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11 : 책 하나를 이야기하려면

 십이 킬로그램 안팎을 오락가락 하는 열아홉 달 아기를 한 팔로 안고 걸어다니면 팔뚝이 끊어질 듯합니다. 처음 십 분이나 이십 분은 그럭저럭 걷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이 넘어서면 고달픕니다. 아직 혼자서는 어른처럼 오래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팔에 안든 등에 업든 합니다. 아기수레 없이 오로지 안거나 업으며 들일 산일 집일을 맡아 하던 지난날 어머님들 몸뚱이는 무쇠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하루를 접고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결렸겠지요. 그러나 옛 어머님들 삶을 알알이 담은 이야기나 문학이나 영화나 방송을 만나기란 더없이 어렵습니다. 흙냄새뿐 아니라 땀냄새 묻어나는 작품이란 드물고, 살냄새를 비롯해 비누냄새 배어나는 작품 또한 드물며, 밥냄새를 아우르며 똥냄새 녹아 있는 작품은 퍽 드뭅니다. 이른아침부터 열아홉 달 아기 똥과 오줌을 치우면서, 지난 열아홉 달 동안 제 손과 몸에 아기 똥오줌 내음이 짙게 배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읽다가 접어두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지난달에 겨우 끝마쳤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나라밖 문학이라 할지라도 번역이 뒤틀려 있으면, 이 나라에서는 이냥저냥 읽을거리조차 되기 힘들겠구나 싶습니다. 〈알베르 카뮈 전집〉을 읽으면서도 이다지 이름높은 분 번역조차 왜 이렇게 얄딱구리한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고, 한문이 함께 달린 《골목길 나의 집》을 읽으면서는 ‘바로 밑에 한문이 달려 있는데 이렇게 우리 말 번역을 엉망진창으로 해도 되는가? 안 부끄럽나?’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창작한 사람이 수십 해에 걸쳐 이룬 알맹이’를 ‘고작 몇 달이나 한두 해만에 끝마치고 책으로 내야 하는’ 우리 터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나라 안팎 좋은 작품을 흐리멍텅하게 깎아내려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어줍잖은 글솜씨로 느낌글을 적바림할 때마다 ‘나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책이라 느끼든, 나한테는 아쉽고 모자란 책이라 느끼든, 이 책 하나를 다루는 글을 쓰려 할 때에는 창작하는 사람이 이 책 하나에 들인 땀 못지않게, 때로는 이분들이 흘린 땀보다 더 땀을 흘리면서 느낌글을 적바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더 땀을 흘렸다 할지라도 제대로 못 읽거나 엉터리로 잘못 읽는 대목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제 서울마실을 하는 전철길에서 《환경가계부》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다 읽었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술술 읽혔습니다. 그런데 《환경가계부》에는 곳곳에 밑줄을 그으며 별을 그리기까지 했으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는 별을 하나도 그리지 못했고 밑줄은 몇 군데 긋지 못했습니다. 술술 잘 읽힌다고 해서 그리 좋은 책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저한테 똑같이 해야 하는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리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가장 좋거나 아름다운 일이 못 될 수 있는 만큼, 더 바지런히 갈고닦아야 하며 더 고개숙여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환경가계부》에는 “아버지들은 환경가계부는 부인이나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길 바랍니다(194쪽).”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우리 어른들, 더욱이 남자 어른들은 참사랑이 무엇인지 참말로 너무 모르며 살고 있습니다. (4343.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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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14 : 우리에 갇힌 책

 그젯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 내리는 밤길을 조용히 거닐며 이곳저곳에 깃든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하고 어울리고 씨름을 하면서 기운이 다 빠진 터라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르지 않습니다. 한동안 누워서 허리를 편 다음 두어 시쯤에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네 시 반에 똥을 누면서 깨어났기에 똥 치우고 기저귀 빨며 씻기느라 함께 깰 때까지 그예 곯아떨어집니다. 하루하루 고되고 벅차구나 하고 새삼 헤아리면서, 아이가 없던 때에는 밤 두 시이건 새벽 네 시이건 홀로 바지런히 밤골목 마실을 하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아이 모습을 벌써 여러 만 장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웃고 울고 까불고 놀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숱한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둘 담는 동안, 나와 옆지기가 어릴 때에 어떠했을까를 돌아보고, 그무렵 우리들 어버이 되는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되새깁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틀림없이 여러 가지를 잃는 삶이면서 어김없이 여러 가지를 새롭게 얻는 삶입니다.

