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99. 새롭게 논다



  놀고 싶을 적에 놉니다. 놀고 싶으니 놉니다. 남이 시켜서 놀지 않습니다. 남이 가르쳐서 놀지 않습니다. 이렇게 놀아야 하지 않고, 저렇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아서 놉니다. 손수 놀이를 짓습니다.


  하루에 몇 분을 논다든지 몇 시간을 논다든지, 틀을 잡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만 논다든지 저기에서만 논다든지, 울타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놉니다. 하루 내내 놀 수 있고, 아주 살짝 놀 수 있습니다.


  언니나 오빠가 동생한테 놀이를 물려줄 수 있고, 어버이가 놀이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동무와 어울리며 놀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함께 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놀이가 반짝반짝 떠오릅니다. 오늘은 이렇게 놀지만, 모레에는 저렇게 놉니다. 날마다 새 마음이 되어 신나게 놉니다.


  사진을 찍고 싶을 적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남이 시켜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남이 가르쳐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이렇게 찍어야 하지 않고, 저렇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진감을 찾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손수 사진감을 짓습니다.


  하루에 몇 장을 찍는다든지, 어디에서 찍어야 한다든지, 누구를 찍어야 한다든지, 무엇을 찍어야 한다든지, 이런저런 틀을 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스승 몇 사람을 두고 배울 수 있고, 길잡이책을 읽으며 익힐 수 있으며,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삶을 가꾸는 동안 시나브로 삶을 익히듯이, 손수 사진기를 만지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을 익힙니다. 언제나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사진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고, 늘 사진기를 손에 쥐니 내 사진기는 내 손때에 낡고 닳으면서 새롭게 거듭납니다. 오늘은 이렇게 찍지만, 모레에는 저렇게 찍습니다. 날마다 새 마음이 되어 즐겁게 사진을 찍습니다.


  어릴 적부터 잘 놀던 사람이 사진을 잘 찍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활짝 웃고 노래하며 놀 줄 아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서 활짝 웃고 노래할 줄 압니다. 전문 지식을 갖추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거나 강의를 듣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스스로 놀이를 찾아서 기쁘게 노래하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습니다. 4347.11.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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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98. 노란 빛물결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부터 처마 밑은 조용합니다. 여름이 저물 무렵 처마 밑 새끼 제비는 날갯짓을 익혀 둥지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는 한동안 처마 밑 둥지에서 잡니다. 보름에서 한 달 사이는 이른아침에 둥지를 떠난 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고개 너머로 꼴깍 넘어갈 때에 돌아오지만, 날갯짓을 잘 익혀 몸에 힘이 붙은 새끼 제비들은 한 달 즈음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숲이나 들에서 다른 동무를 사귀었을는지 모르고, 먼먼 고장까지 날아가서 새로운 이웃을 만났을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제비는 무리를 지어 첫가을에 태평양을 가로지릅니다.


  처마 밑에서 하루 내내 듣던 제비 노랫소리가 사그라들 무렵부터 들빛은 푸른 물결에서 누런 물결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푸른 빛깔과 누런 빛깔이 살살 어우러지고, 나중에는 온통 샛노란 물결이 됩니다. 이러한 물결을 어쩌다 한 번 가을날 시골에 와서 바라보는 사람은 깜짝 놀랍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며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빛물결’을 늘 보는 사람도 깜짝 놀라요. 하루하루 아주 다르거든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모레가 달라요.


  아주 눈부시다 싶은 노란 빛물결일 적에 벼를 벱니다. 그래서, 아주 눈부시다 싶은 노란 빛물결을 볼 수 있는 때는 고작 하루나 이틀입니다. 도시에서 살며 시골을 살짝 지나가다가 들녘 노란 빛물결을 만났다면 한 해 가운데 하루나 이틀 동안 볼 수 있는 놀라운 들빛을 만난 셈입니다.


  《굴피집》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인 적이 있는 안승일 님은 ‘노란 빛물결’이 출렁이는 강원도 멧골자락 굴피집 마을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자그마치 열 해 동안 가을마실을 했다지요. 해마다 가을빛을 찍기는 하지만 ‘어딘가 아쉽다’고 느껴 이듬해에 다시 찍고, 다음해에 또 찍고 하다가, 열 해째에 이르러 비로소 ‘그래, 바로 이 빛물결이로구나’ 하고 느껴서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었다고 해요.


  가만히 보면, 가을날 노란 빛물결만 ‘한 해 가운데 하루나 이틀’이 아닙니다. 새봄에 돋는 풀잔치도 한 해 가운데 며칠이 안 됩니다. 겨우내 시든 풀빛과 봄에 돋는 풀빛이 어우러지는 빛잔치도 한 해 가운데 며칠이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새봄에 김이 폴폴 올라오는 논흙이나 밭흙 모습도 한 해 가운데 며칠 동안 볼 수 있었어요. 한 해 가운데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요? 능금꽃이 하얗게 터져서 하얀잔치를 이루는 날은, 벚꽃잔치나 살구꽃잔치나 포도꽃잔치나 배꽃잔치를 이루는 날은, 참말 한 해 가운데 며칠이나 될까요?


