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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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7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즐거운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3.25. 4500원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바뀐다고 느낍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바뀌고,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바뀌지 싶어요. 한 해를 산 아기는 한 해만큼 삶을 지은 셈이고, 다섯 해를 산 아이는 다섯 해만큼 삶을 지은 셈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 아이한테도 쉰 살 어른한테도 하루는 늘 새롭습니다. 다섯 살에 맞이하는 가을은 언제나 꼭 한 번이요, 쉰 살에 맞이하는 가을도 언제나 꼭 한 번이에요. 두 번이나 세 번 겪을 수 없는 ‘다섯 살 가을’이고 ‘쉰 살 가을’입니다.



“당신 어쩐지 변했군.” “변하다니?” “전에는 마모루 걱정하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가 바쁜 동안에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고 하니까.” (7쪽)


“아, 오랜만에 마모루랑 놀아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에 마모루도 많이 컸네요.” “그럴까? 변한 것은 오히려 자네가 아닐까 싶네만.”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한째 권을 가만히 읽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내 옆에 달라붙으며 묻습니다. “아버지, 천재 유교수, 나도 봐도 돼?” “글쎄, 네가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만화라고 해서 다 볼 수 있지 않아. 네가 모르는 말이 많으니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여덟 살 아이가 볼 만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해 넘게 그린 이 작품에는 ‘젊은 유택 교수’나 ‘중년 유택 교수’를 지나서 ‘할아버지 유택 교수’가 나옵니다. 이제 이 만화책에 아이들이 꽤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 가운데 세 딸이 시집을 가며 낳은 새로운 아이들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집 여덟 살 아이더러 한번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곧 깜깜해지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나는 울었다. 언니는 웃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리 깜깜해져도 반드시 내일은 오잖니? 울어도 웃어도 내일은 온단다. 돌아갈 수 있어.” (60∼61쪽)


“선생님이 나하고 하나코를 혼냈니?” “아뇨. 다른 사람을, 혼냈어요.” “다른 사람, 이라니?” “음, 그게 아니고 사람 아니구요, 뭔가를 향해, 여러 가지 나쁜 걸 다 혼냈어요.” (89쪽)



  여덟 살 아이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흐르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차리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여덟 살 나이에는 여덟 살 나이만큼 알아차릴 테지요. 나중에 열두 살쯤 되어 다시 본다면 여덟 살 나이였을 적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알아차릴 테고요. 스무 살이 되어 다시 본다면 스무 살 나이일 적에 알아차릴 만한 대목을 새롭게 느끼리라 봅니다. 서른 살에는 서른 살만큼, 마흔 살에는 마흔 살만큼 이 만화책 이야기를 받아먹을 만합니다.



“내 강의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불쾌하지 않다네. 내 강의를 들을 의지가 있나?” (130쪽)


‘남자라서, 여자라서는 아니라고 보지만, 내가 너무 한쪽 면으로만 사람을 보고 있었나? 언제나 강하게 주장하는 이미지였던 오오에 카오루가 불안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언제나 소리 높여 웃는 줄만 알았던 아오키 모모카가,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140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도 나이를 한 살씩 새로 먹으면서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유택 교수뿐 아니지요. 유택 교수 같은 사람을 곁님으로 둔 아주머니도 할머니가 되는 동안 천천히 삶을 새롭게 배웁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도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새롭게 삶을 새롭게 배워요. 유택 교수네 손자와 손녀도 저마다 새로운 삶을 늘 즐겁게 배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너도 나도 새로움을 배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새로움을 찾아서 이 삶을 누립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픕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신납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나무예요.



‘내 근황을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몇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말은 오가지만 주제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 하지만, 그런데도, 공기만은 틀림없이 오가고 있다. 저녁놀 속에서 참새들이 모여 지저귄다.’ (155쪽)


“왜 도와주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좋은 기록이 남은 것 같군.” “기왕 찍으려면 좀더 근사하게 차려입었을 때 찍지!” “아니, 좋은 기록은 생활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것이오.” “아무튼 정리하는 거나 도와줘요!” (161쪽)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새롭게 깨어나서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또는 아이들과 다르게, 또는 아이들하고 엇비슷하게, 또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새롭게 하루를 헤아립니다.


