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50 : 사람이 읽는 책


 충청북도 신니면 광월리에 자리한 부용산 멧기슭에는 이오덕 님 뜻과 넋을 기리는 멧골학교인 이오덕자유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일곱∼아홉 살 어린이부터 들어와서 다닐 수 있는 배움터이고, 나이가 더 든 어린이나 푸름이는 사이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어린 나날부터 멧자락에서 숲과 들을 쏘다니면서 제 먹을거리를 손수 흙을 일구어 마련하도록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를 쓰지 않고 교재 또한 쓰지 않으며 정규 교과과정이나 학사과정을 밟은 사람이 교사가 되지 못합니다. 책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고, 책으로 가르치는 데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르치는 데이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가르치는 어른이 될 수 있으나 아무나 배우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배움마당인데, 2011년 2월 9일에 새 학기를 여는 날부터 이곳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책이야기’를 날마다 한 시간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교과서가 없고 교재를 안 쓰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까를 저 스스로 살펴야 하는데,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책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야 알맞습니다.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새벽부터 낮까지 시골집에서 우리 살붙이들이랑 복닥이던 삶을 돌아보면서 이 이야기를 어린 벗님하고 함께 나눕니다. 아버지가 손톱을 깎으니 옆에 붙어서 제 손톱도 깎아 달라는 아이 손톱이랑 발톱을 깎다 보니 아이는 사르르 잠들고, 잠든 아이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채워 눕히고 나서, 아버지는 오른손 손톱을 마저 깎아야 하는 줄 깜빡 잊고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시골집은 지난 12월부터 어느덧 석 달째 물이 얼어 못 쓰는 터라 학교 씻는방으로 빨래감을 들고 와서 빨래한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빗대어 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누가 책을 쓰는가를 살핍니다. 나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듯이 적바림한 책 하나를 들고 와서 어린 벗님하고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어제는 《남쪽의 초원 순난앵》(마루벌,2006)이라는 그림책을 함께 읽었고, 다음주에는 《그리운 순난앵》을 함께 읽을 생각입니다. 두 가지 순난앵 그림책은 모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빚은 그림책으로, 순난앵이라는 마을에서 따사롭게 살아가던 아이들이 가난하고 메마른 터전에서 여러 해에 걸쳐 힘겹게 굶주리며 고된 일에 시달리다가 다시금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순난앵을 찾아서 포근하게 쉰다는 줄거리입니다. 아마, 굶주리던 아이들은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하늘나라에 있을 순난앵 마을’로 가서 넉넉한 어머니 품에 안겼겠지요.

 이오덕학교 벗님들은 순난앵을 그리다가 마침내 순난앵으로 들어간 두 아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도 하고 슬프다고도 하지만 ‘죽음으로 들어선’ 줄은 깨닫지 못합니다. 어쩌면, 순난앵을 그리워하며 찾아간 아이들 또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살며시 눈을 감을 때에는 ‘죽음’이 아닌 ‘새터’로 간다고 여겼을 테지요. 그러니까, 죽음이란 꼭 슬프지만 않고 얄궂지만 않아요. 내가 살기에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이 고운 목숨을 나누어 주고, 내가 죽기에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은 새 목숨을 거두어들이며 새 거름으로 삼습니다. 사람은 책을 읽고, 흙은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읽습니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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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9 : 믿음책 읽기


 이오덕 님이 1984년에 내놓은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 2010년 7월에 《삶을 가꾸는 어린이문학》(고인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이 책에는, “교훈을 너무 밖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훈화나 도덕 교과서의 글같이 되었다면 그것은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지만, 교훈성 그 자체를 죄다 빼려고 하는 것은 어린이문학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교훈을 꺼리고 무서워하는 사람일수록 재미없고 해로운 작품을 쓰는 것이다. 교훈이 없다는 것은 글쓴이의 의도가 없고 사상이 없다는 것이고, 역사와 사회·어린이에 대한 믿음과 정열·사랑에 없는 것을 말해 준다(98∼99쪽).”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배웁니다. 어른들은 틀림없이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나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교과서나 책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살아내는 몸뚱이로 가칩니다.

