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33. 코앞에서 본다



  책방마실을 하다 보면, 코앞에 있던 책을 놓치는 때가 있습니다다. 오랫동안 바라던 책을 코앞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코앞에서 놓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코앞에서 놓친 책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는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방 얼거리와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어요. 그래서 늘 드나드는 책방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자리 책시렁’을 그때그때 사진으로 찍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사진을 살피다가 ‘어라?’ 하고 놀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느 책시렁 코앞에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못 알아보거나 못 알아챈 책이 ‘사진에는 곱다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코앞에서 놓친 책은 다음에 다시 그 책방에 찾아간다고 해서 나한테 오지 않습니다. 새책방이라면 다시 장만할 수 있으나, 헌책방에서는 한 번 놓친 책은 꽤 오래도록 나한테 다시 오지 않습니다.


  코앞에 앉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코앞에 있으니 이 아이들을 늘 ‘바라본다’고 할 수 있으나, 내가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려 할 때에만 ‘바라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내 눈이 그쪽으로 갈 뿐 ‘보다’조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그야말로 온갖 곳에 ‘눈이 가’지만 온갖 것을 낱낱이 떠올리지 못합니다. 꽤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싶은 모습조차 제대로 못 떠올리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지 않았으니까요.


  코앞에서 자라는 들꽃을 못 볼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움이 트려는 겨울눈을 못 볼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 꾀꼬리를 못 볼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팔랑거리는 멋진 제비나비를 못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코앞뿐 아니라 꽤 먼 곳에 있는 수많은 모습을 알아보거나 알아차리거나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무엇이든 다 알아보고 알아차리며 알아내요.


  사진찍기는 ‘마음을 기울이는 일’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내 사진 한 장으로 내 삶을 기쁘게 아로새깁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무리 포토샵을 만지작거리거나 요리조리 꾸미더라도 ‘마음이 안 담긴’ 밋밋한 ‘작품’일 뿐입니다. 4348.3.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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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2. 사진으로 가는 길



  ‘글’이 없던 때에는 사람들이 누구나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글’이 태어난 뒤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글’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말로도 이야기를 나누지만, 글로도 이야기를 넉넉히 나눕니다. 다만, 글이 태어난 지 아직 얼마 안 된 탓에 글로는 제 느낌이나 뜻을 모두 실어서 보내거나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그릇’인 말은 아주 홀가분하면서 살가이 주고받는 ‘이야기 그릇’ 구실을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그릇인 글은 때때로 서로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야기 그릇’이 아닌 ‘싸움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과 생각을 주고받는 이야기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이 태어난 지는 그야말로 얼마 안 됩니다. 사진이 널리 퍼진 때를 헤아리면 사진은 그야말로 갓난쟁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사진으로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만, 아직 어리거나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모습이 곧잘 드러나기도 해서, ‘사진이라는 이야기 그릇’은 앞으로 더 자라야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다루려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사진에서는 ‘실험 사진’이 많아요. ‘만드는 사진’이 무척 많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글을 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요즈음은 ‘실험 글’은 거의 사라졌다 할 만하지만, ‘억지로 만드는 글(억지로 쥐어짜는 글)’은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잘 헤아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실험 말’은 없습니다. 말을 실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만드는 말’은 아무한테서도 눈길을 못 받습니다. ‘억지로 쥐어짜는 말’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말하듯이 쓰는 글이 될 때에 글은 ‘이야기 그릇’ 구실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또한 말처럼 ‘그저 흐르면서 저절로 이야기가 되는 그릇’ 구실을 할 때에 참답게 사진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진이 사진다운 모습으로 뿌리를 내려서 잎을 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과 같은 길입니다.


  굳이 실험을 하거나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만지작거리거나 꼬물거려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저 그대로 드러내면서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글’은 ‘노래’나 ‘춤’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래서 노래와 춤을 헤아리면 글이 얼마나 어린지 잘 알 수 있어요. 쥐어짜는 노래나 춤은 재미없습니다. 억지로 만드는 노래나 춤은 귀와 눈을 아프게 합니다.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노래와 춤이 될 때에 비로소 귀와 눈을 즐겁게 합니다.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글일 때에 ‘이야기 그릇이 되는 글’이 됩니다. 이리하여, 사진도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사진이 될 때에 ‘이야기 그릇’이 되어요.


