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04 : 서울 이대 앞에 헌책방이 생긴 기적

 《예수전》을 쓴 김규항 님은 천주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 《예수전》에는 ‘하느님’이라고만 적고, 《200주년 신약성서》를 판본으로 삼습니다. 김규항 님은 책 머리말에서 《200주년 신약성서》를 판본으로 삼은 까닭은 “이 성서에서만 예수가 반말을 하지 않기 때문(13쪽)”이라고 밝힙니다. 우리 나라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온갖 성경이 많이 나와 있는데, 참말로 이 가운데 ‘반말 안 쓰는’ 성경은 ‘한국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이백 해를 기리는 해에 맞추어 새롭게 옮겨낸’ 성경 하나뿐입니다(몇 해 앞서 한 가지 성경이 새로 나왔답니다. 반말을 안 쓰는 성경이). 그런데 천주교 쪽에서도 이 책은 거의 안 쓰고 안 읽습니다. ‘새로 옮긴’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새로 옮긴 성경으로만 다루고 말하고 읽고 하지, ‘제대로 잘 옮긴’ 성경이라 할지라도 오래된 책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지난해까지 주임신부를 맡은 ㅂ신부님은 ‘다른 신부님들은 아무도 안 쓰는’ 판본이었으나 바로 이 《200주년 신약성서》로 미사를 올리고 강론을 하고 성경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큰길가에 아주 조그마한 헌책방이 하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꼭 두 달이 되었습니다. 간판에는 책방이름이 따로 적혀 있지 않으나 책방이름은 〈유빈이네 책방〉입니다. 좁은 자리에 마련한 헌책방인데 책꽂이를 ‘바퀴 달린 세 겹’으로 장만했습니다. 그야말로 마지막 빈틈까지 책꽂이이자 창고처럼 마련했다고 할까요. 이 놀라운 헌책방을 염리동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누구보다 염리동에서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이 헌책방 옆으로 고작 40미터쯤에 있는 전철역하고 가장 가까운 대학교인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은 몇이나 이곳을 알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인문학을 하는 학생이거나 이 대학교 교수라 하는 분들은 이곳을 알아보고 찾아간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화요일, 몸살 기운이 가득하여 걷기도 어렵던 날 낮에 엉금엉금 기듯 〈유빈이네 책방〉을 찾아갑니다. 몸이 아프니 눈도 흐릿하여 책을 보기 어려웠지만, 서울 이화여대 앞쪽에 새로 생긴 놀라운 헌책방에 찾아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시간 반 남짓 찬찬히 둘러보며 이 책 저 책 구경합니다. 여러모로 쏠쏠하다 싶은 책과 함께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나무와숲,2004)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데이비드 스즈키와 오이와 게이보 두 사람이 쓴 책인데, 데이비드 스즈키는 캐나다사람이지만 핏줄기는 일본사람이고, 오이와 게이보는 일본사람이지만 핏줄기는 한국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어느 나라 어느 겨레’붙이임을 떠나 옹근 마음결과 생각밭으로 당신들 삶을 꾸리며 이 땅과 사람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비인간적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다 … 근대성이란 새것이 최고라고 믿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옛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 된다.”(103, 109쪽)

 동네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며, 좋다는 학교 옆으로 집을 옮기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누구나 ‘사람 아닌 사람’ 길을 걷습니다. ‘사람한테서 벗어난 사람’ 자리에 뿌리를 내립니다. ‘사람을 잊는 사람’이 되고, ‘사람을 버리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4342.1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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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16 19:38   좋아요 0 | URL
가보고 싶은데 좀더 자세하게 약도 설명좀 해주세요^^

숲노래 2009-11-16 20:35   좋아요 0 | URL
http://blog.naver.com/hbooklove/60094562166

이곳에 들러서 사진을 보시면 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잡지는 알라딘에서 안 파는가 보다. 정기구독만 받는가?)