 교과서란 지식입니다. 그야말로 지식덩어리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쥐어 줄 책은 으레 ‘삶책’이 아닌 ‘지식책’이기 일쑤입니다. 과학동화나 철학동화는 온통 지식책이에요. 동화책이라 하는 문학 또한 지식책으로 기울거나 값싼 ‘시간 때우기’ 책에 머물곤 합니다.

 어린이책을 잘 모르는 분들은 자칫 ‘어린이문학 = 가르침(교훈)’이어야 하는 듯 잘못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무언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 이 모든 이야기는 ‘가르침’이 되고 ‘배움’이 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는 수다 또한 서로서로 가르치는 말이요 배우는 말이에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비질과 걸레질 하는 모든 삶이 바야흐로 책이자 배움이요 가르침입니다.

 아이들한테도 삶이 배움입니다. 가까운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둘레 어른이 읊는 말마디를 고스란히 배웁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태운 차를 거칠게 몰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거친 매무새를 배웁니다. 어른들이 길가에 담배꽁초뿐 아니라 갖은 쓰레기를 버리니, 아이들도 과자봉지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어른들이 바쁘다며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걸으니, 아이들도 동무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서슴지 않습니다.

 온삶이 그야말로 ‘교과서’입니다. 온삶을 따스히 어루만지지 않는다면 가르침과 배움이 올곧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삶을 포근히 돌보며 넉넉히 일구어야 비로소 내 아이한테든 이웃 아이한테든, 사랑하는 짝꿍과 살붙이한테든 좋은 손길을 내밉니다.

 이 나라 한국에는 예배당이 대단히 많습니다. 딱히 부처님 나라나 하느님 나라가 아니지만, 불교·천주교·개신교를 믿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이리하여, 불경이든 성경이든 믿음을 담은 책이든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그렇지만, 막상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가르친 ‘사랑과 믿음’을 ‘따뜻함과 넉넉함’으로 나누는 사람은 드뭅니다. 수수한 여느 자리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믿음책이 제아무리 값지거나 훌륭하달지라도 참된 믿음이(신자)로 거듭나지 않으나, 좀처럼 깨닫지 않습니다.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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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8 : 그림책 읽기

 새벽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고, 바깥이 희뿌윰히 밝는 아침에 쌀을 씻어 불리며, 국거리로 끓일 다시마를 끊고 말린버섯을 풀어 불립니다. 이윽고 뒷간에 갔다 와서 글쓰기를 마저 하다 보면 아이가 먼저 깨어납니다. 이 즈음부터 아침을 해서 차리고 아이를 먹이고 치우노라면 어느새 한낮이 됩니다. 이 다음에 빨래를 하고 이불을 털곤 하는데, 기운이 남으면 자전거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살짝 마실을 다녀옵니다. 낮나절이 되어도 집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낮나절에는 저녁밥을 헤아려야 하니까요. 이무렵 아이가 살짝 낮잠이라도 자 주면 아빠로서 책읽기를 조금이나마 합니다. 낮잠 없이 저녁까지 놀자고 엉겨붙으면 그만 지쳐떨어져 저녁에 아이한테 그림책 한 권 제대로 읽어 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이 되어도 여느 아빠들은 집 바깥에서 돈 버는 일만 합니다. 오늘날이 되어도 여느 엄마들은 집순이가 되어 살림만 꾸립니다. 또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할머니한테 맡기고 두 어버이가 돈벌이에 매달립니다. 바깥에서 돈벌이에 바쁜 어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씻기거나 먹이거나 재우거나 책을 읽어 주거나 하기 어렵습니다. 바깥에서 온힘을 다 쓰고 돌아왔으니, 이튿날 다시 기운을 차려 돈벌러 나가자면 ‘집순이한테서 다리 주무름을 받으’며 느긋하게 쉬어야 할 테니까요.

