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09. 사진을 왜 찍는지 돌아보기



  사진을 찍은 지 사흘쯤 되든, 사진을 찍은 지 서른 해쯤 되든, 사진을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찍고 싶은 사람이라면, 늘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 하면, ‘나는 사진을 왜 찍지?’입니다.


  다른 사람 말을 하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선물하고 싶어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내가 만난 그 사람한테 ‘그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누렸다’는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종이로 뽑은 뒤, 책 사이에 살짝 꽂아서 가만히 내밉니다.


  나는 헌책방이라는 곳을 오랫동안 드나들면서 뒤늦게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처음 사진으로 찍을 적부터 품은 생각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언제나 이곳(이 헌책방)에 선물할 수 있을 만한 사진이 되도록 하자’고 생각합니다. 헌책방에 찾아온 손님을 찍은 사진이 있으면 두 장을 뽑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헌책방으로 다시 찾아가면 헌책방지기한테 사진 두 장을 건네면서, 하나는 헌책방지기한테 ‘헌책방을 찾아온 사람 자취’를 푼푼히 돌아보는 이야기꾸러미가 되도록 하고, 다른 하나는 ‘헌책방을 찾아온 손님’이 ‘책을 조용히 누리는 모습’이 이렇게 곱고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헌책방이라는 곳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큰 헌책방’이나 ‘작은 헌책방’을 따로 가리지 않았으나,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거의 사진으로 안 찍었습니다. 왜냐하면 청계천은 너무 많은 사람이 지나칠 뿐 아니라, 초상권을 어떻게 할는지 몹시 힘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숱한 관광객이 눌러대는 사진기 단추 소리 때문에 웬만한 헌책방지기는 늘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애써 예쁜 사진 한 장 찍었어도 ‘사진에 찍힌 책손’을 다시 만나서 사진을 건네기란 너무 어렵거나 아예 꿈도 못 꿀 만하구나 싶었습니다. 2001년부터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이런 느낌은 똑같습니다. 헌책방지기를 찍으면 이듬해에 찾아가서 드리기라도 할 수 있으나, 한 번 스치듯 찾아오고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 책손한테는 어떻게 사진을 건넬 길이 없고, 어느 한 곳을 단골로 드나들지 않는 책손이라면, 이분을 만나서 사진을 선물할 길이 없기도 합니다.


  ‘서울 청계천’이나 ‘부산 보수동’은, 사진 찍기에 좋은 곳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사진 찍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이웃을 사귀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진으로 책사랑을 키우기에는 그리 마땅하지는 못하다고 느낍니다. 이웃을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빨리빨리 지나가야 하는 마당에 이웃을 사귈까요?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나요? 왁자지껄 시끄럽고 어수선한 곳에서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는데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는가요? 책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책탑이나 책꽂이를 그럴듯하게 사진으로 찍어서 멋스럽게 전시하면 되나요? 책 알맹이를 헤아리지 않고 책 껍데기만 번드레레하게 내세우면 되나요?


  나는 내가 단골로 다닌 모든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었고, 내가 단골로 다닌 모든 헌책방에 ‘내가 그 헌책방을 찍은 사진’을 모두 종이로 뽑아서 드렸습니다. 낱장으로 드리기도 했고, 사진첩으로 엮어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피시다가 문득 내 사진에 찍힌 여러 책손은, 헌책방지기가 징검다리를 놓아서 사진을 건네주셨고, 헌책방지기가 ‘내 사진에 찍힌 책손’한테 사진을 건넬 적에 으레 이야기꽃이 즐겁게 피어났습니다.