 ‘비장애인’은 ‘장애인’ 이야기책을 참 안 읽는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 장애ㆍ비장애 아우르는 잡지 《함께 웃는 날》



 지난 토요일에 인천에서 서울 군자역까지 전철을 타고 갑니다. 서울사람한테 군자역은 가까운 동네일는지 아닐는지 모르겠는데,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까마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날마다 전철로 오가며 일터나 학교에 몸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날마다 지옥철에 시달리고, 언제나 고단함에 절고 저는 삶이라 할 텐데, 체력이 대단하든 견디는 힘이 대단하든 놀라운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타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몸이 안 좋은 옆지기가 자연건강회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입니다. 생채식을 하려 했지만 남편이 갑작스레 서울로 일을 나가면서 아무것도 못하느라 힘에 겨운 옆지기는, 익히 책으로 읽고 스스로 알아보고 해 왔기에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한번 가서 들으면 다르다고 여깁니다.

 맞는 말이지요. 지식으로 갖출 때하고 몸으로 받아들일 때는 다르니까요. 또한, 같은 길을 걷는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요.

 전철이 부평을 지날 무렵 길손이 부쩍 늡니다. 토요일 아침이지만 일하러 가는 분이 퍽 많은 듯합니다. 이런 아침에 전철을 타고픈 마음이 없으나 아홉 시까지 맞춰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저는 주말이나마 지옥철에 안 시달리고 싶어 더없이 괴롭지만, 이만한 괴로움이란 참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아기가 고달플 테지요. 이틀째 똥을 못 누는 아기한테는 집에서 느긋하게 쉬거나 놀지 못하게 하는 엄마 아빠가 싫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오랜만에(?) 전철을 타서’ 재미있는지 소리치고 웃고 뜁니다. 참 용하구나 싶고, 아기라서 다른가 싶습니다. 아기는 스스로 많이 졸립고 힘들어도 둘레에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놀자며 눈자위가 벌개져 있어도 안 자려고 버팁니다.

 이렇게 아기를 어르고 같이 놀고 토닥이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옆으로 붙어 앉으면 한 사람 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기는 아기 자리입니다.” 하고 조용히 말씀드립니다. 아기가 몸피가 작다지만, 틀림없이 아기 하나와 아기 엄마하고 아빠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으니까요.

 제가 앉은 자리라도 내어 드리고 싶지만, 아기하고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저도 되도록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엄마는 한 자리만 차지하고 앉으면 젖을 물리기 몹시 힘듭’니다. 두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로 반쯤 양반다리를 하며 아기를 받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매무새로 십 분 남짓 있어야 하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는 누구나 다리가 저리기 마련이고, 이때 옆에서 아기 아빠가 ‘다리 저린 애 엄마’를 거들거나 아빠 허벅지에 아기 머리를 올려놓으면서 다리풀기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주머님께서 다리쉼을 하고프신 마음은 알지만, 어른은 조금 서서 가더라도 갓난아기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요,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한테 좀더 마음을 쏟을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분들 가운데에는 “거, 애는 엄마가 무릎에 앉히고 있으면 되지, 왜 두 자리나 차지하고 있어?” 하면서 불뚝 성을 내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세 식구는 ‘노약자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에 앉지 않으나, 사람들은 앉는 자리에 ‘영유아’뿐 아니라 ‘보호자가 동반해서 앉아’ 있으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줄을 까맣게 잊습니다. 당신 스스로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으니까 모르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들은 지난달 당신이 갓난아기를 돌보며 얼마나 고되고 벅차 했는지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 (장애아이) 누리가 시켜 준 특별수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들일 것이다. 나나 남편 모두 누리를 키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평범한 아이인 나래를 대하는 것도 한결 느긋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부모 노릇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한쪽이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리를 키워 보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태어난 나래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을 거고, 누리보다 훨씬 복잡한 욕망과 감정이 있고, 그래서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  (6권 8∼9쪽)