  어젯밤에도 늦게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오늘은 아침 일찍 다시금 똥을 눕니다. 참 많이 즐겁게 먹었나 보구나.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응가 다 했습니다! 휴지로 닦아 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휴지를 두 칸 뜯어서 밑을 닦습니다. 토실토실 복숭아 같은 궁둥이는 더없이 귀엽습니다. 아이들은 복숭아를 늘 엉덩이에 매달면서 심심할 적마다 스스로 뜯어먹을까요?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심심하면 내 복숭아를 재미나게 뜯어먹었을 테지요. 모처럼 비가 오면서 쌀쌀한 새 하루가 흐릅니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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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26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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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6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그 님’이 되지 않아

― 강철의 연금술사 26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9.25. 4200원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는 여느 낱권으로는 스물일곱 권으로 마무리가 되고, 완전판으로는 열여덟 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여느 낱권으로 마지막 한 권을 남긴 《강철의 연금술사》 스물여섯째 책을 읽으면, ‘신’을 손에 거머쥔 ‘다른 숨결’이 태어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제껏 ‘신’이 아니면서 ‘신’을 꿈꾸다가 드디어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그동안 플라스크에서만 살던 꼬마’가 ‘신’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스스로 믿는 이야기가 흐르지요.


  여러 연금술사가 나오는 만화책인 《강철의 연금술사》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러 연금술사 가운데 가장 ‘힘센’ 연금술사란 바로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입니다. 지구별에 있는 사람들 넋을 사로잡아서 ‘제 몸(플라스크에서만 살던 꼬마)’에 가두고는 무시무시한 힘을 뽐낼 수 있거든요.



“너희들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한 적이 있나? 아니, 생명체라기보다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 너희 인간 하나의 정보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방대한 우주의 정보를 기억하는 시스템. 그 문을 열면 과연 얼마나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한 적이 있나?” (27쪽)


“모두 부탁한다! 힘을 빌려 다오!” “흐흠, 고작 50만 명 분의 현자의 돌로 애쓰는군. 그렇지만 시간 문제다.” (72쪽)



  만화책에 나오는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인조 생명체’ 모습은 여러모로 헤아릴 만합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 돈을 어마어마하게 빼앗아서 어마어마하게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한 사람은 ‘가장 손꼽히는 부자’일 테지요. 다른 사람한테 있던 돈을 다 빼앗았으니, 이 한 사람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홀로 어마어마한 돈을 거머쥔 이 사람은 어떤 삶이 될까요? 즐거운 삶일까요? 아름다운 삶일까요? 사랑스러운 삶일까요? 다른 사람 돈을 다 빼앗은 뒤에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름다운 기부? 아름다운 자선? 아름다운 나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스스로 가장 힘센 넋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는 손가락을 까딱하지 않고 눈짓으로만 쳐다보아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커다란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힘이지요. ‘주먹힘’입니다. 수백만에 이르는 군대가 이 한 목숨을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이겨내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핵폭탄으로도 이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를 죽일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주먹힘이 가장 세다고 여기는 이 가녀린 아이는, 주먹힘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딱한 아이는, 참말 무엇을 할 만할까요?



“이 나라 사람들의 혼은 정신이라는 이름의 끈에 의해 아직 신체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 예를 들자면 탯줄로 모체와 이어진 태아처럼 말이지. 완전히 네 것이 되진 않았다는 뜻이야.” (81쪽)


“네가 신이라는 것을 손에 넣엇을 때, 이미 인간의 역전극은 시작되고 있었어! 혼은 육체와 절묘하고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지. 그것을 억지로 잡아떼어 다른 곳에 정착시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 반대는 간단해. 혼을 해방시키기만 하면 되거든. 원래의 육체가 고스란히 있다면 혼은 저절로 그쪽으로 가지.” (87쪽)



  다른 목숨을 수백만, 아니 수천만, 아니 수억이나 수십억을 빼앗은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가 낼 수 있는 힘은 아주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 인조 생명체는 무엇인가를 부수는 짓은 신나게 할 수 있는지 몰라도, 무엇인가를 새로 짓는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목숨을 낳는 어버이 구실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목숨한테 물려줄 사랑이나 삶이나 꿈이란 아무것도 없지요.


