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찾아야만 읽는 책



  어떤 책이든 스스로 눈여겨보아야,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스스로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어느 책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눈빛을 밝혀서 살피지 않는다면, 새로 나오는 책을 하나도 못 알아본다. 스스로 책방에 가서 새책을 살펴야 하고, 스스로 인터넷을 열어 두리번거려야 한다.


  스스로 찾아나서려고 하는 손길이 없다면, 나한테는 아무런 책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나한테 책을 선물해 주었어도, 스스로 이 책을 읽을 만한 겨를을 기쁘게 내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아무 책도 없다’고 할 만하다.


  알려고 하는 이야기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낼 적에 알 수 있다. 알려고 하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지 않는다. 수수께끼를 스스로 내고, 실마리를 스스로 푼다. 그러니, 모든 책은 언제나 스스로 찾을 뿐 아니라 스스로 샅샅이 챙겨서 읽을 때에 ‘내 슬기’가 된다. 스스로 찾지 않고 스스로 읽지 않으며 스스로 삭이지 않으면 ‘내 책’도 ‘내 슬기’도 ‘내 마음’도 될 수 없다.


  모든 일은 내가 그 일을 알아야 하고, 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나한테 찾아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은 나한테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보지 않는 일은 ‘나한테 찾아와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일을 맞이하든 ‘좋다거나 싫다’고 하는 느낌으로 갈라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사랑이 되어 넓게 얼싸안아야, 바야흐로 아름답게 누리는 삶짓기가 된다. 아름답게 누리는 삶짓기를 할 적에 드디어 책 한 권을 펼쳐서 읽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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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6-18 07:52   좋아요 0 | URL
지혜가 넉넉해지는 글입니다.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5-06-18 08: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넋 북돋우셔요~
 

가스렌지와 마음 나누기


  우리 집 가스렌지가 지난해부터 잘 안 켜진다. 왜 이렇게 안 켜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곁님은 가스렌지를 잘 안 닦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참말 그럴까? 그러나 한 가지는 알 듯 말 듯싶었다. 아무래도 늘 불을 얻어서 밥을 짓도록 도와주는 가스렌지인데, 이 아이를 알뜰히 아끼는 마음이 옅거나 사라졌거나 잊혀졌구나 싶었다. 어느 날 부엌을 요모조모 치우면서 가스렌지를 뒤집어서 앞뒤로 구석구석 말끔히 닦아 준다. 이렇게 닦은 뒤에 가스불이 잘 켜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홀가분했다. 왜 진작 이렇게 정갈하게 닦아 줄 생각을 안 했을까.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이렇게 가스렌지한테, 그러니까 우리 집 살림살이한테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이러구러 날이 흐르고 흐르던 어느 날, 곁님이 문득 한 마디 한다. 아무래도 이 가스렌지를 서비스센터에 보내서 고쳐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냔다. 이때 아주 빠르게 내 마음으로 몇 마디 이야기가 스쳤다. ‘얘(가스렌지)야, 너 이 집 바깥으로 멀리 다녀오고 싶니?’ ‘아니!’ ‘그럼 너 어쩔래?’ ‘몰라!’ ‘네가 하루 빨리 살아나서 불이 잘 붙으면 돼.’ ‘그러면 돼?’ ‘그래. 기운 내렴. 사랑스러운 아이야.’

  이런 이야기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빠르기로 흘렀다. 저녁을 짓는 자리라서 이 번갯불 콩 구워 먹는 이야기는 곧 잊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한테 밥을 지어서 차려 주려고 가스불을 켜다가, 엊그제 가스렌지와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가 불쑥 떠오른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지, 하고 생각하다 보니, 며칠 앞서, 나는 참말 가스렌지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싶고, 가스렌지가 나한테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었기에, 나는 가스렌지를 더 살가이 바라보면서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엊그제부터 우리 집 가스렌지는 ‘구멍 세 군데’ 모두 불이 잘 켜진다. 그동안 세 구멍 모두 불이 잘 안 켜지다가 구멍 하나만 더러 불이 켜졌는데, 오늘 아침도 엊저녁도 세 구멍 모두 불이 잘 켜진다.

