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3. 봄을 부르는 빛



  봄을 부르는 빛이란 무엇일까요. 봄빛은 어디에 어떻게 묻어날까요. 봄비를 바라보면서 봄내음을 맡고, 봄내음을 맡으면서 봄기운을 느끼며, 봄기운을 느끼면서 봄빛을 바라봅니다. 이 땅을 따스하게 덮는 빗방울은 추위를 잠재웁니다. 이 땅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는 빗물은 새싹을 북돋웁니다. 새봄에 새롭게 깨어나는 풀잎과 나뭇잎처럼 내 마음에 푸른 이야기를 심을 수 있으면, 내가 바라보는 모든 곳에 봄빛이 번집니다. 새봄이어도 봄내음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면, 삼월이건 사월이건 오월이건 봄빛을 흩뿌리는 이야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봄철에 찍기에 봄빛이 드러나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가을에 찍으니 봄빛을 찾아볼 수 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어도 ‘왜 무엇을 하러’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 찍습니다.


  ‘왜?’ 하고 묻습니다. ‘무엇을?’ 하고 묻습니다.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고, 스스로 실마리를 풉니다. 봄이니까 봄을 찍으려 한다는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스스로 얽다가 맺습니다. 봄이기에 봄을 노래하면서 이 기쁨을 사진으로 드러내려 한다는 웃음과 꿈을 차근차근 엮습니다.


  봄을 부르는 빛은 내 가슴에서 싹틉니다. 봄은 늘 내 가슴에 있습니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모든 빛은 언제나 내 가슴에서 내가 부르기를 기다립니다. 4348.4.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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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2. 새빛과 옛빛



  봄을 맞이하면서 겨울이 물러납니다. 겨울이 되면서 가을이 저뭅니다. 가을이 될 무렵에는 여름이 끝나고, 여름이 될 적에는 봄이 스러집니다. 철이 바뀔 적마다 빛이 사뭇 바뀝니다. 봄에는 옅은 풀빛이고, 여름에는 짙은 풀빛입니다. 가을에는 노란 풀빛이라면, 겨울에는 누런 풀빛입니다. 겨울에는 때때로 눈이 내려서 하얗게 덮인 빛이 되기도 합니다.


  겨우내 누렇게 바랜 풀줄기와 풀잎은 봄비를 맞으면서 반들반들 빛나다가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이 땅에 있던 풀은 고요히 흙빛으로 바뀌어요. 마르고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풀은 새로운 흙이 되면서 ‘흙빛’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시골에서 안 살기 마련이고, 햇볕을 적게 받거나 거의 안 받으며 삽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시골에서 살았고, 늘 햇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사람들은 살빛이 하야스름합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살빛이 흙빛입니다.


  새빛과 옛빛을 함께 만나는 봄입니다. 가만히 보면 철이 바뀔 적마다 새로운 빛과 오래된 빛이 어우러지는 무늬를 봅니다. 사람 사이에서는 어른과 아이한테서 새빛과 옛빛이 어우러질까요. 오래된 마을과 새로 세운 동네 사이에도 새빛과 옛빛이 흐드러질까요.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빛이 퍼집니다. 새로운 빛이 퍼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자랍니다. 이제 겨울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흐르면, 다시 새롭게 겨울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겠지요. 4348.4.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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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1. 빛과 빛깔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면서 나타내지 못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고, 미국사람은 미국말(영어)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제 말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빛’과 ‘빛깔’을 생각합니다. 두 낱말은 한 끝이 다르지만, 사뭇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둘을 제대로 가를 줄 아는 사람이 드물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이지만, 막상 학교에서 이 두 낱말을 슬기롭게 갈라서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이요,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가 이 두 낱말을 알맞게 나누어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빛’은 해가 뜨면서 생깁니다. ‘빛깔’도 해가 뜨면서 생긴다 할 만합니다. ‘빛’은 햇빛이 있고, 전깃불로 밝히는 불빛이 있습니다. ‘빛깔’은 빛이 드리우면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빛이 드리울 적에 지구별에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른 결을 드러내지요. 다시 말해서, 빛이 있기에 빛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빛깔만 있고서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빛’이 곧게 퍼지면 ‘빛살’입니다. 빛살은 ‘빛줄기’라고도 합니다. 이를 한자말에서는 ‘광선’이라 하는데, ‘빛깔’을 한자말로 ‘색채’라고도 하고, ‘色깔’처럼 쓰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light’가 ‘빛·빛살’이 될 테고, ‘color’가 ‘빛깔’이 되겠지요.


  이를 올바로 헤아리면서 바라본다면, 사진을 어떤 빛과 빛깔로 갈무리해서 우리 이야기를 담아서 함께 나누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4348.4.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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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0. 살아서 움직인다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찍습니다. 죽어서 멈춘 사람을 찍지 않습니다. 살아서 노래하는 사람을 찍습니다. 죽어서 노래가 그친 사람을 찍지 않습니다. 살아서 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을 찍습니다. 죽어서 사랑이 잠든 사람을 찍지 않습니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사람은 모두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내 곁님이나 짝님을 사진으로 찍든,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든, 낯설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든, 우리는 늘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한테서 어떤 마음을 느낄까요?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사진으로 찍기에, 우리가 찍는 사진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기운이 감돌기 마련입니다. 다만, 때때로 ‘살아서 움직이는’ 기운을 사진에 못 담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마주한 사람을 ‘산 목숨’이나 ‘산 숨결’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와 사진에 찍히는 네가 모두 ‘싱그러운 목숨’이요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깨닫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찍든 다 좋습니다. 어떤 사람을 찍든 다 괜찮습니다. 시인을 찍어야 하지 않고, 이름난 시인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나 정치가 같은 사람을 찍어야 인물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문화인이나 문학인을 찍어야 제값을 하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나와 네가 가슴속에 고운 님을 품은 ‘살아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넋인 줄 알고 느끼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진으로 찍는 사람한테서는 언제나 맑으면서 고운 기운이 스며나옵니다. 이 기운을 읽을 때에 ‘사람 찍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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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9. 밥을 찍는다



  늘 맛있게 먹는 밥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먹는 밥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는 밤솜씨를 자랑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기쁘게 먹는 밥 한 그릇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상업사진을 찍느라 밥 한 그릇을 멋지게 보이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다만, 상업사진을 찍는 몇몇 사람을 뺀 우리 모두는 밥 한 그릇이 고맙고 즐거우면서 반갑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누리그물에서 ‘눈에 띄는 누리꾼(파워블로거)’이 되려고 밥을 사진으로 찍을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은 ‘다른 사람 눈에 뜨이려’는 뜻으로 밥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멋있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고, 어떤 물건을 홍보하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돈을 벌려고 사진을 찍으며, 이름값을 얻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려고 글을 쓰는지요?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려고 노래를 부르는지요?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려고 골프·야구·축구·수영 따위를 하는지요? 오직 ‘이름 날리기’와 ‘돈벌이’를 헤아리면서 하는 사진·글·그림·예술·문화 따위라면, 이런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나 예술이나 문화란 무엇일까요?


  언제나 알뜰살뜰 차린 밥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가 맛나게 먹고 너도 맛있게 먹는 밥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밥자랑을 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밥 한 그릇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으니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밥에서 흐르는 기운은 우리 몸으로 스며들고, 밥을 찍은 사진에서 감도는 기운은 우리 마음에 스며듭니다. 나는 너와 동무가 되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너는 나와 이웃이 되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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