 자연건강회 강의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기는 그럭저럭 견디면서 엄마젖 물고 두 번 잠들어 줍니다. 낮에는 한 번 똥을 푸지게 누기도 합니다. 강의를 듣는 틈틈이 오줌기저귀와 바지를 빨아서 걸상에 걸치고 말립니다. 종이기저귀를 쓴다면 이렇게 번거롭지 않겠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종이기저귀를 쓰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기는. 하루일을 마치고 축 늘어진 몸으로 다시금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으로 돌아와서 하루 내 밀린 빨래를 하고 있으면 ‘오늘 저녁 새로 쌀과 곡식 씻어서 불려 놓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마룻바닥과 방바닥은 또 언제 닦고, 내 글쓰기는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뜻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하여도 이렇게 몸이 지쳐 버리면 내 마음 또한 지쳐서 뒤틀려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도 새삼 느끼는데, 비오는 날 전철길은 맑은 날 전철길과 견주어 몇 곱으로 고달픕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오징어떡처럼 밀리고 깔릴 때에는 옆사람 우산이 내 옷이나 몸에 착 붙으며 ‘비를 안 맞았어도 몸은 빗물에 젖어’들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바닥에 우산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짐칸에 올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 자리만 넓히면 그만이라는 아저씨가 한 사람 옆에 서는 바람에 훨씬 고달픕니다. 그 옆으로 서며 제 가방을 미는 아가씨는 당신 자리가 퍽 널찍하지만 당신 자리를 조금 줄이며 옆에 찡긴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지 못합니다. 제 오른쪽에 선 아가씨 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서로서로 너무 힘들고 고달픈 나머지 당신 몸 하나만 돌볼 뿐이요, 당신들이 고달프고 짜증나 하듯 옆사람 누구나 고달프고 짜증나게 느끼는가는 깨닫지 못합니다.


.. 지금 한창 기대를 안고 열심히 치료나 학습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이 듣고서 섭섭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소통 능력이나 사회성은 청년이 되어서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꼭 세상 잣대에 맞게 고쳐야 하나, 그냥 그대로 받아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의 문제보다는 그걸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내 아이를 가르쳤지, 치료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를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아이의 개성으로 보자. 아이의 부족한 면만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자.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아이를 보자 ..  (6권 27, 36쪽)


 왼쪽 오른쪽 앞뒤로 밀리고 찡기는 가운데 책 하나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찡기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책을 펼쳐 앞사람 입김을 막을 수 있으며, 겨우겨우 한 줄 두 줄 읽는 가운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하나라도 더 깨달은 사람이 좀더 이웃한테 마음을 쓰자’는 아닙니다. ‘한 줄이라도 더 읽은 놈이 더욱더 이웃 아픔을 느껴 보자’ 또한 아닙니다. 그저 이 고단함을 잊고 싶습니다. 책에 빨려드는 내 마음은, 바로 이곳에서 몸뚱이가 아프고 괴로운 내가 마치 어디에도 없는 듯 느끼고 싶습니다.

 마침 오늘은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를 집어들었습니다. 6호부터 정기구독료를 새로 내야 하는데 깜빡 잊고 아직 안 보내고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고맙게도 6호를 먼저 보내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얼른 한 해치 책값을 부쳐야겠습니다.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는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민들레》라는 잡지에서 함께 엮고 있습니다. 《함께 웃는 날》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잡지를 정기구독할 때에도 느꼈지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같은 모임이 있기는 있어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는 아주 드물고, 이런 매체에서 소식지나 책을 펴냈을 때에 제대로 알아보면서 장만하고 읽고 삭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대단히 드뭅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느 ‘힘없고 권리 앗긴 사람들’ 목소리가 낮을 뿐 아니라 막대접과 푸대접이 아니겠느냐마는,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그야말로 아무런 대접을 못 받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스스로도, 장애 있는 사람 스스로도, 장애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들여다보지 않기 일쑤입니다. ‘내 일’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모르쇠입니다. 나 스스로 다치거나 망가지거나 내 식구나 동무가 다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면 장애인 이야기이든 권리이든 삶이든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따로 장애가 없다지만, 비장애인한테 계단이나 거님길 턱이나 건널목이나 지하도나 숱한 교통시설과 문화시설이 ‘우리 누구나 얼마나 쓰기 좋도록 마련되어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으세요?” “별로 걱정 안 해요. 설사 상대가 저를 무시하는 일이 보이더라도, 저도 같이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면 되니까요. 비장애인도 잘 보면 어떤 종류의 장애든 조금씩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 무시하면 저도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죠.” ..  (6권 70쪽)


