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3시의 무법지대 3
요코 네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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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9



일도 사랑도 목숨을 걸고

― 오전 3시의 무법지대 3

 네무 요코 글·그림

 김승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15. 5500원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는 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제때에 일을 마치고 집에 갈 수 있는 하루가 드뭅니다. 회사에서 밤을 새거나 잠을 자기 일쑤이고, ‘제때’라고 하는 때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이 맞는 짝을 만날 틈이란 없다고 할 만하고, 마음이 맞는 짝을 만나더라도 둘이 오붓하게 지낼 만한 틈을 내기가 힘들다고 할 만합니다. 밝은 낮에 팔짱을 끼면서 걷고 싶으나, 이런 나들이는 거의 꿈이라 할 만해요. 한밤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이런 일도 언제나 꿈과 같습니다.



‘어떡해. 조용히 혼자 있게 되면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 쏠려. 수많은 ‘만약’.’ (33쪽)


‘밤샘을 한 사람에게도,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도, 실연한 사람에게도, 발주서는 평등하게 날아온다.’ (42∼43쪽)



  수없이 많은 가게가 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가게마다 광고종이를 뿌리고, 이 수없이 많은 광고종이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된 일을 잊으려고 돈을 써서 노는 사람이 있고, 고된 일이 바쁜 나머지 돈을 쓸 겨를이 없지만 다달이 집삯을 내야 하니까 돈을 자꾸 벌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쳇바퀴와 같은 일로 바쁩니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을 하느라 몸이며 마음이 지치는데, 이러한 곳에서 만나는 반짝거리는 사랑은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마음속에 환한 웃음꽃이 피도록 북돋우는 짝꿍이 없다면 수없이 많은 가게마다 밤새도록 불빛이 번들거리는 이곳에서 버티지 못할 만하다고 할 수 있어요. 목숨을 걸듯이 일을 하고, 목숨을 걸듯이 사랑을 합니다. 온힘을 쥐어짜내면서 일을 하고, 마지막 힘까지 버티면서 사랑을 품에 안으려 합니다.



“그 자식, 한 대 패주고 와.” “네?” “그게 머리 자르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일 거야. 이렇게 마냥 소화불량으로 끌어안고 살다간 위가 못 버텨.” (62∼63쪽)


“여유가 있으면 때려 보겠어.” “하하하. 때리는 건 여유가 없다는 증거 아냐?” “근데 나도 참 구질구질하다. 실은 멋지게 딱 포기하고 싶었는데.” “후후, 목숨 걸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 (66쪽)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가씨는 사랑과 실연 사이를 오락가락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가씨하고 짝꿍으로 맺어지는 사내는 이혼과 새 만남 사이에서 오락가락합니다. 이들은 저마다 어떤 발걸음으로 새 길을 나아갈 사이가 될까요. 젊은 날에는 밤 세 시나 새벽 세 시에도 불을 밝히면서 일을 한다지만.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도 이처럼 일을 하면서 둘 사이를 따사로이 이을 수 있을까요. 서로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채 멀리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나날을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고 쉰이 넘는 때까지도 이어갈 만할까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키스하지 않아도, 모든 게 납득되지 않아도, 진심은 늘 제자리에.’ (122쪽)


“모모코가 온 뒤로 너무 즐거워서, 그만둘지 말지 많이 고민했어.” (147쪽)



  내 새벽 세 시는 어떠한 때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나한테 새벽 세 시는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는 때입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이부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서 일감을 붙잡는 때입니다. 아이들이 깨어날 아침에 어떤 밥을 새로 지을까 하고 생각하며 쌀을 씻어서 불리거나 다시마 국물을 내는 때입니다. 엊저녁에 고단해서 끝내지 못한 설거지가 있으면 얼른 마무리를 짓는 때입니다.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겨 봅니다. 사람들마다 새벽 세 시, 또는 밤 세 시를 다르게 맞이합니다. 이때까지도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이때까지도 술자리를 이으면서 고단한 마음을 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있고, 이때에 홀로 쓸쓸히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있어요. 이때에 하루 일을 여는 사람이 있고, 이때에 하루 일을 기쁘게 마무리짓는 사람이 있어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저마다 다른 사랑으로 저마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4349.1.2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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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상경기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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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8