 프랑스사람 조슬린 포르셰 님과 크리스틴 트리봉도 님이 함께 쓴 《우리 안에 돼지》(숲속여우비,2010)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고작 112쪽짜리 책이니 금세 덮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가 쏙쏙 와닿으면서 가슴으로 잘 스며들은 까닭에 금세 덮고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고 있습니다. “쥘리앙 말이 돼지가 움직이지 못해야 몸집이 빨리 크고, 그럴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30쪽).” 같은 대목은 요즈음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축사에서 놀라운 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동물들과 몸을 부대끼며 일을 하면서도 마치 동물이 기계인 듯 대한다는 점입니다. 돼지의 기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86쪽).” 같은 대목은 어느 만큼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헤아릴 만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그러면 “사실 돼지 축사 건물 전체가 자연과 차단된 구조랍니다(55쪽).” 같은 대목을 살갗 깊숙하게 느끼는 분은 얼마쯤 될까요. 돼지우리에 갇힌 돼지만 자연이 사라진 곳에서 살집만 하루 빨리 불리도록 내몰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거나 살아가는 곳에서도 더 빨리 돈만 벌도록 내몰리고 있는 ‘자연이 자취를 감춘’ 곳임을 깨닫는 분은 얼마나 되려나요. 우리는 우리가 즐겨먹는 고기와 푸성귀를 키우는 곳에서만 짐승과 푸나무를 기계처럼 다룰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목숨이 깃든 사람이 아닌 돈벌이 기계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며칠 앞서 헌책방에서 김수미 님 산문모음을 두 권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를 먼저 읽고 있습니다. 김수미 님이 책을 낸 줄은 진작 알았으나 이제까지 이분 책을 읽은 적이 없다가 몹시 새삼스럽다고 느끼며 쥐어들어 읽는데, 당신 나이 마흔을 앞두고 처음으로 책을 쓰셨더군요. 세월과 삶과 눈물콧물과 웃음이 고이 스민 책을 펼치면서 김수미 님 지난날 마음하고 오늘 제 나이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스물세 해 앞서가 아닌 오늘 읽기에 비로소 내 마음밭으로 스미는 이 책을 곱게 쓰다듬으면서, 우리에 갇히는 삶이 아닌 보금자리를 일구는 삶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4343.2.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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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06 : 문닫을 책방 〈이음아트〉와 늙은이 책

 서울 혜화동은 ‘대학로’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대학교에서 내는 신문 이름은 ‘대학신문’입니다. 혜화동에는 아무런 대학교가 없으나 ‘대학로’이고, 관악구에만 대학교가 있지 않으나 그곳에서 내는 신문은 ‘대학신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라안 모든 대학 소식을 담는 신문이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혜화동을 대학로라 일컫는다 한들 이곳에 대학생 문화가 숨쉬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혜화동이 모든 대학생과 젊음을 나타내는 문화 터전이지 않습니다. 다만, 혜화동은 우리 젊음과 대학생 숨결을 크게 보여주거나 나타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 혜화동에는 책방이 도무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버티어 내지 못합니다. 물을 팔거나 술을 팔거나 밥을 팔거나 옷을 팔거나 전화기를 팔면 그리 어려울 일이 없으나, 오로지 책을 팔면 어렵습니다. 공연 문화만 문화가 아닐 텐데, 공연 문화는 자그마한 극장에서도 나눌 수 있는 터전이 있습니다만 책 문화는 자그마한 책방에서도 나눌 수 있는 터전이 없습니다. 100만 권을 갖추거나 10만 권을 갖춘 책방이어야 비로소 책 문화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1만 권을 갖추거나 1천 권을 갖추거나 1백 권을 갖춘 책방과 도서관과 쉼터라 한다면 책 문화를 말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삶터를 돌아볼라치면 작은 목소리는 ‘없는’ 목소리요, 낮은 목소리는 ‘따돌려도 좋을’ 목소리로 여깁니다. 돈이 적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여기고, 못생기거나 공부를 좀 못하거나 키가 작은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거나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여깁니다. 말이 좋아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정작 우리 삶은 조금도 “작은 아름다움을 알뜰히 여기어 사랑하는 매무새”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도 “작은 아름다움을 믿고 애틋하게 섬기는 몸짓”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혜화동에서 명륜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던 책방 〈논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2005년에 꿋꿋하게 문을 열었던 인문예술 책방 〈이음아트(이음책방)〉 또한 다섯 해를 넘기지 못하고 2009년 12월 31일까지만 문을 열어 놓고, 이제는 책방일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야말로 혜화동은 ‘작은 책 문화’와 ‘낮은 책 삶결’을 나눌 수 없는 동떨어진 곳이어야 할까요. 그렇지만, 혜화동과 명륜동을 잇는 더 작은 이음고리인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은 씩씩하게 힘을 내며 다부지게 한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음아트〉가 문을 닫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다섯 해 이음아트 발자취를 돌아보는 사진잔치”를 마련하기로 하고, 제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사진 69장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진을 들고 찾아갈 생각인데, 안쓰러운 가슴을 쓰다듬으며 일흔 훌쩍 넘긴 할머니 유선진 님이 내놓은 《사람, 참 따뜻하다》(지성사,2009)라는 책을 넘겨 봅니다. “내가 도착한 ‘노년’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다 … 노년은 젊음보다 아름답다.(147∼148쪽)” 젊음을 넘어 늙음으로 오래오래 이어갈 작은 책방은 한낱 꿈일까요? 젊음은 젊은대로 아름답고 늙음은 늙음대로 아름답습니다. (4342.11.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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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02 : 손빨래 하지 말라구?