 《다르게 보는 아이들》 같은 책이나 《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같은 책은, 몸소 장애가 있거나 식구 가운데 장애 있는 사람만 읽을 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장애인이 1/10이라고 하지만, 한두 다리 거치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 가운데 장애인이 없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를 좀더 살뜰히 들여다보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담아내는 책을 우리 스스로 참 안 찾고 안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학습지 안 사 주는 어버이 없고,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문제집 안 읽히는 교사는 없으나, 아이들한테 삶다운 삶을 보여주는 어버이는 꽤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을 읽히려는 교사 또한 더없이 드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책다운 책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삶다운 삶을 저버리는 쪽으로 뻗어나갑니다. 우리는 우리 두 다리로 우리가 사랑할 터전을 밟고 일구고 가꾸는 길로 걸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4342.9.21.달.ㅎㄲㅅㄱ)


 ┌ 함께 웃는 날 : ‘민들레’ 엮고 펴냄
 └ 한 해 구독 : 24000원 (http://mindle.org), 02-32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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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9 : 책잔치와 책방과 도서관

 지난 9월 5월과 6일 이틀에 걸쳐,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서는 ‘책잔치’가 조촐히 열렸습니다. 춘천 실레마을에는 조그마한 기차역인 ‘신남역’이 있는데, 이곳은 2004년부터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종로나 퇴계로, 또 박지성길 같은 곳이 있다지만, 버스역이나 기차역 들에 사람이름이 쓰이기로는 나라안에서 처음입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김유정역’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준 일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춘천 실레마을 조그마한 기차역 둘레에 ‘김유정문학마을’을 이루어 낸 여느 사람들 힘 또한 대단합니다. 아니,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차근차근 모였기에 비로소 ‘김유정’ 하나로 문화와 삶과 역사와 행정이 한마음이 되었다 할 테지요. 춘천 실레마을 책잔치는 ‘물건과 원고와 식구 하나 남기지 않은’ 김유정이라는 옛사람을 기리는 넋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깜냥껏 우리 새터에서 우리 새삶과 새빛을 일구자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9월 마지막 주말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어김없이 책잔치가 마련됩니다. 지난 1950년대부터 헌책을 팔아온 책장수들 스스로 돈과 품과 땀과 마음을 모두어서 마련한 이 책잔치는 벌써 여섯 해째 이어오는데, 처음 마련한 해부터 지난해까지 아주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헌책방 대접은 푸대접조차 아닌 똥대접이나 막대접인 터라, 시청과 구청 공무원을 비롯해 기자들 눈길과 손길은 ‘그깟 헌책방이 뭐?’였고, 중앙 언론매체는 ‘서울도 아니고 부산인데 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부산에만 있고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관광명소 14곳’에 넣어 주시는(?) 한편, 시에서 여러모로 뒷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헌’책이 아닌 책을 되살리고 아끼던 책장수들 땀방울과 손품이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9월 18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열립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온갖 영어를 뒤섞어 내놓아야 비로소 사람들이 몰려드는 책잔치마당이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우리들 생각힘을 좀더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책잔치 하나 서울에서도 벌이니 반가운 일인데, 이와 같은 책잔치 자리에 가 보면 돛데기시장처럼 ‘책 싸게 팔기’ 판만 잔뜩 벌여놓고 있어, 책마을에서 일한다는 분들 생각밭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나 싶어 서글픕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책을 읽은 우리들 매무새와 삶이 새로 태어나도록, 책 하나에 깃든 사랑을 고이 받아먹도록 손길을 내밀기는 그토록 어려운가 싶어 쓸쓸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우리 나라 도서관이 책잔치에 함께 나서는 일은 드뭅니다. 출판사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책잔치에 책을 싸게 내놓아 ‘책을 제값대로 팔아야 하는’ 동네책방은 씨가 말라 버리게 합니다. 이제 교보와 영풍 아닌 책방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책이 죽지 않도록 책잔치를 연다’고 하나, 책이 죽은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작은 책방이 죽고’ 있을 뿐이며, 실레마을 책잔치를 함께 기획하고 마련한 춘천시립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나라안에 거의 없을 뿐입니다. (4342.9.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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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리뷰'에 안 걸치는 까닭은, '리뷰'에는 정식으로 다시 쓸 생각이기 때문이다) 

