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읽기 책읽기


 숲 사이로 자동차 빨리 달릴 길을 내야 하기에 멧기슭에 구멍을 뚫어요. 논밭 가로지르며 찻길이 놓이고, 사람 건널 일 없어도 냇물 사이로 다리를 놓아요. 이 좋은 숲길이지만,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는 바람소리·물소리·새소리·풀벌레소리 들을 수 없어요. 버스를 탄 몸으로는 그저 고단해서 잠을 자요. 푸른 숲길이지만 버스 걸상에 고단하게 기대어 마냥 잠만 자요. 숲을 느끼며 숲그늘에서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리지 못해요. 숲속에 있는 몸이지만 숲을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하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요. 길가에 심은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랐다지만, 버스를 탄 몸은 나무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돌아보거나 쓰다듬지 못하며 휙휙 지나치기만 해야 해요. 숲을 바라보지 못하고, 책을 들여다보지 못해요. (4344.10.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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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토리 책읽기


 도토리가 떨어진다. 나도 줍고 아이도 줍는다. 도토리를 한 알씩 줍는 아이는 “아버지, 도토리요!” 하고 외친다. 처음에는 덜 익은 풋도토리가 떨어졌으나, 이제는 잘 익은 도토리가 떨어진다.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다람쥐한테는 아직 나무에 달린 도토리가 많을 테니까 바람 불어 떨어지는 한두 알쯤이야 대수롭지 않겠지. 그러나 날마다 한두 알씩 떨어지는 도토리는 아이한테 놀라운 선물이다. 도토리를 곱게 빻고 갈아 묵을 쑤자면 도토리 열매가 참 많이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 식구가 시골집에서 손수 도토리묵을 쑤지는 못한다.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으면서 한 알은 밭이나 빈터에 던지고, 한 알은 아이가 건사해서 밥그릇에 예쁘게 담는다. 겨울을 나고 봄을 즐기다가 여름을 누빈 참나무마다 가을을 맞이해서 도토리를 떨군다. 참나무는 좋은 숲동무이자 고마운 숲스승이다. (4344.9.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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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책읽기


 음성 할머니가 아이한테 옥수수를 쪄서 내준다. 옥수수는 퍽 뜨겁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 뜨거운 옥수수자루를 거침없이 집어든다. 아뜨 아뜨 하면서도 옥수수자루를 입에 문다.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다 보니 뜨거운 옥수수라 하더라도 뜨거움을 견디면서 먹는다.

 뜨거운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옆지기는 이듬해에 옥수수를 많이 심어야겠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아이도 옆지기도 옥수수를 잘 먹는데, 우리 텃밭에 옥수수를 잔뜩 심어야지. 새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지을 텃밭을 얼마나 얻을 만한지 모르지만, 요 빈터 저 빈터에 신나게 심어야지. 겨우내 똥오줌 거름 잘 모아서 거름도 예쁘게 주어야지.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옥수수를 심을 때에는 첫째 아이는 다섯 살이 될 테니까, 올해보다는 흙일을 한결 잘 거들겠지.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더라도 아이한테 글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네 살이건 다섯 살이건 글을 배우기에 퍽 이르다고 느낀다. 일곱 살까지는 글을 몰라도 되고, 여덟 살이 되어도 글을 몰라도 돼. 아이 스스로 글을 배우고 싶다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글을 가르치면 돼.

 글을 모르는 아이라 하지만, 호미 쥐기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나씩 둘씩 집어 밭고랑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쏙쏙 넣고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덮는 일 또한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양을 바라보면서 배운다. 아이는 흙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는 이런 책을 읽을 수조차 없다. 아이는 몸으로 배우고 삶으로 익힌다. 아이는 스스로 흙하고 하나로 얼크러지면서 흙을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 같은 이야기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대서 깨닫거나 느끼거나 배울 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을 할 수 없다. 도시 일자리를 내려놓고 시골로 가야 한다. 도시에서 돈을 좀 덜 벌면서 빈터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하늘바라기를 할 줄 모른다면, 환경책을 천만 권 읽는들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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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에서 책읽기


 아이하고 텃밭 옆에 함께 앉는다. 문득 이 텃밭에서 아이하고 풀을 뽑은 적은 있고, 아이하고 씨를 심은 적은 있으나, 텃밭 옆에 함께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가만히 푸성귀나 풀을 바라본 적은 없다고 느낀다. 오늘 옆지기는 첫째랑 멧길을 올라가서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단다. 그렇구나.

