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75 : 좋은 책 하나를 읽으면


 세상을 꿰뚫는 눈을 일러 주는 책은 꾸준하게 나옵니다.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드는 눈길을 보듬어 주는 책은 지며리 나옵니다.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도록 이끄는 책은 한결같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책들이 널리 팔리거나 읽히는 일은 뜻밖에도 드뭅니다. 재미가 있어서 많이 팔리는 책, 다들 많이 읽는다 하여 제법 팔리는 책은 있으나, 담긴 줄거리나 알맹이가 참으로 훌륭하기에 골고루 읽히며 우리 마음밭을 북돋우게 되는 책은 생각 밖으로 얼마 안 됩니다.

 누구나 《태백산맥》과 《토지》와 《삼국지》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바탕지식이 없어도 어느 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탕지식이 없는 만큼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없고, 바탕지식이 얕은 만큼 한결 애틋하게 받아먹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저마다 제 그릇이 있어서 제 깜냥껏 좋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다만, 스스로 바탕지식을 키우지 않거나 마음그릇을 넓히지 않고서는 ‘책으로 얻는 재미’와 ‘책으로 나누는 즐거움’이 그 한때로 그치게 될 뿐, 내 이웃과 둘레로 퍼져나가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도록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은 분이라면 시나브로 《제7의 인간》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싶고, 《제7의 인간》 같은 책을 읽은 분은 으레 《일본군 군대위안부》 같은 책으로 손길이 뻗치리라 봅니다.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손길이 뻗쳤다면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칠 테며,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친다면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칩니다.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뻗친 손길은 《빅토르 하라》 같은 책으로도 뻗치고, 또다시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로도 뻗치며, 《골목 안 풍경》이나 《연변으로 간 아이들》로도 뻗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 하나 읽은 손길이 그 책 하나로 그치는 일이 없으며, 이러한 손길은 책을 살피는 손길로만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 모두를 둘러싼 우리 삶터를 헤아리는 손길로도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만 읽는 손길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도 《몽실 언니》나 《초가집이 있던 마을》로 뻗치지 못합니다. 뒤이어 《산골마을 아이들》과 《탄광마을 아이들》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지식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삶(실천)을 말하는 책임을 보지 못합니다. 한꺼번에 뒤엎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부터 작은 한 가지부터 갈아엎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됨을 말하는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혼자 나아가지 말고 함께 나아가자고 하는 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엊그제, 《바다로 간 플라스틱》을 덮으면서, 이 작은 책에 담긴 넋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곱씹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한편으로, 아무리 이 작은 책을 읽어내 주더라도 우리 생각과 매무새와 삶 모두 달라지거나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 책이 곧잘 팔리게 되더라도 무슨 뜻이 있을까 싶더군요. 책은 읽으라고 있으며, 책은 읽어서 좋을 수 있지만, 돈에 눈멀어 만들어지는 책이 있고, 책만 읽어 머리통만 무거워지는 얼간이는 조금도 좋지 않습니다. (4342.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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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4 : 기자와 작가들이 사는 집


 《나무 위 나의 인생》(눌와,2002)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높이 자란 나무를 타면’서 나무 한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입니다. 나뭇잎 한 장을 하루이틀이 아닌 열 해 남짓 지켜보기도 하면서 나무가 어떻게 살고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무엇이며 나무는 둘레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봅니다. 이이는 나무타기를 하면서 ‘어느 나뭇잎은 열다섯 해 동안 매달린 채 살아남기도 한다’고 밝혀냅니다. 열다섯 해 동안 그 나뭇잎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다섯 해 넘는 세월을 나무 살피기에 바친 까닭에, ‘나무타기나 나뭇잎 살피기를 몸소 하지 않고 논문을 쓰던 과학자’들은 자기 논문을 버리거나 고치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을 쓴 분은 호주에서 농장을 꾸리는 남자와 혼인을 하며 여러 해 함께 사는 동안, 자기가 얼마나 섣불리 혼인을 했고 호주라는 데에서 들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로 사는 가운데 집살림 꾸리는 일은 얼마만큼 이루기 어려울 뿐더러 눈총과 구박을 받아야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혼인을 않고 혼자 살며 과학자 길을 걸었다면 연구는 더 깊어졌을 테고 개인 아픔도 없었을 테지만, 혼인을 해 보았기에 ‘여자 한 사람’이 두 갈래 길을 함께 걷는 고단함을 뼛속 깊숙하게 새겨 놓고 뒷사람들을 걱정합니다.

