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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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0



기나긴 삶을 어떻게 가꾸겠니

― 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9.30. 5500원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1권부터 5권까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어요. 그러니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나라면’이 아닌 ‘너라면’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어서 묻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는 재미를 느꼈을 적에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지요. 이러다가 하나를 더 물어요. 네가 따돌림을 받는 아이라면, 또 네가 따돌림을 하는 아이라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 제발 조금만 더 나한테 힘을 ㅈ세요. 더 이상 뭐 싫은 게 있다 해서 도망치고 그러지 않을게요. 니시미야 핑계 안 댈게요. 내일부터 애들 얼굴 제대로 볼게요. 내일부터 애들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게요. 내일부터 제대로 살게요.’ (15쪽)


‘아아, 그때 낸 상처, 아직 남아 있었구나. 나, 제대로 사과했던가? 미안. 미안해, 니시미야.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겠지만. 아직도 화났어? 아, 맞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둘 걸 그랬어.’ (19쪽)



  마지막 7권을 앞둔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 물음을 바꿉니다. 그동안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었으나, 너한테 아무리 물어도 아무 실마리가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질 노릇이 아니라, 나는 바로 나한테 물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앳된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기는 하되, 어릴 적부터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일 빼고는 따로 해 본 일이 없는 앳된 아이들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앳된 어른도 똑같아요. 아이들보다 나이는 더 들었어도 그동안 스스로 가꾸려 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으며, 고단하기도 했어요. 먹고사느라 바쁘기도 했을 테지만, 아이들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돌보거나 보듬을 틈을 미처 못 냈습니다.



“나오는 남의 마음을 너무 무시해!” “나왔다! 우리 니시미야 특기! 남을 이용한 공격!” “남이 아니라 친구야! 나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멋대로 단정 짓지 마!” (39∼40쪽)



  모든 사람은 똑같이 삶을 누립니다. 한 살을 두 해 동안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 나이를 두 해나 세 해를 누린다든지, 아니면 한두 달만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다섯 살은 꼭 한 해뿐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일곱 살 여름은 꼭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너와 내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너와 나 사이에 맺은 어머니와 아들로 꾸리는 삶은 바로 한 번뿐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도 아닌 오직 한 번입니다. 너와 내가 이웃이나 동무라면, 너와 나 사이에 이러한 얼굴이랑 몸매랑 마음이랑 생각으로 맺는 이웃이나 동무라는 모습도 오로지 한 번입니다.



‘소용없었어. 전부 다.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어. 제대로 말로 하는 게 더 나았던 걸까? ‘죽지 마’라고. 그럼 달라졌을까? 이시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난 어떡했어야 해?” (55쪽)



  물러서고 싶다면 얼마든지 물러설 수 있습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안 쳐다보아도 돼요. 모르는 척해도 되어요. 다만, 눈을 감아도 하루하루 흐르고, 고개를 돌려도 삶은 흐릅니다.


  자,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한테 묻지 말고, 내가 나한테 물을 일입니다. 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주인공 이시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니시미야를 붙잡습니다. 니시미야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움직였어요. 4층 툇마루에서 껑충 뛰어내렸지요. 도무지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풀 수 없어 아프고 괴롭던 니시미야는 죽음길로 가려 했습니다. 이때에 이 모습을 이시다가 보았습니다. 이시다는 멈칫하면서 니시미야가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을 놓칠 수 있었어요. 이때에 이시다는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생각해요.


  나도 죽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동무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겨를이었을 테지만, 툇마루에 한손을 버티고 다른 한손으로 니시미야 손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가까스로 잡아채어 버티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힘이 빠지는 다른 손을 끝내 버틸 수 없다고 느끼면서 생각하지요. 이제부터 제대로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랑을 품으며 살고 싶다고, 그야말로 1초도 안 될 겨를에 기나긴 생각을 합니다.



