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34 : 독후감과 느낌글과 서평과 책이야기

 제 깜냥껏 즐겁게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씁니다. 제가 쓰는 느낌글은 저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 하나가 제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를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숙제처럼 하는 독후감이 아니요, 어딘가에 내놓아 글삯을 타내려는 서평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책 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야기입니다.

 저는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인 글을 제 누리집에 꾸준히 올려놓습니다.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쓴 지 열예닐곱 해가 지났으니 그동안 글을 꽤 많이 썼다 할 만합니다. 제가 쓴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읽으며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고, 저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저는 제 삶으로 받아들인 책 하나를 놓고 글을 씁니다. 책 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듬날은 어느 자리로 옮아 가는가를 곱씹으며 글을 씁니다. 책 하나를 발판 삼아 오늘 이곳에서 이듬날 저곳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헤아리며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느낌은 모두 다릅니다. 책을 읽으며 받아들일 느낌은 모두 다를밖에 없기에 책을 읽고 나서 쓸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는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빌어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책을 읽자니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돈이 아깝고, 책을 읽기는 읽었으나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면서,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요모조모 간추려 독후감 숙제를 내는 듯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담아 갑니다’ 같은 한두 마디를 남깁니다. 이런 말마디를 남기는 아이들은 ‘고맙게 정보나 자료를 얻으니’까 인사말을 남긴다고 생각할 텐데, 차라리 이런 인사말이란 남기지 않고 조용히 베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베끼려면 조용히 베끼고, 드러내어 인사말을 남기고자 한다면 독후감 숙제가 아닌 아이들 깜냥껏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쓸 노릇이라고 봅니다.

 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에 아이들이 남긴 인사말 댓글을 읽다가 울컥 하고 치밀어오릅니다.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느껴 한 마디 달아 놓습니다. “독후감 숙제를 하려면 책을 읽지 마셔요. 책이 아깝습니다.”

 지난주에 살짝 인천으로 마실을 가며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아벨서점〉에 들렀습니다. 아이와 아이 어머니와 저 셋이 다 다른 책시렁에서 책을 살피고 있자니, 키가 어머니보다 큰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랑 들어와서는 《삼대》와 《운현궁의 봄》 같은 소설책을 찾습니다. 아니, 찾지 않고 책방 일꾼한테 “이런 책 있나요?” 하고 찾아 달라 말합니다. 스스로 찾지 않고 찾아 달라 이야기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제대로 말하자면 ‘찾아보기 도움이’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책을 찾으려는 사람은 책방이나 도서관마다 책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서 몸소 찾아야 합니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이 찾아야지 책을 파는 사람이 찾을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내가 바라는 책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책값을 치르고 책을 가방에 챙겨 책장을 손수 넘겨야 합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는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삭여서 책을 읽은 사람 스스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독후감·서평·신간소개·북리뷰’ 따위 말이 붙는 글은 책글이 아니요 느낌글이나 책이야기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글조차 아닙니다. (4343.8.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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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2 : 헌책방에 내놓지 못한 책

 선물받은 그림책 가운데 굳이 우리 집에 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책을 챙겨 헌책방에 가져다줄 생각이었습니다. 여태까지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다른 분들한테 책을 선물로 드릴 때에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헌책방에 내놓아 주십사 하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한테 선물로 책을 주시는 분들 마음은 고맙게 받고 책은 헌책방에 갖다주곤 합니다. 이제는 우리한테 책을 선물로 주시는 분들이 먼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라면 헌책방에 내놓으셔도 돼요.” 하고 말씀합니다.

