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3.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읽습니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습니다. 겨울에 책방이 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손이 시린 줄 모릅니다. 여름에 책방이 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몸에서 땀이 흐르는 줄 모릅니다. 책에 깊이 빠져들면, 추위와 더위를 모두 잊고 오로지 책과 하나가 됩니다. 이때에는 어떤 추위나 더위도 ‘책 읽는 사람’을 휘두르거나 들볶지 못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합니다.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나눕니다. 옆에서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둘레에서 가로막거나 괴롭히건 말건, 사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할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나누지요. 그래서, 사랑 앞에는 어떤 것도 놓이지 못합니다. 사랑 앞에는 오직 사랑만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수없이 터지는 곳에서도 씩씩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오직 사진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주 조용하거나 고요한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추위나 더위가 ‘사진 찍기’를 막지 못합니다. 이와 함께, ‘사진 읽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나 걸림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온갖 이론이나 비평으로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내가 읽으려는 사진’은 ‘내 마음결에 따라서 읽’기 마련입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수많은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아니어도, 마음이 따사롭거나 넉넉하다면,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모든 밥을 다 짓습니다. 그러나, 밥을 즐겁게 지으려는 마음이 못 된다면, 수십 가지나 수백 가지 밑감이 있어도 맛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밥을 겨우 지을 테지요.


  밑감이 넉넉해야 밥을 잘 짓지 않아요. 사진감(사진 찍을 소재)이 많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밑감을 다루는 손길이 밥을 낳듯이, 사진감을 마주하는 눈길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웃을 마주하고 동무와 어깨를 겯는 몸짓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책을 읽듯이, 찍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사진을 찍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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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2. 새로운 맛을 겪는다



  고구마를 삶을 적에는 감자를 함께 삶습니다. 단호박이 있으면 단호박도 함께 삶는데, ‘그냥 호박’이 있으면 ‘그냥 호박’도 함께 삶고, 당근이나 달걀도 함께 넣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여러 가지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밥상에 그릇을 올릴 적에는 으레 단호박을 먼저 올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먼저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어서, 먼저 먹고 싶은 것만 먹다가 배가 다 부르기 마련이거든요. ‘먼저 먹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른 뒤에도 먹지만, ‘나중에 먹고 싶은 것’은 배가 고프지 않다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래도, 밥상에 두 가지가 있으면 ‘굳이 다른 한 가지를 안 먹는다’고 할 만합니다. 둘 다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두 가지를 함께 올리면 ‘따끈따끈 단호박’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예 못 느끼거나 못 겪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단호박만 먼저 올려’서 아이들이 어느 만큼 먹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러고 나서 감자를 올리고, 맨 나중에 고구마를 올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중국집에서 여러 가지 밥을 흐름에 따라 올리는 결하고 닮은 셈입니다. 차츰 더 맛나거나 새로운 밥을 올리듯이, 단호박이랑 당근이랑 감자랑 고구마, 이러한 흐름으로 하나씩 올립니다. 네 가지 모두 새로운 맛으로 느끼고, 맨 마지막에는 ‘물로 삶지 않’고 ‘김으로 삶’은 남다른 맛을 느끼기를 바라요.


  사진을 찍는 사람마다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 마련입니다. 아주 마땅한 흐름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 사진으로 찍다 보면,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그예 한 가지 눈길’로밖에 못 보는 굴레에 갇힙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꾸준하게 돌아보도록 스스로 다스릴 수 있으면, 다른 여러 가지를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바라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마주하’듯이 마주하면서, 이제껏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될 수 있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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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1. 이 손과 저 손은



  모든 사진에는 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는 눈부실 수 있고, 어느 이야기는 잔잔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는 아름다울 수 있고, 어느 이야기는 조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는 무지개와 같고, 어느 이야기는 별빛과 같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높고 낮음을 가릴 수 없고,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습니다.


  이 손과 저 손을 바라봅니다. 왼손은 더 낫고, 오른손은 덜 나을까요? 아닙니다. 사회나 정치에서는 좌파와 우파라든지, 좌익과 우익이라든지 하고 둘로 가르곤 하는데, 어느 한쪽이 나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나쁠 수 없습니다. 둘은 둘대로 다른 숨결이고, 둘은 둘대로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우리는 두 손을 함께 써서 삶을 짓습니다. 한손으로는 삶을 못 짓습니다.