‘갈고닦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변해 가자. 앞으로도 쭉 변치 않고.’ (96쪽)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돌아보면, 이시다는 어릴 적에 높은 곳에서 냇물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날마다 즐겼습니다. 왜 이런 놀이를 즐겼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이날, 니시미야라는 아이가 4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할 무렵, 이 아이를 살려내고 이시다가 이 높은 곳에서 마을 냇물로 뛰어내리면 ‘죽지 않을 수 있겠네’ 하는 대목을 미리 배운 셈일는지 모릅니다. 앞날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앞날을 지은 셈이라고 할까요.


  기나긴 삶은 스스로 지을 때에 즐겁고, 기나긴 삶은 누구한테나 주어지며, 기나긴 삶을 사랑으로 가꾸든 미움이나 슬픔으로 차곡차곡 여미든, 모두 우리 몫입니다. 앳된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려는 첫발을 뗍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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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4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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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8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피어난다

― 키친 4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0.29. 1만 원



  어제 읍내로 마실을 가서 ‘소고기 설도’라는 고기를 조금 장만했습니다. ‘설도’라는 이름은 언제나 낯설고, 이 이름이 어디를 가리키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어도 이내 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설도’라는 낱말은 아예 안 나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아야 비로소 ‘泄道’라는 한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泄道’라는 고기는 소에서 어디일까요?


  인터넷에서 찾아본 백과사전에서는 예전에 ‘구녕살’이나 ‘밑살’이나 ‘비역살’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말 이름이 ‘먹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듣기에 안 좋다’고 해서 한자말 이름으로 바꾸어서 쓴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泄道’라 하든 ‘비역살(밑살, 궁둥살, 구녕살)’이라 하든 “궁둥이 쪽에 있는 사타구니 살”을 가리킵니다. 어떤 이름을 쓰든 소고기 가운데 한 곳을 가리킬 뿐이에요.


  가만히 보면, 고깃집이나 푸줏간에서는 ‘앞다리’나 ‘뒷다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나, ‘전지(前肢)’나 ‘후지(後肢)’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전지·후지’는 듣기에 좋은 이름일까요? 알아들을 만한 이름일까요?



“태워 줄까? 수학여행?” “……. 따돌려졌어요.” “늘 그렇지만, 혼자 여행이 최고지. 차 돌릴까? 저거 너네 학교 차 맞지?” (10∼11쪽)


‘언니는 막 피어난 꽃의 싱싱하고 분명한 향기보다, 은은하고 포근한 말린 꽃향기가 나는 사람 … 어느 사진작가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 가득했던 매화나무. 꽃차를 즐겨 만드는 언니를 위해 시골의 야생국화를 꺾어다 준 남자. 내가 마신 건, 사진을 찍어내듯 소중하게 말려져 봉인된 기억들이었어.’ (43, 48쪽)



  오늘 아침에 ‘밑살구이’를 합니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처음부터 알맞게 썰어서 굽습니다. 밑살이라고 하는 고기를 먹은 일은 퍽 드물다고 떠오릅니다. 곁님이 아기를 배거나 낳아서 몸을 돌보며 미역국을 끓이던 무렵 밑돈을 살뜰히 모아서 모처럼 한 번 밑살을 장만해서 쓰곤 했어요. 밑살을 구워서 먹은 일은 마흔 해 남짓 살며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밑살구이를 아이들하고 먹었어요.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0) 넷째 권을 읽으며 아침으로 먹은 밑살구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네 식구는 밑살 사백오십 그램쯤을 한 끼니로 깨끗이 먹습니다. 이만 한 무게라면 고깃집에 가서 먹으려 할 적에 돈을 꽤나 써야 했겠지요. 집에서 구워도 돈은 꽤 치른다고 할 만하지만, 나와 곁님으로서는 처음이요 아이들로서도 처음인 새로운 고기구이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먹어 본 밑살구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자주 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웁겠네 싶도록 맛있더군요. 밑살구이를 하면서 불판 둘레에 고구마랑 당근을 함께 구워 보았는데, 고구마구이와 당근구이도 맛있습니다.



