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눈과 책읽기


 겨울나무 새눈을 사진으로 담은 일본 어린이책을 보았다. 일본사람은 참 대단하고, 일본 어린이는 온갖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좋겠다고 느끼는 한편,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책으로 담아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이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좋을까.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펼쳐야 즐거울까.

 곰곰이 생각하면, 겨울나무 새눈이란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글로나 아기자기하게 담을 만큼 아름다우며 귀엽고 좋은 이야기라 할 만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거나 온몸으로 받아들인 겨울나무마다 나뭇가지에 다 다른 크기와 모양과 빛깔로 새눈을 틔우는 모습이란 얼마나 훌륭하며 거룩하고 사랑스러운가.

 똑같은 나뭇잎이란 한 닢조차 없다. 모양이든 무늬이든 빛깔이든 어느 나뭇잎이든 다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다 할 만하겠지. 그러면, 나뭇가지를 털어 나뭇잎을 견주면 된다. 은행나무에 붙은 수만 닢이 되는 나뭇잎을 모조리 뜯어서 살펴보라. 똑같은 잎은 하나조차 없다.

 똑같은 잎이 없으니 똑같은 새눈이란 있을 수 없다. 똑같은 사람이나 똑같은 손그림이란 있을 수 없다.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나무이며, 다 다른 잎이다. 소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밤나무이든 똑같은 나무란 없다. 감나무에 맺히는 감 열매 가운데 똑같이 생긴 감이 한 알이라도 있을까.

 아이들한테 겨울나무 새눈 사진책을 보여준 다음 멧길에 구르는 나뭇가지 몇을 주워서 함께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놀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고, 짐승이 풀을 뜯어먹는다며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다. 아무튼 시골에는 나뭇가지란 흔하다. 나뭇가지에 맺히려는 겨울 새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모든 새눈이 씩씩하게 살아남지 못한다. 멧개구리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비탈논과 멧자락 사이를 오가려 하다가 사람들이 낸 찻길에서 자동차에 치이거나 깔려서 죽을밖에 없듯, 숱한 나뭇가지가 뜻하지 않게 꺾이거나 잘리며, 수많은 새눈이 새잎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새로 난 가지이든 오래된 가지이든 새눈이 달린다. 새눈은 그야말로 작다.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알아볼 만한 새눈이 많다. 큼지막한 새눈도 더러 있지. 그러나 웬만한 나무들 새눈은 참으로 작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봄이 왔다고 봄 얘기를 나누는 도시사람 가운데 겨울을 이긴 나무들 새눈을 들여다보면서 ‘아, 봄이네.’ 하고 느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겨울나무 새눈이 새잎으로 트는 모습을 날마다 새삼스레 지켜보며 놀라워 하거나 기쁘게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봄에는 봄나무, 여름에는 여름나무, 가을에는 가을나무, 겨울에는 겨울나무인데, 이들 나무를 나무 그대로 마주하거나 껴안으며 나무 같은 품으로 살아가려는 도시사람은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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