  그대로 찍으면 됩니다.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대로 나누면 됩니다. 그대로 즐기면 됩니다. 말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수수한 글이요, 말하듯이 찍는 사진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수수한 사진입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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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1. 슬픈 사진과 기쁜 사진



  사건이나 사고를 다룬다고 하는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은 으레 ‘충격(衝擊)’이 될 만한 사진으로 가려 합니다. ‘충격’은 “슬픈 일이나 뜻밖의 사건 따위로 마음에 받은 심한 자극이나 영향”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크게 움직이도록 이끄는’ 일이 ‘충격’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이나 사고를 크게 알아보거나 알아채도록 이끌어서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보여주는 사진이, 어느 모로 본다면,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이라 할 만합니다.


  신문이라든지 다큐멘터리를 보면, 으레 이런 사진을 넣으려고 몹시 애씁니다.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여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모습을 찍기에 ‘놀라운’ 사진이거나 ‘훌륭한’ 사진이거나 ‘뜻있는’ 사진이 될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왜 ‘말’로 할 적에는 안 믿다가 ‘사진’으로 보여줄 적에는 믿는다고 할까요? 말로만 하면 거짓이라고 여길까요? 사진으로는 거짓을 꾸미지 않을까요? 무슨 일을 하다가 찍혔는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잘못 생각할 수 있으며,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엉뚱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땅바닥에 구부정하고 앉아서 몸을 폭 숙인 아이는, 배고파서 이리 있을 수 있으나, 다리가 아파서 이리 있을 수 있고, 졸려서 이리 있을 수 있으며, 놀이 삼아 이리 있을 수 있고, 그냥 이리 있을 수 있으며, 땅바닥을 기는 작은 벌레를 보려고 이리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스스로 가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밝힐 수 없습니다. 쪼그려앉아서 땅바닥을 바라보며 몸을 폭 숙인 아이 뒤에 커다란 독수리가 한 마리 있다면, 이러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놓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겠는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사진은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빌어서 온 삶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어느 한 가지 모습을 잘라서 그저 어느 한 가지 모습만 어렴풋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사이라 할 만합니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데 내 뒤에 독수리가 사뿐히 날아와서 앉아서 쥐를 한 마리 잡아챈 뒤 다시 날아오를 수 있어요. 그저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을 찍은 그곳’에 있지 않은 우리들은 그저 ‘사진에 나온, 딱 한 가지로만 잘린 모습’을 보면서 ‘이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풀어내야’ 합니다.