 





 전철길에서 눈물 흘리며 책읽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 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엄마가 사랑해》(숲속여우비) 



 열석 달을 넘기는 아기한테는 엄마가 나누어 주는 사랑에다가 아빠가 나누어 주는 사랑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 두 가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좋겠지요. 우리 삶터는 어느 결에 조각조각 쪼개지면서 어버이 따로 아이들 따로가 되어 버리고 있는데,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당신들 하고픈 일과 놀이를 즐기고 싶습니다. 아이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바라는 일과 놀이를 붙잡고 싶습니다. 함께 모이기 어렵고, 같이 손 잡기 힘듭니다. 외려 낯과 이름 선 사람들하고 모여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즐깁니다.

 어젯밤 자정이 다 되어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애 아빠는 아이가 깨어 있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저귀 빨래만 해 놓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부랴부랴 일어나 씻고 가방을 꾸리는데, 어젯밤 미처 해 놓지 못한 빨래는 건드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둡니다. 이 빨래는 오늘 늦게 집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고단한 몸으로 해야겠지요. 마땅한 노릇일 텐데, 애 아빠는 아침에도 ‘깨어 있는 아이 얼굴’은 보지 못하는 채 길을 나섭니다. 그나마 일터에 아홉 시까지 나가도록 맞추어 가장 늦게 집에서 나오려고 하니 일곱 시 이십사 분에 걸음을 재촉합니다.

 애 엄마는 홀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씨름을 하다가 느즈막하게 아빠를 마주하는데, 서로서로 다른 까닭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눈만 겨우 마주친 다음, 아빠가 먼저 쓰러지듯 잠들고,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서울로 일을 나온 지 한 달이 되는데, 이에 앞서는 엄마 아빠가 아이하고 언제나 하루 내내 있었지만, 언제 그렇게 지냈느냐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아빠는 바깥으로만 맴돌게 되고 엄마는 집에서만 머물게 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동네 마실을 즐기지 못해, 한참 신나게 걸어다니며 세상을 느끼고 싶은데 제대로 세상을 느낄 길이 없습니다.