 하루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다가 주안역에서 빠른전철을 내립니다. 몇 분쯤 서서 기다리는데 타는곳 둘레로 라디오 목소리가 흐릅니다. “손빨래는 하지 말고 세탁기로 하며, 무거운 짐은 들지 않도록 하고, 마우스는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쓰고 …….” ‘뭐야?’ 하면서, 읽던 책을 한동안 덮고 귀를 기울입니다. 라디오 목소리는 ‘셈틀 앞에서 오래도록 지내는 도시사람이 손목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젠장!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손빨래가 손목에 안 좋다니, 그저 전기 먹는 기계를 끝없이 쓰고 또 쓰라는 소리인가? 걸레조차 빨지 말고, 걸레질조차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설거지는? 밥하기는? 자전거 타기는? 걷기는? 무거운 짐을 들지 말라는데, 이삿짐 나르는 일꾼이나 도매상 일꾼은 어쩌지?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이 키우는 엄마 아빠는? 아기를 안을 생각은 접고 아기수레에만 태우고 끌고 다니거나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라고?

 제 귀에만 터무니없다고 들리는지 모르는 소리를 그만 듣고, 《하얀 능선에 서면》을 쓴 남난희 님이 2004년에 내놓은 《낮은 산이 낫다》를 다시 집어듭니다. 느린전철을 타고 도원역에서 내립니다. 밤골목 거닐며 사진 몇 장 찍다가, 배다리에 마련해 꾸리고 있는 동네도서관에 들러 이곳에 놓고 있던 스캐너를 떼어 가방에 넣고, 몇 가지 책을 챙깁니다. 다시 밤골목을 거닐며 집으로 갑니다. 김밥집에서 김밥 석 줄 삽니다. 제가 먼저 말하기 앞서 김밥집 일꾼이 까만 봉지에 착착 담아 버립니다. 빤히 어깨에 천가방을 걸어 놓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런 가방이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지 않고 따로 묻지 않습니다. 집 앞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을 삽니다. 젊은 일꾼이 까만 비닐 꺼내는 모습을 보며 얼른 손사래칩니다. 젊은 일꾼은 입맛을 다시며 까만 비닐을 구겨서 제자리에 쑤셔넣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씻고, 아침에 1권을 읽은 만화책 《크로스게임》(아다치 미치루 글ㆍ그림) 2권부터 7권까지 읽어내립니다. 졸음이 쏟아져 그대로 곯아떨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8권부터 10권까지 읽어치웁니다. 뒤엣권은 오늘 저녁에 만화책방에 들러 장만할 생각입니다.