  왜 그러할까요? 왜 인조 생명체는 ‘신이라 할 만한 힘’을 손에 거머쥐었으나 아무것도 새로 짓지 못할까요?


  다른 모든 목숨을 빼앗아서 제 몸에 가두었으니, 이 땅(지구)에는 다른 목숨이 없거든요. 이 바보스러운 인조 생명체하고 맞서서 싸우는 몇 연금술사와 전사를 빼고는 다른 목숨이 없으니, 이 인조 생명체가 ‘지구 으뜸’이 되었다 한들 이 지구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할 수 있는 놀이도 없어요.



“하찮은 문답을 하는 사이에 원수를 갚을 수 없게 되었구나, 소녀여. 준비된 레일 위의 인생이었지만, 너희들 인간 덕분에, 보람 있는, 좋은 인생이었다.” (116∼117쪽)



  전쟁이란 언제나 바보짓입니다. 전쟁은 마구 때려부수는 짓만 하기 때문에 늘 바보짓입니다. 전쟁은 어느 것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참말로 바보짓입니다. 전쟁에는 아무런 사랑도 깃들지 않으니 그야말로 바보짓입니다.


  누군가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 될 테지요. 누군가를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될 테지요. 다시 말해서, 전쟁이나 폭력은 ‘다른 누군가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바보스러운 몸짓’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폭력은 언제나 사랑을 끔찍히 미워합니다. 전쟁이나 폭력은 언제나 주먹힘이나 전쟁무기로 사랑을 짓밟으려고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지구에서 ‘으뜸 권력’을 거머쥔다면, 이 권력자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에서 ‘으뜸 권력자’ 노릇을 하려고 든다면, 참말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무런 사랑이 없는 권력자는 언제나 바보짓을 맴돌이치는 굴레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스스로 사랑이 되지 않고 권력만 거머쥐려고 하는 이들은 늘 바보짓에 사로잡히면서도 스스로 바보인 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새발의 피라도 상관없다! 계속 해! 저 녀석의 몸은 지금 ‘신’이라는 것을 가둬 두는 것만으로도 벅차! 터지기 직전의 빵빵한 풍선 같은 상태다! 조금씩이라도 돌의 힘을 갉아 들어가면 언젠가 저 녀석의 몸에도 한계가 올 거야!“ (143쪽)


“호문쿨루스에서는 뭐가 생기지? 뭘 낳을 수 있나? 파괴밖에 가져오지 않는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어?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186쪽)



  다른 목숨을 빼앗아서 ‘신’이 되려고 하는 이는 아주 바보입니다. 왜 다른 목숨을 빼앗아서 신이 되려고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하느님(신)인걸요. 성경책에 나오는 하느님이 아니라, 온누리에 따스하고 너른 사랑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슬기로운 하느님입니다. 너를 사랑하고 나를 아낄 줄 아는 착한 하느님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아낄 줄 아는 참된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기쁜 웃음을 노래하는 길을 씩씩하게 여는 고운 하느님입니다.


  저마다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사랑’을 읽고 살피면서 북돋울 줄 안다면, 스스로 하느님이 됩니다. ‘그 님(신)’은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 님은 다른 목숨을 빼앗거나 사로잡거나 가로챈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그 님은 다른 사람 것을 훔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요한 숨결이 되고, 스스로 따사로운 넋이 되며, 스스로 즐거운 노래가 될 때에 비로소 너도 나도 하느님입니다.