 엊저녁에는 아이하고 《까만 크레파스》를 함께 읽습니다. 책에 적힌 얄궂은 말은 아빠가 볼펜을 쥐어 하나하나 바로잡습니다. “타닥타닥 뛰어가다가”는 “타닥타닥 달려가다가”로 고칩니다. ‘뛰어가다’는 콩콩 통통 뛰면서 가는 모습이니까, 타닥타닥이든 다다다다이든 ‘달려가다’라 해야 합니다. “와, 기분 최고다!”는 “와, 좋다!”로 고치고, “황토와 갈색이”는 “흙빛이와 밤빛이”로 고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는 “그림을 그립니다.”로 고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즐거이 들으면서 배울 말을 헤아린다면, 아무 말이나 그림책에 적힌 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고, 어린이 말매무새를 살핍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이 “에이, 젠장!” 하는 말을 고스란히 배워서 따라합니다. 어른이 얄궂게 말하면 아이도 얄궂게 말해요. 줄거리와 엮음새와 그림결 모두 훌륭한 그림책일지라도, 그림책에 담은 ‘말’이 우리 말답거나 참답지 못하다면 슬픈 일이에요.

 일본 그림쟁이 ‘다케다 미호’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이분 그림책 또한 썩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읽히기는 하는데, 2001년에 《책상 밑의 도깨비》, 2007년에 《짝꿍 바꿔 주세요!》, 2008년에 《우리 엄마 맞아요?》가 한글판으로 나왔습니다. 앙증맞으면서 살가운 그림결에, 그윽하면서 따사로운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 내놓기에 사랑받습니다. 이제 막 서른두 달째 접어든 아이는 《까만 크레파스》이든 다케다 미호 님 그림책이든, 아빠가 한 번 함께 읽어 주면 “내가 읽을게!” 하면서 앙증맞은 손으로 앙증맞은 그림책을 넘깁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오늘날 어버이들이 자가용을 버리며 ‘자가용 값’과 ‘자가용 굴릴 기름값’으로 아이들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랑 함께 읽으면 우리 누리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레 탈바꿈할까요. 한 아이 한 해 어린이집 배움삯 500만 원을 그림책 값으로 바꾼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할까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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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7 : 인문책 읽기