 서울 용산에서 ‘주민’이 아닌 ‘철거민’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쫓겨날 수 없기”에 공무원(재개발 정책 밀어붙이는 이들)한테 맞서다가 그만 목숨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동네 골목집에 달삯을 내며 깃들어 사는 ‘주민’이면서, 어느 날 ‘철거민’ 신세가 되어야 할지 모르는 삶입니다. 제가 깃든 집이 있는 동네를 비롯하여, 인천이라는 곳에서는 ‘지도에 아파트로 그려져 있지 않은 데’는 거의 모조리 ‘아파트로 새로 짓는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라는 데에 들어가 살 돈이 없습니다. 지금 살림집도 보증금과 달삯이 버겁습니다만, 돈이 넉넉해지더라도 아파트 아닌 골목집에서 땅에 등을 누인 채 빨래는 햇볕에 말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천을 비롯한 한국땅 어디에서든, 아파트 아닌 집에서 사는 사람은 ‘주민’이 아닌 ‘재개발지역 대상자’나 ‘철거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한테 ‘도시 서민’이나 ‘도시 빈곤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우리든 중산층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며, ‘주민’이고, ‘시민’이자, ‘국민’일 텐데.

 죽은 ‘철거민’이 아닌 ‘용산에 살던 동네사람’을 두고 “불법폭력시위”를 했으니 “법을 어겼다”는 말이 곧잘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법에는 ‘재개발을 하도록 하는 법’과 함께 ‘사람이 자기 살고픈 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 권리를 지키도록 하는 법’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저 이런 법(헌법)은 건설법, 경찰법, 집시법, 특별법, 국가보안법 …… 따위에 허구헌날 짓밟힐 뿐이긴 하나.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 골목집에는 국회의원이니 의사니 판사니 변호사니 경찰이니 기자니 안 삽니다. 공무원이니 교사니 작가니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쟁이도 그림쟁이도 만화쟁이도 글쟁이도, 요새는 가난한 골목집에는 안 삽니다. (4342.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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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2 : 허영만 씨가 《퇴색공간》을 그릴 자유

 겨울철에는 낮 한 시와 두 시 사이에 어김없이 빨래를 합니다. 밤과 새벽에 한 차례 더 빨래를 하는데, 영하를 오르내리는 우리 집에서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한낮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이맘때 누군가 만나자고 한다든가 전화라도 한 통 걸려오면 고단합니다. 마침 가장 따뜻한 때라, 아기를 씻기며 남은 물로 빨래를 하는데, 씻기랴 빨래하랴 전화통 붙잡으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렇게 애먹지 말고, 종이기저귀 사다 쓰지’ 하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단함이 종이기저귀 사다 쓴다고 풀리겠습니까. 외려 종이기저귀는 우리 삶뿐 아니라, 자라날 아기한테도 나쁘게 영향을 끼칠 텐데요. 빨래가 따사로운 햇볕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듯, 아기도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을 즐기면서 무럭무럭 크기를 바랍니다.

 한창 기저귀를 빨면서 오늘 저녁은 무얼 마련하고, 저녁까지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지난달부터 붙잡고 있는 만화책 하나에 생각이 미칩니다. 서울 숙대입구역 둘레에 있는 헌책방에서 찾아낸 한 권짜리 대본소판 만화인데, 그린이는 허영만 님이고, 책이름은 《퇴색공간》입니다. 나온해는 1990년입니다. 만화쟁이 허영만 님은 잡지 《만화광장》에 1987년 6월부터 〈오! 한강〉을 이어실었고, 나중에 이 작품을 세 권짜리 낱권책으로 묶어서 1988년에 펴냅니다. 그런 다음 《퇴색공간》을 그린 셈인데, 《오! 한강》 세 권은 김세영 님이 글을 넣었으나, 《퇴색공간》은 글과 그림 모두 허영만 님 혼자 해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시대를 읽은 훌륭한 만화작품’으로 《오! 한강》을 손꼽기도 하고, 대학생들한테는 필독서 못지않았다는 대접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참말 이와 같은 소리를 들을 만한가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작품완성도’나 ‘작품 재미’로는 뛰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은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고 있을까요.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은 배후조종자가 있고, 이들은 자본주의를 뒤엎으려는 폭동을 꾀하면서 우리 경제를 무너뜨릴 뿐’이라는 ‘서민들 생각과 목소리’일까요? 그린이 자유에 따라서 줄거리를 엮기 나름일 테지만, 《오! 한강》이며, 《퇴색공간》이며, 허영만 님이 바라보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보여주고프다면 보여줄 노릇이지만, 작품 하나가 독자들한테 받아들여지는 우리 얼거리를 돌아볼 때에는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대학생이라면 으레 데모나 하고 있고, 이 데모 때문에 ‘착한 시민들’이 고달프다며, “좀 조용히 살자! 조용히! 누가 옳고 누가 나쁘든 제말 그만둬!(24쪽)” 하는 대사와 그림을 큼직하게 집어넣을 때, 이 나라 어린이와 젊은이는 이 만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좌경세력에 의해서 노조가 결성되면 회사가 망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158쪽)” 같은 대사는 우리 삶터를 어떻게 보여주게 될까요.

