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앓이



  안 먹던 무언가를 먹으면 꼭 배앓이를 하는 몸입니다. 안 하던 무언가를 할 적에도 으레 배앓이를 하는 몸입니다. 이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굳이 새로운 일이나 놀이를 잘 안 하려 했지 싶어요. 몸이 무척 고단하니까요. 그렇지만 새로운 일이나 놀이를 이럭저럭 하다 보면 몸은 어느새 나아지고 배앓이가 사라집니다. 낯익거나 입에 자주 대던 밥조차 한동안 멀리하다가 다시 가까이하면 어김없이 배앓이를 하는 몸인 터라 ‘뭐는 못 하고 뭐는 되고’가 저한테는 따로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몸은 늘 새로워지려고 배앓이를 하지 싶어요. 묵거나 낡은 일을 내려놓고서 새로운 일로 접어들려 하면, 신나게 배앓이를 하면서 새로운 몸이 되려고 한달까요. 그러니 이 몸을 붙안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틈틈이 배앓이를 해야지 싶어요. 너무 자주 하면 몸이 고될 테니 달포에 한 번쯤 새롭게 나아가면 어떠하랴 싶습니다. 달포마다 새로운 길을 걷고, 달포마다 속을 깨끗하게 비우고, 달포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고, 달포마다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 구태여 뭔 약을 안 먹어도 몸이 저절로 배앓이를 베풀어 주어 스스로 깨달아요. ‘오늘 나는 무언가 새로운 길을 걸었네’ 하고요. 배앓이가 좀 가라앉으면 아이들 곁에 누우려 합니다. 2017.4.1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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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



  인천 배다리로 바깥일을 보러 옵니다. 이곳에 있는 ‘배다리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다가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는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여느 길손집이라면 잠자리에 빗자루나 걸레가 없을 터이나, 이곳 ‘배다리 사랑방’은 배다리마을에서 손수 가꾸는 보금자리 쉼터예요. 마을 분들이 으레 이곳에서 모이거나 쉽니다. 저 같은 길손은 때때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습니다. 여느 길손집이라면 묵는 삯만 치르고 떠나면 그만일 텐데, 이곳은 마치 우리 보금자리하고 같은 쉼터라서 즐거이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큰 거울이 씻는방에 있기에 이 거울도 물때를 말끔하게 벗깁니다. 걸레질을 마치고 걸레를 빨았는데, 널 만한 데가 안 보입니다. 저는 짐가방에 늘 옷걸이를 여럿 챙기며 다녀요. 아이들하고 함께 마실을 나올 적에 저녁에 옷을 빨아서 널려는 뜻입니다. 저한테는 옷걸이가 넉넉히 있으니 가방에서 하나 꺼내어 젖은 걸레를 꿰어 마당에 널어 놓습니다. 제 옷걸이 하나가 이곳에서 아주 조그마한 살림살이 노릇을 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2017.4.1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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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뿌리를 심다가



  밤 한 시 사십오 분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가방을 꾸립니다. 아침 일곱 시 첫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새벽 다섯 시 무렵 소리쟁이잎을 썰어 설탕에 재웁니다. 소리쟁이잎은 어제 낮에 뜯어서 씻고 말려 놓은 뒤 저녁에 한창 썰어서 재웠는데, 마개까지 꽉 찼어요. 하루 지나면 조금 숨이 죽어 더 들어가리라 여겼습니다. 참말로 하루(라기보다 몇 시간) 지나니 소리쟁이잎 석 줌을 더 넣을 수 있습니다. 어제 심으려다가 미처 못 심은 파뿌리 다섯을 새벽 여섯 시에 심습니다. 곰밤부리를 호미로 훑어서 자리를 마련하고, 훑은 곰밤부리는 새로 심은 파뿌리 둘레에 고이 깔아 놓습니다. 지난해 봄께 심은 파는 겨울에도 씩씩하게 잘 살았고, 한 해 동안 꾸준하게 새 줄기를 내주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심은 파뿌리도 저마다 씩씩하게 새 줄기를 올리면서 우리한테 고맙게 새 줄기를 내주어요. 가볍게 다 심고서 들딸기꽃을 바라보고 갓꽃을 바라봅니다. 소담스레 붉은 꽃송이로 온통 잔치를 이룬 동백나무를 바라보다가 직박구리 한 마리가 초피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참 나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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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쓰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는 ‘그냥 하기’입니다. 내가 잘하는 일 하나는 ‘아무튼 해 보기’입니다. ‘될까 안 될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해 봅니다. 이렇게 해 보고서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거나 길을 돌립니다. 이렇게 해 보고 또 해 보고 자꾸 해 보면서 비로소 몸이 새롭게 깨달으면서 내 나름대로 나아갈 자리를 알아차립니다. 나는 1994년부터 2016년까지 헌책방 한 곳 이야기만 썼습니다. 2009년에 딱 한 번 마을책방 이야기를 썼고, 2016년에 두 번째 마을책방 이야기를 썼는데, 2017년 올해에는 여러모로 전국 곳곳에 있는 이쁜 마을책방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드디어 오늘 새벽 이 이야기 하나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한 걸음입니다. 2017.3.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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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아나〉를 보다



  영화 〈모아나〉를 아이들하고 보았어요. 이 영화파일을 장만한 지 한 달 만이지 싶어요. 요새는 디브이디가 아니어도 ㄴ에서 영화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으니 시골에서 지내며 ‘우리 집 극장’을 누리면서 여러 차례 다시 보며 고마워요. 이 영화를 앞으로 몇 차례 더 차근차근 보고서 느낌글을 써야겠다고 느껴요. 무척 아름다우면서 깊은 뜻이 흐르거든요. 모아나도, 마우이도, 할머니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닭도, 테피티도, 저마다 다 다른 뜻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마실길(여행길·여정)’을 나서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습니다. 2017.3.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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