  어린이 마음일 때에 바야흐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어린이 마음’으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바람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홀가분한 넋으로 삶을 짓는다면, 참말 우리는 서로서로 하느님인 셈입니다. 내가 너를 아끼고 네가 나를 아끼는 기쁜 두레를 이루는 마을살이를 가꾸면, 참으로 우리는 늘 하느님 나라에서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멋진 사람인 셈입니다.



“시시한 건 그쪽이야.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 사고정지 바보 주제에! 그리드가 차라리 너희들보다 더 진화한 인간이라고.” (162쪽)



  꿈을 생각하면서 꿈이 됩니다. 사랑을 생각하면서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생각하면서 전쟁이 되고, 미움을 생각하면서 미움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삶을 짓습니다. 그러니, 나는 우리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기쁘게 노래할 꿈을 마음에 품습니다. 푸른 숲이 되고, 숲을 가꾸는 바람이 되며, 바람을 마시는 고운 사람으로 이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일구자는 꿈을 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삶을 짓는 길을 걸으려 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으뜸도 버금도 딸림도 아닌 그예 수수한 사람입니다.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사랑을, 나는 내가 새로운 어버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나도 언제나 ‘어린이 마음’으로 하루를 짓겠노라 하고 생각합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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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분의 일 2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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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5



우리는 서로서로 돕는 지구별 이웃님

― 십일분의일 (1/11) 2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4800원



  저녁에 아이들을 재웁니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고 떠들고 웃고 노래하고 뒹굴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다 놀았구나 싶을 무렵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집안에 차분하게 흐를 만한 노래를 틉니다. 전깃불은 모두 끕니다. 모두 방석에 앉아서 촛불을 바라봅니다. 촛불에서 어두운 곳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낯설거나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 무척 야무지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나도 아이들이랑 함께 씩씩하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촛불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거나 졸리면 스스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나는 촛불을 더 보고 나서 이부자리를 살피지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미어요. 얼마 앞서까지는 촛불보기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한 시간 남짓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재웠고, 요즈막에는 저녁마다 촛불보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잠자리를 챙겨서 눕도록 합니다.



‘그래도 그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좋았다. 온몸을 사용해 골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12쪽)


‘그 녀석이 그렇게 날 믿고 있는데, 내가 날, 믿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34쪽)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구나 싶은 때에 부엌으로 갑니다. 작은아이가 저녁에 먹고 남긴 밥그릇을 들여다봅니다. 이 밥은 내가 마저 먹습니다. 한창 먹다가 아차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우리 집에서 함께 눌러서 사는 마을고양이한테 주어도 될 텐데.


  다음에는 아이들이 남긴 밥을 고양이밥으로 살뜰히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만화책 이름인 ‘십일분의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쉽게 알아챌 만합니다. 바로 축구 이야기입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레귤러 자리를 지키고 싶어 골키퍼가 되었던가? 아니잖아.’ (49쪽)


“당신은 몸을 던져 골을 지켰어. 거기서 주저하며 움츠러들었다면 내가 흠씬 두들겨팼을 거야!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 절대 사과할 필요 없어.” (54∼55쪽)



  아는 사람은 다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 텐데,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다른 운동 경기도 이와 같아요. 혼자서 하는 경기는 없습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사람이 혼자라 하더라도 경기장 둘레와 뒤에서 돕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경기장에 혼자 나서는 사람도 경기장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녁이 연습을 하거나 훈련을 하도록 돕지요.


  이리하여,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열한 사람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물결 가운데 한몫을 맡습니다.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빠지더라도 다른 열 사람 물결이 흔들려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한마음이요 한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잘 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하는 물결이고, 한 사람이 잘 못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못 하는 물결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열 사람이 곁에서 받치거나 돕습니다. 두 사람이 잘 못 하면 아홉 사람이 받치거나 돕지요.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나서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만, 경기를 마친 뒤에는 ‘최우수 선수’나 ‘우수 선수’를 가리곤 합니다. 모두 훌륭했으나 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사람을 따로 가리기도 해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왜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다른 열 사람이 튼튼하게 버팀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열 사람이 넉넉하고 아기자기한 밑물결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으뜸인 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까닭은 열한 사람이 모두 으뜸이 되도록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잔소리 해대지 않아도 다 알거든! 내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여자아이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위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힘든 사람을 더 몰아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77쪽)


“슬픈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덧씌우면 되잖아?” (80쪽)



  아이들이 잠든 밤에 부엌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아이들한테 집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더러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지만, 밥을 하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거나 빨래를 하라거나 청소를 하라거나 같은 일은 안 시킵니다. 아이들더러 읍내에 가서 장보기를 하라고 시키지 않고,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다녀오라고 시키지 않아요.