  슬픈 사진과 기쁜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놀라운 사진과 안 놀라운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모두 이야기를 담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사진 한 장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열려고 말 한 마디를 먼저 꺼냅니다. ‘말’로 했을 때에 마음을 연다면, ‘사진’을 보여줄 때에도 마음을 엽니다. ‘충격’스럽다는 사진이 있어야만 믿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믿는 셈일까요? ‘충격’을 믿는 셈일까요, 사건이나 사고를 믿는 셈일까요, 사진을 믿는 셈일까요, 아니면 ‘사진 찍은 사람이 하는 말’을 믿는 셈일까요? 4348.2.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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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0. 내가 나를 볼 적에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사진에 나오지 않고, 사진기 앞에 선 사람만 사진에 나옵니다. 여러 사람이 어느 곳에 나들이를 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찍는 사람’은 늘 찍고, ‘찍히는 사람’은 늘 찍힙니다. 이리하여, 여러 사람 가운데 ‘찍새(사진가)’ 한 사람만 사진에 없기도 합니다. 이때에 누군가 한 사람이 ‘너도 함께 찍어야지. 너는 한 장도 안 나왔잖아.’ 하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흔할 텐데, 이런 말을 듣는 ‘찍새(찍는 사람)’는 ‘난 괜찮아. 너희들 많이 찍어.’ 하고 말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 둘레를 지나가는 사람을 살펴서, 누군가 마땅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사진기를 맡겨서 다 함께 찍도록 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봅니다. ‘찍는 사람’은 사진에 한 번도 안 찍혔을까요? ‘찍히는 사람’만 늘 사진에 찍혔을까요?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는(찍은) 사람’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찍은) 사람’ 마음이 드러납니다. 사진 한 장은 ‘사진을 찍는(찍은) 사람 얼굴이요 모습이자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 ‘사진을 찍는(찍은) 사람 겉모습과 차림새’가 담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진에는 이 사진을 찍는(찍은) 사람이 어떤 숨결이고 생각이며 마음인가 하는 대목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리하여, 어디 나들이를 가서 여럿이 사진을 찍을 적에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이녁이 사진에 함께 찍히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모든 사진에 이녁 숨결과 손길과 마음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녁이 찍은 사진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때에는 무엇을 했고, 어디에 있었으며, 언제였는가를 모두 압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다른 사람들 모습과 몸짓과 이야기까지 떠올립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사진 한 장’에 갈무리하는 모습뿐 아니라 둘레 모습과 이야기와 삶을 함께 마음으로 담습니다.


  내가 나를 볼 적에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인가 하고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여럿이 함께 나들이를 가서 기쁘고 설렌다면, 기쁨과 설렘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혼자서 어느 마을을 찾아가서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서 둘러보면서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느낀다면, 혼자 다니며 찍은 모든 사진에 아름다운 빛과 멋스러운 꿈이 드러납니다.


  내가 나를 보지 않는다면 사진기를 손에 못 쥡니다. 내가 나를 보지 않으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아무 이야기가 없이 밍밍하거나 따분한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4348.2.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 찍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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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9. 흙손



  흙을 만지는 손은 흙손이 됩니다. 흙손이 되면 흙내음이 나고 흙빛이 감돕니다. 흙기운이 서려서, 이 흙손으로 무엇을 만지면 어디에나 흙숨을 가만히 옮길 수 있습니다. 사랑을 어루만지는 손은 사랑손이 됩니다. 사랑손이 되면 사랑내음이 나고 사랑빛이 흐릅니다. 사랑기운이 서려서, 이 사랑손으로 무엇을 만지면 언제나 사랑숨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손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손은 흙빛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내 손은 사랑빛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내 손은 참을 사진으로 담을 뿐 아니라, 거짓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내 손은 아름다움과 미움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며, 내 손은 꿈이나 노래도 얼마든지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사진으로 담든,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내가 스스로 손을 뻗어야 합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움직이는 만큼 내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손을 뻗어서 다가가는 만큼 내 사진이 드러납니다.


  이웃과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에는 언제나 살갑고 포근한 기운이 서립니다. 이웃과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에는 겉보기로는 놀랍거나 훌륭할는지 모르나, 어떠한 따순 기운도 흐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두멧자락(오지)을 찾아가야 ‘두멧자락(오지)’ 기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않아요. 우리가 두멧자락이라 하는 곳은 우리가 처음 선 이곳에서 따졌을 적에 멀디먼 곳이지만, 그곳(두멧자락)에서 사는 사람은 그곳(두멧자락)이 그들 보금자리요 삶터이며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오지 여행’을 하는 이들은 ‘내 이웃한테 보금자리요 삶터이며 고향’인 곳을 ‘내 얕은 생각과 눈길’에 따라서 재거나 따져서 함부로 잘라내어 사진에 담는 셈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오지 여행’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내 이웃 보금자리’를 찾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늘 ‘내 이웃 삶터와 고향’을 만날 뿐이에요.


  사진기를 손에 쥔 손은 어떤 손인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손은 흙손인가요? 내 손은 사랑손인가요? 내 손은 웃음손인가요? 내 손은 눈물손인가요? 내 손은 꿈손인가요? 내 손은 어떤 손인지 먼저 또렷이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쥐어야 합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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