‘뭐야, 짜증나게 탈북자가 뭐야. 전학생은 늘 한방으로 처리했는데. 쳇, 어쩔 수 없지. 없는 사람 치자. 뭐, 자기도 알아서 조용히 하잖아.’ (58쪽)


“내 어머닌 5년 전 함께 국경 넘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 내 아버진 2년 전 공안에게 붙들려 북조선으로 끌려갔고. 니 아나? 네 어머니, 아버지.” (68쪽)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오늘 짓는 이 밥 한 그릇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맛으로 스며들면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 지은 이 밥 한 그릇을 비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기쁨을 몸이랑 마음에 담으면서 씩씩하게 놀까 하고 돌아봅니다.


  밥이랑 국만 단출하게 차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뜯은 풀을 신나게 올리는 봄밥도 있고, 카레나 짜장을 하기도 하고, 부침개를 한다든지 달걀말이를 하기도 합니다. 손이나 품이 가는 밥은 잘 안 해 버릇하는데, 아이들은 늘 고맙게 밥상을 받습니다. 웃고 떠들고 놀며 딴짓도 실컷 하며 수저를 쥡니다. 큰아이는 왼손 젓가락질이랑 숟가락질을 하겠다면서 늘 용을 씁니다. 작은아이는 한 숟가락 뜨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또 한 숟가락 뜨고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마흔 살이 되면 저마다 어떤 밥을 손수 차려서 하루를 즐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받을 날이 있을 텐데, 그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밥으로 기쁜 아침이나 저녁을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완이 엄마, 여기서 뭐 해?” “정말, 이유식이 맛이 없네요. 이런 걸 먹으라고 주다니. 아줌마, 전 엄마 노릇 못하겠어요. 아이 하나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엄마라니. 으흐흑, 흐흑.” “아이고 이를 어째, 진정해. 아니, 대체 맛이 어떻기에. 음, 좀 맹탕이네. 소금 좀 치면 나으려나.” “네? 책에서 이유식엔 소금 치지 말라고. 알레르기 반응 살피면서 야채부터 고기로 하나씩.” “에이, 그게 다 뭐야. 아기도 맛있어야 먹지. 고기 야채, 다 때려넣고 양념해서 끓여. 우리 애들은 그냥 짠 국에 밥 말아 키웠구만.” (96∼97쪽)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은 밥 한 그릇하고 얽힌 삶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맛있는 밥이든 맛없는 밥이든, 고단한 제삿상이든 카페타 레스토랑에서 잔뜩 차려입고 멋부리면서 먹는 밥이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누리며 다 다른 밥을 지으면서 마주한 삶을 만화로 엮어서 넌지시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에서 웃음이 솟고, 밥 한 그릇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밥 한 그릇으로 하하하 웃는 동안 기쁨이 솟고, 밥 한 그릇을 마주보며 뚝뚝 눈물을 흘리다가는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정말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가까워지고 싶어요. 다시 만나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부조림 좋아해요. 해 주시면 더없는 영광이겠고, 이런 분명한 의사표시, 뭐가 나쁜가요?” (133쪽)



  날마다 밥을 지으며 생각해 보면, 내가 지은 밥이 나로서는 가장 맛있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지어 주신 밥은 늘 고마웠습니다. 이웃하고 밖에서 사다가 먹는 밥은 내 품과 겨를을 아껴 주어서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이웃집에 나들이를 가서 받는 밥 한 그릇은 집집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기에 재미있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지은 밥을 받는다면, 이때에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마 온갖 마음이 골고루 어우러지겠지요. 그야말로 밥 한 그릇에 삶이요 사랑이요 꿈이요 노래요 웃음이요 눈물이요 기쁨이요 아련함이요 그리움이요 놀라움이요 해님이요 달빛과 같다고 할 만합니다.