  두말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나어린 아이들한테 섣불리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나어린 아이들한테는 ‘자, 너희는 기쁘게 뛰놀렴.’ 하고 말할 뿐입니다.


  만화책 《십일분의일》에 나오는 ‘한 사람’은 어떤 몫을 할까요? 공격수이든 수비수이든 문지기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되, 다른 사람들이 제몫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버티는 나무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는 동안, ‘한 사람’은 한 사람대로 마음껏 제 솜씨를 뽐내면서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은 한 사람을 받치고, 한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른 한 사람이 마음껏 뛰고 달리며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받쳐 주어요.



“대충 적당히 한 녀석은 긴장 따위 안 해. 나도 시합 전엔 늘 긴장되거든. 그전까지 연습을 필사적으로 했을 때는 더욱 그렇고. 그러니 걱정 마. 넌 틀림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97쪽)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헤딩이라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난.” “‘나는, 나는’ 하며 뭐든 혼자 하려고 하지 마. 11명이나 있는걸. 네가 필살 슛을 넣지 않아도, 이길 수 있어.” (137∼138쪽)



  아이들은 밥을 지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밥을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밤에 새근새근 잠들면서 즐거운 꿈나라로 날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걸레질이나 비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축구라는 운동 경기에서 열한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즐겁게 제몫을 맡으면서 다른 동무나 이웃이 기쁘게 운동장을 누비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 한 사람은 다른 열 사람이 뒤와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기에 마음껏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수십 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나는 다른 지구별 이웃을 돕는 버팀나무요, 다른 지구별 이웃은 나를 돕는 버팀나무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고, 함께 두레를 하기에 기쁩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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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9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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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3

 


‘사랑이 흐르는 삶’을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넋’

― 히스토리에 9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5.7.30. 5000원



  이레쯤 앞서 뒤꼍에서 풀을 베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풀을 한창 벨 적에는 모르다가 일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짓다가 자꾸 왼손 손가락이 따끔따끔하다 싶어서 들여다보니 가시가 꽤 깊이 박혔더군요. 하던 일은 마저 하자고 생각하면서 밥을 다 지은 뒤 손톱깎이로 살점을 조금씩 뜯으면서 가시를 뽑으려 하는데 안 뽑힙니다. 혼자서 안 되는구나 싶어서 곁님더러 해 달라고 하지만 피만 나올 뿐 안 됩니다. 안 뽑히는 가시라면 그냥 살점에서 내 살이 되어 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가시 박히는 일이야 흔하기에 이제 잊고 지나가자고 생각합니다.


  가시 박힌 자리가 아프지는 않지만 일을 하면서 문득 느낌이 옵니다. 나흘쯤 지난 저녁에 이 자리가 조그맣게 붓습니다. 조그맣지만 노란 빛깔도 돕니다. 왜 이러나 싶어서 가시 박혔던 자리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손톱깎이를 손에 쥡니다. 살점을 천천히 뜯는데 노란 고름이 뽀록 나옵니다. 손톱깎이는 내려놓고 족집게를 쥡니다. 어디 보자 뭐가 나오려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슬슬 살점을 누르니 가시가 쏙 고개를 내밉니다.


  어느 풀에 있던 가시였을까요. 이 가시는 왜 내 손가락으로 파고들어 여러 날 지냈을까요. 잔고름을 마저 뺀 뒤 가시는 풀밭으로 던집니다.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렴 하고 얘기합니다. 가시가 빠진 자리는 시원하면서 어딘가 허전합니다. 자꾸 손가락을 쓰다듬습니다. 가시 빠진 자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안 빠지고 조금 남은 듯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른 가시가 더 박혔는지 모릅니다. 다른 가시도 머잖아 고름이랑 함께 빠져나올는지 모르지요.



