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34. 품다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모르는구나 하고 여기면서 아예 안 합니다. 모르니 할 수 없어요. 다만, 모르기에 지켜봅니다. 무엇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지켜보고, 저로서는 까맣게 모르지만 둘레에서는 어떻게 거뜬히 하는가를 눈여겨봅니다. 이렇게 한참 바라보노라면 까맣게 모르던 안개가 조금은 보여 한발 내딛을 수 있습니다. 어설프거나 섣부르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가는 길에 시나브로 눈을 뜰 만해요. 모르지만, 참으로 모르지만, 해보겠다는 마음을 품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요. 아주 작은 씨앗 한 톨은 그야말로 작습니다. 이 작은 씨앗에서 굵다란 줄기가 오르리라고는, 또 우람한 나무가 자라리라고는, 처음에는 어림조차 못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품은 손으로 흙 품에 안기도록 묻어요.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묻는 씨앗이나, 흙이 곱게 품어서 돌보니 어느새 무럭무럭 자랍니다. 갓 태어난 뒤에는 어버이 품에 안겨야 하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씩씩하게 커서 스스로 섭니다.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숨결이 되어요. 나라 곳곳에 저마다 알뜰살뜰 피어나는 마을책집이란, 씨앗 한 톨이 바탕이 되어 퍼지는 이야기터라고 느낍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는 책인 척하지만 막상 책이 아닌 줄 깨달은 분들이, 저마다 책이라는 씨앗을 품고 살아오면서 일구는 놀이터이기도 할 테고요. 딱딱하게 집어넣는 지식이 아닌, 즐겁게 나누는 숲바람 같은 놀이가 흐르기에 마을마다 상냥하며 고운 만남터가, 쉼터가, 즐김터나, 마실터가 기지개를 켭니다. ㅅㄴㄹ



품다


복복 비비고 헹궈

물을 주루루룩 짜고는

마당에 팡팡 털어 널면

햇볕 품으며 마르는 빨래


씨앗을 입에 머금다가

손은 호미 쥐어 폭폭

마땅한 자리에 심으면

흙은 넉넉히 품어 돌봐


어머니처럼

아기를 품어 본다

아버지처럼

아기를 재워 본다


누나처럼 별빛 품고

동무처럼 웃음 품고

이야기꾸러미도 품다가

내 나름대로 꿈을 품어


(숲노래/최종규 . 노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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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32. 널방아



  우리 아이들이 곁에 와 주었기에 새롭게 지은 낱말이 무척 많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놀이로 이야기를 피웠고, 저는 이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말씨를 가다듬어 낱말을 품었습니다. 이때에 곁님이 몇 마디를 거들면서 말 한 마디가 꽃으로 거듭나는 손길을 일깨웠어요. ‘널방아’라는 낱말은, ‘널뛰기’하고 ‘엉덩방아’ 두 가지 말씨에서 귀띔을 얻어서 지었습니다. 널을 엉덩방아질로 뛰면서 놀기에 ‘널 + 방아’로 엮었지요. 새롭게 지었다고도 하겠지만, 신나게 놀면서 저절로 태어난 이 낱말이 살가워서 동시를 쓰고 싶었어요. 어떻게 쓰면 좋으려나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말로도 널을 뛰듯 놀아 보자 싶더군요. 널뛰기를 할 적에 널을 밟아서 서로 콩 쿵 떡을 찧듯이 서로 띄우는데요, ‘널빤’하고 ‘너를(널)’이란 소리가 맞물리네요. 널을 찧으며 널 하늘로 날립니다. 너를 날렸으니 이제 ‘날(나를)’ 날릴 때입니다. 한 발 두 발, 아니 한 엉덩질 두 엉덩질이 모여 콩떡을 찧고 쿵딱을 빻습니다. 엉덩질은 마치 엉덩춤 같습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널방아를 놀면서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높이 솟으며 재 너머로도 구경하고, 높이 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눈꽃송이를, 봄꽃송이를 살며시 잡거나 안으면서 바람을 가릅니다. 우리 하루는 언제나 놀이입니다. 놀면서 생각이 자라고, 놀다가 마음이 든든히 일어섭니다. 같이 놀면서 같이 생각해요. 어린이하고 놀며 언제나 맑게 바라보는 눈썰미가 되어요. ㅅㄴㄹ



