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12. 바보



  아이들이 서로 놀리려고 하는 말인 ‘바보’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바보’란 말로 서로 놀리려 했을까요? 이 말을 뱉으면서 혀를 쭉 내미는 아이들은 누구한테서 이 말씨를 배웠을까요? 바보라는 이름은 참말로 놀림을 받을 만한지, 바보라는 이름이 붙는 사람은 참으로 얼이 나갔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를 글로 옮겨서 쓰고, 아이들하고 이 글을 나누면서 물어봅니다. 너희가 서로 바보라는 말을 뱉으면서 놀리는 뜻은, 서로 그만큼 좋아해서 어쩐지 더 놀리고 싶니? 아니면 서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안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아무것도 안 배우고 안 자라겠다는 뜻이니? 사회라는 곳에서도 으레 바보를 말합니다. 한길을 걷는 사람도 바보라 하고, 돈이나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도 바보라 하더군요. 밥그릇을 안 챙기려는 사람도, 이웃하고 스스럼없이 널리 나누려는 사람도, 사랑이 가득한 손길로 훨훨 날듯이 홀가분한 사람도 사회에서는 곧잘 바보라고 가리켜요. 왜 바보는 여러 자리에 다르게 쓰는 말이 될까요? 우리는 얼마나 바보가 아닌 사람으로서, 때로는 바보스러운 사람으로서 살아갈까요? 모르거나 못하기 때문에 바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직 잘 모를 뿐 앞으로 널리 배우고 넉넉히 나누는 길을 걸을 사람이 바보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바보라는 글이 술술 흘러나옵니다. 꽃노래를 부르는 바보로 살려고, 바람을 타고 별마실을 다니는 바보로 살림하려고, 어른다운 어른으로 우뚝 서는 바보로 사랑하려고요. ㅅㄴㄹ



바보


아직 잘 모르니 바보

엉뚱하게 여기니 바보

배우려 하지 않아 바보

제대로 할 마음 아니라 바보


그렇지만

다른 바보가 있으니

꿈만 꾸는, 꿈만 노래하는

사랑만 하는, 사랑길만 걷는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누구하고도 상냥하게 얘기하는

꽃 벌레 바위하고 수다 떠는

바람을 구름을 타고 노는


어른이 되어도 해맑은

걱정 아닌 즐거움으로

하루를 마음껏 가꾸는

슬기로운 바보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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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11. 바라다 ㄴ



  예전에 동시를 쓴 낱말로는 다시 안 쓰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 그 낱말로 쓴 줄 모르고 새로 쓸 때가 있습니다. 아마 그 낱말이 새롭게 마음에 꽂혀서 저절로 쓰는구나 싶습니다. ‘바라다’라는 낱말로 두 꼭지째 동시를 쓰고 나서 생각합니다. 제 마음에 무언가 애틋하게 바라는 한 가지가 있어서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요. 곁님하고 꿈길을 걸으면서, 아이들하고 사랑길을 걸으면서, 이웃님하고 삶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마음길을 걸으면서, 이 길에서 온갖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거나 옮기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생각합니다. 고흥 망주산에서 염소하고 어우러지는 이웃님한테 ‘바라다 ㄴ’을 종이에 옮겨적어서 드립니다. 바라는 길이란 바람길이요, 바람이 흐르는 길이란 우리가 바라보면서 바라는 길이라는 느낌이 문득 온몸을 사로잡아서, 이 느낌을 하나하나 옮겼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놀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면서, 제가 즐기는 놀이를 곁님도 아이들도 이웃님도 같이 누리면 좋겠다고 꿈꾸면서, 서로 돌이랑 속삭이고 이슬하고 바람 타고 날아오르기를 빌면서 글 몇 줄을 적습니다. 우리한테는 사람동무만 있지 않고, 풀동무 꽃동무 고드름동무도 있는 줄 헤아리자고, 우리 곁에는 우리가 바라보면서 피어나는 바람이 있고,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을 보드랍고 포근히 감싸는 바람을 바라보는 하루가 있는 줄 새삼스레 들여다보자고 하는 뜻을 글줄에 담습니다.



바라다 ㄴ


함께 놀면

좋겠다 싶은

작은 돌 조개껍데기 깃털

풀꽃 새싹 이슬방울 고드름


너랑 놀고 싶기에

너하고 말을 섞으며

네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속삭일게


나는 즐겁게 꿈꾸고

기쁘게 바라지

돌하고 얘기하며 놀기를

이슬하고 날아다니며 웃기를


바라고 바라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바라고 바라다가

바람 되려고 눈 감는다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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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10. 탈



  살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들이거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겪거나 마주치지 않고서 섣불리 좋거나 나쁘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겉모습만 보면서 좋다거나 나쁘다고 여길 때가 있고, 혀에 얹지도 않고서 맛이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눈을 감고 먹을 적에는 겉모습을 못 따지겠지요. 아무래도 두 눈을 뜨고서 바라보니까 자꾸 겉모습을 따지는구나 싶어요. 우리한테 두 눈이 있으니 눈을 감고서 겉모습은 아예 안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눈이 있다는 핑계로 자꾸자꾸 겉모습에 얽매인다면 어떤 길을 걸을까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생김새만으로 맛없다고 여겨 안 먹는 밥이 있기에 글을 하나 쓰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으레 말하는 ‘토끼하고 늑대’ 이야기로 빗대기로 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늑대 한살이를 여러모로 헤아리거나 살피기에 늑대가 ‘나쁜 짐승’이 아닌 줄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배우기까지는 꽤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머리나 마음에 슬기롭거나 차분한 생각이 자라기 앞서, 삶터에서 한눈이나 외눈으로 가르는 이야기에 젖어들고 나면, 한눈길이나 외눈길을 바로세우기란 참 벅차더군요. 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생각하기보다는,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면서 둘 사이를 넘나들 틈을 없애기 일쑤이거든요. 아이들하고 탈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면서 저 스스로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이 글은  저부터 이 삶을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는 버릇이 아직 남았으니 털어내도록 북돋운다고. ㅅㄴㄹ




토끼 탈을 쓴

늑대가 저기 있다면

늑대 탈을 쓴

토끼가 여기 있어요


늑대는 늑대로

고운 벗이 될 수 있는데

왜 토끼라는 탈을 써야

다가설 수 있다고 여길까요?