“이건 아탈로스 님이 세워야 ‘공’이 되는 겁니다! 만약 제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되는데?” “신출내기 서기관 주제에 실로 애매한 근거 하에 아탈로스 장군의 이름을 사칭해 격이 한참 높은 장군 둘을 턱으로 부려먹고, 그나마 결과가 잘 나왔으니 망정이지, 전군을 위험에 빠트린 건 사실이잖아요.” (8∼9쪽)



  기원전 300년대를 살았다고 하는 에우메네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5)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알렉산드로스 같은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에우메네스 같은 사람은 알렉산드로스하고 대면 이름이 조용히 묻혔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라고 하는 사람이 힘을 떨칠 수 있던 바탕에는 수많은 에우메네스가 있고, 에우메네스도 이녁을 둘러싸고 이녁을 돕거나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만화책은 만화책일 뿐, 만화책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옛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은 그야말로 만화책일 뿐, 이 만화책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책뿐 아니라 글로만 빚은 역사책도 ‘글로 쓴 이야기’일 뿐입니다. 옛날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지난날을 몸으로 살아내지 않았으니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보여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글이든 만화이든 모두 ‘지은이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마케도니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인도 아니고! 그런데 어디서 잘난 척을! 애당초 필리포스 왕을 기습해서 큰 부상을 입힌 건 너희 야만족 스키타이인이잖아!” “왕께 부상을 입힌 건 스키타이인이 아니라 트리발로이인인데?” “그게 그거지! 둘 다 똑같은 야만족이잖아! 본래는 노예여야 마땅한 미개한 야만인들! 얼굴 생김새도 죄다 똑같고!” “그런 사고방식은 썩 좋지 않은데? 자신과 다른 세계를 한데 싸잡아 버리는 게 ‘단정’이나 ‘편견’을 낳고, 더 나아가 전쟁의 원흉이 되는 거니까!” (23∼24쪽)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가시가 번거로우면 살점을 많이 파내어 뽑을 수 있습니다. 바늘을 달군 뒤에 살점에 구멍을 내어 뽑을 수도 있습니다. 가시 박힌 손가락을 자꾸 생각한다면, 이 생각에 얽매여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할 노릇이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움직여야 하지요.


  만화책 《히스토리에》에 나오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사람은 여러모로 슬기로우면서 씩씩한 숨결이었지 싶습니다. 장군이기도 했고, 학자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임금이나 필리포스 임금을 받치는 비서이기도 했으니, 슬기로운 숨결일 뿐 아니라 씩씩한 숨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느껴요. 머리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몸도 튼튼한 사람이었을 테고, 마음하고 몸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던 사람이었으리라 봅니다.



‘죽이는 것 아니었나? 하긴 그래. 죽일 목적이었다면 첫날 푹 찌르고 끝이었겠지.’ (65쪽)


“무기를 파는 것만이 장사는 아니니까요!” (73쪽)


“포키온은 한없이 냉철한 사내. 전쟁을 잘 아는 평화주의자야.” (89쪽)



  평화를 알기에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전쟁을 알기에 전쟁을 거스르면서 평화로 가는 길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모르기에 평화를 못 지키기 마련입니다. 전쟁을 제대로 모르기에 전쟁에 휩쓸리거나 휘둘리면서 그만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노예 해방’이라는 말을 흔히 쓰기는 하지만, 노예로 오랫동안 길든 사람은 노예 노릇에서 풀려나도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노예로 눌려서 지내더라도 ‘노예가 아닌 삶’을 늘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문득 노예에서 풀려나더라도 그야말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노예에서 풀려나고서야 ‘노예가 아닌 삶’을 생각하려 한다면 아주 늦습니다. 노예인 몸이든 아니든 언제나 ‘노예가 아닌 삶’을, 그러니까 바로 ‘내가 스스로 누리려고 하는 꿈으로 가는 삶’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를 놓고 본다면, 남북이 갈린 사회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을 테고 ‘남북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앞으로 언제 남북이 하나가 될는지 까마득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통일과 민주와 평등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늘 생각하고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응, 참 좋은 마을이야. 지금은 카론이 사랑하는 마을, 메란티오스의 고향 마을인가?” (127쪽)