  가스렌지한테 한 일이란 따로 없다. 그저 마음으로 ‘너를 이 집 바깥으로 멀리 보내기 싫은데 너는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는 내 마음이 번갯불처럼 떠올랐고, 이 마음을 가스렌지가 받아들여 주었으며, 서로 몇 마디를 빠르게 주고받은 지 며칠이 지나서 가스렌지도 내 몸짓도 바뀌었다. 4348.6.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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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책읽기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밥짓기를 으레 도맡는데, 내가 밥을 잘 하는지 잘못 하는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이다. 이래서야 우리 집 사람들이 밥맛을 제대로 알겠느냐고 날마다 뉘우친다. 밥짓기란 무엇일까 하고 돌아본다. 밥을 먹는 까닭을 다시 생각하고, 밥을 짓는 마음을 새롭게 다스린다. 내가 차리든 남이 차리든, 더없이 맛있으면서 반갑다고 할 만한 밥이라면, 몇 가지를 꼽을 만하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고마운 맛’, ‘즐거운 맛’, ‘그리운 맛’, ‘사랑스러운 맛’, ‘노래가 흐르는 맛’, ‘춤을 추고 싶은 맛’, ‘아름다운 맛’, ‘웃음이 피어나는 맛’이 있다. 아무래도 내 지난 발자국은 이와 같은 맛을 스스로 깨닫고 바라보도록 돕는 길이지 싶다. 내가 느끼고 싶던 맛은 이러한 맛이요, 내가 오늘 이곳에서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맛이란 언제나 이 맛이지 싶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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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사람하고 가르치는 사람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모두 학생이면서 스승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면,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그이한테 새로운 이야기를 배운다. 누군가 나한테서 배운다면 그이는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새로운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기쁨을 스스로 짓는다. 내가 누군가한테서 배우려 한다면 나는 누군가를 스승으로 섬길 텐데, 이와 맞물려 나는 그 사람한테 스승이 된다.


  학생은 언제나 교사 노릇을 하고, 교사는 늘 학생 구실을 한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울 뿐 아니라 어른을 가르친다. 어른은 아이한테 가르칠 뿐 아니라 아이한테서 배운다. 함께 배우고 서로 가르친다. 즐겁게 배우고 기쁘게 가르친다. 이리하여, 책을 쓴 사람은 책을 읽은 사람한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가르친다’고 할 텐데, 책을 읽는 사람은 즐겁게 배우면서 ‘책을 쓴 사람을 가르치는 구실’을 시나브로 하기 마련이다.


  들숨이 날숨이 되고, 날숨이 들숨이 된다. 바람이 불어 온누리 모든 사람들 가슴을 따사롭게 어루만진다. 4348.6.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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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6-04 07: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한테서 배운다. 이오덕 선생님도 그리 말하셨죠. 늘 잊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숲노래 2015-06-04 07:38   좋아요 0 | URL
아이한테서뿐 아니라,
누구나 서로서로 배우고 가르쳐요

민들레처럼 2015-06-04 07:3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또 새겨봅니다.

숲노래 2015-06-04 08:20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 하나로도
서로서로 즐겁게 배울 수 있어요
 

모기를 걱정하는 책읽기



  어젯밤 잠자리에 들 적에 큰아이가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모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다. 큰아이더러 “모기가 물건 말건 그냥 가만히 있어. 그래야 잡지.” 하고 말하지만 자꾸 움찔거린다. 가만히 있어야 모기가 날갯짓을 풀면서 내려앉으니 그때에 잡을 텐데, 큰아이가 움찔거리니 모기는 다시 잰 날갯짓으로 요리조리 움직인다.


  모기를 잡을 적에는 한팔을 훤히 내놓아야 한다. 한팔을 척하고 내놓아 모기더러 ‘자, 이리 와서 먹을 테면 먹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기가 한팔에 척 내려앉아서 날갯짓을 멈추고 주둥이를 내밀려고 할 적에, 또는 주둥이를 팔뚝에 콕 박을 적에, 다른 한팔을 신나게 휘둘러서 철썩 때려서 잡으면 된다.


  큰아이더러 “벼리야, 아버지는 민소매옷에 반바지를 입어서 팔다리가 훤히 드러나니까, 모기가 물어도 아버지를 물지 너를 안 물어. 보라는 잘 자네. 너도 잘 자렴. 모기가 아버지를 물면 그때에 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라.” 하고 이른다.


  새벽에 일어나고 보니 모기는 아무도 안 문 듯하다. 걱정하면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못 한다. 이를테면,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느냐고 걱정하면 죽어도 못 읽는다.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느냐고 걱정하면 이때에도 그만 못 읽는다. 그냥 읽으면 다 된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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