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2. 터



  저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드나들었고, 서울에 있는 헌책집은 1993년에 처음 다녔으나 제대로 널리 다닌 해는 1994년입니다. 서울에서 살던 무렵에는 뻔질나게 헌책집을 다녔으나 삶자리를 시골로 옮긴 뒤로는 한 해에 한걸음을 하기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럴밖에요. 시골에서 살며 서울에 여러 달에 한걸음을 하는데, 다른 볼일을 살피는 틈에 살짝 찾아갈 뿐이거든요. 예전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는데, 스물다섯 해 앞서 마주한 헌책집 아이는 이제 서른이란 나이를 훌쩍 지납니다. 아무렴, 그러겠지요. 어버이가 어제 일군 일터에서 오늘 새롭게 땀을 흘리면서 살림을 짓는 책집지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터’라는 낱말이 제 마음으로 스몄습니다. ‘터’라, 터란 무엇일까? 저는 제가 시골집에서 누리는 집을 앞으로는 숲터가 될 만한 곳으로 가꾸는 길을 가려고 생각합니다. 숲터가 되는 집터라면 언제나 신나는 놀이터요 삶터이자 쉼터이고 이야기터이며 마음터에 살림터가 되겠지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책터는 왁자지껄 부산한 곳에서 어떤 터가 될까요? 배움터요 새터이면서 샘터가 될 수 있기를, 노래터이자 꿈터이면서, 책 하나로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싱그러운 놀이터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책만 잔뜩 있는 터전이 아닌, 숲에서 온 나무로 빚은 책에 흐르는 하늘처럼 파란 숨결을 푸르게 담아낸,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랑터로, 만남터로, 사람터로 나아간다면 참으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맑은 물은 샘터

즐거운 우리 보금자리터

나무가 푸른 숲터

구름이 가득 하늘터


즐겁게 가꾸는 꿈터

사이좋게 나누는 배움터

도란도란 이야기터

처음으로 지은 새터


묵은 때 벗는 빨래터

그림책 만화책 좋아 책터

다리에 기운나도록 쉼터

마실을 가는 저자터


알뜰살뜰 일터

하루가 싱그러운 살림터

이 별은 삶터

우리가 사랑하는 놀이터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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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1. 발


  한글날을 앞둔 10월 8일에 경기 고양시까지 마실을 했습니다. 이곳에 교육방송이 있고, 교육방송 라디오에 나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했어요. 일을 다 마치고 고양시에서 택시를 불러 서울로 가려 했는데, 부름택시는 오지 않고 길에서 택시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부름택시는 곧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30분 넘도록 뒷말이 없습니다. 안 되는구나 싶어 가까운 전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가는 길에 잡은 택시는 “이맘때에는 길이 막혀서 못 가요. 대중교통을 타시는 쪽이 빠릅니다.” 하는 말로 부르릉 떠납니다. 길이 막히든 말든, 길삯을 얼마를 치르든, 저로서는 몸을 더 느긋이 쉬면서 택시를 탈 생각이었으나, 택시일꾼은 저녁 여섯 시에 고양에서 서울로 안 가려 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꽤 오래 걸어서 주엽역에 닿았고, 전철을 타고 서울로 들어섰습니다. 이 하루를 누리면서 돌아보았어요. 오늘 이 하루는 나한테 어떤 뜻이요 보람인가 하고 짚기로 했습니다. 이러니 ‘발’이라는 낱말 하나가 가슴으로 옵니다. 밤 00시부터 고흥집에서 짐을 꾸리고 집안일을 건사했고, 아침 07시에 마을 앞을 지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고흥읍으로 가고,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순천으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용산역에 내린 뒤, 신촌에 있는 책집을 들러 책을 장만한 뒤에, 망원동에 있는 출판사에 들러 제가 쓴 사전 한 권을 얻어 방송국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지요. 하루 내내 못 쉬고 움직인 터라 발이 아파 택시를 타고 움직이려 했습니다만, 저녁나절에 바깥일을 마친 뒤에 발도 몸도 쉴 수 없어서 발가락이 살짝 부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음 같은 시 열여섯 줄을 얻었어요. ㅅㄴㄹ



오래오래 걸어도
풀밭길은 발이 보송보송
숲길은 발이 푸릇푸릇
냇물길은 발이 시원시원

살짝살짝 걷지만
시멘트길은 발이 따끔따끔
아스팔트길은 발이 뜨끈뜨끈
서울에서는 맨발이 힘들어

우리 발은
어느 길을 좋아할까
어떤 길바닥을 반길까
어디에서 기운이 날까

발바닥을 주무른다
발가락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오늘 하루도
씩씩히 걸어 주어 고마워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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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 소리



바람이 불어

구름 흐르는 소리


짝짓기 마친 암사마귀

알 낳는 소리


꽃가루 찾는 범나비

꽃송이에 날아드는 소리


잠자리 한 마리

빨랫줄에 앉는 소리


낫을 쥐어

풀을 베는 소리


쌀을 일어

밥 짓는 소리


햇볕이 따끈따끈

빨래 마르는 소리


여기에

아이랑 어머니 마루에 앉아

나긋나긋

책 읽는 소리



2016.8.30.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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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 꿈


꿈에서 참말 날았어
동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구름보다 높이
무지개를 따라서
실컷 날았어

해님이 우리를 보며 웃곡
새들이 같이 날자며 오고
빗방울은 우리 밑에 있지

얼마나 재미있는데

오늘도 신나게
하늘 나는 꿈을
새롭게 꿀 생각이야


2016.8.30.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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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 손가락에



나비가 손가락에 앉아

날개를 쉬어


나는 숨을 죽이고

꼼짝 않으면서

두 눈 동그랗게 뜨지


온마음을 쏟아

이 작고 곱고 상냥한

나비 한 마리에

흠뻑 빠져들어


이윽고

나비는 날개를 살짝살짝 흔들며

손끝으로 걸어가다가

팔랑 날아가



2016.8.30.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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