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개인 듯 싶더니 오지게 쏟아붓는 장대비가 뒤죽박죽 되풀이되는 요즈음. 어제도 마찬가지로 지붕을 뚫을 듯 퍼붓다가 확 개더니, 다시 이슬비가 뿌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찌뿌둥했는데, 아홉 시를 넘기고 열 시가 되니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뭉게구름과 새털구름까지 보입니다. 오늘은 괜찮을까? 걱정스럽지만 오래도록 이불과 담요를 말리지 못했기에 하나씩 꺼내어 탁탁 턴 뒤 담장에 걸쳐서 말립니다.

 저녁이 되어 하루일을 마치고 잠들 무렵이면 방온도는 28도에서 더 떨어지지 않아 땀이 흐르거나 끈적끈적. 지금이 여름이라 그렇다지만, 무더운 여름도 바람이 시원한 여름도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창문을 깰 듯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이고, 개고 흐리기가 되풀이되는, 어쩌면 벌써 인천땅까지 아열대 날씨로 바뀌어 버린지도.

 날씨를 보는 우리들은 참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예부터 이어온 날씨가 아니라 도시 문명을 듬뿍듬뿍 쓰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바꾸고 만 날씨입니다. 계급사회가 수백 수천 해 이어오면서 일자리와 차림새와 돈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 깊이 뿌리내리고 말아 뽑아내기 어렵게 되었듯이, 일제강점기 서른여섯 해를 거치며 우리 사회와 삶 구석구석 얄궂은 찌꺼기가 속속들이 배었듯이, 독재정권이 쉰 해 가까이 나라를 옥죄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이 병들거나 뒤틀려 버렸듯이, 지금 우리는 또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터와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흔들면서 흔드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땅덩이를 우리 살갗으로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네, 저는 저한테 좋은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요?” “제 마음에 드는 책이 좋은 책이지요. 제가 읽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요.”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제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제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살필 수 있게 해 주는 일입니다.”

 새책방 나들이를 하노라면, 잔뜩 쌓아 놓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코너’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구나 싶고, 갈래에 따라 나눈 칸 책은 손길을 거의 못 타지 싶어요. ‘많이 읽히는 책’이냐 아니냐가 책을 고르는 잣대처럼 되었다고 느낍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에도, 사람들이 흔히 찾는 책은 ‘좀더 알려진 책’이거나 ‘새책으로 사자니 돈이 아쉬운 책’이기 일쑤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자기 손이나 옷에 책먼지가 묻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책더미를 하나하나 살피고 책시렁을 헤집는 사람이 드뭅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사는 동네에 헌책방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지 않으며(새책방도 마찬가지), 어쩌다가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헌책방(또는 작은 동네책방)에 무슨 볼 만한 책이 있어?’ 하면서, 들어가 구경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책을 찾기에 그럴까요. 우리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좋기에 그럴까요. 지난주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사서 읽고 있습니다. (4340.8.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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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책으로 보는 눈 14 : 노래방에 없는 노래

 그제, 아내와 노래방에 가서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르고픈 노래는 목록에 없더군요. 이를테면 김현식 님 노래 가운데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이나 〈어화둥둥 내 사랑〉이나 〈할렐루야〉는 없습니다. 정태춘 님 노래에서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의 죽음〉이나 〈버섯구름의 노래〉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중가요처럼 되어 버린 노래마을 〈나이 서른에 우린〉 같은 노래도 노래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안치환 님 노래 가운데 〈수풀을 헤치며〉나 〈당당하게〉, 또는 〈저 창살에 햇살이〉는 있어도, 〈고향집에서〉나 〈시인과 소년〉이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없습니다. 이지연 님 노래에서 〈바람아 멈추어 다오〉쯤은 있어도 〈내일이 밝아올 텐데〉나 〈차가운 미소만이〉는 없어요. 언니네이발관 노래는 제법 많이 올라와 있으나 〈동경〉이나 〈쥐는 너야〉나 〈로랜드 고릴라〉라든지 〈미움의 계절〉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래꾼 이름에 따라 찾아보기를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아주 많이 사랑받던 노래꾼이 아니고서는 그이 ‘인기노래’ 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정숙 님은 〈그 사람이 울고 있어요〉 하나를, 장덕 님은 〈님 떠난 후〉와 두어 가지를, 우순실 님은 〈잃어버린 우산〉에 두 가지가 더 올라와 있을 뿐이네요.