널방아


널 하늘로 날리고

날 구름으로 띄우고

넌 빗물을 타고

난 별똥을 넘고


너흴 재 너머 올리고

우릴 등성이로 보내고

너흰 눈꽃을 잡고

우린 봄꽃을 안고


디딜방아를 밟고

물레방아를 돌리고

입방아를 찧고

널방아를 놀고


콩 쿵 쿵떡 콩딱

내 엉덩맛 봐라

네 엉덩춤 볼까

엉덩방아 불타는 한판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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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31. 아무



  어릴 적부터 몸이 매우 여린 터라 아무 밥이나 먹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저를 보며 ‘가려먹는다’며 나무라기 바빴고, 밥상맡에서는 꿀밤에 지청구를 먹으며 눈물로 밥을 삼켜야 했습니다. 저는 왜 김치나 동치미처럼 삭힌 곁밥을 못 먹는지 모르는 채 얻어맞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타고나기를 이런 몸인걸 어떻게 하라고, 그야말로 아무 길이 안 보였습니다. 그저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인 몸으로 살아가는 이제서야 제 몸을 스스로 바라보며 살짝 느긋합니다만, 어릴 적에는 무엇을 먹는 일이 두려움투성이였어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린 나를 헤아려서 값진 먹을거리를 애써 장만해 주셨는데, 또 처음 보는 먹을거리라며 저더러 맛보라고 힘써 들고 오셨는데, 또 이 먹을거리를 입에 넣자마자 게운다든지 며칠 동안 배앓이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었어요. 그리고 이 두려움하고 걱정 그대로 어릴 적에는 툭하면 게우고 배앓이를 했습니다. ‘가려먹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줄 살갗으로 느껴 처음부터 가로막는 셈은 아닐까요? 아무 밥이나 먹지 못하는 몸이지만, 어느 책이든 받아들여서 배우자는 마음을 키웠습니다. 몸은 못 받아들이는 일이 수두룩하지만, 마음으로는 모두 받아들이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어쩌면 거꾸로 간 셈일 텐데, 거꾸로인 마음이 싫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무’ 꿈이나 꾸기보다는 ‘어떤’ 꿈이든 시나게 꾸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 오늘 하루를 노래합니다. ㅅㄴㄹ



아무


네 선물이라면

언제나 반가워

아무 책이나 주지 않잖니

눈부신 이야기 사랑스러워


네 노래라면

한결같이 기뻐

아무 가락이나 흐르지 않으니

시원한 소리 아름다워


네 길이라면

어디라도 환해

아무 꿈이나 품지 않더라

의젓한 발걸음 힘차


네 말이라면

오늘이 새롭네

아무 뜻이나 펴지 않는구나

이 바람 먹고 눈뜬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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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30. 졸리다



