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5 : 환경책 읽기

 지난 2007년 봄, 인천 배다리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나중에 내가 읽은 책들로 아기자기하게 펼쳐 보이는 작은 도서관을 열고 싶다”는 꿈으로 이었습니다. 나라나 지자체 도움 없이 오로지 내 손으로 앙증맞을 책쉼터 하나 일구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도서관은 도시를 떠나 시골 멧기슭 한켠으로 옮겼습니다. 집식구 몸을 생각하고 내 몸을 한결 사랑하며 아끼고픈 마음에, 시골자락 품에 안깁니다. 시골‘구석’에 도서관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들다거나 누가 찾아오겠느냐 하지만, 참말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시끌벅적 어수선한 도시에서가 아닌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책을 즐기러 마실을 오리라 생각합니다. 인천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어차피 열려면 서울에 열어야 사람들이 더 쉽게 자주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왜 자꾸 서울로만, 다시 서울로만, 또 서울로만 가야 하나 아리송해요. 인천에도 좋은 사진책 도서관 하나 누군가 열고, 부산이랑 제주랑 목포랑 춘천이랑 진천이랑 문경이랑 옥천이랑 …… 우리네 터전 골골샅샅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책쉼터 하나씩 있으면 더 아름다우며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책으로 도서관을 열었으니, 누군가는 만화책으로, 그림책으로, 인문책으로, 철학책으로, 역사책으로, 문학책으로, 어린이책으로, 수필책으로, 잡지책으로, 청소년책으로, 과학책으로 …… 온갖 갈래 살가운 도서관을 열면 더 기쁘리라 생각해요. 자동차 아닌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슬금슬금 찾아가서 책을 즐기다가는 “어어, 이 책들도 좋은데, 이 둘레 멧길과 숲과 논밭 또한 참으로 좋은걸.” 하고 느낀다면 책을 내려놓고 사뿐사뿐 숲마실이나 시골마실을 맛봅니다.

 책이란 삶이고, 삶을 담은 이야기가 책이며, 책이란 다시금 사람이요,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책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책이란 사랑이며, 사랑 나누는 사람들 삶을 책으로 여미어 놓습니다.

 온누리에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제가 꾸민 도서관에도 숱한 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읽을 책을 그러모으는 도서관인데, 이 도서관에 깃든 책을 모든 사람이 모조리 읽을 수 없을 뿐더러, 어느 한 사람이든 이 책을 제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책이란, 이 책을 써낸 사람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으면서 누구나 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받아먹도록 하니까 섣불리 한 사람이 혼자 차지할 수 없는 가운데, 고맙게 받아먹은 슬기와 얼과 마음에 새삼스레 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아 뒷사람한테 이어줍니다. 돌고 돌며, 잇고 잇는 책이에요.

 이들 책이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찌우며 사람을 살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모든 책은 새로운 책이면서 헌책이고, 어느 책이든 내 삶을 담는 책, 곧 환경책입니다. 자연사랑 환경사랑을 외쳐야 환경책이 아닙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도 빛나는 환경책이고 《아톰의 철학》도 예쁜 환경책이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멋스런 환경책이에요. 남녘나라에서는 참 안 읽히는 환경책인데, 우리 스스로 우리 누리를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바라볼 때 고이 읽히리라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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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4 : 사진책 읽기

 2010년이 막바지에 이른 요즈음 디지털사진기 하나 안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09년에도 이러했고 2008년이나 2007년에도 비슷했으며, 2011년이나 2012년이 되면 디지털사진기 갖춘 사람은 훨씬 늘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사진기를 안 갖고 있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쯤 가진 손전화 기계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기계를 잘 못 다룬다 하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조차 손전화 사진기로 손자나 손녀 모습을 찍어 바탕화면에 깔아 놓곤 합니다.