엄마, 아빠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 초보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읍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완벽한 시골 생활은 처음인 것이었죠.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최고의 외가가 생긴 겁니다. (167쪽)


여름엔 상추와 오이, 고추를 뚝뚝 꺾어다, 수돗가에서 흙만 씻어내고는 된장에 찍어 먹거나 매실 소스를 쳐서 샐러드를 해먹습니다. 금방 땄기 때문에 시원하고 청량한 감칠맛이 한가득합니다. (172쪽)



  수수한 밥 한 그릇으로 수수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만화책 《키친》이 사랑스럽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밥 한 그릇에서도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꿈이랑 사랑을 넌지시 보여주는 만화책 《키친》이 즐겁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밥을 짓고 밥을 먹으며 밥을 나누는 만큼, 수수하면서 새로운 노래는 어느 집에서나 따사로이 흐르리라 생각해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저녁입니다. 저녁에도 오붓하고 조촐한 밥상을 잘 지어야겠습니다.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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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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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7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즐거운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3.25. 4500원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바뀐다고 느낍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바뀌고,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바뀌지 싶어요. 한 해를 산 아기는 한 해만큼 삶을 지은 셈이고, 다섯 해를 산 아이는 다섯 해만큼 삶을 지은 셈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 아이한테도 쉰 살 어른한테도 하루는 늘 새롭습니다. 다섯 살에 맞이하는 가을은 언제나 꼭 한 번이요, 쉰 살에 맞이하는 가을도 언제나 꼭 한 번이에요. 두 번이나 세 번 겪을 수 없는 ‘다섯 살 가을’이고 ‘쉰 살 가을’입니다.



“당신 어쩐지 변했군.” “변하다니?” “전에는 마모루 걱정하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가 바쁜 동안에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고 하니까.” (7쪽)


“아, 오랜만에 마모루랑 놀아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에 마모루도 많이 컸네요.” “그럴까? 변한 것은 오히려 자네가 아닐까 싶네만.”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한째 권을 가만히 읽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내 옆에 달라붙으며 묻습니다. “아버지, 천재 유교수, 나도 봐도 돼?” “글쎄, 네가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만화라고 해서 다 볼 수 있지 않아. 네가 모르는 말이 많으니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여덟 살 아이가 볼 만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해 넘게 그린 이 작품에는 ‘젊은 유택 교수’나 ‘중년 유택 교수’를 지나서 ‘할아버지 유택 교수’가 나옵니다. 이제 이 만화책에 아이들이 꽤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 가운데 세 딸이 시집을 가며 낳은 새로운 아이들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집 여덟 살 아이더러 한번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곧 깜깜해지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나는 울었다. 언니는 웃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리 깜깜해져도 반드시 내일은 오잖니? 울어도 웃어도 내일은 온단다. 돌아갈 수 있어.” (60∼61쪽)


“선생님이 나하고 하나코를 혼냈니?” “아뇨. 다른 사람을, 혼냈어요.” “다른 사람, 이라니?” “음, 그게 아니고 사람 아니구요, 뭔가를 향해, 여러 가지 나쁜 걸 다 혼냈어요.” (89쪽)



  여덟 살 아이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흐르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차리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여덟 살 나이에는 여덟 살 나이만큼 알아차릴 테지요. 나중에 열두 살쯤 되어 다시 본다면 여덟 살 나이였을 적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알아차릴 테고요. 스무 살이 되어 다시 본다면 스무 살 나이일 적에 알아차릴 만한 대목을 새롭게 느끼리라 봅니다. 서른 살에는 서른 살만큼, 마흔 살에는 마흔 살만큼 이 만화책 이야기를 받아먹을 만합니다.



