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0 : 책은 어떻게 읽는가

 유홍준 님이 쓴 책에서 따 널리 떠도는 말마디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아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 말은 맞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은 얼마나 알맞을까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아는 테두리에서 책을 살펴서 읽는다’고 할 수 있을까 아리송해요.

 곰곰이 헤아립니다.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으레 ‘내가 아는 책’을 찾아서 사거나 읽고자 한답니다. 그럴 테지요. 그런데 ‘내가 아는 책을 읽는 맛’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누구나 ‘아는 책’을 ‘아는 테두리’에서 받아들이고자 책을 읽어야 하나요. ‘아는 책’을 ‘아는 만큼’ 받아들이면 책읽기가 즐거운가요.

 아는 사람을 만나 아는 만큼 이야기를 나누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아는 대로 일감을 찾아 아는 대로 힘써서 아는 대로 돈을 벌어 아는 대로 돈굴리기까지 하는 도시사람입니다. 아는 길을 아는 솜씨대로 아는 자가용을 몰며 아는 밥집과 옷집과 술집을 찾아드는 요즈막 사람들입니다. 아는 배우가 나오는 아는 영화를 보고, 아는 연기인이 나오는 아는 방송을 즐기는 한국사람입니다.

 엊그제 라디오 방송국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면서 취재 연락이 와서 녹음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 마무리를 지을 때 사회자는 “아는 만큼 본다고 하는데 …….” 하고 말씀합니다. 마무리 말씀을 들으며 저 또한 마무리 말을 해야 하기에, “저는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을 아주 싫어해요. 제가 느끼기로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만큼 보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만큼 책을 찾아서 읽고, 내가 살아가는 만큼 사람을 사귀며, 내가 살아가는 만큼 사랑을 해요.” 하고 대꾸합니다.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뿌린 대로’란 ‘아는 대로’가 아닌 ‘살아온 대로’입니다. 살아온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온 대로 내 짝꿍을 사귑니다. 살아온 대로 내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살아온 대로 대학교를 고르고 일터를 찾으며 밥을 먹습니다. 아는 대로 밥을 먹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아는 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란 없어요. 아는 대로 어버이를 섬기거나 아는 대로 스승한테서 배우는 사람이란 없답니다. 모두들 살아온 대로 밥을 먹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대로 어버이를 섬깁니다. 살아온 대로 스승한테서 배우고, 살아온 대로 내 몸과 마음에 걸맞을 책을 찾아나서며 곰삭여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만 찾아 읽을 수 있는 《부부 이야기》(부림출판사,1984)를 읽습니다. 몇 번씩 거듭 읽으며 책상맡에 놓는 책이에요. 그러나, 요사이는 잘 안 읽힐 뿐더러 책소개 또한 찾을 수 없는 ‘미우라 아야코’ 님 글을 담은 책입니다. 어린 날부터 몸이 여렸던 미우라 아야코 님은 “우리들의 일생에 그러한 고통이나 슬픔은 정말 전혀 없는 편이 좋을까(3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당신 남편만 가난과 아픔을 겪고 당신은 가난과 아픔을 안 겪으면 당신 삶은 어떻게 되었을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은 당신이 겪어야 했던 아프며 고단한 삶을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래, 이녁은 ‘아픈 삶을 하루하루 꾸리고 일군 대로’ 글을 썼고 사랑을 했으며 믿음을 섬겼습니다. 참 어여쁜 사람입니다. 살아온 모든 나날을 껴안고 어깨동무하며 좋아했어요.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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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9 : 내 삶만큼 읽는 책


 어린이책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던 지난날, 제가 몸담은 일터가 아주 휼륭한 책을 몹시 훌륭한 매무새로 일군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무렵 해마다 장만하여 읽는 책이 천 권이 넘고, 따로 장만하지 않으며 읽는 책 또한 꽤 많았습니다만, 한 해 동안 읽는 책이 제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알 수 있는 책은 온누리에 쏟아져나온 책 숫자에 대면 매우 보잘것없습니다.