 자유와 책임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허영만 님한테 ‘노동운동 = 빨갱이’라 말할 권리가 있되, 이런 만화를 그린 허영만 님을 비판할 권리 또한 누구한테나 있다는 말 한 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4342.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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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67 : 한글날에 읽는 책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몇 가지 글을 써 두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두 꼭지 또 썼고, 한글날을 마친 뒤에도 한두 가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늘 쓰고 있는 글이며 말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는데, 한글날 아닌 때에는 우리 글과 말을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먹히지, 들리지, 건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닌 ‘논술’ 이야기는 잘 먹힙니다. 잘 들린다고 합니다. 잘 건네집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하는 어느 만화쟁이 아저씨가 제가 쓴 글을 그림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우리 말을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만화책’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여러 해 앞서부터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해 동안 어떤 글을 묶으면 좋을까를 살피면서 글뭉치를 모아 보았습니다.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소 출판사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아보는 출판사마다, ‘왜 그 사람하고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학습지 출판사로서는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이지 ‘논술’이 아니며, ‘삶을 담는 말을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아름다워지기’를 말하지 ‘시험성적 높이며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하는 논술 이야기’ 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 맞추도록 공부 시키기’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 한글날을 앞두고 세상에 쏟아지는 책을 보노라면, 올해도 지난해하고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면 ‘깨끗한 토박이말’만 다뤄야 하는 줄, ‘잘못 쓰는 말을 바로잡기’만 해야 하는 줄, ‘틀린 맞춤법 추스르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는 책만 보입니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수험생들한테 팔아먹는 ‘논술 장사’에서 홀가분한 책은 열 손가락 꼽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 꼭 돈이 되어야만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꼭 논술 장사로만 돈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말과 글 이야기로도 넉넉히 돈벌이를 할 구멍을 살필 수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도와주는 논술책이 아니라, 삼류대학교에 들어가건 아예 대학교는 꿈도 못 꾼다고 하건 사람이 사람다운 됨됨이를 추스르고 다독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글쓰기책을 엮어내어 온 세상 두루두루 사랑을 펼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찬물로 머리 감고 낯 씻고 손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뒤 하루를 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한 해 가운데 고작 하루뿐인 한글날에조차 우리가 물과 밥처럼 쓰고 있는 말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지만, 이 말과 글에 우리 얼과 넋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한결 넉넉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 믿음을 펼쳐 보이고자. (4341.10.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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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61 : 아기 돌보기와 책읽기



 지난 8월 16일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배앓이를 겪은 다음 낳았습니다. 집에서 낳으려고 했으나, 새벽녘 쏟아진 비 때문에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며 옆지기 몸 또한 나빠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옆지기를 옮겨서 10분 만에 낳았습니다. 이날 뒤로 열흘이 훌쩍 지나고 두 주가 가까워 옵니다. 머잖아 세이레를 맞이하면서, 바깥사람한테도 아기를 내보이면서 축하를 받고 백일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낳이를 하려고 집을 꾸미고 이래저래 알아보고 배우는 동안, 또 아기낳이를 한다며 배앓이하는 옆지기를 돌보는 동안, 그리고 아이를 낳고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동안, ‘여태껏 하루도 손에서 멀리해 본 적이 없던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멀리한다기보다 손에 들 겨를이 없습니다. 기저귀 갈랴, 기저귀 빨랴,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림질하랴, 다시 기저귀 갈랴, 또 기저귀 빨랴, 또다시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리랴.

 그러나 책 한 권 손에 쥘 틈이 없으면서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습니다.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들뜹니다. 즐겁습니다.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에도 손에 쥘 만한 책이 무엇이냐?’를 되새겨 봅니다. 그냥저냥 읽던 책은 이렇게 고달프고 바쁠 때에는 아예 젖혀 놓게 됩니다. 그지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손에 물기 마를 새 없는 요즈음 같은 때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으로 살림을 잠깐 옮겨서 옆지기와 아이를 돌봅니다. 그래서 저 혼자 이틀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인천으로 돌아와서 볼일을 보고 저녁에 부리나케 일산으로 갑니다. 고단함과 졸림이 겹치며 몸이 축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가는 동안 버스나 전철에서나마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억지로 눈가를 비비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다른 책은 거의 읽을 마음이 나지 않고 딱 두 가지,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책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읽습니다. 요사이 나온 다른 책들도 집어들어 보지만 이내 하품이 나와서 다시 덮어놓습니다. 별 서넛을 붙일 만한 책은 ‘애 아버지’ 마음속 깊은 데까지 와닿지 못합니다. 별 다섯을 붙이고 하나를 덤으로 더 얹어 주고픈 책이어야 비로소 ‘애 아버지’ 눈을 번쩍 뜨게 해 줍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애 아버지’보다 몸이며 마음이 훨씬 지쳐 있는 ‘애 어머니’는 별 다섯에 덤으로 하나 얹어 줄 책조차 펼치기 힘드리라 봅니다. 별 다섯에 별 다섯을 붙일 책마저 넘기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배앓이를 하고 젖먹이기를 하는 동안, 그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못하거나 않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애 어머니’ 마음밭에 차곡차곡 심기고 자라지 않겠느냐 싶어요. 책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 두 사람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푸근한 이맘때입니다. (4341.8.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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