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8. 본 대로 찍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으레 ‘본 대로’ 찍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얼핏 헤아리기에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틀리지 않으면서 맞지도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본 대로 찍지’만, ‘본 대로 안 찍’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 대로’ 고스란히 찍는 사람이 있는 한편, ‘본 대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진기를 살짝 움직여서 ‘본 대로 드러내지 않게끔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본 대로’ 사진을 읽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을 찍으려고 어느 곳을 바라보다가 어느 한 가지 모습을 이녁 나름대로 새롭게 엮어서 찍기’ 때문이니, ‘어느 곳을 본 대로 찍은 모습’이 아니라 ‘어느 곳을 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결이 흐르는 모습’을 보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싸움을 보기로 들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는데, 한 사람이 아흔아홉 대를 맞았고 딱 한 대를 때립니다. 그런데 아흔아홉 대는 죽도록 두들겨맞아서 한 사람이 쓰러졌는데, 한 대는 솜방망이처럼 때린 터라 이 한 대를 맞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누가 누구를 어떻게 때렸는가’ 하는 모습을 ‘본 대로’ 안 담을 수 있습니다. 아흔아홉 대를 맞았을 뿐 아니라, 한 대조차 ‘때렸다고 할 수 없는 솜주먹질’이지만, 이를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찍어서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한편, ‘앞뒤 흐름과 이야기’를 모두 잘라서 어느 한 조각 모습만 찍어서 보여준다면, 이 모습은 무엇일까요? 이 모습도 ‘본 대로’ 찍은 사진이라 할 만할까요?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안 찍으’면, 쓰레기를 안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비가 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안 찍으’면, 비가 안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진은 틀림없이 ‘찍어서 기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참말 ‘기록’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기록은 기록이되, 참다운 기록’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조각만 오려서 ‘기록’하려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진에 기록된 한 가지 모습’에 얽매이지 말고, ‘사진에 찍힌 한 가지 모습과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긴 흐름’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대로’ 찍는 줄 알아보아야 합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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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1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찜합니다...사진을 좋아하니 당연히 사진책은 읽어싶어요 .

숲노래 2015-04-13 07:39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사진비평으로 내려고 쓰는 글인데 아직 글만 쓸 뿐이고,
<사진책과 함께 살기>라는 `사진책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진 찍는 눈빛 147. 빛깔을 먹는다



  밥은 숨결입니다. 밥은 몸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우리 마음이나 생각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어떤 밥을 먹을까요? 영양성분을 먹을까요? 화학성분으로 엮은 영양성분을 먹어도 우리 몸은 기운을 차릴까요?


  영양성분만 맞춘 밥이라면, 이럭저럭 몸을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몸을 살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몸을 살리는 숨결은 영양성분이 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담아서 지은 밥을 먹어야 사랑스러운 기운이 솟습니다. 기쁨을 담아서 지은 밥을 먹어야 기쁜 기운이 솟아요. 그러니, 영양성분만 맞춘 밥으로는 ‘영양성분이 따른 기운’만 솟을 테지요.


  사진찍기는 ‘장비 다루는 솜씨’로 하지 않습니다. 장비 다루는 솜씨를 잘 익힌 사람은 ‘장비 다루는 솜씨’를 잘 보여줄 뿐입니다. ‘영양성분으로 먹는 밥’은 우리 몸을 영양성분으로만 지켜 주듯이, 장비 다루는 솜씨로 찍는 사진은 언제나 ‘장비 솜씨’를 보여주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널리 사랑하는 사진에는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멋진 장비로 멋지게 찍은 사진’은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흐르지도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늘 이 대목을 슬기롭게 짚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 몸은 빛깔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노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에는 빛깔을 담을 수 있고, 노래를 담을 수 있으며, 사랑과 꿈을 넉넉히 담을 수 있습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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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6. 흐르면서 나아간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은 그릴 수 없습니다. 너는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네가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그림은 너한테 덧없습니다.