 2000년 6월 10일 낮, 서울 홍대 앞에 자리한 헌책방 〈온고당〉에서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라는 사진책 하나를 만납니다. 일본 사진쟁이 ‘竹田津 實’ 님이 내놓은 책으로, 이분 책은 이맘때까지 아직 나라안에 한 권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비로소 이분이 글을 쓴 그림책 하나가 옮겨지고, 2007년부터 이분 사진책이 하나둘 옮겨집니다. 바로 ‘다케타쓰 미노루’ 님입니다. 제가 일하던 출판사 자료실에도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라는 사진책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자연 그림책을 많이 냈는데, ‘한국에는 없는 여우’를 그리자니 어쩔 수 없이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일본 들짐승 여우를 담은 사진책을 들여다볼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한국땅에 없는 들짐승은 여우만이 아닙니다. 늑대도 없고 범도 없습니다. 곰도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러한 들짐승들 자취와 모습과 삶을 그림책으로 그려내자면 동물원에 가거나 일본사람이 찍은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새책방과 헌책방을 꾸준히 돌아다니며 나라 안팎 온갖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서 하나둘 깨닫습니다. 나라안 적잖은 창작그림책에 실린 들짐승 모습은 나라밖 적잖은 사진책에 실린 모습을 들여다보며 베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제아무리 돈 많다는 출판사에서 큰돈을 들여 그림쟁이 한 분한테 힘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들짐승 모습 하나’를 잡아채어 그리도록 아프리카로 보내 주어 몇 달쯤 묵도록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범이나 사자가 아니더라도 다람쥐나 토끼를 그릴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 가두어 놓고 지켜보는 짐승이 아니라, 들판과 산자락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들풀과 산열매를 먹고 자라는 짐승을 오래도록 가까이하는 가운데 ‘한국 자연 터전 들짐승 모습’을 살가이 담아내도록 이끄는 출판사가 한 군데나마 있을까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대지 못한다면 그림쟁이 스스로 돈과 품과 긴 나날을 땀흘리고 바칠 분이 몇이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나 스스로 살아가는 만큼 쓰고 그리며 찍습니다. 내 삶만큼 글을 씁니다. 내 삶을 넘어서는 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내 삶 테두리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책 만드는 일꾼 매무새도 매한가지입니다. 책 하나 마주하여 읽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만큼 쓰고 내 삶만큼 엮으며 내 삶만큼 읽습니다. 한결 아름다운 넋을 돌보며 사랑하고자 할 때에는 나날이 조금씩 거듭나는 빛깔과 내음과 소리가 글월 한 자락에 담깁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아름다이 거듭나는 만큼 알맹이와 속살을 한껏 깊고 넓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글 쓰기’나 ‘좋은 책 읽기’를 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삶 일구기’에 마음과 몸을 쏟습니다. (4343.10.7.나무.ㅎㄲㅅㄱ)
 

(일본 사진책을 베껴서 내놓은 그림책 이야기는 좀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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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8 : 숨을 거둔 교육잡지와 에누리 책잔치

 다달이 나오던 교육잡지 《우리교육》은 첫 책이 나온 지 스무 해가 된 올 2010년에 그예 문을 닫습니다. 돈벌이가 잘 안 된다면서 출판사와 전교조 간부들은 ‘교육 월간지’를 ‘전교조 기관지’로 바꾸었습니다. 잡지 《우리교육》을 만들던 일꾼들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쫓겨났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교사 권리를 지키거나 북돋우자며 일어선 전교조에서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1990년 10월에 나온 통권 8호 《우리교육》을 펼칩니다. 지난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이 쓴 글 하나 실려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문학 교육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시를 머리로 만들지 않고 어떻게 쓰나? 시는 머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쓰는 것이다. 아니 손과 발로, 온몸으로 쓴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그렇다. 아무것도 겪은 것이 없이 머리로만 재주로만 만들어 낼 수는 결코 없는 것이 시다(95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시쓰기뿐 아니라 소설쓰기도 마찬가지이고, 동화나 신문글을 쓸 때에도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아니 글쓰기를 비롯해 집살림을 꾸린다든지 정치를 한다든지 교육운동을 한다든지 환경운동을 한다든지 똑같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든 머리로 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몸으로 합니다. 손을 쓰고 발을 씁니다. 온몸을 움직여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같은 책에 실린 어린이 글을 읽습니다. 1990년에 경기 금광국 5년인 황미소 어린이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고 우리 입장은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 어른이 싫어요. 우리들에게 학원을 몇 개씩이나 보내고, 조금만 잘못해도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잖아요(12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한테 공부만 시키는 어른들 삶은 1990년이나 2010년이나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1980년에도 1970년에도 엇비슷했습니다. 2020년이 다가온대서 나아질 성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온갖 학원에 집어넣는 매무새도 그렇고, 아이들을 두들겨패거나 윽박지르는 모습 또한 그렇습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우리 어른들 삶은 그리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1990년에 스물이었다면 올해에는 마흔이요, 이무렵에 서른이었다면 올해에는 쉰입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며 예순이 된 2010년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씩씩하며 튼튼하고 슬기로운 삶을 일구고 있는지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씩씩하며 튼튼하고 슬기롭기에 돈벌이 하나 때문에 교육잡지 목숨줄을 끊어도 괜찮은지요.