 온 나라 사람이 사진쟁이와 같다 말할 만한데, 정작 온 나라 사람이 손쉽게 사진찍기를 즐기면서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찍기란 어떠하며 사진삶이나 사진책은 어떠한 결인지 살피지 않습니다. 사진이나 사진찍기란 따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기는 하지만, 사진을 깊이 살피거나 사진찍기에 온마음 쏟으려는 사람들한테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는 않아요. 사진을 찍는 누구나 사진을 알고 사진찍기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다면, 나한테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마음을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쥔 사람으로서 고우며 착하고 참다운 매무새를 익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이나 사진찍기는 한 가지조차 배울 수 없습니다만, 사진을 하는 몸가짐이라든지 사진찍기를 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배울 만하며, 배울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거나 밥을 하거나 집을 장만한다고 할 때에 ‘살림이 무엇’이고 ‘밥이 무엇’이며 ‘집이 무엇’인가는 따로 배워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림하는 매무새라든지 밥을 하는 매무새라든지 집을 장만하여 건사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우고, 배울 만하며, 배워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다 할 때에도 ‘책이란 도무지 무엇이라 할 만한가’를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울 만하고 배울 노릇입니다.

 사진 하나 찍어 얻는 매무새를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기를 쥔 사람 마음에 와닿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마음껏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로서는 아주 마음에 들어 사진 한 장 찍는다지만, 나한테 사진 한 장 찍히는 사람은 퍽 못마땅할 수 있어요. 나는 사진 하나로 오래도록 떠올리고 싶은데, 나한테 찍힐 사람은 하루 빨리 잊거나 지나고픈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진책 읽기란 사진쟁이들이 작품을 빚어내어 엮은 책을 읽는 일이 아닙니다. 예부터 사진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정작 사진책이 제대로 팔리거나 읽히지 못했고, 이제는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사진책다운 사진책을 알아보며 장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나 스스로 내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읽지 못하며, 내 하루가 어떤 모양새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찬찬히 읽는다면 내가 즐기는 사진에 담을 모습이 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한테까지 즐거울 모습이 되고, 이렇게 사진찍기를 즐기는 여느 사람은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빛깔 고운 사진책 몇 권을 기쁘게 장만할 수 있습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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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3 : 전태일을 말하거나 가을을 말하거나

 퍽 널리 쓰는 낱말 ‘케이블카(cable car)’는 영어입니다만, 이 낱말이 영어라고 느끼는 어른은 얼마 없습니다. 어른들한테는 익숙해서 널리 쓴달지라도,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가장 알맞춤하면서 좋은 우리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텐데, 한낱 덧없는 꿈입니다.

 영어 ‘케이블카’를 한자말로 적으면 ‘가공삭도(架空索道)’입니다. 줄여서 ‘삭도(索道)’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어 ‘케이블카’는 익숙하고 한자말 ‘삭도’나 ‘가공삭도’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삭도’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어느 날 문득 국어사전에서 ‘삭도’를 찾아봅니다. 말풀이 끝에 “‘하늘 찻길’로 순화.”라 적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케이블카’, 한자말로는 ‘삭도(가공삭도)’, 우리 말로는 ‘하늘차’입니다.

 이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설악산 대청봉에 ‘하늘차’를 놓겠다며 으르릉거립니다. 어쩌면 설악산 대청봉 둘레에서 장사하는 분들 또한 대청봉에 하늘차가 놓이기를 바라겠지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더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 돈벌이가 늘거나 살림이 펴리라 생각하니까요.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한다고 외칠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우리 터전이 무너지리라고는 느끼지 않고, 일자리가 늘어나리라 여깁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느 사람이거나 관청 사람이거나 정치판 사람이거나 커다란 건설회사 사람이거나 일자리를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어떤 일자리일는지를 살피지 않고, 이 일자리에 내 삶과 땀과 품을 바칠 때에 우리 터전이 어떻게 달라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는 틀림없이 노동조합을 세워 노동권을 알뜰히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는 어떤 자동차이며, 이 자동차를 이렇게까지 끝없이 만들면 우리 터전은 어찌 될까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더라도 자동차회사 노동자가 아닌 자전거회사 노동자로 거듭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 큰 회사에서 더 벌이가 될 일자리를 찾아 ‘더 많이 번 돈’으로 자가용 장만하고 아파트 장만하며 좋은 밥거리 장만하는 삶이 아름다운 나날이 될까 궁금합니다. 더 작은 회사에서 일하든, 도시 아닌 시골에서 내 삶을 북돋우며 스스로 땅을 일구어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할 때에는 아름다운 나날이 못 될는지 궁금합니다.