 그러고 보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 있는 대중노래는 사람들 귀에 익숙한 노래나 널리 불리던 노래로구나 싶습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가 이 나라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시 작품이 되고, 교과서에 작품을 싣는 시인쯤 되어야 비로소 팔릴 만한 시인 대접을 받습니다. 고등학교 문학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아이들이, 신경림 시인 이름쯤은 알아도 신경림 시인 시집 하나 사서 읽을 틈이 있을까요. 조태일이나 정희성, 고정희나 최승자, 김해화나 백무산, 조혜영이나 권태응을 알 수 있을는지. 신동엽 하면 〈껍데기는 가라〉는 알 테지만 〈산문시 1〉을 알 수 있을까요. 김수영이나 김남주는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노래방에는 대중노래와 트로트, 어린이노래와 서양노래에다가 일본노래까지 있으나 민중노래나 노동노래란 없습니다. 민중노래나 노동노래가 라디오며 텔레비전에 두루 소개될 수 없다고 해도, 노래방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중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민중노래도 노래방에서 즐길 수 있어야지 싶은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새책방에서 ‘베스트셀러 목록’과 ‘스테디셀러 목록’을 내걸며,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책을 좀더 보기좋고 널찍한 자리에 수백 수천 권씩 쌓아 놓고 판다고 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수많은 출판사마다 다 다른 뜻과 마음으로 펴낸 갖가지 책들이 ‘적어도 한 권씩’ 꽂힐 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일중독 벗어나기》,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 《‘위안부’ 리포트》, 《진보의 미래》,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심이의 엄마 생각》, 《오모니》 같은 책도 책손하고 가까워질 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4340.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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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 : 식민지 이야기책은 일본사람이 쓴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한울,1986)이라는 조그마한 책 하나를 샀습니다. 77쪽짜리 책입니다. 글쓴이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이분 책은 1985년에 《한국사입문》(백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朝鮮史》(講談社)라는 이름으로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글쓴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朝鮮史》를 써낼 때까지 ‘한국땅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북녘에서 펴낸 거의 모든 역사책을 꼼꼼히 읽었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한국사를 연구한 책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살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朝鮮史》를 보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가가 뒤에 붙었고(그 작은 책에), ‘그때(1977년까지) 남녘이나 북녘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역사책’이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는 한국을 와 보지 않고도 한국사람들 안방 구석구석을 훤히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을 살 때 함께 보인 책은 《식민지》. 이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쓴 글을 단출하게 추려내어 엮은 작은 책. 문득 생각이 나서, 인터넷새책방을 들어가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식민지’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그럭저럭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은 적네요. 게다가,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또 대학생이나 여느 사람들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문 학자가 읽을 만한 책 또한 드물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읽을거리나 볼거리나 알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풀그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풀그림은 무엇을 바탕으로 엮어내지요?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무엇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칠까요.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가운데 얼마쯤을 ‘일제강점기 역사는 이렇다’ 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넷새책방에서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했을 때, 그나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 몇 가지는 거의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었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은 얼마 없습니다. 남녘에서 백제 역사를 다루는 학자 숫자가 열이 안 된다고 하고,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학자 또한 열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백제나 고구려 역사를 다루면, 더욱이 가야 역사를 다루면, 이런 전문지식이 쓰일 만한 곳이 없다고 하겠지만,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교과서에서도 ‘전쟁 이야기’만 풀어놓지, 그때 사람들 삶과 문화와 발자취는 톺아보지 않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는, 거칠고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지식으로서는 쓸모가 없는가요. 일제강점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일제강점기 역사 가운데 성노예와 강제징용, 우키시마호, 관동큰지진, 우토로, 만주와 사할린 이야기는 어떤가요. (4340.7.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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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실으려고 쓴 글입니다. 마감날짜에 맞추어 겨우 썼네요. 히유....


 책으로 보는 눈 12 : “신문을 읽으시는 일은 좋지만”

 7월 17일 제헌절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나갑니다.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싶기도 했고, 나중에 자전거모임 사람들하고 영종도와 용유도를 한 바퀴 돌 생각에 미리 다녀와 보기로 합니다. 동인천에서 탄 시내버스가 월미도에 닿아 바닷가 쪽으로 걸어갑니다. 열세 해 만에 와 보는 월미도. 제헌절이 쉬는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날이 환하게 개어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붐빕니다. 먼저 표파는곳으로 갑니다. 10분 거리인 영종도를 다니는 배삯은 어른 2500원. 왔다갔다 하려면 5000원. 자전거를 태우면 2500원이 덧붙어, 자전거로 영종도 다닐 생각으로 배를 타면 1만 원이 듭니다. 예전에도 자전거삯을 받았던가? 연안부두에서 제주섬까지 배를 타고 갔을 때 자전거삯은 따로 안 받았는데. 제주섬에서 목포로 갔을 때에도 자전거삯을 달라 하는 사람 없었는데.
 바닷가를 옆으로 끼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천천히 걷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날씨인데 구름이 걷히며 해가 쨍쨍 납니다. 더워서 등판에 땀이 흐르지만 이 ‘문화의 거리’에는 햇볕을 그을 만한 그늘이 없습니다. 햇볕에 익고 싶지 않으면 바닷가 한쪽에 길게 이어진 횟집이나 찻집이나 밥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길가에 뒷간을 두 군데 마련했으나 크기가 작아 여자 쪽은 한참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판.