“내 강의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불쾌하지 않다네. 내 강의를 들을 의지가 있나?” (130쪽)


‘남자라서, 여자라서는 아니라고 보지만, 내가 너무 한쪽 면으로만 사람을 보고 있었나? 언제나 강하게 주장하는 이미지였던 오오에 카오루가 불안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언제나 소리 높여 웃는 줄만 알았던 아오키 모모카가,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140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도 나이를 한 살씩 새로 먹으면서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유택 교수뿐 아니지요. 유택 교수 같은 사람을 곁님으로 둔 아주머니도 할머니가 되는 동안 천천히 삶을 새롭게 배웁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도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새롭게 삶을 새롭게 배워요. 유택 교수네 손자와 손녀도 저마다 새로운 삶을 늘 즐겁게 배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너도 나도 새로움을 배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새로움을 찾아서 이 삶을 누립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픕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신납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나무예요.



‘내 근황을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몇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말은 오가지만 주제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 하지만, 그런데도, 공기만은 틀림없이 오가고 있다. 저녁놀 속에서 참새들이 모여 지저귄다.’ (155쪽)


“왜 도와주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좋은 기록이 남은 것 같군.” “기왕 찍으려면 좀더 근사하게 차려입었을 때 찍지!” “아니, 좋은 기록은 생활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것이오.” “아무튼 정리하는 거나 도와줘요!” (161쪽)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새롭게 깨어나서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또는 아이들과 다르게, 또는 아이들하고 엇비슷하게, 또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새롭게 하루를 헤아립니다.


  어젯밤에도 늦게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오늘은 아침 일찍 다시금 똥을 눕니다. 참 많이 즐겁게 먹었나 보구나.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응가 다 했습니다! 휴지로 닦아 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휴지를 두 칸 뜯어서 밑을 닦습니다. 토실토실 복숭아 같은 궁둥이는 더없이 귀엽습니다. 아이들은 복숭아를 늘 엉덩이에 매달면서 심심할 적마다 스스로 뜯어먹을까요?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심심하면 내 복숭아를 재미나게 뜯어먹었을 테지요. 모처럼 비가 오면서 쌀쌀한 새 하루가 흐릅니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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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26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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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6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그 님’이 되지 않아

― 강철의 연금술사 26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9.25. 4200원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는 여느 낱권으로는 스물일곱 권으로 마무리가 되고, 완전판으로는 열여덟 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여느 낱권으로 마지막 한 권을 남긴 《강철의 연금술사》 스물여섯째 책을 읽으면, ‘신’을 손에 거머쥔 ‘다른 숨결’이 태어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제껏 ‘신’이 아니면서 ‘신’을 꿈꾸다가 드디어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그동안 플라스크에서만 살던 꼬마’가 ‘신’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스스로 믿는 이야기가 흐르지요.


  여러 연금술사가 나오는 만화책인 《강철의 연금술사》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러 연금술사 가운데 가장 ‘힘센’ 연금술사란 바로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입니다. 지구별에 있는 사람들 넋을 사로잡아서 ‘제 몸(플라스크에서만 살던 꼬마)’에 가두고는 무시무시한 힘을 뽐낼 수 있거든요.



“너희들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한 적이 있나? 아니, 생명체라기보다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 너희 인간 하나의 정보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방대한 우주의 정보를 기억하는 시스템. 그 문을 열면 과연 얼마나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한 적이 있나?” (27쪽)


“모두 부탁한다! 힘을 빌려 다오!” “흐흠, 고작 50만 명 분의 현자의 돌로 애쓰는군. 그렇지만 시간 문제다.” (72쪽)



