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고치다



  몸처럼 여기며 늘 짊어지고 다니던 가방을 고쳤어요.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어깨끈이 끊어져서 손질을 맡겼지요. 손질집에서는 어깨끈이며 이것저것 고치는 데에 5만 원이 든다며, 고치지 말고 그 돈을 새 가방을 사는 데에 보태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요. 저는 오래오래 쓸 가방으로 여기며 장만한 가방이기에 손질값이 비싸지 않다고 얘기했어요. 이레 만에 가방이 우리 집으로 돌아와요. 낡고 닳아서 끊어진 어깨끈이며 이곳저곳 새로 덧댄 가방이에요. 그동안 어깨끈을 두 차례 고쳤고, 이제 세 차례째 고쳤어요. 새 가방을 장만하는 값이 쌀는지 비쌀는지 몰라요. 다만 저는 이 가방을 앞으로도 아끼면서 쓸 마음이에요. 나중에 또 어깨끈이 낡고 닳는다면 다시 손질집에 맡겨서 고칠 생각이에요. 2017.6.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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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내보내다



  밤이 깊어 갑니다. 오늘 하루 마무리를 지을 일을 살피며 글을 쓰는데 셈틀에 벌레 한 마리가 붙습니다. 처음에는 파리인가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 벌입니다. 자그마한 벌이 이 밤에 잠을 안 자고 길을 잃은 듯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흰종이를 쓰면 되겠네 싶더군요. 흰종이를 살살 밀며 벌이 흰종이에 앉도록 합니다. 벌은 얌전히 흰종이를 붙듭니다. 천천히 마루를 가로질로 마루문을 열고서 훅 바람을 일으킵니다. 네 보금자리로 찾아가렴. 네 보금자리까지 못 가더라도 풀밭에서 날개를 쉬렴. 이튿날 해가 뜨면 풀밭에서 꽃가루를 먹고 기운을 차려서 네 보금자리로 깃들렴. 2017.6.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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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5분



  오늘(6.11)은 서울에서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가 제법 느긋합니다. 오늘 이 시외버스를 달리는 기사님은 고속도로 쉼터 두 군데에서 느긋하게 쉬었고, 고속도로에 아무리 다른 자동차가 없다 하더라도 마구 달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달리면 마구 내달리는 시외버스보다 고흥에 5분이나 10분 때로는 15분 즈음 늦게 닿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5분이나 15분쯤 더 달려도 좋아요. 5분이나 15분을 줄이려 하면서 내달리다 보면, 손님도 기사님도 버스까지도 모두 고단해요. 차근차근, 즐겁게, 넉넉하게, 둘레를 고루 살피면서 가는 길은 언제나 홀가분하면서 상냥합니다. 아름다운 숨결은 바로 이 느긋한 5분을 즐길 줄 아는 마음에서 태어나지 싶습니다. 2017.6.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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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랑 교토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스무 살에 인천을 떠났고, 서른세 살에 인천으로 돌아왔으며, 서른여섯 살에 인천을 다시 떠나서 시골로 갔어요. 마흔 몇 해라는 나날을 인천을 바라보며 살아오다가 오늘 문득 교토라고 하는 일본 어느 고장이 떠올라요. 일본에서는 도쿄라는 고장을 떠나서 교토로 가는 작가나 출판사나 책방이 꽤 있습니다.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또 수수하게 살림하는 사람도 교토로 홀가분하게 가곤 해요. 일본에서 교토는 오래된 문화역사도시라는 이름이 있지 싶어요. 가만히 보니 한국에서 인천이라는 고장은 일본 교토와 엇비슷하게 문화역사도시라는 이름이 있을 만하지 싶더군요. 서울하고 가까워서 사람이며 돈이며 줄줄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인천이 아니라, 투박하거나 수수한 맛과 멋으로 작가나 출판사나 책방이나 문화예술가 스스로 사뿐사뿐 찾아들 만한 고장이 될 만하지 싶어요. 인천은 무척 차분하면서 조용해요. 인천은 매우 따스하면서 넉넉해요. 인천에 사는 분들 스스로도 미처 못 느끼기 일쑤인데, 인천은 오랜 마을 오랜 골목이 대단히 이뻐요. 이 이쁜 마을이나 골목을 마을사람이나 골목사람뿐 아니라 길손이나 나그네도 잘 모르곤 해요. 인천에서 행정이나 문화를 맡은 분들, 또 서울에서 문화나 책이나 예술을 하는 분들, 이러한 분들이 작으면서 수수하게 새로운 살림을 지으려는 꿈을 인천이라는 데에서 지어 보면 꽤 재미있겠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삶터를 옮기고, 서울 곁에 있는 시골스러운 도시 인천으로 삶자리를 옮길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나리라 싶어요. 2017.6.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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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몇 권



  책 몇 권을 가방에 챙깁니다. 집에서는 책상맡에 책을 놓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는 가방에 책 몇 권을 챙깁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다가 책을 슬그머니 꺼내어 펼칩니다. 때로는 책을 고이 집어넣고서 공책을 폅니다. 공책에는 오늘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짤막하게 적바림합니다. 이러다가 공책도 덮고 가방에 넣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바람을 읽습니다. 저 하늘 너머에 어떤 별빛이 흐르는가를 헤아립니다. 한낮 새파란 하늘에서도 가만히 하늘바라기를 하면 낮달뿐 아니라 숱한 낮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바람을 느끼면서, 우리를 둘러싼 뭇별을 느낍니다. 숲에서 우리 곁에 찾아와 자그마한 책이 되어 준 나무를 그리다가, 저 먼 별누리에서 우리 곁으로 찾아와 자그마한 빛줄기가 되어 주는 별을 그립니다. 2017.6.1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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