  낮꿈을 거른 아이는 하품을 길게 합니다. 낮밥을 먹고서 좀 놀거나 스스로 배움살림을 한 뒤에 삼십 분 즈음 몸을 곧게 펴고 누우면 어느새 새롭게 뛰놀 기운이 날 텐데, 으레 낮꿈을 건너뛰려 해요. 꼭 제 아버지를 닮았구나 싶은데, 저는 이제 낮꿈을 기쁘게 누리려 합니다. 예전, 그러니까 서른 살 무렵까지는 낮꿈은 멀리하려 했어요. 하루에 1분조차 스스로 쉴 겨를을 내주지 않으며 몰아붙였습니다. 1분 쉴 겨를이 있으면 이동안 책 한 권 읽을 수도 있다고 여겼고, 1분이면 글을 한두 꼭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1분조차 쉬지 않으면서 몸을 몰아붙이면 이 몸이 나를 반길까요? 1분 아닌 10분을 느긋이 바람을 쐬거나 해바라기를 하도록 마음을 쓸 수 있다면, 또 30분이나 1시간을 차분히 눈을 감고서 새 기운이 돌도록 낮꿈을 꾸도록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 몸은 늘 기쁘게 깨어나지 않을까요? 하품에 다시 하품에 또 하품을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빙긋 웃습니다. 그렇다고 작은아이더러 “졸립지?” 하고 묻지 않습니다. 아이가 졸음을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루 이토록 버티며 더 놀고 싶어한다면, 스스로 더 놀게 하되, 저녁을 맛나게 차려서 가만히 먹이자고 생각합니다. 저녁을 먹는 아이는 수저를 들다가 폭 곯아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밥그릇 설거지랑 이닦이를 마치고 스스로 잠옷으로 갈아입고서 곱게 이부자리에 누울 수 있어요. 몸에 깃드는 마음 이야기를, 마음이 입은 몸이라는 옷을, 새삼스레 돌아보며 나란히 밤을 맞이합니다. ㅅㄴㄹ



졸리다


졸린 까닭은

오직 하나

오늘 활짝 피어난 몸한테

꿈을 틈 달라는 뜻


힘든 탓은

오로지 한 가지

어제오늘 펄펄 난 몸한테

숨돌릴 새 주라는 소리


배고프다면

늘 이 때문

이제 모두 잊고서

새로 일어나도록 먹잔다


한숨 푹 자자

팔다리 뻗고 쉬자

달각달각 밥짓자

그러고서 또 놀자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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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29. 세다



  어릴 적부터 매우 여린 몸입니다. 툭하면 넘어져 다치고, 걸핏하면 마을 아이들이나 언니한테 얻어맞아 울고, 뭘 새로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무슨 철만 되면 몸이 달아올라서 앓아누웠습니다. 튼튼하고 싶다는 꿈을 어릴 적부터 그리는데, 어쩐지 튼튼해지지 않아요. 어느 때부터인지 조금씩 깨닫는데, 저만 여린 몸이 아니더군요. 저보다 훨씬 여린 몸인 동무나 이웃이 많아요. 저쯤 되면 꽤 튼튼한 몸이라고, 또 스스로 튼튼몸을 바라고 바라다 보니 어느새 나아진 대목도 있구나 싶더군요. 여린 사람은 남이 가는 길을 안 갑니다. 그 길을 고스란히 따르다가는 지쳐서 쓰러지거든요. 여린 사람은 남이 안 가는 길을 갑니다.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요. 남들 발걸음에 맞출 수 없기에 오직 저 하나만 들여다보면서 새길을 내지요. 자칫 쓰러지지 않도록, 쉽게 지치지 않도록, 섣불리 넘어지지 않도록, 요모조모 살피고 헤아려서 오직 저한테 가장 알맞을 한 가지 길을 찾습니다. 아마 제 몸이 어릴 적부터 튼튼했으면 ‘남이 가는 길을 그냥 생각 없이 따랐’을 수 있다고 여겨요. 그런데 남이 안 가는, 거의 아무도 간 적이 없다시피 한 길을 가노라면, 이 길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이 길을 하찮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저로서는 이런 분을 헤아릴 틈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다가는 스스로 지쳐서 나가떨어질 테니까요. 요즈음은 ‘여리지 않은’이 아닌 ‘제대로 센’ 길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하지 않는’이 아닌 ‘무엇을 하는’을 그리며 ‘세다’를 비로소 배웁니다. ㅅㄴㄹ



세다


아직 나르지 못할 뿐

앞으로는

이 짐도 저 꾸러미도

거뜬히 나르지


엊그제까지 못하던

종이접기를 오늘 했지

보름 앞서까지 모르던

나누기 곱하기 이제 알지


힘이 세다고 하면

스스로 할 줄 알고

동무랑 손잡을 줄 알고

신나게 다룬다는 뜻


여리다고 하면

스스로 하기 벅차지만

차츰차츰 자라고 자라

즐겁게 일어선다는 소리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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