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9. 마음껏 놀 수 있을 적에



  어릴 적에 홀가분하게 놀면서 하루를 누린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 씩씩하게 제 일을 찾습니다. 어릴 적에 마음껏 놀면서 몸을 가꾼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 튼튼하게 제 길을 걷습니다. 놀지 못한 아이는 일하지 못하는 어른이 됩니다. 놀이를 모르며 자란 아이는 일을 모르며 하루를 스치는 어른이 됩니다. 사진기를 장만해서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기에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회사에 나가 돈을 벌기에 일이 아닙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되자면, 즐거움과 삶과 사랑이 고루 어우러져야 합니다. 일이 일로 되자면, 기쁨과 삶과 사랑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마음껏 놀 수 있을 적에 아이가 튼튼하게 자랍니다. 마음껏 놀던 몸을 떠올리면서 새 아침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적에 어른으로서 환하게 웃고 따스하게 노래합니다.


  그러면, 어릴 적에 제대로 논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릴 적에 신나게 뛰논 적을 떠올리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이가 서른이거나 마흔이거나 쉰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이 서른에도 놀면 됩니다. ‘회사에서 땡땡이를 치라’든지 ‘학교를 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루에 십 분이나 한 시간이라도 들여서 ‘마음껏 노는 한때’를 누리라는 뜻입니다. 구슬치기를 하든 소꿉놀이를 하든, 깨끔발로 땅 짚고 헤엄을 치든, 온몸을 움직여 노는 한때를 누려야 해요. 몸을 쓰기 어렵다면, 별빛을 누릴 만한 곳으로 가서 밤하늘을 가없이 올려다보셔요. 별빛을 누리기 어려운 데에서 산다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달려요. 자전거를 타기 만만하지 않다면 골목동네를 어슬렁어슬렁 한두 시간쯤 걸어요. 골목동네를 찾기 어렵다면 어디이든 좋으니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다녀요.


  즐겁게 놀 때에 둘레를 살피는 눈썰미가 자랍니다. 기쁘게 놀 때에 온몸을 움직이는 흐름과 느낌을 배웁니다. 신나게 놀 때에 이 땅과 이웃과 숲과 들과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아름다운지 알아차립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사람은, 어릴 적에 놀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를 제대로 몰라, 홀가분하게 노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음껏 놀아요. 놀 때에는 눈치를 보지 않아요. 기쁘게 놀아요. 놀 때에는 오직 나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신나게 놀아요. 놀 때에는 참말 온몸을 구석구석 움직이면서 ‘싱그러이 살아서 숨을 쉬는 내 숨결’을 쩌릿쩌릿 만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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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8. 내가 바라보는 눈빛은



  내가 바라보는 눈빛은 내 마음입니다. 내가 사진으로 담는 빛살과 빛깔은 내 생각입니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서리는 목소리는 내 사랑입니다. 마음이 고스란히 눈빛으로 드러납니다. 생각이 찬찬히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낱낱이 목소리로 퍼집니다.


  다만, 더 나은 눈빛과 덜 좋은 눈빛은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 눈빛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눈빛이었어도, 모레와 글피에는 새로운 눈빛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제는 맑은 눈빛이 못 되었어도, 오늘은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맑은 눈빛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눈빛을 가다듬습니다. 가다듬은 눈빛으로 생각을 일굽니다. 생각을 일구어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습니다. 따스한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 찬찬히 거둡니다. 하나씩 돌아보고 살피다 보면, 어느새 내 눈에 온갖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하나하나 보살피고 아끼다 보면, 어느덧 내 손은 온갖 이야기를 골고루 엮은 꽃송이를 쓰다듬습니다.


  사진찍기는 너와 내가 마음으로 만나서 사랑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읽기는 너와 내가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꿈을 짓는 이야기를 그릴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고,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적게 찍을 수 있고, 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많이 쓸 수 있고, 많이 읽을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써낼 수 있고, 많이 읽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값비싼 장비를 갖추었기에 꼭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를 오롯이 누리는 삶이라 한다면 그저 한 장을 찍으려고 사진기 한 대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를 사랑으로 갈무리한다면 사진기가 없거나 사진을 찍지 않아도 마음이 넉넉하고 흐뭇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할 때에 기쁜지, 바라보고 느끼며 알 수 있으면 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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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7. 어둠이란 있을까



  사진을 찍는 일을 놓고 흔히 ‘빛과 어둠’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빛과 그림자’를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며, ‘하양과 까망’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이러한 말이 맞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말은 조금도 맞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은 아주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과 밤’을 말합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된다고 합니다. ‘해와 달’도 말하지요. 해가 지면 달이 뜬다고 말해요. 그러나, 달빛이란 처음부터 따로 없어요. 해가 달을 비추어 생기는 빛이기에, 달빛은 정작 달빛이 아니라 ‘햇빛’입니다. 햇빛을 달에 대고서 볼 뿐입니다.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란 무엇일까요? 빛을 비추면서 생기는 ‘빛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라고 하는 ‘새로운 빛’이 생깁니다. 아니,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은 ‘수많은 빛결 가운데 한낱 조그마한 조각’이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사진으로 찍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바라봅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람을 찍을 때에는 오직 사람만 봅니다. 나무를 찍을 적에는 오직 나무만 봅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저 그러한 줄 알 때에, 비로소 ‘사진으로 아로새기는 빛’이 어떠한 무늬요 갈래이며 숨결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안셀 아담스라고 하는 분은 ‘존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짓고 ‘빛을 가르는 틀’을 세웠습니다. 이녁은 오직 빛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시스템’은 ‘빛 계단’이나 ‘빛틀’이나 ‘빛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을 크게 아우르면서 보는 한편, 빛이 드리우는 때와 곳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빛조각을 조그맣게 따로따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오직 ‘사진’을 생각해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작품이 될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사진이 ‘전시장에 걸어서 비싸게 팔릴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이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이 사진이 ‘사회나 문화나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빛’만 바라볼 뿐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사진을 찍는 우리는 ‘사진’과 ‘빛’을 이루는 ‘삶’과 ‘사랑’을 바라보면서 슬기롭고 따스하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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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6. 한 줄기로 흐르는