  하나하나 따지면, 우리가 누리는 삼백예순닷새는 날마다 새로운 ‘빛잔치’입니다. 오늘은 오늘 하루만 볼 수 있는 빛잔치가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어제는 어제 하루만 볼 수 있던 빛잔치가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오늘 이녁은 어떤 빛잔치를 마주하면서 하루를 여는가요?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우리 집 대문 앞 마을논 노란 빛물결은

이 사진을 찍은 이튿날 사라졌습니다 ^^;

참말 노란 빛물결은... 와 예쁘다 하고 생각하면

곧 사라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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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97. 책과 사진과 이야기



  책을 읽는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책방이나 도서관에 나들이를 가서 책에 흠뻑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리거나 누워서 읽을 수 있습니다. 버스나 기차나 전철에서 책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무릎에 책을 얹고 읽다가 스르르 잠들 수 있습니다. 어버이나 아이를 무릎에 앉혀 책을 읽힐 수 있습니다. 할매나 할배가 돋보기를 끼고 찬찬히 읽을 수 있습니다. 예쁜 그림책을 선물받은 아이가 머리에 책을 이고 웃을 수 있습니다. 마룻바닥에 아이들이 나란히 엎드려 햇살과 함께 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책꾸러미를 두 손에 가득 들고 집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 짐받이에 책을 묶고 숲으로 마실을 갈 수 있습니다. 뒷주머니에 자그마한 책을 꽂고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밥상맡에서 수저를 들다가 책에 눈길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인형을 한손에 쥐고 만화책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모습은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온갖 모습에 책이 살며시 깃들 테니까, 백만 가지나 천만 가지가 훨씬 넘는 이야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모습은 사진으로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책을 읽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는 어떤 이야기가 서릴 수 있을까요. 책과 사진과 삶은 서로 어느 만큼 맞닿거나 잇닿을까요.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불러 함께 그림책을 읽습니다. 작은아이가 그림책을 들고 와서 누나더러 그림책을 읽어 달라 합니다. 어버이가 두 아이를 불러 나란히 앉힌 뒤 천천히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글을 혼자서 잘 읽을 수 있는 아이가 어버이 무릎에 앉아 어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을 찍는 ‘소재’는 어느 것으로 잡아도 다 즐겁습니다. 글감이든 그림감이든 사진감이든 다 똑같습니다. ‘소재’가 남달라서 멋지거나 훌륭하거나 대단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소재는, 사진기를 빌어 우리 삶을 사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으면 어느 것이든 다 남다르고 멋지고 훌륭하고 대단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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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96. 밥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받습니다. 내가 손수 지은 밥을 손수 밥상에 올려 기쁘게 수저를 듭니다. 한집에 사는 곁님이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고, 내 어머니나 곁님 어머니가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며, 바깥에서 밥 한 그릇 사다 먹을 적에 다른 사람이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합니다. 어느 때이든 기쁘게 받는 밥 한 그릇입니다.


  아이들은 둘레에서 차린 밥을 받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손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아이더러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라고 이르는 어른은 없습니다. 더욱이, 아이더러 빈 그릇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시키는 어른은 없으며, 아이더러 벼를 베거나 볏섬을 나르라고 시키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가 걸음을 떼고 제법 높은 데까지 손을 뻗을 수 있으면, 들딸기는 손수 조금 훑을 수 있습니다.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손수 따거나, 밭자락 오이쯤 손수 딸 수 있어요. 이무렵에도 아이들은 어른이 딴 열매를 받아서 먹습니다.


  아이들은 칼질을 거들거나 마늘빻기를 거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저를 들며 방긋 웃고 노래하는 목소리로도 밥짓기를 함께 하는구나 싶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콩콩 뛰면서 노는 몸짓과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밥짓기를 거드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베푸는 기운을 받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넌지시 나누는 숨결을 얻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짓는 밥 한 그릇입니다. 함께 찍는 사진 한 장입니다. 함께 이루는 삶입니다.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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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95. 아기자기한 맛



  내가 어느 한 곳을 바라볼 적에는 내 앞에 있는 모습을 살핍니다. 뒤에 있는 모습을 살피지 못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을 적에는 우리 앞에 있는 모습을 살핍니다. 옆에 있거나 뒤에 있는 모습을 살피지 못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는 모습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서 사진 한 장으로 엮고 싶은 모습을 찰칵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 넣어야 했는데 미처 못 넣은 모습이 있고, 굳이 안 넣어도 되었는데 엉성하게 들어온 모습이 있습니다. 요즈음은 포토샵 같은 풀그림으로 ‘내키지 않는 모습’은 손쉽게 덜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진 여러 장을 모두어 ‘넣고 싶은 것만 넣은 새로운 모습’을 빚을 수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대로 찍은 다음에 사진을 손질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면 됩니다.


  사진에 넣고 싶은 모습이나 빼고 싶은 모습이란, 내 사진 한 장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 가지가 골고루 어울려서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기를 바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 사진기를 놀릴 적부터 잘 가누어서 뒷손질을 안 해도 되도록 찍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뒷손질을 하자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신나게 찍을 수 있습니다.


  뒷손질을 안 하는 사진이라면, 한 해 열 해 스무 해 흐르는 동안 새로운 멋이 풍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애먼 모습이 사진이 끼어들었다고 느끼지만, 나중에는 애먼 모습이 재미난 모습이라고 여길 만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불러들인다고 할까요. 뜻하지 않게 내 사진에 끼어든 어떤 모습이 시나브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린다고 할까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적에는 ‘군더더기’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넣고 싶은 이야기’만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사진을 찍을 적에는 ‘넣고 싶은 모습’만 넣기 어렵습니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군더더기’가 어느 틈에 살며시 끼어들 수 있습니다. 군더더기가 아주 작아서 처음에는 못 알아볼 수 있어요.


  군더더기로 여기면 언제까지나 군더더기입니다. 아기자기한 삶으로 바라보면 늘 아기자기한 삶입니다. 4347.11.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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