“이제 와서 이런 말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위대한 자유! 축하한다! 메란티오스!” (136∼137쪽)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한 사람을 다루면서 ‘히스토리에’라는 이름을 씁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이 얼마나 멋진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삶을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주지요.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전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만화책으로 ‘옛날 옛적을 살던 한 사람 이야기’를 살피는 길잡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은 ‘삶을 짓는 발자국’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짓는 하루를 어떻게 지을 적에 스스로 즐거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즐겁게 살아야지요.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삶이 아름답지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흐르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요.



‘그 두 다리로 지평선 저 끝까지 달려가는 것도, 혹은 대군을 이끌고 이 땅에 쳐들어오는 것도, 전부 네 자유다! 내 아들아!’ (146∼148쪽)



  한자말 ‘자유’를 한국말로 옮기면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바로 자유로운 몸과 마음입니다. 홀로 하는 일, 홀로 짓는 삶, 홀로 가꾸는 생각, 홀로 다스리는 마음, 이 모두가 자유입니다. 멋대로 하는 일이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는 몸짓일 때에 자유입니다. 아무것이나 다 해도 되기에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사랑으로 지을 줄 아는 슬기로운 넋일 때에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먼 옛날 에우메네스라는 사람을 빌어서 바로 ‘홀가분한 넋(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홀가분한 넋입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숨결입니다. 무엇이든 사랑스레 가꿀 줄 아는 홀가분한 사람입니다. 4348.10.2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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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형사 ONE코 11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4



팔랑이는 꽃치마가 즐거운 개코 형사

― 개코형사 ONE코 11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0.15. 4200원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대원씨아이,2015) 열한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형사이면서 팔랑팔랑거리는 꽃옷(드레스) 입기를 좋아하는 ‘개코’형사가 나오는 이 만화책을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은 몇 권까지 그릴 만할까 하고. 앞으로 스무 권이나 서른 권이 넘도록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차분하면서도 차근차근 수사를 벌이는 형사들 이야기가 아니라, 개처럼 냄새를 잘 맡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실마리를 찾는 주인공인 ‘하나모리(원코)’ 형사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이 형사는 경찰서에서도 사회에서도 ‘형사’ 대접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입니다. 개코와 같은 코라서 냄새를 아주 잘 맡기에 ‘여느 자료와 실마리’로는 도무지 알기 어렵던 수수께끼도 ‘냄새 하나’로 참·거짓을 낱낱이 밝힙니다.



“우리가 불려온 걸 보면 타살의 의혹이 있는 건가요? 자살이 아니라?” (15쪽)


“사토미한테는 사귀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뇨. 이름이나 직업은 몰라요. 물어봐도 사토미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24쪽)



  이 만화책에 나오는 ‘개코형사 원코’ 같은 사람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거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무리 형사가 자유롭게 옷을 차려입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팔랑치마’나 ‘꽃옷’이 아니라면 안 걸치는 형사는 그야말로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할 테니까요. 게다가 팔랑치마나 꽃옷만 입는 여형사는 개코입니다. 냄새를 아주 잘 맡지요. 사건 실마리를 찾을 적마다 머리를 박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마주할 적에는 옷차림으로 마주할 수 없습니다. 네가 양복을 빼입었기에 너를 대단하게 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민소매에 깡똥치마를 입었기에 너를 가벼이 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새까만 차를 몰고 다니기에 너를 우러러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두 다리로 걷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너를 하찮게 볼 까닭이 없습니다.