 헌책방으로 챙겨 가기 앞서 아이 어머니보고 한 번 더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그림책들을 가만히 넘겨 보더니 이 책은 이런 까닭 때문에 더 보고 싶고, 저 책은 저런 까닭 때문에 그냥 두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바깥마실을 하며 챙기려던 ‘헌책방에 내놓으려던 책’은 한 권도 없고 맙니다. 헌책방으로 가져갈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침을 먹기 앞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 어머니 말이 아니어도 저부터 아이 어머니처럼 생각합니다. 처음 선물을 받을 때에는 ‘참, 이 출판사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그림책을 버젓이 내놓았을까? 게다가 이 그림책은 이렇게 형편없이 그렸는데 무슨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십만 권이나 팔린다고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옳지 못한 그림에 재주만 잔뜩 부린 그림인데 여느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을 ‘귀엽다’고 여기거나 ‘재미있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참 잘못 그리거나 엉터리로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이 잘못 그린 그림을 보면서도 재미있어 할 수 있습니다. 엉성궂게 쓴 글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마음이 뭉클하거나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 수 있으니까요. 맞춤법이 틀리거나 띄어쓰기가 어긋난 글이라 하더라도 줄거리가 아름답다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맞아들일 수 있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들여다보면서 ‘엉성궂은 그림’이 담긴 책들이 매우 딱하고 불쌍하다가는 이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곧이어 이와 같은 그림들일수록 더 따숩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토닥토닥 어루만져야 하지 않느냐 싶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예부터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습니다. 참말 고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주지 않고 미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줍니다. 고운 아이는 떡을 굳이 더 주지 않아도 고운 결을 착하고 참되게 이어갑니다. 미운 아이는 떡 하나 더 낼름 받아먹어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더 미운 짓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부터 미운 아이를 더 귀여워 하거나 아끼면서 보듬어 왔습니다. 굳이 어떤 종교라든지 믿음이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뒷간에서 볼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힙니다. 빨래한 아이 옷을 햇볕 따사로운 마당가에 널어 놓습니다.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지면서 아이 옷가지를 빨고 짤 때에 힘이 더 듭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어떤 책을 어떤 마음결로 바라보며 어떤 마음밭을 일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3.8.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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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1 :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지키는 책

 고양이한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먼저, 들고양이. 먼 옛날에는 그냥 고양이였을 테지만, 처음부터 들에서 살던 고양이한테는 들고양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습니다. 다음으로 산고양이(멧고양이). 고양이는 너른 들판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산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 다음으로 집에서 지낸다 해서 집고양이. 고양이 가운데에는 사람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녀석이 있는 한편, 사람 손에 길들여지며 사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무리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면서 도둑고양이 소리를 듣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도시가 이루어지면서 길고양이와 골목고양이라는 이름이 새로 태어납니다. 우리 둘레에 이렇게 여러 갈래 이름을 받는 짐승은 드문데, 고양이는 저희가 지내는 곳에 따라 새 이름이 붙습니다. 이를테면, ‘바닷사람-바닷고양이’라든지 ‘섬사람-섬고양이’라든지 ‘뱃사람-뱃고양이’ 같은 이름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제 삶터를 찾아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나오는 이야기책 《미노스》(바람의아이들,2004)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안니 M.G.슈미트 님은 네덜란드사람이고, 네덜란드에서는 고양이들을 무척 사랑하며 아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고양이를 아끼거나 사랑하지는 않으며, 겉으로는 모든 짐승과 목숨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뒤로는 제 돈벌이와 밥그릇을 붙잡느라 애쓰는 사람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미노스》라는 작품으로 들려줍니다. 이야기책 《미노스》에 나오는 지역신문 기자인 주인공은 어느 날 다짐을 합니다. “맞아요. 증거가 있든 없든 신경 안 쓸래요. 증인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요!” 하면서,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고양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참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신문에 싣습니다. 그런 다음 아주 마땅하게도 주인공인 기자는 신문사에서 잘리고, 달삯을 내며 지내던 집에서 쫓겨납니다. 주인공인 지역신문 기자는 ‘참 이야기’를 기사로 쓰면 당신을 아끼거나 돌보던 사람들마저 당신한테 등을 돌릴 줄 뻔히 알았고, 모두들 당신한테 손가락질을 할는지 모르지만 ‘써야 할 글’을 끝끝내 씁니다. 왜냐하면, 당신한테는 당신 먹고살 일자리와 잠자리를 얻는 일도 크지만, 당신 마음을 착하고 참되며 곱게 건사하는 일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데 데레사 님 묵상기도를 엮은 《사랑은 철따라 열매를 맺나니》(민음사,1995)를 읽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돕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며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을 체험해야 합니다(173쪽).”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가난한 이를 돕자면 스스로 가난해야 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고서는 가난을 알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서 가난한 이를 돕겠다며 스스로 가난하게 살며 가난한 삶을 지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두들 부자로서 도울 뿐이요 부자로서 자선과 기부만을 합니다. 가난을 다루는 신문기자 가운데 가난한 신문사에서 가난한 기자로 일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난을 밝히는 책을 내는 출판사 가운데 참말 가난한 살림으로 가난하게 책을 내는 곳은 얼마나 될까요.