  만화책에 나오는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인조 생명체’ 모습은 여러모로 헤아릴 만합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 돈을 어마어마하게 빼앗아서 어마어마하게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한 사람은 ‘가장 손꼽히는 부자’일 테지요. 다른 사람한테 있던 돈을 다 빼앗았으니, 이 한 사람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홀로 어마어마한 돈을 거머쥔 이 사람은 어떤 삶이 될까요? 즐거운 삶일까요? 아름다운 삶일까요? 사랑스러운 삶일까요? 다른 사람 돈을 다 빼앗은 뒤에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름다운 기부? 아름다운 자선? 아름다운 나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스스로 가장 힘센 넋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는 손가락을 까딱하지 않고 눈짓으로만 쳐다보아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커다란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힘이지요. ‘주먹힘’입니다. 수백만에 이르는 군대가 이 한 목숨을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이겨내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핵폭탄으로도 이 ‘신이 되었다고 여기는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를 죽일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주먹힘이 가장 세다고 여기는 이 가녀린 아이는, 주먹힘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딱한 아이는, 참말 무엇을 할 만할까요?



“이 나라 사람들의 혼은 정신이라는 이름의 끈에 의해 아직 신체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 예를 들자면 탯줄로 모체와 이어진 태아처럼 말이지. 완전히 네 것이 되진 않았다는 뜻이야.” (81쪽)


“네가 신이라는 것을 손에 넣엇을 때, 이미 인간의 역전극은 시작되고 있었어! 혼은 육체와 절묘하고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지. 그것을 억지로 잡아떼어 다른 곳에 정착시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 반대는 간단해. 혼을 해방시키기만 하면 되거든. 원래의 육체가 고스란히 있다면 혼은 저절로 그쪽으로 가지.” (87쪽)



  다른 목숨을 수백만, 아니 수천만, 아니 수억이나 수십억을 빼앗은 ‘플라스크 인조 생명체’가 낼 수 있는 힘은 아주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 인조 생명체는 무엇인가를 부수는 짓은 신나게 할 수 있는지 몰라도, 무엇인가를 새로 짓는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목숨을 낳는 어버이 구실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목숨한테 물려줄 사랑이나 삶이나 꿈이란 아무것도 없지요.


  왜 그러할까요? 왜 인조 생명체는 ‘신이라 할 만한 힘’을 손에 거머쥐었으나 아무것도 새로 짓지 못할까요?


  다른 모든 목숨을 빼앗아서 제 몸에 가두었으니, 이 땅(지구)에는 다른 목숨이 없거든요. 이 바보스러운 인조 생명체하고 맞서서 싸우는 몇 연금술사와 전사를 빼고는 다른 목숨이 없으니, 이 인조 생명체가 ‘지구 으뜸’이 되었다 한들 이 지구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할 수 있는 놀이도 없어요.



“하찮은 문답을 하는 사이에 원수를 갚을 수 없게 되었구나, 소녀여. 준비된 레일 위의 인생이었지만, 너희들 인간 덕분에, 보람 있는, 좋은 인생이었다.” (116∼117쪽)



  전쟁이란 언제나 바보짓입니다. 전쟁은 마구 때려부수는 짓만 하기 때문에 늘 바보짓입니다. 전쟁은 어느 것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참말로 바보짓입니다. 전쟁에는 아무런 사랑도 깃들지 않으니 그야말로 바보짓입니다.


  누군가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 될 테지요. 누군가를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될 테지요. 다시 말해서, 전쟁이나 폭력은 ‘다른 누군가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바보스러운 몸짓’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폭력은 언제나 사랑을 끔찍히 미워합니다. 전쟁이나 폭력은 언제나 주먹힘이나 전쟁무기로 사랑을 짓밟으려고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지구에서 ‘으뜸 권력’을 거머쥔다면, 이 권력자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에서 ‘으뜸 권력자’ 노릇을 하려고 든다면, 참말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무런 사랑이 없는 권력자는 언제나 바보짓을 맴돌이치는 굴레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스스로 사랑이 되지 않고 권력만 거머쥐려고 하는 이들은 늘 바보짓에 사로잡히면서도 스스로 바보인 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새발의 피라도 상관없다! 계속 해! 저 녀석의 몸은 지금 ‘신’이라는 것을 가둬 두는 것만으로도 벅차! 터지기 직전의 빵빵한 풍선 같은 상태다! 조금씩이라도 돌의 힘을 갉아 들어가면 언젠가 저 녀석의 몸에도 한계가 올 거야!“ (143쪽)


