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79. 하늘을 움켜잡는다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물을 밟고 걸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와 함께 보는 영화 〈말괄량이 삐삐〉를 보면, 아홉 살에서 열 살로 넘어가는 ‘삐삐’는 하늘을 날고 물을 밟으면서 걷습니다. 삐삐와 함께 노는 동무는 아무도 하늘을 못 날고, 물을 밟으면서 걷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삐삐는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고, 무엇이든 척척 잘 던지며, 기운이 아주 셉니다. 삐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까요?


  삐삐라는 아이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빙빙 날다가 아니카한테 말합니다. “하늘을 나는 건 말이야, 너는 물론 빗자루가 못 나는 거를 알지만, 빗자루는 그거를 모르기 때문이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알까요? 우리는 무엇을 모를까요? 우리는 하늘을 못 나는 줄 알기 때문에 하늘을 못 날지 않을까요? 우리는 물을 밟으며 걸지 못한다고 알기 때문에 물을 밟으며 못 걷지 않을까요?


  나는 이를 사진을 놓고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는 아름다운 사진을 못 찍을’까요? 잘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사진을 잘 못 찍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말 사진을 잘 못 찍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사진을 잘 찍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말 사진을 잘 찍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찍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찍고 싶은 사진을 이루려고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찍고 싶은 사진을 생각했으면, 찍고 싶은 사진을 ‘어떻게 찍겠노라’ 하고 온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을 움켜잡습니다. 하늘을 움켜잡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품에 안습니다. 바다를 품에 안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무처럼 즈믄 해를 삽니다. 나무처럼 즈믄 해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롯이 사진입니다. 나는 오롯이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옹글게 사진입니다. 나는 옹글게 꿈을 꾸고 생각을 짓기 때문입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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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8. 내 눈길이 가는 곳



  내 눈길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내 눈길이 가는 곳은 내가 바라보는 곳인데,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지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눈길이 가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책방에서 책꽂이 한쪽을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때 우리는 어느 책을 바라볼까요? 그저 아무 책이나 바라볼까요? 이때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을 테고, 내가 코앞에서 바라보지만 내 눈에 안 들어오는 책이 있어요. 내 눈에 들어오지만 내가 딱히 안 바라는 책일 수 있고, 내 눈에 안 들어왔지만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책일 수 있어요.


  어느 한 곳을 바라본다고 할 적에 찬찬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이 참으로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인지, 아니면 그저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본 곳인지, 하나하나 짚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아무 곳에나 사진기를 들이밀면서 찍을 수 없어요. 아무 곳이나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이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두 장 나올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 아무 생각이 없이 찍는 사진은 내 마음에 들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찍겠노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찍어야 비로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스스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에는, ‘바라보기’부터 합니다. 바라보기를 즐겁게 이룬 뒤에 ‘찍기’가 됩니다. 즐겁게 찍기를 하면, 이제 이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에 ‘아로새기기’가 돼요. 바라보기에서 찍기가 나오고, 찍기에서 아로새기기가 나옵니다. 이 다음은 무엇일까요? ‘이야기’입니다. 이웃과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는 이렇게 태어납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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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7. 나하고 같이 보겠니



  아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어버이가 아이를 부르는 일이 잦고, 아이가 어버이를 부르는 일이 잦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어버이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희 눈에 곱게 보이는 것이 있을 적에도 어버이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에 즐겁게 드는 것이 있을 적에도 어버이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맛난 것이 있을 적에 혼자 다 먹지 않고, 동생을 부르든 언니를 부르든 어버이를 부르든 동생을 부르든, 누군가를 꼭 부릅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함께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갓 태어난 뒤부터 찍은 사진을 조그마한 사진첩에 그러모읍니다. 아이들은 가끔 이 사진첩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이렇게 어린 모습으로 지낸 줄 미처 못 떠올리고는 합니다. 깔깔깔 웃으면서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이러면서 어머니나 아버지를 부르면서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것 좀 봐요! 하하하!”


  사진을 찍는 우리는 이 사진을 누구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될는지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 혼자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한솥밥 먹는 한집 사람들과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낯선 수많은 이웃하고도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돌아봅니다.


