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에서 읽다 만 책을 집에서



  어제 저녁에 장흥에서 바깥일을 보고 오늘 아침에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읽으려고 예닐곱 권을 챙겼다. 시외버스에서 여섯 시간 즈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오늘 빗길에 구불구불 흔들리는 길을 시외버스가 빠르게 달리면서 뱃속에 많이 힘들었다. 어인 일인지 뱃속이 매우 힘들고 어지러워서 책을 거의 못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와 몸을 달래면서 드러눕다가 책을 조금 펼쳐 보았다. 시외버스에서는 도무지 눈에 안 들어오던 책이 집에서는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시외버스에서도 씩씩하게 어떤 책이든 잘 읽을 수 있도록 몸을 다스렸다고 여겼으나 아직 멀었네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집에서 느긋하게 몸을 쉬면서 저녁밥도 못 차린다. 곁님이 아이들 저녁을 챙겨 주었다. 드러누워 책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들하고 영화를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더 헤아린다. 내 마음에 심는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하고 이 보금자리에서 가꾸려는 꿈이 무엇인가 하고. 초 한 자루를 켜면서 고요히 마음을 돌아본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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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가 나아가는 길

 

  고흥에서 장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돌고 돌아 가는 길에 가만히 생각에 젖는다. 장흥에서 만날 장흥 고등학교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서로서로 가슴에 곱게 아로새길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문득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책을 펼친다. 학교 공부는 ‘졸업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느낀다. 그렇구나. 학교 공부는 언제나 ‘졸업장 따기’로 간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 ‘진학’하고 ‘취업’에 눈길을 맞춘다. 진학을 잘 하도록 돕는 학교 공부요,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학교 공부이다.


  학교 공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학교 공부는 언제나 ‘학교 공부’이고 ‘졸업장 따는 시험공부’이다. 이러한 공부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삶을 배운’다고 할 만하다. 다만, 학교 공부는 언제나 여기에서 그친다. 더 나아갈 길이 없다. 왜냐하면 온갖 행정 서류와 관리 항목으로 짓누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진학과 취업을 빼고는 다른 일을 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면, 학교 밖에서 우리 스스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는 학교 밖,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알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될 만할까?


  삶에서 삶을 배울 노릇이다. 삶을 사랑하면서 사랑을 배울 노릇이다. 삶을 꿈꾸면서 꿈을 배울 노릇이다. 삶을 짓는 즐거움하고 기쁨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 사랑을 노래하는 웃음과 춤을 언제나 새롭게 배우면 되지. 집에서 어버이는 아이랑 신나게 삶을 배우고 가르치면 된다. 이뿐이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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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개천 책읽기



  한 해에 두 차례씩 마을 어귀에 걸개천이 붙는다. 설날하고 한가위에 붙는데, 그동안 예전 걸개천을 쓰기도 했지만, 요즈음 들어 때마다 새 걸개천을 붙이는구나 하고 느낀다. ‘고향 방문을 반기는 뜻’을 적은 걸개천을 보면서 생각한다. 도시로 가서 사는 딸아들하고 형제 자매가 보라고 붙인 걸개천은 무엇을 말할까 하고.


  시골마을을 자주 찾아오는 딸아들이나 형제 자매라면 굳이 걸개천까지 붙이지는 않으리라. 모처럼 찾아오는 딸아들이나 형제 자매일 터이니 이렇게 걸개천으로까지 반갑다는 말을 하는 셈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도시에서 혼자 살 적에는 으레 ‘고향 잘 다녀오십시오’ 같은 걸개천을 보았다. 도시에서는 ‘시골로 얼른 댕겨 오쇼’ 같은 걸개천을 나붙여서 등을 민다면, 시골에서는 ‘시골로 얼른 오쇼’ 같은 걸개천을 붙여서 얼싸안으려고 한달까.


  시골에서 살며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걸개천은 내 삶하고 동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고향이면서 도시에서 죽 지내는 사람한테도 이러한 걸개천은 이녁 삶하고 동떨어질 테지.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어릴 적에 설이든 한가위이든 어디 가는 데가 없었기에 ‘텅 빈 도시’에서 조용히 지내기 일쑤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입시공부를 하느라 그저 집에서만 보냈다.


  아무튼, 이런 걸개천이 있든 저런 걸개천이 있든 우리 집 아이들은 그저 뛰고 달리면서 논다. 그래, 우리는 우리 삶을 누리면 된다. 아름다운 한가을에 아름다운 마음으로 새 하루를 맞이하자. 4348.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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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누리는 책읽기



  걸어서 오가는 길이란 언제나 아름답다고 느낀다. 관광지이든 도시이든 시골이든 숲이든, 저마다 두 다리로 즐겁게 걸으면서 몸은 씩씩해지고 마음은 푸르게 물드는구나 하고 느낀다. 지난날에는 따로 관광지로 꾸미지 않아도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걸어서’ 여행을 했다면, 오늘날에는 ‘발돋움한 교통’을 내세우기도 하고 첨단시설과 문명에 따라 ‘걷는 일’이 줄어든다. 오늘날에는 ‘여행하는 재미’만 있고, ‘걷는 기쁨’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까. 이러면서 ‘걷는 이야기를 따로 쓰는 여행책’이 꾸준히 나온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걸어서 여행을 다녔기에 구태여 ‘걷는 이야기’는 따로 쓸 일이 없었다.


  그러면, ‘걷는 이야기’를 글이나 책으로 읽는 사람은 스스로 얼마나 걸을까? 스스로 걷지 못하는 삶을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글이나 책으로만 ‘걷는 이야기’를 마주하지는 않을까? 4348.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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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팔뚝에 달고 책읽기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선다. 비가 그친 구월 끝자락 하늘이 싱그럽다. 아직 구름이 많고, 마당에는 비바람에 떨어진 가랑잎이 무척 많다. 늘푸른나무를 집에 두면 한 해 내내 가랑잎을 쓸어야 한다. 번거롭다면 번거롭지만 재미있다면 재미있다. 게다가 어제처럼 비가 하루 내내 쏟아진 날이 지나가면, 마당은 알록달록 새로운 옷을 입는다.


  비 그친 아침 마당에서 책을 읽는다. 바람을 쐬면서 책을 읽는다. 오른무릎을 다친 지 오늘로 스무사흗날이다. 어제부터 마당에서 한동안 서성일 수 있다. 며칠 앞서만 해도 이렇게 서성이면 또 무릎이 많이 쑤셨지만, 어제부터 제법 괜찮다. 오늘도 꽤 괜찮기에 마당에서 한동안 서성이며 책을 읽어 보았는데, 아이들한테 아침을 챙기려고 부엌으로 들어오고 보니 팔뚝에 모기 한 마리가 붙어서 신나게 피를 빤다.


  모기가 피를 빠는 줄도 모르는 채 책을 보았네. 빙그레 웃다가 찰싹 때려서 모기를 잡는다. 핏물이 튀고 모기 주검은 납짝하다. 흐르는 물로 손을 씻는다. 능금 한 알을 삭삭 썰어서 접시에 담는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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