  다만, 어느 손을 쓰든 다른 손이 아름다운 줄 알아야 해요. 왼손은 오른손을 아끼고, 오른손은 왼손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왼손은 오른손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오른손은 왼손을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은 싸우는 사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몸인 사이입니다. 그러니, 두 가지 사진이 있으면, 두 가지 사진은 참으로 다르구나 싶으면서 참으로 같구나 싶은 이야기가 흘러요.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우리가 스스로 짓는 삶을 곱게 노래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쪽이 없어져야 할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한쪽을 해코지하거나 손가락질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한쪽을 들볶거나 괴롭혀야 할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한쪽을 얕보거나 깎아내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 손과 저 손을 바라봅니다. 두 손은 저마다 다르기에 아름답고, 저마다 다르기에, 두 손을 모아서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한손으로는 못 짓는 이야기를 두 손으로 짓습니다. 한 손으로는 못 이루는 삶을 두 손으로 이룹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한손으로 받치고 다른 한손으로 단추를 누릅니다. 두 손이 하는 일은 다르지만, 두 손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움직이면서 ‘사진짓기’를 합니다.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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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0. 이 사진 한 장을 보면



  이 사진 한 장을 보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면, 또 내 이웃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면, 내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까요. 사진을 보자마자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 수 있고,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난 뒤에 이야기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재빠르게 떠오르는 사진이 하나 있고, 이야기가 천천히 떠오르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이야기가 재빨리 떠오를 만한 사진이 내 마음을 끄는가요, 오래도록 지켜보고 나서야 이야기가 떠오를 만한 사진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가요?


  더 낫거나 더 좋은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이야기가 선뜻 떠오른 대서 더 나은 사진이 아닙니다. 두고 두고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가 피어오르기에 더 좋은 사진이 아닙니다.


  더 나은 사진이 없으며, 더 좋은 사진이 없습니다. 모두 사진입니다. 모두 이야기를 품은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에 어떤 이야기를 심으려 하는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는 사진이 아닌, 내 마음에서 자랄 이야기를 찬찬히 생각해서 사진기 단추를 찰칵 누르면 됩니다.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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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7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좋아요.
찍은 사람이 담은 이야기도,
제가 의미를 부여한 이야기라도 말이지요...^^

숲노래 2015-01-27 14:46   좋아요 1 | URL
모든 사진에는 다 이야기가 있어요.
천천히 떠오르는 이야기와
곧장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모든 사진을 좋아할 수 있어요 ^^
 

사진 찍는 눈빛 119. 언제 웃을까



  오늘 하루를 즐겁게 누리면, 오늘 찍는 사진에는 즐거움이 스며듭니다. 오늘 하루를 슬프게 보내면, 오늘 찍는 사진에는 슬픔이 스며들지요. 오늘 하루를 기쁘게 누리면, 오늘 찍는 사진뿐 아니라 오늘 마주하여 읽는 사진에서 기쁨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를 고단하게 보내면, 오늘 찍는 사진뿐 아니라 오늘 마주하여 읽는 사진에서 고단함을 엿봅니다.


  사진을 찍고 나누는 까닭은 달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마음은 기쁨이 되거나 슬픔이 될 수 있는데, 어떤 마음이 되든, ‘찍은 이(작가)’와 ‘보는 이(독자)’가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한 자락을 길어올릴 수 있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웃고 싶을 적에 웃습니다. 아무 때이든 웃고 싶다면 늘 웃습니다. 울고 싶을 적에 웁니다. 어느 때이든 울고 싶다면 언제나 웁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울고 축 처져 동무한테 기대면서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지쳐서 시무룩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한 장에 고단함과 시무룩함이 물씬 뱁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늘 맑게 웃고 밝게 노래하는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겉보기로는 헐벗은 모습일는지 모르지만, 사진 한 장에 기쁨과 웃음과 노래가 가득 뱁니다.


  가난한 나라에 찾아갔기에 ‘가난’만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잘사는 나라에 찾아갔기에 ‘부자’만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가난이나 부자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사진은 겉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모습을 함께 찍습니다. 사진이 문화가 되거나 예술이 되는 까닭은 겉모습만 찍지 않고 속모습을 함께 찍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새롭게 드러나는 속모습을 엿보면서 이를 알뜰히 담아내어 보여주기에, 사진이 즐겁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 흐르는 이야기는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길어올리는 이야기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입니다. 언제 웃을까요? 삶이 즐거워서 웃습니다. 언제 사진을 찍을까요? 스스로 삶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때에 찰칵 하고 한 장 찍습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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