 1970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 돌아오는 11월 13일이 지납니다. 11월 13일에는 이름도 힘도 돈도 없던 여느 노동자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날 이이 한 사람만 숨을 거두었겠느냐만, 노동법에 적힌 그대로 노동자가 노동권을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외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느덧 마흔 해입니다. 노동자가 노동법대로 노동권 누리기를 바란 지 마흔 해이지만, 이제껏 하나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2010년 올해에 한글날이 오백 몇 십 돌이 되더라도 우리 말글 문화가 나아지지 못한 모습과 매한가지입니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가을이 가을빛을 잃습니다. 겨울은 겨울다우려나요. 삶이 삶답지 못하고, 철은 철을 잃으며, 책은 책다이 읽히지 못합니다. (4343.1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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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2 : 좋아하는 책을 말하기

 자전거에 수레를 다시 달았습니다. 아이를 둘 태울 수 있는 수레를 2005년에 진작 장만했으나 이때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서울로 책방마실을 할 때에 이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수레에는 모두 48킬로그램을 실을 수 있다 했기에, 이 수레에는 책을 200∼300권쯤 실었습니다. 가방에 가득 책을 담고 자전거 짐받이에까지 책을 꽤 무겁게 묶어, 서울부터 충주 시골집으로 돌아오자면 아홉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아이를 태우는 수레에 아이는 안 태우고 책만 태운 채 너덧 해 남짓 살았습니다. 이러던 가운데 지난 시월에 드디어 아이를 태웁니다. 아이가 막 스물일곱 달로 접어들었기에, 이제는 태워도 괜찮겠거니 생각했고, 한 번 두 번 태우고 보니 아이는 수레 타기를 몹시 즐깁니다.

 우리 집 세 식구가 읍내에 마실할 때면 시골버스를 탑니다.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있는 우리 살림집에서는 충주 시내까지 버스로 가면 한 시간쯤 걸리지 싶은데(아직 가 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멉니다. 우리 살림집에서 음성군 음성읍으로 가면 버스로 10분이며, 자전거로 달리면 20분 남짓 안 걸립니다. 다만, 시골버스는 하루에 고작 여섯 대 있습니다.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헛걸음이에요. 시간을 놓치면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택시삯은 1만 원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마을을 빙 돌았습니다. 이웃마을 생극면 도신리에서 살아가는 친할머니 댁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다니면서 ‘책을 태우고 달릴’ 때하고 ‘아이를 태우고 달릴’ 때 어떠한가를 살폈고, 지난 2005년과 견주어 다섯 살 더 먹은 아저씨가 잘 달릴 수 있나 가늠했습니다. 더욱이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니까 아이랑 먼길을 나서면 어떠할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이제 오늘부터 아이랑 자전거를 함께 타고 읍내 장마당에 가 볼 생각입니다. 갔다가 돌아올 시간을 어림하자면 한낮에 가야 해 떨어져 춥기 앞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자전거로 조금 멀다 싶은 읍내에 다녀올 수 있으면, 이렇게 여러 달 다니면서 아이랑 아빠랑 몸이 익숙해질 때쯤 이웃 군(괴산군이나 옥천군)이나 이웃 도(경상북도 문경시라든지 강원도 춘천시라든지 충청남도 홍성군이라든지)까지 하루나 이틀에 걸쳐 천천히 자전거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집에서 혼자 살며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책방마실을 다니던 발자취를 갈무리해서 지난 2009년에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을 쓴 적 있는데, 아이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발자취를 곰곰이 되씹으며 무언가 내 삶을 새롭게 적바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책이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몸으로 부대낀 삶을 수수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요.