  빛은 한 줄기로 흐릅니다. 물은 한 줄기로 흐릅니다. 이야기와 사랑과 꿈은 한 줄기로 흐릅니다. 빛은 이리저리 굽지 않습니다. 빛은 곧게 한 줄기로 흐르되, 곳곳으로 퍼집니다. 어디로든 곧게 퍼지면서 흐릅니다. 물 또한 이리저리 굽지 않습니다. 물은 곧게 한 줄기로 흐르되, 곳곳으로 퍼집니다. 어디로든 곧게 퍼지면서 흘러요. 이야기와 사랑과 꿈도 언제나 이와 같다고 느껴요. 따사로운 숨결과 같이 곧게 흐르는 이야기요, 포근한 바람과 같이 곧게 흐르는 사랑이며, 즐거운 노래와 같이 곧게 흐르는 꿈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곧게 한 줄기로 흐릅니다. 이곳을 기웃거리고 저곳을 기웃거린다 하더라도, 우리가 저마다 가야 할 길에 따라 곧게 흐르는 한 줄기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루려고 생각하는 사진을 이루려면 여러 가지 일을 겪어야 해요. 그래서 이곳도 기웃거리고 저곳도 기웃거립니다. 내 삶을 스스로 갈고닦으려면 온갖 일을 치러야 해요. 그래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합니다.

  어느 갈래에 서서 어느 사진을 찍든, 우리는 온갖 사진을 다 겪거나 치르면서 배웁니다. 어느 갈래에서 찍는 사진이든 온갖 갈래에서 보여주는 빛과 결과 무늬와 숨결과 소리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꽃을 찍을 적에 사랑스러운 곁님을 바라보듯이 찍습니다. 반가운 이웃을 찍을 적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듯이 찍습니다. 아리따운 모델을 찍을 적에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을 붙잡듯이 찍습니다. 길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이웃을 찍을 적에 너른 들을 샛노랗게 밝히는 가을 나락을 얼싸안듯이 찍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한 줄기로 흐릅니다. 삶이라는 한 줄기로 흐릅니다. 사진은 모두 한 줄기로 흐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빚는 이야기 한 줄기로 흐릅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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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5. 그림을 살리는 사진



  오늘날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는 꽤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기 앞서 여러 마을로 취재를 다니는데, 짧은 동안 온갖 곳을 두루 다녀야 할 적에는 밑그림을 그릴 겨를조차 내기 어려우니 사진을 바지런히 찍어요. 이렇게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서 그림이나 만화를 그려요. 그렇다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면서 늘 사진을 보고 그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꼼꼼하게 그려야 할 건물이나 물건이 있을 적에는 사진을 찍습니다. 건물이나 물건을 앞에 두고 몇 시간씩 들여 느긋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곧바로 그림을 그리지만, 이렇게 하기 어려운 자리에서는 사진을 찍은 뒤 그림을 새롭게 그려요.


  한편, ‘사진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헤아리려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두 눈으로 볼 때하고 사진기로 볼 때에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눈’과 ‘사진기 눈’은 달라요. 그림은 ‘사람 눈으로 본대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삭혀서 새로운 숨결을 담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리하여, 그림 한 장은 ‘눈으로 본 모습’을 그리되, 그림쟁이 마음속에서 새롭게 살아난 무늬와 결과 빛과 이야기를 되살리지요.


  지난날에는 사진쟁이가 그림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날에 처음 사진밭을 일군 이들은 ‘그림이 보여주는 무늬와 결과 빛과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면서 이를 사진으로도 담으려고 몹시 애썼어요. 이러던 흐름이 요새는 많이 뒤집어졌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림과 사진은 서로 도우면서 새롭게 태어나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림은 사진을 보며 배우거나 사진한테 새로운 숨결을 가르치고, 사진은 그림을 보며 배우거나 그림한테 새로운 숨결을 가르칩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쳐요.


  어른과 아이 사이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기만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동안 넌지시 어른을 가르쳐요.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이 어느새 새롭게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그림을 살리는 사진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사진이 그림에서 많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사진을 많이 살피고 돌아보는 까닭은, 그림이 사진을 많이 가르치면서 함께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사진기를 틈틈이 내려놓고 연필을 손에 쥐면 한결 재미있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려 보셔요. 사진기를 빌지 말고 ‘내 두 눈’으로 둘레를 살피면서 종이에 이야기를 그려 보셔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보는 눈’도 언제나 새롭게 거듭나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흐를 수 있습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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