 사랑을 하는 사람만 사랑을 말하거나 쓸 수 있고, 평화로이 사는 사람만 평화를 일구거나 지킬 수 있습니다. (4343.7.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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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6 : 아이와 놀며 읽는 책

 애 아빠가 글 몇 줄 끄적이고 싶으면 새벽 서너 시쯤에 조용히 일어나 옆방에서 소리를 죽이며 자판을 또닥거려야 합니다. 오늘은 다섯 시에 느즈막히 일어나 살며시 글을 씁니다. 두 식구 고요히 잠든 나절에라야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어 글쪼가리 한둘 가까스로 일굽니다. 새벽에 물 한 모금 마시며 글을 쓰고 있으면 한 시간쯤 뒤 배에서 똥을 내보내야겠다는 꼬르르 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제 책 하나 들고 뒷간으로 갑니다. 다문 몇 쪽이라도 책을 읽습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2007)이라는 책을 쥡니다. 글과 사진이 참으로 좋은 책이지만 책이름만큼은 영 어설픕니다. 이 어설픈 책이름 때문에 지난 세 해 동안 이 책을 안 거들떠보고 있었습니다. 글과 사진을 일군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일본에서 당신 책을 낼 적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따위 낯부끄러운 꾸밈말을 붙이지 않았을 텐데, 왜 이런 곱고 맑은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책마을 일꾼들은 낯부끄러운 꾸밈말을 낯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버젓이 달아 놓고 있을까요. 들짐승과 멧짐승과 날짐승을 돌보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는 그저 ‘훗카이도 동물병원’이요 ‘북쪽나라 짐승쉼터’였을 텐데요.

 “훗카이도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활이 바빠지자 덩달아 차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물도 늘어났고요(17쪽).”라는 대목을 읽다가, 이 사진이야기를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읽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 아빠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책을 읽어 주면서 이런 대목에서는 요모조모 살을 붙일 테지요. “참말 그렇지? 빠방이가 너무 많아 우리는 골목을 느긋하게 걷기 힘들잖아. 사람들 모두 빠방이를 안 타고 걸어다니면 조용하고 깨끗하며 서로서로 좋을 텐데.”

 일본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유미리 님이 쓴 《생명》(문학사상사,2000)이라는 책을 어제 막 장만해서 조금씩 읽습니다. 깊이 사랑하던 사람이 유미리 님 몸에서 새 목숨이 자라나는 줄 알면서 등을 돌리며 시리디시린 생채기를 남겼다는데, 유미리 님은 당신을 저버린 사람이 남긴 씨앗으로 자란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고이 안고 있다가 모진 아픔을 겪으며 낳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슬픈 집식구한테 둘러싸여 죽음만 생각하던 유미리 님이 죽음이 아닌 삶이라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유미리 님은 조산원에서 배앓이를 하면서 “나는 늘 나를 보호해 줄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평생 지켜 주겠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었다. 하지만 믿었기에 배신당했다. 그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보호받고 싶은 나 자신의 소원에 배신당한 것이었다(218쪽).” 하고 생각합니다. 배앓이가 그지없이 모질어 진통제와 촉진제를 놓아 달라고 빌지만, 조산원 일꾼은 ‘조산원에서는 그런 주사 안 쓴다’고 대꾸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애 엄마한테 주사를 함부로 안 놓습니다.