  내가 즐겁고 기쁘면서 곱게 찍은 사진은 나한테 낯선 이웃한테도 즐겁고 기쁘면서 고운 빛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나한테 낯선 다른 이웃이 즐겁고 기쁘면서 곱게 찍은 사진은 나한테까지 즐겁고 기쁘면서 고운 빛을 베풀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나한테 낯선 누군가한테까지 푸른 숨결로 다가갈 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활짝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라면, 내 웃음이 천천히 흘러 ‘웃음을 바라는 이웃’ 가슴으로 살며시 다가갈 만합니다. 내 이웃이 까르르 노래하면서 찍은 사진이라면, 내 이웃 웃음이 가만히 흘러 ‘웃음을 기다리는 내’ 가슴으로 조용히 다가올 만합니다.


  재미난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맛난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기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아름다운 숲길을 함께 걷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함께 보면서 어깨동무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나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 마음’을 아이한테서 늘 새롭게 배웁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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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6. 언제부터 찍었을까



  밥을 먹기 앞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차린 밥상을 바라보다가 ‘내가 차린 이 밥상이 퍽 예쁘네’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일곱 살과 네 살 어린 아이들이 수저질을 하면서 밥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신나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이 예쁘다고 느껴서 한 장 찍습니다.


  사진기가 없으면 모두 눈으로 지켜봅니다. 눈으로 지켜본 뒤 마음에 담습니다. 눈으로 지켜본 모습을 마음에 담아 이야기로 새록새록 갈무리합니다.


  나는 사진을 언제부터 찍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두 손에 사진기를 쥐기에 사진을 찍는다고도 하지만, 두 손에 아무것이 없었어도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첫 사진’입니다. 이를테면, 일곱 살 적에 동네 동무들과 누리던 소꿉놀이가 ‘첫 사진’입니다. 동무들과 웃고 떠들면서 뛰놀던 이야기가 ‘첫 사진’이고, 이마를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달리던 이야기가 ‘첫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으나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었으나 그만 사진을 잊거나 잃으면서 이야기를 잊거나 잃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고 마음으로도 잊거나 잃어서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놀려서 한 장 남기기 앞서,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사진기를 놀리기까지,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흐르면서 즐겁게 짓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야 할 텐데, 사진기를 더 빨리 장만해야 사진을 더 많이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까지 내 눈을 거쳐서 내 마음이 흐뭇하게 살찌거나 자라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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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5. 너는 어디에



  사진을 찍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서울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시골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서울 종로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시골마을 작은 집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서울 종로 뒷골목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시골마을 작은 집 텃밭에 있을까요. 내가 선 곳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선 이곳에서 어떤 사진을 찍는지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선 이곳에서 어떤 사진을 왜 찍는지 생각합니다.


  사진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었을까요, 아니면 이름을 안 남기려고 사진을 찍었을까요?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그저 즐겁게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사진역사를 찬찬히 읽다 보면, 적잖은 이들은 ‘역사에 남길 만한 사진’을 찾아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역사에 남길 만하다 싶은 이야기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셈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도 ‘역사에 남길 만한 이야기’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술이 될 만한 이야기’라든지 ‘문화가 될 만한 이야기’라든지 ‘사회 문제로 크게 불거질 만한 이야기’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은 참말 역사와 예술과 문화와 사회 문제가 될 만한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역사가 되어야 사진일까요? 예술이 되지 않으면 사진이 아닐까요? 문화로 피어나지 않으면 사진이 아닌가요? 사회 문제를 터뜨리거나 건드리지 못하면 사진이 되지 못할까요?


  예나 이제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은 ‘내가 가장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나 숲이나 물건’입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역사나 예술이나 문화나 사회 문제는 헤아리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꿈·사랑·믿음·웃음·노래·이야기·삶’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어요.


  곰곰이 살피면, 시(동시)나 소설(동화)이나 수필이나 그림책 같은 문학을 보면, 거의 모든 작품이 ‘꿈·사랑·믿음·웃음·노래·이야기·삶’을 생각하면서 태어납니다. 예술·문화·역사·사회 문제를 건드리거나 다루거나 생각하는 문학도 제법 많지만, 사람들한테 널리 읽히거나 오랫동안 읽히는 문학은 으레 ‘꿈·사랑·믿음·웃음·노래·이야기·삶’을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나는 어디에 있는가요. 너는 어디에 있는가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나는 무엇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너는 무엇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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