  헌책방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책터에서 책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즐기는 이야기가 샘솟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헌책방이라고 하는 아기자기한 책터에서 책을 돌보고 손질하면서 가꾸는 숨결이 흐르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헌책방이라고 하는 사랑스러운 책터에서 책을 노래하고 꿈꾸면서 어깨동무하는 웃음이 터지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꼭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책손이 찍은 헌책방지기 얼굴이나 헌책방 풍경을 헌책방 책꽂이 한쪽에 핀으로 꽂은 모습을 볼 때면, ‘사진을 찍는 보람이나 기쁨이나 뜻’은 바로 이러한 데에 있구나 하고 늘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이러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어요. ‘내가 찍은 사진을 헌책방지기가 이녁 살림집에 커다랗게 붙일 만하다고 느껴서, 참말 커다랗게 뽑은 사진을 붙일 수 있’게 이끄는 사진을 찍자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진찍기를 글쓰기와 똑같이 봅니다. 글을 쓰는 까닭은 ‘내 지식을 자랑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까닭은 ‘내가 온삶에 걸쳐 깨닫고 북돋우며 일군 슬기를 널리 나누려는 뜻’입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 작품을 자랑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사진이라는 틀을 빌어 서로서로 얼마나 사랑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기쁘게 삶을 짓는가를 함께 보고 함께 웃으려는 뜻’입니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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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사진이고, 이곳 헌책방지기는 이 사진을 커다랗게 뽑은 액자를 이녁 일터인 헌책방에 걸어 주셨습니다.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데에는 이 사진이 안 걸렸지만, 내가 사랑하는 헌책방에 걸렸기에 언제나 즐겁고 고맙습니다. 2003년 11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고 보니 열 해 넘게 그 헌책방을 예쁘게 수놓아 주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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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키키 2014-12-1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똑같이 본다... 쉬운 말인 듯 하지만 울림이 크네요. 제 사진찍기나 글쓰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숲노래 2014-12-16 12:26   좋아요 0 | URL
사진과 글뿐 아니라,
밥짓기와 노래하기와 놀이하기
모두 같아요.
웃기와 울기와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날과
서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는 일도,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살림을 꾸리는 모든 일도
다 똑같아요 ^^
 


사진 찍는 눈빛 108. 늦가을 숨결



  따스한 볕을 받고 돋는 풀이 있고, 차가운 바람을 받고 시드는 풀이 있습니다. 한 해에 여러 차례 다시 돋고 새로 돋는 풀이 있으나, 한 해에 한 차례 돋고 나면 시들어 이듬해가 되어야 비로소 만나는 풀이 있습니다. 들을 보면 철마다 여러 풀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붉게 시들면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풀이 있고, 짙푸른 잎사귀를 내밀면서 흙에 뿌리를 내리려는 풀이 있습니다. 씨앗을 퍼뜨리고 나서 쓸쓸하게 선 꽃대가 있고, 늦가을에도 씨앗을 맺으려고 애쓰는 꽃대가 있습니다.


  활짝 웃는 아이가 있고, 고단해서 곯아떨어진 아이가 있습니다. 빙그레 웃는 이웃이 있고, 아파서 이맛살을 찡그리는 이웃이 있습니다. 모두 다른 삶이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활짝 웃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볼 테고, 누군가는 아파서 눈물을 짓는 아이를 찬찬히 어루만질 테지요.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에는 우리 숨결을 담습니다. 늦가을에 시드는 풀줄기와 늦가을에 새로 돋는 풀줄기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오직 아스팔트만 있는 도시에서 자동차 바퀴를 쳐다보며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늦가을 숨결을 찍은 사진을 보면, 늦가을을 느낍니다. 철을 헤아릴 길이 없는 도시 한복판 아스팔트를 찍은 사진을 보면, 철이 사라지거나 잊혀진 도시 얼거리를 느낍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하늘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별잔치를 바라보기에 별잔치 빛살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마주하기에 사랑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기에 눈물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숨결로 사진이 한 장 태어납니다. 4347.12.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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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07. 스스로 갈고닦기



  종이비행기를 어떻게 하면 잘 날릴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스스로 바지런히 접고 또 접으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연을 어떻게 하면 잘 날릴 수 있느냐 하고 물을 적에도, 스스로 바지런히 날리고 또 날리라는 말만 들려줄 뿐입니다. 바느질을 잘 하는 사람도,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도, 밥을 잘 짓는 사람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힘을 잘 쓰는 사람도, 낫질을 잘 하는 사람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바지런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하고 거듭 하며 한결같이 할 때에 시나브로 솜씨가 몸에 붙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꾸준히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잘 읽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이때에도 똑같지요. 사진을 꾸준하게 보고 또 보면 돼요.


  나무를 잘 알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 생각해 보셔요. 나무도감을 들춘다고 해서 나무를 잘 알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다녀야 나무를 잘 배우지 않습니다. 손수 나무를 심어서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돌볼 때에 비로소 나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잘 돌볼까요? 아이를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찬히 마주하고 들여다보면서 아끼고 사랑하면 잘 돌볼 수 있습니다. 이리 하라고 다그치거나 저리 하라고 몰아세우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합니다. 아이가 신나게 뛰놀면서 튼튼하게 자라도록 지켜보면서 사랑하면 누구나 아이를 잘 돌봅니다.