 배앓이를 하는 유미리 님은 그동안 당신이 몸속 목숨을 제대로 돌보거나 헤아리지 못했음을 미안해 하며 얼른 새누리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힘씁니다. 사랑에다가 보금자리까지 잃었으나 유미리 님은 새 목숨을 맞이하며 새 삶을 찾습니다. 그러면, 유미리 님을 등진 남자는 짝꿍과 아이를 버리며 무슨 새 삶을 찾았을까요. 유미리 님만이 아이랑 놀며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43.6.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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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5 : 길을 거닐며 새기는 책

 스물석 달째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아이가 낮잠을 다문 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자 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물석 달 동안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점을 먹고 살살 졸릴 무렵 그예 잠들어 주면 낮에 한결 기운차고 신나게 놀 수 있으며 밤에 깊이 잠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밤에 깊이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금 싱그러우며 기운차게 놀 수 있고, 하루하루 이런 나날을 되풀이하면서 튼튼하고 씩씩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습니다.

 우리 딸아이는 도무지 낮잠을 자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밤잠이 길지 않습니다. 새벽 여섯 시 무렵에 어김없이 깨어나려 하는데, 요사이 하루하루 낮이 길어지고 새벽이 일찍 찾아오니 벌써 다섯 시 무렵부터 깰려고 옴쭐옴쭐합니다. 바깥이 하얗게 밝아 오면 저도 잠에서 깨려고 부시럭거립니다. 애 아빠로서는 아이가 잠들어 있는 새벽녘이 조용히 일할 애틋한 때이기 때문에 으레 새벽 너덧 시에 홀로 살며시 일어나 글을 씁니다. 그런데 글조각 하나 겨우 끄적일 무렵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아빠!” 하고 부르며 찾으면 “아이구!”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는 어김없이 낮잠을 건너뜁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 아이를 데리고 바깥마실을 나옵니다. 졸릴락 말락 하니까 한 시간쯤 걸리면 되겠지 생각하는데, 아이는 아빠 품에만 안기려 하고 걷지를 않습니다. 이 녀석 졸리기는 무척 졸린가 보네. 그러나 잠들지도 않습니다. 자지도 않고 걷지도 않고. 이렇게 두 시간 반쯤 낑낑거리며 땀 뻘뻘 흘리는 골목마실을 하노라니 비로소 곯아떨어집니다. 아이가 곯아떨어지고서야 집으로 가자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빠도 아빠 일을 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힘들며 더딥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채 가까스로 집에 닿습니다. 애 아빠는 더없이 고단하여 찬물로 한 차례 씻은 다음 아이 옆에서 잠들지도 못하고 딱히 아빠 일을 하지도 못합니다. 멍하니 앉아 책조차 못 펼칩니다.

 며칠 앞서 우리 친형이 산티아고로 떠났습니다. 쉰 날 남짓을 다니는 나들이길이라고 하며 떠났습니다. 떠나는 길에 우리 식구한테 살림돈을 두둑히 보태 주었습니다. 한 달 반치 달삯에 이르는 돈을 주었습니다. 요사이 ‘산티아고 순례자’가 많이 늘었고 ‘산티아고 순례기’ 책이 꽤 많이 나온다는데, 우리 형은 어떤 마음과 뜻으로 먼 나들이길을 떠나는지 궁금합니다. 먼 나라에서 낯과 물이 선 사람들 사이를 뚜벅뚜벅 거닐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먹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형은 형한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으며, 형한테 주어진 길을 어떤 매무새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니 형으로서는 곧 마흔 줄 나이에 접어듭니다.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든지 《중년 이후》라는 책을 쓴 소노 아야코 님은 나이가 젊을 때에는 젊은 대로 좋고, 나이가 들 때에는 나이가 드는 대로 좋다고 밝힙니다. “사람도 물건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든가 사라져 버릴 운명이다. 그러한 존재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소중한 의무인 것이다(92쪽)” 하고 《중년 이후》에서 밝힙니다. 먼길을 땀흘려 걷노라면 형은 형대로 저는 저대로 우리 삶을 알뜰히 사랑할 몸짓 하나 익힐 수 있겠지요. (4343.6.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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