“호문쿨루스에서는 뭐가 생기지? 뭘 낳을 수 있나? 파괴밖에 가져오지 않는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어?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186쪽)



  다른 목숨을 빼앗아서 ‘신’이 되려고 하는 이는 아주 바보입니다. 왜 다른 목숨을 빼앗아서 신이 되려고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하느님(신)인걸요. 성경책에 나오는 하느님이 아니라, 온누리에 따스하고 너른 사랑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슬기로운 하느님입니다. 너를 사랑하고 나를 아낄 줄 아는 착한 하느님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아낄 줄 아는 참된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기쁜 웃음을 노래하는 길을 씩씩하게 여는 고운 하느님입니다.


  저마다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사랑’을 읽고 살피면서 북돋울 줄 안다면, 스스로 하느님이 됩니다. ‘그 님(신)’은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 님은 다른 목숨을 빼앗거나 사로잡거나 가로챈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그 님은 다른 사람 것을 훔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요한 숨결이 되고, 스스로 따사로운 넋이 되며, 스스로 즐거운 노래가 될 때에 비로소 너도 나도 하느님입니다.


  어린이 마음일 때에 바야흐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어린이 마음’으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바람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홀가분한 넋으로 삶을 짓는다면, 참말 우리는 서로서로 하느님인 셈입니다. 내가 너를 아끼고 네가 나를 아끼는 기쁜 두레를 이루는 마을살이를 가꾸면, 참으로 우리는 늘 하느님 나라에서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멋진 사람인 셈입니다.



“시시한 건 그쪽이야.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 사고정지 바보 주제에! 그리드가 차라리 너희들보다 더 진화한 인간이라고.” (162쪽)



  꿈을 생각하면서 꿈이 됩니다. 사랑을 생각하면서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생각하면서 전쟁이 되고, 미움을 생각하면서 미움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삶을 짓습니다. 그러니, 나는 우리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기쁘게 노래할 꿈을 마음에 품습니다. 푸른 숲이 되고, 숲을 가꾸는 바람이 되며, 바람을 마시는 고운 사람으로 이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일구자는 꿈을 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삶을 짓는 길을 걸으려 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으뜸도 버금도 딸림도 아닌 그예 수수한 사람입니다.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사랑을, 나는 내가 새로운 어버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나도 언제나 ‘어린이 마음’으로 하루를 짓겠노라 하고 생각합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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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분의 일 2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5



우리는 서로서로 돕는 지구별 이웃님

― 십일분의일 (1/11) 2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4800원



  저녁에 아이들을 재웁니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고 떠들고 웃고 노래하고 뒹굴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다 놀았구나 싶을 무렵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집안에 차분하게 흐를 만한 노래를 틉니다. 전깃불은 모두 끕니다. 모두 방석에 앉아서 촛불을 바라봅니다. 촛불에서 어두운 곳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낯설거나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 무척 야무지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나도 아이들이랑 함께 씩씩하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촛불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거나 졸리면 스스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나는 촛불을 더 보고 나서 이부자리를 살피지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미어요. 얼마 앞서까지는 촛불보기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한 시간 남짓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재웠고, 요즈막에는 저녁마다 촛불보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잠자리를 챙겨서 눕도록 합니다.



‘그래도 그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좋았다. 온몸을 사용해 골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12쪽)


‘그 녀석이 그렇게 날 믿고 있는데, 내가 날, 믿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34쪽)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구나 싶은 때에 부엌으로 갑니다. 작은아이가 저녁에 먹고 남긴 밥그릇을 들여다봅니다. 이 밥은 내가 마저 먹습니다. 한창 먹다가 아차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우리 집에서 함께 눌러서 사는 마을고양이한테 주어도 될 텐데.