토끼는 토끼로

힘센 동무가 될 텐데

꼭 늑대라는 탈을 써야

씩씩할 수 있는 줄 여길까요?


나는

오늘도 모레도 탈이 없이

내 얼굴이 되겠어요

나는 나로 만나고 서겠어요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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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9. 살살이꽃



  저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여느 동시집을 읽히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모든 동시집이 우리 집 아이들하고 안 어울린다고 느끼거든요. 왜 이렇게 느끼느냐 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졸업장학교(제도권학교)하고 학원을 안 다니는데, 여느 동시집에는 졸업장학교하고 학원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학교랑 학원에서 입시에 시달리는 이야기는 우리 집 아이들이 앞길을 그리는 노래를 듣고 누리는 살림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여느 동시집은 말재주나 말장난을 하는 글이 너무 많습니다. 말을 살찌우는 생각을 슬기롭게 사랑으로 가꾸는 이야기가 아닌, 가벼운 손재주로 말을 이리저리 꾸미기만 하는 치레질이 흘러넘쳐요. 이러면서도 번역 말씨나 일본 한자말이 동시마다 가득하더군요. 무엇보다도 예나 이제나 숱한 동시집은 어린이가 어떤 숨결이며 앞으로 어떻게 마음에 꿈씨앗을 사랑으로 심어서 새롭게 숲집을 일구는 씩씩한 사람으로 자랄 만한가 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시를 읽을 수 있도록 하자면 제가 스스로 동시를 써서 읽히는 길뿐입니다. 아직 제가 스스로 못 짓는 살림이 많습니다만, 아이들하고 하나씩 새로 배우며 가꾼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동시를 써요. ‘살살이꽃’이란 동시는 꽃을 사랑하는 우리 집 아이들이 꽃 한 송이를 바라보던 옛사람 따스한 눈길을 배우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꽃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꽃은 저마다 어떻게 아름다우며, 이 아름다운 빛숨을 우리가 어떻게 나누어 받으며 환하게 웃는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ㅅㄴㄹ



살살이꽃


이따금 여룸에 깨어나지만

웬만하면 여름 지고

가을 깊을 무렵

들에 길에 살랑살랑


가끔 흰 꽃송이

때로 발그스름 꽃잎

곧장 짙붉은 꽃 꽃 꽃

바람바라기로 춤을 춰


가느다란 줄기에

가늘가늘 잎은

무릎이나 종아리에 스치면

매우 부드러워


나를 보며 살살 손짓

너를 보며 사알살 눈짓

해님도 살살살 웃으며 반기는

살살이꽃


(숲노래/최종규 . 동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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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7. 두레



  한걸음을 걷자고 생각합니다. 토막걸음이 아닌 온걸음을 내딛자고 생각합니다. 서른 언저리에는 토막힘만 내어도 좋다고, 한창때에 토막힘을 써야 늙어서도 꾸준히 힘을 낼 만하리라 여긴 적 있는데, 서른세 살 무렵부터 토막걸음 토막힘은 집어치우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모든 걸음이 온걸음이 되도록 한발 두발 씩씩하게 나아가자고 여겼어요. 이러면서 2007년에 서재도서관을 열었지요. 제 서재를 도서관으로 삼아서 이웃님하고 제 책을 나누었어요. 서재도서관을 하노라면 알뜰한 책이나 값진 책이 너덜너덜해지거나 닳거나 찢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겉모습은 바래거나 해지더라도 알맹이는 한결같거든요. 그리고 이런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뜻을 반갑게 여긴 이웃님 한 분이 있었고, 이 이웃님은 경기도 광주에서 ‘서재도서관, 책읽는 베짱이’를 열었습니다. 제가 뿌린 서재도서관이란 씨앗이 이 나라 어느 곳에서 새로운 서재도서관으로 싹이 텄어요. 2018년 11월에 이 이웃님 서재도서관 이야기를 담은 책이 하나 태어납니다. 그 책에 동시를 한 꼭지 써서 띄웠습니다. 이웃님이 저더러 동시를 써 달라 하지 않았지만, 제가 나서서 먼저 써서 드리고 싶었어요. 서재도서관이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두레로 하는 일인 줄 온몸으로 잘 밝히셨거든요. 처음에는 한 사람 꿈에서 싹트는 서재도서관이지만, 이 작은 싹을 돌보면서 키우는 손길이란 언제나 넉넉하며 따사로운 두레라 할 만해요. 고맙습니다. 동시 하나를 새로 쓸 수 있어서. ㅅㄴㄹ



두레


내가 마시는 물은

내가 먹는 밥은

내가 누리는 바람은

내가 사는 집은


벌레 새 물고기 짐승 개구리

풀 나무 돌 꽃 흙 모래

여기에 하늘 해 비 별

모두 어우러져서 태어나


내가 읽는 책도

내가 쓰는 연필도

내가 입는 옷도

모두 이와 같을 테지


다 함께 마음을 모아

서로서로 뜻을 모두어

싹싹하면서 다부진 손길로

한마당 한숲 한사랑 되는 두레야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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