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따뜻하게



  아침 아홉 시 십오 분에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 한다. 두 아이를 이끌고 마실을 간다. 오늘은 인천에 가고, 이튿날은 강원도 영월에 간다. 인천에서는 하룻밤, 영월에서는 이틀을 묵는다. 그러고 나서 대구로 가는데, 대구에서도 하룻밤을 묵을는지, 곧바로 고흥으로 돌아올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영월에서 대구로 가서 일을 한 다음, 막바로 고흥으로 돌아오기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본다. 아니, 버스 때가 안 맞으리라. 아무쪼록 잘 가자. 스스로 따뜻하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가자. 4348.7.24.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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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7-24 09:03   좋아요 0 | URL
잘 다녀 오세요~~*^^*

숲노래 2015-07-25 07: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아무것도 안 하는 책읽기



  그야말로 몸이 힘들면 벌렁 자빠진다. 눈을 붙이기 앞서 책을 몇 줄 읽기도 한다. 마음에 고요한 숨결로 깃드는 몇 줄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그리면서 살며시 눈을 감으면, 십 분을 눕든 이십 분을 눕든, 다시 눈을 번쩍하고 뜰 적에 온몸이 개운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힘들 적에는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 굳이 서둘러서 뭘 해야 하지는 않는 삶이다. 꼭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삶도 아니다. 마음이 넉넉할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면서 설거지를 해도 즐겁다. 마음에 따스한 바람이 불 수 있도록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을 훔쳐도 기쁘다. 아이들이 읽기 좋도록 꾸민 어여쁜 그림책은 어른들한테도 더없이 예쁘며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어린이책뿐 아니라 어른책도 골 아픈 책이 아니라 머리를 촉촉히 적시는 책으로 빚는다면 참으로 아름답겠네 싶다. 감자와 강냉이를 삶는다. 아이들이 맛있는 냄새가 난다면서 기다린다. 4348.7.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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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바라보는 눈, 책을 안 보려는 눈



  ‘바라보는 눈’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바라본다. 그래서 책을 손에 쥐고 읽으려고 할 적에,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되면, 내가 손에 쥔 책이 몹시 어렵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기쁘게 헤아리면서 누릴 수 있다. ‘어휴, 이 책 보기 끔찍해’ 하는 마음이 되면, 내가 손에 쥔 책이 참으로 얇고 쉽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아무것도 못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사람들이 ‘서평단 책읽기’를 하는 일은 오직 ‘서평단으로서 책을 마주하고 읽다가 서평단으로서 글을 쓰는 삶’으로 그친다. 이러한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저 ‘서평단 경험’을 할 뿐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서평단이 되어 책을 거저로 받아서 읽은 뒤 서평을 올려야 할 적에는, ‘서평 테두리’에서 맴돌기만 한다는 뜻이다. 책을 책으로 마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평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책읽기를 누리려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줄거리를 간추려서 얼른 서평을 올려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서려서 나한테 삶을 기쁨으로 노래하는 선물을 베풀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바라보는 눈이란, 삶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다. 마음에 드는 짝꿍하고 만날 적에, 그러니까 데이트를 할 적에 ‘서평단 책읽기’나 ‘서평단 글쓰기’를 하듯이 후다닥 읽어서 줄거리를 간추리듯이 하루를 보내어도 재미있거나 즐거울까?


  책읽기는 ‘줄거리 간추리기’가 아니다. 책읽기는 말 그대로 ‘책을 읽기’이고,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책을 쓴 사람하고 책을 빚은 사람이 일군 삶이랑 사랑을 읽는 몸짓’이다. 책을 쓴 사람하고 책을 빚은 사람이 일군 삶이랑 사랑을 읽지 못하는 몸짓이라면 ‘책읽기’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바람맛’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은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맑고 싱그러운 바람을 끌어들여서 즐겁게 하루를 누린다. ‘바람맛’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조차 맑거나 싱그러운 바람을 몰라보거나 등진 채 툴툴거리다가 그만 몸을 망가뜨린다.


  이름난 작가 한 사람이 썼대서 ‘책맛’이 훌륭하지 않다. 책은 ‘작가 이름’으로 읽지 않는다. 책은 ‘책에 흐르는 이야기맛’을 보려고 읽는다. 요리사가 지은 밥이 맛있을 수도 있을 테지.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요리사 밥맛이 아니라 ‘어머니 밥맛’이나 ‘할머니 밥맛’을 그린다. 드문드문 ‘아버지 밥맛’이나 ‘할아버지 밥맛’을 그리기도 한다. 왜 그러하겠는가? 삶맛하고 사랑맛이 깃든 밥맛이 사람한테 가장 따스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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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 윌 헌팅〉을 보는 동안



  낮부터 조금씩 영화 〈굿 윌 헌팅〉을 본다.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진 뒤 비로소 소리를 켜고 영어로 흐르는 말을 귀담아듣는다.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이기에 오랫동안 내 마음을 끌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왜 그동안 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볼까. 가만히 보니, 1997년에 나온 영화라서, 이때에는 내가 군대에 있었기에 이 영화가 나온 줄 알 수 없었다. 나는 1996∼97년에 나온 책이나 영화는 도무지 모른다. 그무렵 군대에서 처박혀 지내느라 그야말로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 군대에서 나온 뒤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두 해치 신문을 샅샅이 훑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그무렵 일은 거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네 잘못이 아니야. 하고 “네 마음을 따라서 가렴.”, 이 두 가지 말마디를 가만히 되새긴다. 4348.6.1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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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5-06-16 10:47   좋아요 0 | URL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몇 번 이나 반복해서 말해주던 장면에서 북받쳐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숲노래 2015-06-16 11:04   좋아요 0 | URL
날마다 아이들하고 이 말을 늘 되뇝니다. 되뇌고 또 되뇌고...
 

눈을 감고 눈을 뜨다



  어두운 곳에서는 ‘눈을 감고’서 바라본다. 밝은 곳에서는 ‘눈을 뜨고’서 바라본다. 어두운 곳에서는 눈을 감고 어두움을 고요히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서 바라본다. 밝은 곳에서는 눈을 뜨고 밝음을 넉넉히 마음 가득 맞아들이면서 바라본다. 어둠은 어두운 빛이요, 밝음은 밝은 빛이다. 두 가지 빛은 언제나 내 몸하고 마음에서 함께 흐른다. 이 빛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비로소 나는 내 삶을 바로볼 수 있다. 바라보고, 바로보고, 마주본다. 오늘 하루도 마음에서 울리는 노래를 고요히 듣고 넉넉히 즐기면서 아침을 연다. 아름다운 삶은 언제나 내가 마음을 여는 이곳에서 깨어난다. 눈을 감으면서 책을 읽고, 눈을 뜨면서 삶을 읽는다. 눈을 감고 어두운 곳에서 흐르는 숨결을 읽고, 눈을 뜨면서 밝은 곳에서 감도는 바람을 읽는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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