 밀리고 눌리고 밟히는 전철길입니다. 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서 갑니다. 자리에 앉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전철칸 하나에 쉰 사람쯤만 앉습니다. 여기에 백을 곱한 오백 사람 남짓은 서로 오징어떡이 되면서 낑기고 찡긴 채 서울로 가야 합니다. 맨 끄트머리 전철역에서 타더라도 자리에 못 앉는 사람이 많습니다. 밀리고 차이고 얻어맞는 사람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골을 내고 짜증을 부리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자리에 앉은 이 가운데에는 한둘쯤 책이나 신문을 들고, 거의 모두 모자란 잠을 이루려 눈을 붙입니다. 새벽에 길 나서고 밤에야 돌아오는데, 일터에서 낮잠이라도 삼십 분 달게 자기 어려운 이들 ‘인천 떨거지(또는 수원 떨거지)’는 아침저녁(또는 새벽밤)으로 스스로 사람 아닌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마다 똑같은 노릇이요 똑같은 괴로움과 고달픔이라지만 ‘날마다 이런 골부림과 짜증내기를 저 혼자만 해야 하는’ 듯 느끼기 일쑤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한테 치이고 밀리다 보니, 서로를 나와 똑같이 아름답고 고운 목숨임을 잊기 일쑤입니다. 서로서로 똑같이 힘들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 우리는 밖에 나가면 늘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구멍가게에서 잡지를 사려고 했을 때, 가게 주인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이 일에 보답을 해 주실 거예요.” 우리가 소원하던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아이는 참 운이 좋군요. 나중에 아이가 당신들에게 꼭 고맙다고 할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유의 위로를 들어야 했다 ..  (83쪽)


 왼쪽오른쪽 앞뒤에서 밀어대는 사람들한테 밀리고 휩쓸리며 전철칸 창문 옆 벽에 몸이 쿵 하고 찧습니다. 저를 민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한테 밀렸을 테고, 그 사람은 또 그 옆에 있는 사람한테 밀렸겠지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이 밀친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모두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이 썅!’ 한 마디뿐(그러면 제 몸이 쿵 박은 전철 벽은 저한테 ‘아이 썅!’ 할는지?).

 밀리고 밟히고 팔꿈치로 얻어맞으면서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유혜자 옮김/숲속여우비,2009)라는 책을 붙잡습니다. 1988년에 처음 우리 말로 나온 책이 2009년에 스물한 해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엄마 아빠가 내다 버려서 외톨이가 된 아이를 스위스에 사는 글쓴이(도리스 클링엔베르그)가 열여덟 달을 기다린 끝에 맞아들인 이야기(1975년에)가 낱낱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예전에 한 번 읽었으나, 새로운 판으로 읽으면서도 가슴이 뻑적지근합니다. 책을 읽다 읽다 또 읽다가 눈물이 핑 도는데, 제 옆에서 저를 팔꿈치 뾰족한 데로 쑤시듯 밀치는 아가씨 때문에 아파서 핑 도는 눈물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징어떡이 되는 가운데에서도 가슴을 적시는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놀랍고, 이렇게 책을 붙잡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옆구리가 결려도 고단하다고 느끼지 않으니 기쁩니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그냥 서 있었다. 결국 아이의 손짓 발짓으로 우리는 아이가 그것들이 모두 자기 것이냐고 묻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이가 옷장에서 옷을 신나게 끌어내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것이나 꺼내어 걸쳐입었다 ..  (38쪽)


 덜컹거리고 흔들리고 미어터지는 가운데 책을 읽자고 선뜻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고단한 전철길에서 겨우 자리 하나 얻었다면 몇 분이라도 눈을 붙이며 몸을 쉬고 싶다는 사람들 마음을 잡아끌기 어렵습니다. 저 또한 몹시 고단하면 책을 덮고 잠을 자니까요.

 언제나 고단함이 가득가득 쌓인 사람들한테 무슨 책을 쥐어 줄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스포츠와 연예 기사 가득한 공짜신문이 아니고는, 또 주식시세와 돈벌이 소식 담긴 경제신문이 아니고는, 어떤 읽을거리를 전철길 이웃사람한테 건넬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립니다. 밖으로 나오니 길에서 담배 피우며 걷는 양복쟁이가 둘 보입니다. 선 채로 담배를 피우든지, 걸을 때에는 담배를 끄든지, 저 혼자만 좋다고 담배를 피워서 쓰겠느냐 싶으나, 저이한테는 이렇게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머리와 마음에 가득한 골남과 짜증남을 털어내지 못할 테지요. 걸음을 재게 놀려 담배쟁이를 앞지르고 책을 펼칩니다. 일터에 닿기 앞서 몇 줄을 더 읽습니다. “내가 웅에게 ‘귀여운 오리’라는 노래를 열 번쯤 되풀이해서 불러 주었다. 웅은 환하게 웃으면서 내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기름진 땅에 수많은 씨앗이 떨어지고 있다.(96쪽)” (4342.9.10.나무.ㅎㄲㅅㄱ)