 텃밭 옆에 앉으니 모기에 물린다. 아버지만 잔뜩 물린다. 모기가 아이를 물지 않아 고맙지만, 땀내 물씬 풍기는 아버지 등짝이며 어깨며 발등이며 무릎이며 된통 무는 모기가 고달프다.

 아버지는 텃밭 옆에서 고추꽃이랑 오이꽃을 그림으로 그린다. 아이는 텃밭 옆에서 꼬물꼬물 글 그리기를 한다.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는 일도 좋은 한편,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좋은데, 왜 이제껏 이렇게 하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너무 고단해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쳐서? 사람들은 마음을 쉰다며 멧자락을 타기도 하는데, 멧골자락 집에서 살아가며 멧골 기운을 더 깊이 느끼지 않으니 바보스럽다 할 만하다.

 식구들 모두 새근새근 잠든 깊은 밤, 우리 집을 둘러싼 풀숲에서 끝없이 가득가득 퍼지는 풀벌레 소리를 마음껏 듣는다. 둘째 백날떡을 받으러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도 풀벌레 소리를 신나게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걸어도, 자전거를 달려도, 아이를 안고 달래도, 부엌에서 쌀을 씻어 불려도, 노상 듣는 풀벌레 소리.

 둘째 백날을 맞이해 찾아온 음성 할머니가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신다. 배추랑 무를 심고픈 마음 한가득이지만, 이제 이 멧골집에서 떠날 텐데, 그래도 텃밭에 씨앗을 심고 떠나야 할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올봄에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잎사귀가 천천히 노랗게 물든다. (4344.8.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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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 책읽기


 텃밭에 호박씨를 심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호박싹이 텄고 호박줄기가 올랐으며 호박잎이 돋다가는 그예 호박꽃이 핀다. 내가 한 일이라면, 둘째가 태어난 뒤로 텃밭을 도무지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밥을 할 때에 호박 찌끄레기를 텃밭 한쪽에 버린 한 가지. 호박 찌끄레기에 깃들던 호박씨 몇이 텃밭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터서 노란 꽃방울을 함지박만 하게 터뜨렸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똑같은 그림책을 수백 차례 되풀이 읽는다. 한 번 보고 그닥 다시 보고프지 않은 그림책을 사고 난 뒤에는 돈을 잘못 썼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상식을 다룬다든지, 옛사람 살림살이나 장마당을 보여준다든지, 지구별 여러 나라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그림책을 아이들이 수백 차례 보기는 힘들다. 수백 차례 되풀이해서 볼 만한 그림책에는 이야기가 깃들어야 한다. 날마다 먹는 밥처럼 날마다 여러 차례 되읽을 만큼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여야 한다.

 둘째가 혼자 잘 놀기도 한다. 그렇지만 곁에서 말끄러미 바라보며 함께 놀자고 해야 훨씬 잘 논다. 조막만 한 손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힘을 쓰게 하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다. 두 발을 하나씩 쥐고 하늘달리기를 해 주어도 즐겁게 웃는다.

 어버이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기쁘게 맞아들이도록 돕는 책을 한 권 두 권 아끼면서 그러모으지 않는다면, 아이하고 책읽기를 할 수 없다. 어버이로 지내면서 어버이다운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책을 한 권 두 권 살피며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이한테 책을 물려줄 수 없다. 호박꽃은 흙땅에 씨를 뿌리내리면 피어나지만, 씨앗이 있어야 하고 흙땅이 있어야 한다. 빗물이 있어야 하고, 햇살이 있어야 하며, 바람이 있어야 한다. (4344.8.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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