 ‘문화의 거리’ 맨 끄트머리에 겨우 한 군데 마련되어 있는 ‘그늘 있는 걸상’을 찾아낸 뒤 잠깐 다리쉼을 합니다.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합니다. 앞으로 월미도를 다시 찾아올 일이 있을까? 인천사람인 내가.


 시내버스를 타고 동인천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갈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서울에 있는 헌책방 나들이를 해 보기로.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으로 갑니다. 동인천부터 용산까지는 급행전철이 있어 금방 손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즐겁게 책을 구경하다가 작은것을 보려 뒷간에 가려는데, 뒷간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여쭈니, 일요일이나 공휴일처럼 건물(여성단체협의회 건물입니다)이 쉴 때에는 경비원도 쉬는 터라 모든 문을 잠가 놓아서 뒷간에 갈 수 없답니다. 그래서 남자 분들 작은것을 보는 뒷간을 바깥에 임시로 만들었고, 여자 분들 볼일 볼 뒷간을 둘레 건물에서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책 구경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저처럼 잠깐 서울 나들이를 마친 사람, 쉬는날임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을 사람 들로 해서 동인천 급행전철이 미어터집니다. 용산을 떠난 전철은 대방역께부터 설 자리가 모자랄 만큼 들어찼고, 이런 가운데에도 신문을 넓게 펼쳐서 읽는 분이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깊이 마음쓰시는 분이로군요. 이분, 제법 나이를 잡수신 아저씨는 바로 제가 앉은 앞에서 신문을 펼쳐 읽으십니다. 부천역까지 왔을 즈음, 도무지 견디기 어려워 쪽지를 써서 드립니다. “신문을 읽으시는 일은 좋지만, 불빛을 모두 가리지 않으시면 고맙겠습니다.” (4340.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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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요즘 사람들한테 추천할 만한 책이 있으면 한 가지 이야기해 주셔요.” 하고 묻는 분이 곧잘 있습니다. 이런 물음에는 으레 싱긋 한 번 웃은 뒤, “하나도 없네요.” 하거나 “하나도 생각 안 나요.” 하거나 “글쎄요.” 하고 대꾸합니다. 제 대꾸를 듣는 분들은 저으기 놀라실까요. 저로서는 ‘좋은 책 하나 골라서 소개해 달라’는 물음이 참참참 어렵고 답답하답니다. 세상에 우리 마음과 삶을 가꾸고 살릴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책을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서 읽을 생각은 못하며 ‘자기 몸은 안 움직이고 대신 움직여 달라’니요. 배고픈 사람이 스스로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듯이, 마음고픈 사람이 스스로 돈을 모아(일을 해서) 책방 나들이를 떠난 다음 책꽂이와 책시렁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마음에 밥이 될 책을 찾아서 사 읽어야 된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제 까칠한 대꾸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여태껏 책 많이 읽으셨을 텐데, 한 권쯤 기억나는 책이 있지 않아요?” 물으시면, 제 가방에 있거나 책상에 올려진 책을 슬쩍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제 책상머리 책이 언제나 그때로서는 하느님이거든요. 오늘은 제 책상에 《후지무라 미치오-청일전쟁》(소화,1997)이 올려져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에 이르는가를 살핀 조그마한 논문.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반찬을 먹지만, 몸소 논밭을 일구어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몸소 논밭 가꾸기를 안 하고 사서 먹는다고 해도, 쌀과 푸성귀와 물고기와 뭍고기 들을 손수 다듬고 익혀서 먹는 사람조차 퍽 드뭅니다. 부모님과 사는 분들은 어머님이, 혼인해서 사는 분들은 여자 쪽에서 밥상을 차립니다. 더구나 나날이 바깥밥 사먹는 분이 늘고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조차 줄어요. 피자며 통닭이며 짜장면이며 국수며 돈까스며 …… 전화 한 통에 뾰로롱 달려와 갖다 바칩니다. 먹고 남은 것은 주마다 쓰레기차가 와서 거두어 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다 보니, 몸을 가꾸는 밥을 제 스스로 제 몸을 살피며 알뜰히 마련하는 문화란 사라지거나 옅어져요. 그래, 몸을 제 스스로 가꾸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도 줄겠지요. 제 마음을 느끼고 살피면서 가꾸려고 하는 사람도 줄고요. 제 마음을 사랑하고 돌보며 고이 껴안는 가운데 이웃사람 마음을 따스하거나 넉넉한 품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 또한 자취를 감추지 싶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두 다리를 움직여 찾아가는 책방 문화란 발붙일 수 없구나 싶고, 인터넷으로 목록 죽 뒤져서 주문하는 경제논리만, 두고두고 읽는 책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행 따라 읽어치우는 책만 잘 살아남고 두루 사랑받겠습니다. (4340.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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