 아침에 서울로 일하는 가는 전철길에 다시금 《낮은 산이 낫다》를 집어들어 읽다가 빈자리에 끄적끄적 이 생각 저 얘기를 적바림합니다. 문득, 남난희 님 글책이나 아다치 미치루 님 만화책이나 꾹꾹 눌러 쓰고 눌러 그린 손글이요 손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손글과 손그림 아닌 셈틀글과 셈틀그림으로 바뀔는지 모르지만, 이이들은 셈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도 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맛과 멋을 잃지 않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두 손으로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며 일구고,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쓸고닦으며 아이 돌보기까지 하는 가운데 김매기나 살림 갈무리를 하겠지요. 손으로 일하는 만큼 손힘 닿는 데까지 애쓰겠지요. 퍽 고되게 일하기도 할 테지만, 손품 팔 수 있는 테두리는 넘기지 않을 테고요. 우리한테는 오늘 하루만 있지 않고 늘 새로워질 기나긴 사람길과 사랑길이 있으니까요. (4342.10.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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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00 : 서울사람은 책을 읽어 무얼 하나?

 여러 달에 걸쳐 《탐라기행》(학고재,1998)이라는 책 하나를 읽어 냅니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이 책을 쓴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 다른 책 《한나라 기행》이 함께 우리 말로 옮겨져 있음을 알아챕니다. 아침저녁 전철길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가운데 《탐라기행》과 더불어 《까마귀의 죽음》(소나무,1988)을 겹쳐서 읽었습니다.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아르고스,2005)하고 《문명의 산책자》(산책자,2009) 또한 겹쳐서 읽고 있습니다. 어느 책이든 한달음에 읽어치우기에 너무 아깝기 때문입니다. 서른 쪽을 읽어도 ‘이런! 오늘 너무 많이 읽었잖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무 쪽 안팎만 조금조금 읽고 다음 책을 읽어 주고 싶은데, 사람들이 낑기고 찡기고 밟히고 밀리는 지옥철에서는 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낼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쉰 쪽도 읽고 백 쪽도 읽습니다. 그러다가 읽기를 멈추고 책 앞뒤 빈자리에 글월 몇 줄을 짤막하게 적바림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 쓰기를 즐겨하고 있다 보니, 이 책들 말고도 요 한 달 남짓 전철길에서 ‘읽어치운’ 책들이 살림집 책상맡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읽기는 끝없이 읽어댈 수 있는데, 느긋하게 책상맡에 앉아서 느낌글을 갈무리할 겨를이 없습니다. 옆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고단한 전철길에서는 책이라도 쥐고 있어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 책은 자꾸자꾸 읽는데, 어쩌면 이렇게 읽기만 되풀이하면서 외려 내 마음을 제대로 못 다스리지는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은 아침길에 모처럼 자리를 하나 얻어서 앉는데, 제 옆에 앉은 젊은 사내가 팔짱을 굳게 끼고 당신 옆으로 몸을 부풀리며 혼자만 넓게 가려고 합니다. 이런 불쌍한 사람한테 한 마디를 할까 하다가 괜히 짜증 묻은 말이 나올까 싶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 채로 갑니다. 그렇지만 옆사람을 들볶는 이 젊은 사내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어차피 서서 가더라도 말 한 마디라도 해 주고 일어서야 했구나’ 하고 뒤늦게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아침저녁 출퇴근 또는 통학에 나서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 아닌 짐짝으로 여길 수밖에 없도록 시달리고 억눌리면서 사람사랑이나 사람믿음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악다구니 같은 도시에, 더구나 서울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습니다. 한손에 ‘진보’를 들든 ‘보수’를 들든 ‘중도’를 들든(요사이는 거짓 ‘진보-보수-중도’를 드는 사람이 퍽 늘었습니다), 저마다 좋아하거나 바라는 옳은 생각을 따르자면 도시 아닌 시골에 살 노릇이요, 평화와 안정과 민주와 복지와 통일을 헤아린다면 이 또한 도시 아닌 시골일 텐데, 아니면 도시살림을 시골살림처럼 가꾸어야 할 텐데, 아니 도시이고 시골이고를 떠나 두레를 하는 매무새와 어깨동무를 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할 텐데, 왼쪽에서고 오른쪽에서고 넉넉함이나 느긋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저부터 서울에 매인 주제에 이런 말을 늘어놓을 구실이 없다고 하겠는데, 고향 인천 골목동네에서 조용히 이웃과 어울리면서 살고플 뿐이지만 인천시는 2025년 도시계획을 새로 내놓으며 저처럼 아파트에서 안 살거나 못 살 사람은 다 내쫓으려 합니다. 이제는 아예 수도권에서 떠나 버릴 꿈을 꿈 아닌 삶으로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년을 안심하고 산다는 아파트’가 아닌 ‘200년을 걱정없이 살 작은 집’이 그립습니다. (4342.9.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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