  나는 네 그림을 흉내낼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내 그림을 베낄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네 사진을 따라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내 사진을 좇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꽤 많은 사진가들이 다른 사진가들을 흉내내거나 따르거나 베끼거나 훔치거나 좇습니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로버트 프랭크 냄새가 나도록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쿠델카나 살가도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에서 비슷한 기운이 흐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바라보았으나 서로 한마음이라 한다면 꼭 같구나 싶을 만한 사진이 놀랍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면서 하나되는 마음’이 아니라 한다면, 굳이 다른 사진가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좇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 그림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때때로 만화책이나 그림책에 나온 그림을 보고서 따라해 보려고도 하지만, 이렇게 따라해 보려고 하는 그림은 그리 재미나지 않아요. 왜 그런가 하면 이런 그림에는 ‘내 숨결이나 손길’이 깃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림을 보고서 그리는 그림이라 하더라도 ‘내 숨결이나 손길’을 담을 때에 비로소 재미납니다. 내 숨결이나 손길이 깃들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흐르면서 찬찬히 나아갑니다. 그러니, 굳이 배우러 하지 마셔요. 천천히 흐르면 내 숨결이 드러납니다. 애써 좇거나 따라가려 하지 마셔요. 찬찬히 나아가면 내 이야기가 기쁘게 나타납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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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5. 그저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굳이 끼어들 일이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면 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그저 바라보기’도 ‘살짝 끼어들기’라고 할 만하지만, 내가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모습이 ‘그저 그 결대로 흐르도록’ 가만히 바라보면서, 이 숨결을 느끼면, 내가 사진기를 눈에 대고 찰칵 하고 단추를 한 번 누를 때가 언제인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두 장도 석 장도 아닌 오직 한 장을 찰칵 찍으면서 마음 가득 싱그러운 숨결이 솟아오릅니다.


  서두를 까닭이 없고, 늦출 까닭이 없습니다. 숨결을 그대로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한 장을 찍으면 될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필름사진이 아닌 디지털사진으로 찍더라도 ‘꼭 한 장을 알맞게’ 찍을 수 있어요. 디지털사진으로 찍기에 수없이 단추를 눌러대지 않습니다. 필름사진으로 찍더라도 ‘제 결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제 흐름을 살피지 않’으면, 자꾸자꾸 사진기 단추만 누르기 마련입니다. 제 결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섣불리 찍지 않습니다. 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때나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결’과 ‘흐름’을 제대로 읽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됩니다. 삶결을 읽어 사진결로 담고, 삶흐름을 살펴 사진흐름으로 엮습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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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4.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된다



  마당에서 날마다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풀을 얻습니다. 마당과 밭이 있으면 누구라도 한 해 내내 싱그러운 풀을 얻습니다. 이 풀은 물에 헹구어 바로 먹어도 되고, 된장이나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무침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 뜯어서 먹으니, 저녁이 되어 남는 풀이 있으면, 또 엊저녁에 뜯어서 아침나절에 남는 풀이 있으면, 이 아이들을 밀반죽에 섞어서 부침개를 부칩니다.


  밀반죽에 풀을 잔뜩 넣으면 풀내음과 풀맛이 짙습니다. 밀반죽에 풀을 조금 넣으면 밀내음과 밀맛이 짙습니다. 풀을 잔뜩 넣은 부침개는 풀빛이 짙고, 풀을 조금 넣은 부침개는 밀빛이 짙습니다.


  우리 집에는 ‘밥을 먹는 입’이 넷이라, 부침개를 으레 너덧 장 부칩니다. 한 사람한테 한 장씩 돌아가는 몫입니다. 여덟 장이나 열두 장을 부칠 수도 있지만, 네 사람한테는 너덧 장이 꼭 알맞습니다. 더 먹을 수 있을 듯싶기도 하지만, 막상 부침개를 하고 보면 한 사람한테 한 장이 가장 알맞습니다.


  나는 으레 내 몫을 맨 마지막에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몫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먹을 적에는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고, 모두 맛나게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놀이를 할 적에, 나는 홀로 조용히 밥상맡에 앉아서 내 부침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는 빛은,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됩니다. 한 가지 빛이어도 즐겁고 두 가지 빛이어도 곱습니다. 세 가지 빛이든 네 가지 빛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빛이든 모두 빛입니다. 어떤 빛이든 오롯이 빛이면서, 깊고 너른 고요한 숨결이 깃듭니다. 빛마다 새로운 숨결이 고요하게 흘러서 깊고 너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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