  다음에는 아이들이 남긴 밥을 고양이밥으로 살뜰히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만화책 이름인 ‘십일분의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쉽게 알아챌 만합니다. 바로 축구 이야기입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레귤러 자리를 지키고 싶어 골키퍼가 되었던가? 아니잖아.’ (49쪽)


“당신은 몸을 던져 골을 지켰어. 거기서 주저하며 움츠러들었다면 내가 흠씬 두들겨팼을 거야!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 절대 사과할 필요 없어.” (54∼55쪽)



  아는 사람은 다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 텐데,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다른 운동 경기도 이와 같아요. 혼자서 하는 경기는 없습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사람이 혼자라 하더라도 경기장 둘레와 뒤에서 돕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경기장에 혼자 나서는 사람도 경기장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녁이 연습을 하거나 훈련을 하도록 돕지요.


  이리하여,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열한 사람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물결 가운데 한몫을 맡습니다.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빠지더라도 다른 열 사람 물결이 흔들려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한마음이요 한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잘 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하는 물결이고, 한 사람이 잘 못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못 하는 물결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열 사람이 곁에서 받치거나 돕습니다. 두 사람이 잘 못 하면 아홉 사람이 받치거나 돕지요.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나서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만, 경기를 마친 뒤에는 ‘최우수 선수’나 ‘우수 선수’를 가리곤 합니다. 모두 훌륭했으나 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사람을 따로 가리기도 해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왜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다른 열 사람이 튼튼하게 버팀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열 사람이 넉넉하고 아기자기한 밑물결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으뜸인 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까닭은 열한 사람이 모두 으뜸이 되도록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잔소리 해대지 않아도 다 알거든! 내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여자아이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위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힘든 사람을 더 몰아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77쪽)


“슬픈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덧씌우면 되잖아?” (80쪽)



  아이들이 잠든 밤에 부엌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아이들한테 집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더러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지만, 밥을 하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거나 빨래를 하라거나 청소를 하라거나 같은 일은 안 시킵니다. 아이들더러 읍내에 가서 장보기를 하라고 시키지 않고,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다녀오라고 시키지 않아요.


  두말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나어린 아이들한테 섣불리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나어린 아이들한테는 ‘자, 너희는 기쁘게 뛰놀렴.’ 하고 말할 뿐입니다.


  만화책 《십일분의일》에 나오는 ‘한 사람’은 어떤 몫을 할까요? 공격수이든 수비수이든 문지기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되, 다른 사람들이 제몫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버티는 나무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는 동안, ‘한 사람’은 한 사람대로 마음껏 제 솜씨를 뽐내면서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은 한 사람을 받치고, 한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른 한 사람이 마음껏 뛰고 달리며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받쳐 주어요.



“대충 적당히 한 녀석은 긴장 따위 안 해. 나도 시합 전엔 늘 긴장되거든. 그전까지 연습을 필사적으로 했을 때는 더욱 그렇고. 그러니 걱정 마. 넌 틀림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97쪽)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헤딩이라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난.” “‘나는, 나는’ 하며 뭐든 혼자 하려고 하지 마. 11명이나 있는걸. 네가 필살 슛을 넣지 않아도, 이길 수 있어.” (137∼138쪽)



  아이들은 밥을 지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밥을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밤에 새근새근 잠들면서 즐거운 꿈나라로 날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걸레질이나 비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축구라는 운동 경기에서 열한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즐겁게 제몫을 맡으면서 다른 동무나 이웃이 기쁘게 운동장을 누비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 한 사람은 다른 열 사람이 뒤와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기에 마음껏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수십 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나는 다른 지구별 이웃을 돕는 버팀나무요, 다른 지구별 이웃은 나를 돕는 버팀나무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고, 함께 두레를 하기에 기쁩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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