물을 마시면서 새삼스레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우리 어여쁜 아이들아, 이 냇물맛은 어떠하니? 시원하니? 맑니? 다니? 차갑니? 상큼하니?

  우리 집 아이들이 삶을 읽고 살림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로 자라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러면서 나도 삶이랑 살림이랑 사랑을 읽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아이들 곁에서 무럭무럭 크자고 꿈꾸어요. 밥맛뿐 아니라 풀맛이랑 흙맛을 읽고, 바람맛이랑 비맛을 읽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자고 생각해요. 2016.7.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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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님한테서 배우는 살림



  나는 집에서 밥짓고 온갖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린다고 하지만, 아직 아장걸음처럼 어설프거나 엉성하다고 느낍니다. 곁님은 몸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서 곁님이 집에서 밥을 짓는다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곁님한테서 여러모로 늘 배웁니다. 얼핏 겉으로 보자면 집일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한테서 무엇을 배우겠느냐 싶지만, 문득 들려주는 한두 마디라든지 문득 보이는 한두 몸짓으로도 즐겁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배워요.


  오는 7월 5일부터 7월 30일까지 미국 옘(Yelm)에서 하는 배움잔치가 있기에 이 자리에 온식구가 다 같이 가거나 적어도 곁님을 이 배움잔치에 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삯이나 값을 헤아리면, 네 사람이 모두 가자면 20000달러, 한 사람이 가는 데에 5000달러쯤 들 텐데, 그쯤은 넉넉히 댈 수 있으리라고, 올 7월 이 배움잔치에 네 식구도 갈 만하리라고 생각하며 올해를 맞이했고 1월부터 6월까지 신나게 일하면서 살림돈을 모으려 했어요.


  오늘 7월 1일에 출판사 한 곳에서 선인세 1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올 한글날 언저리에 나올 책을 놓고서 글삯을 먼저 받은 셈인데, 제가 그 출판사로 글삯을 먼저 달라고 여쭙지 않았는데 그냥 먼저 보내 주셨어요. 이리하여 우리 살림돈이 빚이 없이 160만 원이 되었기에 ‘적어도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태워서 배움잔치에서 즐거이 배우도록’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곁님더러 배움잔치에 가라고 얘기했지요. 곁님은 비행기삯만으로 어찌 가느냐고, 이제는 카드로 긁어서 배움길에 나설 뜻이 없다고 대꾸해요. 나도 곁님처럼 앞으로는 카드를 긁어서 어찌저찌 여러 달에 걸쳐서 갚는 배움바라지를 하지 않겠노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잘 풀리리라 생각하는데, 곁님은 딱 끊습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여요. 꼭 올 7월 배움잔치에만 가야 하지 않는다고, 다음 가을이든 겨울이든 이듬해이든 얼마든지 새로운 배움길이 있다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나더러 바쁘게 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에요.


  낮에 빗길을 가르며 우체국에 다녀왔어요. 곁님은 곁님 스스로 입을 옷을 손뜨개로 이레 즈음 걸쳐서 한 벌 지었는데, 다 짓고 보니 곁님 스스로 입기에 크다면서, 이 뜨개옷을 동생한테 보내야겠다고 얘기합니다. 동생은 곁님보다 키나 몸이 크니 곁님한테는 크다 싶은 옷이 동생한테는 꼭 맞춤하리라 얘기해요.


  여러모로 다른 집일을 못 하는 곁님이지만 뜨개질을 할 적에는 밤샘을 하면서 붙잡습니다.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살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아무튼 얼추 이레 즈음 낮밤을 모두 손뜨개에 바쳐서 곁님 옷을 스스로 지었는데, 이 옷을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동생한테 선물로 띄운다고 할까요.


  빗길을 자전거로 달려서 우체국에 다녀오며 ‘스스로 입을 옷을 스스로 실을 고르고 스스로 뜨개를 익혀서 스스로 온사랑을 바쳐서 지은’ 뒤에 스스럼없이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네,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온사랑을 들여서 무엇을 지었다면 기꺼이 누구한테든 선물할 수 있고, ‘그냥 누구’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스스럼없이 주겠지요.


  우리 집 곁님은 여태 ‘돈을 버는 일’은 거의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닌 살림을 짓는 일’은 늘 천천히 한다고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는 없으나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살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고흥 시골집 네 식구 살림살이에서 곁님이 베푸는 작으면서 더딘 손길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기쁨이라고 여겨서 늘 즐거이 배웁니다. 이 배움을 우리 아이들이 곱게 물려받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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