 교육잡지 목숨줄을 끊은 우리교육 출판사는 “여름방학 어린이책 파격! 균일가전!!”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우리교육에서 펴낸 낱권책을 모조리 2000원씩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서울 홍대 앞에서 벌어지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든지 서울 삼성동에서 이루어지는 서울국제도서전이라든지 경기 파주에서 마련하는 북페스티벌 같은 자리는 으레 ‘에누리 책잔치’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싸게 사고판다’고 하지만 좋은 책이라면 알맞춤한 값을 붙여 올바로 사고팔아야 할 텐데, 몸집이 커지는 출판사들은 자꾸 ‘책 팔아 더 많은 돈 벌기’로 쏠립니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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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7 : 좋은 책을 읽기

 좋은 책 한 가지를 놓고 열 가지 다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좋은 책 한 가지를 읽은 느낌을 백 가지 다른 글빛을 살리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좋은 책 한 가지를 장만하여 받아들이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가를 즈믄 가지 꿈으로 삼아 고이 가슴에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책 한 가지가 참으로 좋은 줄 알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이 좋은 삶이어야 합니다. 내 삶이 좋은 삶이려면 나부터 내가 참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자면 내 말과 넋이 좋은 말과 좋은 넋이어야 합니다.

 좋은 말이란 무엇일까요. 좋은 넋이란 어떠할까요. 아마 즈믄 가지 좋은 말이 있을 테고, 즈믄 가지 좋은 넋이 있을 테지요. 서로 똑같은 좋은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언제나 늘 다르게 좋은 말이 있다고 느낍니다. 즈믄 사람한테는 즈믄 가지로 다른 좋은 말이며 좋은 넋이요 좋은 삶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는 대학교가 137군데라나 더 되나 덜 되나 한답니다. 우리 둘레 대학교 백 몇 십 군데를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 다른 아름다운 배움터라기보다 성적표 점수에 따라 줄세우기를 하는 배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을 찾으며 누리고 나누려는 배움터로는 뿌리내리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좋은 말 좋은 넋 좋은 삶 좋은 사람인 가운데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랑을 나눕니다. 좋은 짝꿍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하고 싶으면 차근차근 내 삶과 넋과 말을 좋은 쪽으로 꾸려야 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좋은 짝꿍만을 바랄 수 없습니다.

 나날이 좋은 날씨가 아닌 궂은 날씨인 까닭은 자연이 미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미쳤기 때문에 좋은 날씨가 아닌 궂은 날씨가 찾아듭니다. 다문 한 사람만 좋아서는 날씨가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사람으로 좋은 삶을 일굴 때라야 비로소 좋은 날씨입니다.