  옷차림뿐 아니라 얼굴이나 몸매로도 이와 같아요. 잘생기거나 예쁘게 보이면 더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아요. 못생기거나 안 예쁘게 보이니까 마음에 안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일 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일 뿐,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서로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너는 내 마음을 읽고, 나는 네 마음을 읽습니다.



“잘 들어! 냄새는 증거가 되지 않아! 상대는 전 법무부 대신의 사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접근하면 어떡해!” “윽! 그게 뭐예요! 과장님은 상대가 대단한 사람이라면 얼렁뚱땅 넘어가 줄 거예요?” (59쪽)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가 사회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편견·선입관’을 깨려는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만화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편견이나 선입관은 아주 우습게 여기면서 이야기를 잇습니다. 무엇보다도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딱딱하거나 무겁거나 칙칙하게 흐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밝으면서 가볍고 신나는 웃음을 짓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러한 얼거리이면서도 만화 소재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이지요.



“저기,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 돼. 유서를 숨기고 멋대로 휴대폰을 쓰는 것과는 달라. 죄를 물을 수도 있어.” “알았어요?” “대강은. 그래도 형사니까.” “놀랐어요. 하나모리 씨가 그런 우수한 형사였다니. 하나모리 씨만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81∼82쪽)


“아마 옥상에서 아래를 보고 사토미를 발견했겠죠. 하지만 그 남자는 사토미한테는 가 보지도 않고 서둘러 도망쳤어요. 최악이죠? 사토미는 왜 그런 녀석을.” “외모는 착해 보였으니까.” (89쪽)



  팔랑이는 꽃치마 입는 개코 형사는 겉모습만 이와 같을 뿐입니다. 개코 형사가 개코가 아니라 번뜩이는 눈썰미로 사건을 푼다면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여러모로 ‘한결 보기 좋’거나 ‘멋있다’고 할 만할까요? 코가 아닌 귀가 밝아서 사건 실마리를 잘 푼다면, 이때에는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머리가 뛰어나서 ‘재빨리 돌아가는 머리’로 사건 실마리를 잘 푼다면? 잽싼 달리기나 몸놀림은? 빼어난 주먹힘이나 엄청난 사격 솜씨는?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개코형사는 냄새만 맡습니다. 그래도 형사이니까 여러모로 형사로서 다른 대목에서도 형사 노릇을 하지만, 개코형사는 ‘개코’를 넘어선 대목에서는 그냥저냥 ‘꽃치마순이’입니다.



“실은 제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뭐야, 함정이라고?” “범인 녀석은 나한테 혐의가 걸리도록 꾸민 거예요.” “그 이유가 뭔데?” “제가 그 시간에 온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현관문을 열어 놨고, 그리고 그 향수. 선반 위의 병이 그렇게 방에 떨어져 있는 건 이상하잖아요.” (147쪽)



  아침에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밥을 끓일 때까지 아이들은 기다려야 하니 능금을 한 알 썰어서 아이들한테 줍니다. 두 아이는 능금 반 알씩 받아 쥐고는 마당에서 놀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고샅에서 놉니다. 가을볕은 따뜻하고 가을들은 샛노랗습니다. 다 함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저마다 즐거운 놀잇거리나 일거리를 찾으면서 부산스레 움직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언제나처럼 꽃치마를 스스로 챙겨 입으면서 만화책 주인공처럼 꽃치마순이가 됩니다. 작은아이는 언제나처럼 한손에 반드시 자동차 장난감을 쥐면서 자동차돌이가 됩니다. 나는 부엌돌이도 되고 빨래돌이도 되다가 청소돌이나 밥돌이가 됩니다. 마당에서 풀을 뜯으면 풀돌이가 되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면 자전거돌이가 됩니다.


  즐거움을 찾을 적에 웃습니다. 즐겁게 일하거나 놀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우리는 이 어여쁜 별에서 저마다 재미나고 즐거운 꿈을 찾아서 순이와 돌이로 삶을 짓는 이웃으로 하루를 엽니다. 살림을 돌보다가 문득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는 만화책 한 권이 있어서 반갑습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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