 ┌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유혜자 옮김/숲속여우비,2009)
 └ 책값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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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8 : 책에 담는 땀방울, 책을 읽는 눈물방울

 얼결에 한글학회로 일을 나온 지 보름이 넘었습니다. 그 좋아하는 골목마실 헌책방마실 못하며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서 시달립니다. 그래도, 이 지옥철에서 비지땀 뻘뻘 흘리며, 그동안 못 읽고 미루어 둔 책을 하나하나 읽어치웁니다. 뒤늦게 마지막 쪽을 덮은 책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장만하던 몇 해 앞선 그때 다 읽었으면 내 삶과 생각과 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좋은 책을 일찌감치 읽었으니, 저는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또는, 이제서야 읽게 되었기에, 지난날에는 줄거리만 훑고 덮어놓았을 책을 곰곰이 되씹으며 새삼스레 붙잡을 수 있을까요.

 예나 이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옥철에서도 책을 붙잡습니다.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느긋하고 시원하고 따뜻한 곳에서도 안 읽습니다. 전철역 나들목에서 나누어 주는 공짜 신문을 조금 들여다보다가 멀뚱멀뚱 선 채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로서는 출퇴근길 세 시간이 몹시 아까워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발버둥이지만, 거의 모든 분들한테 출퇴근길은 지루하고 지겹고 고단해서 얼른 벗어나기를 바라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 나온 소식과 인터넷책방 맛보기로는 퍽 눈에 뜨이던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를 아침길에 1/3쯤 읽습니다. 읽다가 자꾸 짜증이 나지만 사람들한테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면서 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내지 못합니다. 시베리아에 붙들린 서글픈 사람들 눈물방울을 담아내려고 한 책이라 하는데, 눈물방울은 그닥 보이지 않고 꽤 지루한 근현대 역사 이야기가 잔뜩 늘어집니다. 다른 책에 얼마든지 나와 있는 이야기를 굳이 덧붙여 실어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작 해야 할 말이 이런 자질구레한 군말 때문에 묻히지 않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저녁길에 어린이책 《바람과 나무의 노래》를 읽다가 코끝이 찡합니다. 눈물이 어립니다. 아침길에 느낀 아쉬움을 갚습니다.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을 풀어 줍니다. 밀리고 치이고 밟히는 가운데 눈물바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한동안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꽤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데, 글줄 하나마다 글쓴이 온힘과 넋이 담겨 있다고 느낍니다. “‘곧장 되돌아가!’ 나는 자신에게 명령했어요. 하지만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말이죠. 상쾌한 바람이 불고, 도라지꽃이 저 멀리까지 한없이 피어 있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그냥 돌아가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9∼10쪽)” 지옥처럼 바뀌고 마는 전철길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어서 벗어나고프다고만 생각하고, 나와 살을 비벼야 하고 코앞에 얼굴을 부벼야 하는 사람을 이웃으로 느끼기 어려울까요. 모든 회사원이 지옥철이 아닌 하늘나라 꽃길이나 구름길을 거닐면서 일터를 오갈 수 있다면, 모든 학생이 새벽길이나 밤길이 아닌 햇볕 따사롭고 바람 시원하며 싱그러운 나들이길을 거닐며 학교를 오갈 수 있다면, 우리 삶터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까 하고 생각에 젖습니다. 인천 서쪽 끄트머리에 가까워 오니 전철 손님이 많이 줄고, 다시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4342.9.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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