 만화책 《유리가면》은 1976년에 1권이 나왔고 2010년 8월에 일본에서 45권이 나옵니다. 2010년 9월까지 45권 한글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곧 한글판이 나오겠지요. 서른네 해 동안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한테는 애를 태우는 작품이라 할 테지만, 이 사랑스럽도록 좋은 만화를 그저 애를 태우며 볼 수는 없습니다. 그냥저냥 귓결로 들은 얘기로 읽는다든지 시간죽이기를 하며 읽는다든지 한다면 《유리가면》이라는 만화책에 서린 멋이나 맛을 내 멋이나 맛으로 삭일 수 없어요. 섣불리 집어들 《유리가면》이어서는 안 됩니다. 둘레에서 첫손가락으로 꼽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든다 하여도 나 스스로 내 삶이 좋은 길을 접어들며 좋은 꿈을 찾아나서는 매무새가 되기 앞서까지는 함부로 장만하지 말아야 할 《유리가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하여도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는데, 무슨 좋은 열매를 받아먹으며 좋은 손길을 좋은 이웃을 느끼어 뻗을 수 있을는지요. ‘명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은 아주 많은 사람이 본 작품이 아니랍니다. (4343.9.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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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6 : 빗소리를 못 담는 책

 꽤 잘나간다고 하는 사진쟁이 ㄱ님이 쓴 책 하나를 읽다가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메스꺼웠으나, 이내 씁쓸했고, 곧이어 슬펐습니다. 이토록 모자라고 못난 생각과 삶으로 사진찍기를 돈벌이로 삼을 뿐 아니라, 당신 이름값을 드높이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책으로 마주하자니, 더할 나위 없이 안쓰럽습니다. 꽤 잘나간다는 사진쟁이 ㄱ님은 가장 비싸다 하는 사진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사진을 이야기해야 할 책에서 당신이 갖춘 몇 천만 원 몇 억에 이르는 사진기 얘기를 불쑥불쑥 집어넣습니다. 부산을 사랑한다 하고 스스로 부산 토박이라 밝히지만, 정작 부산 옥상마을을 한 번조차 가 보지 않았으며 옥상마을 같은 데는 형편없이 지저분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까지 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참 잘나갑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내놓은 책은 퍽 잘 팔립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찍은 사진은 꽤 멋들어진 작품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세 박자 골고루 갖추어 누리’는 삶이니까 더없이 아름답거나 훌륭한 나날일까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이름과 돈과 힘 세 박자를 신나게 누리는 요즈음 사진쟁이 보람을 마음껏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 이야기를 꺼냈으나, 사진쟁이 ㄱ님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이든 글쟁이이든 그림쟁이든 ‘돈·이름·힘’이라는 세 박자에서 홀가분한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사랑·믿음·나눔’이라는 세 박자이든 ‘착함·참됨·고움’이라는 세 박자이든 스스럼없이 어루만지거나 얼싸안는 따스한 사람은 참 드뭅니다.

 큰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에 발을 디딘 다음 서울로 들어섰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 구석구석을 사납게 할퀴고 나서 서울을 모질게 할퀴었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제 살림살이인데, 모처럼 인천 어느 분 댁에 마실을 와서 큰 비바람 이야기를 함께 바라봅니다. 방송국에서는 ‘서울 소식 먼저 오래’ 보여준 다음 ‘서울보다 훨씬 크게 생채기가 났다는 인천 소식을 나중에 짤막히’ 보여줍니다. 그래요, 아직 인천에는 방송국 지사이든 지국이든 없습니다.

 비가 오며 빗소리를 냅니다. 바람이 불며 바람소리를 냅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글쟁이는 글에 빗소리를 담습니다. 바람이 부니까 그림쟁이는 그림에 바람소리를 싣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에 사진쟁이는 사진에 비바람을 찍어 넣습니다.

 다만, 한국땅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 가운데 빗소리를 빗소리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으며 글을 일구는 분은 몇 되지 않다고 느껴요. 그림쟁이나 사진쟁이 또한 어슷비슷합니다. 나라안에서 잘 팔린다는 책은 있으나, 세계명작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은 잘 안 보입니다. 나라안에서 이름나고 돈벌이 잘하는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수두룩하지만, 세계명작으로 우러를 아름다운 그림이나 사진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합니다. 부디,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비내음와 비무늬와 비그림자와 비빛깔과 빗결을 글과 그림과 사진에 수수하고 투박하며 꾸밈없이 그려 낼 줄 아는 사진쟁이 ㄱ님으로 거듭나고 글쟁이 ㄱ님으로 태어나며 그림쟁이 ㄱ님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부처님 이름으로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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