 지난주에 헌책방에서 《니코니코 일기》(오자와 마리 글·그림)라는 여섯 권짜리 만화책을 장만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나온 책인데 벌써 판이 끊어졌더군요. 눈물과 웃음으로 이 만화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수한 삶을 좋아하니 수수하게 살며, 이렇게 수수한 이야기 담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살 때에 가장 즐겁다고. (4343.1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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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1 : 책사랑 삶사랑

 아이는 읽은 책을 또 읽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보고, 이듬날이건 다음날이건 줄기차게 읽습니다. 이 책 하나가 틀림없이 좋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수많은 책이 없어도 이 책 하나로 넉넉하기 때문이겠지요. 먼길을 나서며 책 하나 챙겨야 한달 때에 아이는 어느 책을 챙길는지를 잘 알겠다고 느낍니다.

 애 아빠는 읽은 책을 또 읽기도 하지만, 으레 새로운 책을 읽으려 듭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다 여길 만한 책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이제까지 읽은 좋은 책들이 참 많지만, 바로 오늘 제 손에 쥐어들어 읽는 책이 가장 좋아요.” 하고 대꾸합니다. 저로서는 제 책삶이 이러하니까 이런 말을 하고야 맙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애 아빠는 책을 만들거나 쓰는 일을 하는 가운데, 책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합니다. 언제나 ‘새로 나오는 책’ 흐름을 알아야 하고, ‘예전에 나왔으나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책’ 자취를 헤아려야 합니다. 이러한 일 매무새가 내 삶 매무새로 자리잡습니다.

 아이로서는 읽은 책을 또 읽는다기보다 좋아하는 책을 즐겨읽습니다. 사랑할 만한 책을 사랑해요. 가슴에 꼬옥 안으며 아낄 만한 책을 참말 가슴에 꼬옥 안으며 아껴 읽습니다.

 그러니까, 손꼽히는 책이라 한다면, 나라 안팎에서 널리 사랑받는다는 책이라 한다면, 아주 마땅한 소리인데 ‘새로 나오는 책’이 손꼽힐 책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이 알려지’거나 ‘홍보가 잘 되어 잘 팔리는 책’이 손꼽을 책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손꼽는 좋은 책·고운 책·빛나는 책·어여쁜 책·훌륭한 책·멋진 책이란 곧 두고두고 되읽는 책입니다. 이 책 하나로 내 삶을 밝게 일군다 싶을 때에 저절로 손가락을 꼽으며 싱긋 웃습니다.

 애 아빠는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애 아빠는 집식구 오순도순 살아갈 돈을 마련하고 밥을 하며 빨래랑 갖가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합니다. 숨돌릴 겨를은 있으나 멈출 수 없는 쳇바퀴를 돌립니다. 언제나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새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무엇을 하며 새 하루를 맞이하고, 새 날을 어떤 마음과 몸으로 즐길까요. 애 아빠 눈썰미가 아닌 아이 눈높이로 바라보는 집살림이란, 마을살이란, 보금자리란, 멧기슭 터전이란, 하루란,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는 그림책 《로타와 자전거》랑 《까만 크레파스》를 보고 보며 또 봅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이가 보고 보며 또 본 그림책을 읽히다 보면, 이 그림책은 질리지 않습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볼 때마다 지난번에는 놓치거나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찾습니다.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보든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천국의 아이들〉이나 〈라 스트라다〉를 보든 매한가지입니다. 볼 때마다 새삼스러우며 지난번에 못 본 이야기와 모습을 느낍니다. 저한테는 날마다 먹는 밥하고 같은 책들이요 영화들입니다. 날마다 먹으며 날마다 남다른 맛인 밥처럼 날마다 마음껏 즐기며 신나게 얼싸안을 수 있는 책일 때에 책상맡에 놓고 꾸준히 사랑할 만합니다. (4343.1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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