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놓는 자리 곁에



  책을 놓는 자리에는 책을 놓지요. 그런데 책을 놓는 자리 곁에 다른 것을 놓기도 해요. 이를테면 연필이나 수첩을 놓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붙이기도 합니다. 들꽃을 꺾어서 곱게 꾸미기도 하고,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책을 좀 쌓기도 합니다. 시계를 놓을 수 있고, 이것저것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올릴 수 있어요. 책꽂이에는 책을 꽂기 마련이지만, 책꽂이 한쪽에 못을 박아 달력을 걸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재미난 것을 붙일 만하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나 그림이나 엽서도 붙일 만해요. 모두 내 나름대로 내 사랑을 담아서 꾸미는 손길입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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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힘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할 적에 즐겁거나 보람차거나 재미난 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배우면서 삶을 노래할 만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을 때에 맛나면서 기쁜가를 알 수 있고, 땅을 어떻게 가꾸어 먹을거리를 얻을 때에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랑스러운 짝님을 만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이들한테 상냥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손에 ‘좋은 책·고운 책·밝은 책·고요한 책’을 가만히 쥐면서 스스로 알뜰살뜰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삶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서 읽을 책을 스스로 알아보지 못하고 말아, 남들이 추켜세우거나 많이 읽는 책만 똑같이 따라서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내 생각이 있을 적에 내 삶이 있어서 내 책을 찾고, 내 생각이 없을 적에 내 삶이 없어서 내 책을 찾지 못합니다.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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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힘이 되는 노래



  고흥집에서 글을 쓸 적에 나는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아뭇소리를 듣지 않고 오로지 내 글쓰기에 사로잡힙니다. 이때에는 글판 두들기는 소리조차 듣지 않고, 내 손가락이 내 마음에 따라 흐르면서 글판을 누른다는 느낌조차 모조리 느끼지 않습니다. 둘째, 셈틀에 어떤 노래를 틀어놓습니다. RAMTHA 훈련 가운데 하나인 불꽃 같은 숨을 쉴 적에 바탕노래로 삼는 노래를 틀어요. 이 훈련 노래는 훈련을 할 적에 들어도 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이끌지만, 훈련이 아닌 여느 때에도 마음을 튼튼히 다잡도록 북돋우는 숨결이 있다고 느낍니다. 고흥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바깥일을 보며 글을 쓴다고 할 적에도 유에스비 메모리카드에 이 훈련 노래를 담아서 갖고 다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유에스비 메모리카드가 먹통이 되었고, 듣고 싶던 훈련 노래를 듣지 못합니다. 괜시리 서운하고 슬프네 하고 여기다가 인터넷을 켜서 유투브에 들어갔고, 유투브에서 영어 노래를 틀어 봅니다. 그동안 아이들하고 즐겁게 듣던 영어 노래입니다. 아이들하고 듣는 영어 노래는 내가 어릴 적에 그냥 한국 동요인 줄 알던 노래였으나 이제 와서 다시 들으니 번안 동요였고 영어 원곡이 따로 있는 줄 깨달은 노래입니다. 영어 노래, 그러니까 영어 동요를 들으면서 영어를 새롭게 배우자는 마음도 있지만, 이보다는 이 영어 동요가 무척 차분하면서 즐겁다고 느낍니다. 한국에서 흔히 듣는 한국 동요는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여기면서 좀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 짙다면, 훌륭한 영어 동요는 그냥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노랫결이 따사롭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억지로 쥐어짜는 귀여움이 아니라, 수수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눈길과 목소리로 부르는 훌륭한 영어 동요가 몹시 반가우면서 재미있다고 할 만하다고 느껴요. 이런 노래를 바탕에 깔아 놓으면 나는 어느새 고요하면서 고즈넉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잊던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 몸짓으로 글을 쓸 수 있어요. 내가 곁에 두면서 읽고 싶은 책이라면, 바로 이렇게 사랑스러운 노래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어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고 살림을 짓는 꿈이 깃든 책이 더없이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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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을 덮을 때



  문득 책을 덮을 때가 있습니다. 책이 재미없어서 덮을 수도 있지만, 책이 재미있지만 책보다 재미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려는 마음으로 책을 덮습니다. 바람을 한껏 들이켜면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서 책을 덮습니다. 빗소리를 듣거나 눈발을 바라보려고 책을 덮습니다. 노래하며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함께 놀려고 책을 덮습니다. 밥을 지으려고 책을 덮습니다. 빨래를 걷어서 개려고 책을 덮습니다. 졸려서 잠을 자려고 책을 덮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책을 덮습니다. 자전거를 타려고 책을 덮습니다. 숲에 깃들어 골짝물에 풍덩 뛰어들려고 책을 덮습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으려고 책을 덮습니다. 그리고 시를 한 줄 적바림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꿈을 읊고 싶어서 책을 덮습니다. 2016.6.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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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려고 책을 덮다



  여섯 달 남짓이 되어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시를 쓴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이,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사이, 전철을 기다리는 사이, 수첩을 꺼내어 시를 적어 본다. 처음에는 책을 좀 읽으려 했으나 어느새 머릿속에서 수많은 노래가 어우러지거 얽히고 흐르면서 ‘얘야 책을 덮으렴, 얘야 이 노래를 들으렴’ 하면서 싯말이 자꾸자꾸 흘러넘쳤다. 이리하여 나는 책을 고이 덮고 가방에 넣었다. 한손에 연필을 쥐고 한손으로 수첩을 받치면서 자꾸자꾸 시를 썼다. 서울마실에서 만날 살가운 이웃님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시를 한 자락 쓰고, 또 한 자락, 다시 한 자락, 그야말로 술술 바람이 불듯이 썼다. 시를 쓰려고 책을 덮었다. 노래가 흘러넘쳐서 책을 덮었다. 춤을 추면서 웃고 싶어서 책을 덮었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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