  스스로 일구는 삶이요, 스스로 갈고닦는 사진입니다. 내 사진이 아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힘껏 갈고닦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사진이 영 미덥지 않다면 앞으로 씩씩하게 더 갈고닦으면서 키워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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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06. 고운 손놀림으로 빚는다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늘 마십니다. 그렇지만 바람을 늘 마시는 줄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람을 안 마시면 그대로 목숨이 끊어지지만 정작 바람을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마실 적마다 ‘나는 바람을 마시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삶이 될까요. 쉴새없이 마시는 바람이기에 쉴새없이 바람만 생각하다가 다른 일은 못 할까요? 아니면, 바람을 마실 적마다 ‘나는 바람을 마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기에 언제나 즐거우며 고맙고 사랑스러운 나날인 줄 여길 만할까요?


  사랑을 속삭일 적에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속삭일 적에 사랑을 생각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참말 생각해 볼 노릇이지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 없습니다.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속삭입니다. 사랑을 안 생각하면서 입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시늉을 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찬찬히 생각하기에 밥맛을 느낍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생각하지 않으면 뱃속에 먹을거리를 채우기만 할 뿐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락이나 높낮이는 잘 맞추더라도 다른 사람 가슴으로 스며들 만한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 단추를 누를 적이든 사진기를 어깨에 걸 적이든 사진기는 옆에 치우고 다른 볼일을 볼 적이든 늘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살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고 할 적’에만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고 할 적’에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찍기가 아닌 ‘일하기’만 하는 셈이기에, 사진을 낳지 않고, ‘일거리’만 낳아요.


  종이를 접어서 종이비행기를 빚는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오로지 종이비행기만 생각합니다. 다른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득 종이비행기만 생각하기에 고운 손놀림으로 종이비행기를 빚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이란, 삶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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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05. 빛과 빛살



  빛이 한 줄기 퍼질 적에 문득 눈길이 갑니다. 빛이 퍼지는 곳을 바라봅니다. 내 눈은 저절로 빛으로 끌립니다. 아침에 동이 트면서 햇살이 곱게 스며들 적에는 아침햇살로 눈길이 가고, 저녁에 달빛이 드리울 적에는 달빛으로 눈길이 갑니다. 어두운 곳에서 길을 찾을 적에도 밝은 곳을 살핍니다.


  해는 우리한테 빛과 볕과 살을 베풉니다. 빛으로 빛깔을 느끼고 볕으로 따스함을 누리며 살로 기운을 찾습니다. 글을 읽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소리로 듣고, 노래를 부르면 캄캄한 곳에서도 가슴으로 주고받는데, 사진은 밝은 곳에 있지 않는다면 나누지 못합니다.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사진을 볼 수 없습니다. 사진은 ‘찍기’와 ‘읽기’를 함께 할 때에 이루는 만큼, 사진으로 나아가자면 밝은 데를 볼밖에 없다고 할 만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빛과 볕과 살을 받아서 태어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도 빛과 볕과 살을 받아서 싱그럽습니다.


  우리 몸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은 우리가 먹은 대로 이루어질 테니, 우리가 먹는 밥은 햇빛과 햇볕과 햇살이 있어 얻는다면, 우리 몸도 빛과 볕과 살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몸도 조그마한 해님이라고 하면 될까요.


  고기밥을 즐기는 사람 몸에서는 고기 냄새가 납니다. 풀밥을 즐기는 사람 몸에서는 풀 냄새가 납니다. 물고기를 만진 손에서는 비린내가 납니다. 풀을 뜯은 사람 손에서는 풀내가 납니다.


  빛을 보려면 온몸이 빛이어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빛을 만지고 다룰 때에 빛을 보리라 느낍니다. 그림자를 보려면 온몸이 그림자여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그림자가 되고 그늘에 깃들면서 어두운 곳에 있어야 그림자도 그늘도 어두움도 보리라 느낍니다.


  빛을 찍지만 빛만 찍지는 않는 사진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고루 어우러지지만, 빛과 어두움 두 가지로만 이루지는 않는 사진입니다. 빛은 어디에서 나오고, 빛줄기와 빛살과 빛결을 어떻게 가눌 만할까요. 날마다 사진을 찍더라도 늘 스스로 되묻습니다. 내 빛과 내 빛줄기와 내 빛살과 내 빛결은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흐르는지 스스로 묻고 생각합니다. 지나치면 아무것도 없지만, 지나치지 않고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면 들꽃과 들풀은 늘 나한테 빛이 되고 빛살이 됩니다. 지나치면 그저 지나치며 아무 이야기가 없지만, 지나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살펴보면 모든 이야기는 바로 내가 끌어내는 줄 알아차립니다.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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