 인문책이지 않은 책이란 없습니다. 어느 책이든 인문책이며, 인문책이란 책을 일컫는 또다른 이름입니다. 인문책이 안 읽히거나 안 팔린다면, 책이 안 읽히거나 안 팔린다는 뜻입니다. 인문책이 너무 어렵거나 딱딱하다면, 책이 그야말로 너무 어렵게 뒤틀리거나 딱딱하게 가라앉았다는 소리입니다. 지식인들이 자꾸 말놀이를 하듯 뇌까리지만, 인문책은 지식인들이 써내는 책이 아닙니다. 지식인이 써내는 책도 인문책 테두리에 들 만하지만, 인문책은 살림하는 여느 사람이 온몸과 온마음을 바친 땀방울로 일구는 책입니다. 살아숨쉬는 책이 인문책이요, 펄떡펄떡 뛰는 염통 소리가 묻어나는 책이 인문책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인문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학교수나 공무원이나 소장학자나 기자나 뭐 이런 지식인들이 아닙니다. 인문책은 여느 살림집 할머니 할아버지라든지 농사짓는 일꾼이라든지 아이 낳아 키우는 아줌마 아저씨라든지 이제 막 온누리를 부대끼며 깨닫는 어린이랑 푸름이라든지 용역 청소부 일꾼이라든지 맥도널드 알바 일꾼이라든지 기름집 알바 일꾼이 씁니다. 때로는 ㅅ이나 ㅎ 같은 큰회사 사무직원도 인문책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웬만한 사무직원이란 지식인하고 다르지 않아 인문책을 쓸 깜냥이 못 됩니다. 대학 문턱을 밟았다든지 나라밖 물을 마셨다든지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섣불리 인문책을 쓰지 못합니다. 대학 강단에 선다거나 소장학자로 이름이 높다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꾸준히 싣는 지식인들이 쓰는 책은 ‘인문책’이 아닌 ‘지식책’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떠도는 숱한 인문책은 참답게 인문책이라 할 만하지 못합니다. 거의 모두 인문책이 아닌 지식책이기 일쑤입니다. ‘인문’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람들 삶’이 한자말로 옮겨적어 인문입니다. 사람들 삶자락과 삶결과 삶무늬와 삶매무새를 한자말로 가리켜 인문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인문책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루는 책이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바라보며 온누리를 읽는 슬기로운 눈썰미를 얻도록 돕는 책입니다. 갖은 지식을 늘어놓는 책이 인문책일 수 없고, 똑똑한 지식인들 똑똑한 말씨가 뚝뚝 흐르는 지식책을 함부로 인문책인 듯이 덮어씌울 수 없습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도마질 소리가 깃들어야 합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빗자루질 소리와 걸레질 소리가 감돌아야 합니다. 인문책이라 할 때에는 할머니 재채기 소리에다가 할아버지 앓는 소리가 고이 맴돌아야 합니다. 바람이 흐르며 나뭇잎을 건드리는 소리,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면서 어린 싹에 기운을 북돋우는 소리, 나비가 팔랑거리며 꽃가루를 퍼뜨리는 소리, 배추잎이 갈라지며 으썩으썩 내는 소리, 어린이가 날듯이 콩콩 뛰면서 도움 닫는 소리, 집식구 고픈 배를 채울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깊은 밤 보름달과 뭇별이 가만히 지나는 소리가 고스란히 담길 때에 이러한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두고 비로소 인문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인문책은 삶책입니다. 인문책은 사람책입니다. 인문책은 사랑책입니다. 인문책은 웃음책이요 눈물책입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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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6 :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1975년에 내놓은 《얘들아 내 얘기를》(대한기독교서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은 으레 동시나 동화나 그림책이나 과학책이나 지식책에 머물지만, 이원수 님은 일찍부터 ‘어린이가 읽을 수필’을 써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자유로운 글(산문/수필)’은 거의 없을 뿐더러, 자유로운 넋과 삶을 담아 아이들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커 나가는 데에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는 어른은 몹시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줄 ‘자유로운 글’이란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아름다움과 착함과 참다움을 사랑할 때에 쓸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나라사랑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나라사랑이고, 손으로만 깨작대는 올바른 삶이 아닌 온몸으로 부대끼는 올바른 삶이어야 해요. 이원수 님은 《얘들아 내 얘기를》에서 아이들하고 아이들 어버이하고 아이들 가르친다는 사람들한테 “학교에서 공부해서 좋은 기술만 배우면 장래에 잘 살 수 있다든가, 지식을 쌓아서 사회에 중요한 일을 맡아 할 수 있다든가 하는 생각으로서는 안 된다. 기술이나 지식만으로서는 하나의 기계와 같은 것이 될 뿐, 아름다운 인간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186쪽).” 하고 말을 겁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은 곧은 글을 쓰고, 마음이 슬픈 사람은 슬픈 글을 쓰고, 성격이 괄괄한 사람은 괄괄한 모양의 글을 쓴다(142쪽).”는 얘기를 덧붙입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사는 것은 그 속에 씌어 있는 글을 읽기 위해서다. 화려한 겉치레를 해야 내용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겉치레가 심해지면 책값은 글값이 아니라 치레값이다(180쪽).”는 생각을 덧답니다.

 어느덧 새롭게 맞이하는 2011년을 헤아립니다. 지난 서른여섯 해 동안 이 나라 학교는 얼마나 ‘기술 교육’을 넘어 ‘사람된 배움’에 마음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숱한 책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은 어느 만큼 ‘곧거나 착한 글’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동네 작은 책방이 거의 사라진 요즈음 소담스러운 책이나 수수한 책은 얼마나 사랑받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만 읽도록 어른이 쓰는 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어린이가 좋아하면 그만인 책이 어린이책이라 할 만한가요. 어린이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책이 어린이책이 되려나요. 어린이하고 어른이 함께 좋아서 읽는 책이 어린이책일까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히 돌보는 책이 어린이책일는지요. 어린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누구나 즐길 책이 어린이책인가요.

 어른들은 이런 문학도 즐기고 저런 예술도 누립니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수많은 문화와 공연과 영화가 있습니다. 아직 아이한테 보여주기 어렵거나 아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아이들 생각은 한줌조차 없이 살아가면서 아이들한테는 ‘귀여워 보이는’ 이야기만 던져 놓는다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요, 아이들 또한 고운 목숨임을 옳게 살피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책(글)은 어린이가 나란히 읽을 만한 눈높이로 써야 아름답습니다. 책(이야기)은 할머니랑 어린이를 마주앉히고 함께 읽도록 들려주어야 아리땁습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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