밑바닥 밑에서 기면서 만화가로 일어서다

― 만화가 상경기

 사이바라 리에코 글·그림

 김동욱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펴냄, 2011.8.25. 9000원



  사이바라 리에코(1964∼)라는 일본 만화가가 빚은 《만화가 상경기》(AK 커뮤니케이션즈,2011)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서울(일본 도쿄)’로 가는 날만 손꼽아 꿈꾸던 이녁이 드디어 시골을 벗어나서 서울살이(도쿄살이)를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단편만화집입니다. 짤막하게 1화부터 53화까지 한 쪽에 한 가지 이야기씩 그립니다. 그러니까 쉰세 쪽짜리 만화책인 셈이니 무척 가볍고 작은 책이라 할 테지요.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는 무지개빛으로 그렸고, 한 가지 이야기마다 깊고 긴 나날에 걸친 땀과 눈물과 피가 고루 섞였어요. 쉰세 쪽짜리 만화책이지만 쉰세 해쯤 살아낸 이야기 같은 만화책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나한테는 얼굴 말고 다른 게 있을 거야, 그러니까 도쿄에 올라가자, 나는 매일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도쿄에 올라와서 처음 깨달은 것. 그건 바로 내가 이날을 위해 마련해둔 예쁜 신발이랑 옷가지가 실은 죄다 엄청 꼴불견이라는 사실이었다. (1화)



  서울(도쿄)에서 사는 사람은 어쩜 그렇게 멋져 보이는 옷을 차려입을 수 있을까요? 서울(도쿄)에서 사는 사람은 그 비싼 물건값이랑 집삯에도 어쩜 그렇게 살림을 꾸리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요?


  ‘아직 만화가로 살지 못’하고 술집에서 접대원으로 일하면서 겨우 입에 풀을 바르는 사이바라 리에코 님은 지저분하고 좁으며 갑갑한 집에서 ‘내가 이 꼴이 되려고 겨우 시골집을 벗어났는가?’ 하면서 한숨을 쉽니다. 그런데 한숨을 쉬다가도, 이 까마득한 곳(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출퇴근(접대원으로 일하는 술집으로 오가는 길)을 하는데 전철바닥에 한가득 게우고는 몹시 부끄러운지 계단을 세 칸씩 성큼성큼 뛰면서 내빼는 회사원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고이 접습니다. 언제나 한숨만 가득한 나날이지만, 접대원으로 일하는 술집에서 여러 해 동안 상냥한 웃음으로 일하는 언니가 ‘연극단원’이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또 이 언니가 접대원 일을 그만두고 동물원 일자리를 얻었다고 귀띔하는 말을 듣고는, 또 이 언니가 접대원 일을 그만둔 뒤에 그 술집에 손님이 절반 남짓 뚝 끊어진 모습을 보고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참말 삶이란 무엇이고, 서울살이(도쿄살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둘레에는 어떤 사람이 있고, 나(와 너)는 어떤 사람일까요. 《만화가 상경기》를 보면, 시골에서 지낼 때이든 서울(도쿄)로 올라와서 지내든, 사이바라 리에코 님은 이녁 스스로 ‘나는 더없이 못난 꼴불견’이라고 되뇝니다. 참말 사이바라 리에코 님은 그저 ‘더없이 못난 꼴불견’이기만 한 사람일까요.




고양이는 친해진 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우리 집에서 아픈 데도 다 돌봐 주고 깨끗하게 목욕도 시키고 또 사람도 잘 따르게 붙임성 좀 키워서 내보냈으니,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좋은 데서 거둬 줬겠지.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땐 정말 그 고양이가 부러웠다. (10화)


미술서가 잔뜩 쌓인 책방에 들렀다. 이런 책들은 비싸서 사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봤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순간, 왜 못 사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바로 이 책인데 왜 난 이런 옷이나 입고 있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바로 이 책인데 왜 허구한 날 하는 일도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남자랑 살고 있지? (16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이 꿈을 언제 이룰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 마음을 언제 열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어느 날 책방에 들러서 미술책을 서서 읽다가 ‘왜 이 책을 사지 못하나?’ 하고 스스로 물어요. ‘왜 이 책을 사서 집에서 느긋하게 읽지 못하나?’ 하고 스스로 물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는 주머니에 돈이 없을는지 몰라요. 그러면 돈이 없다는 까닭 하나 때문에 미술책을 못 사고, 만화가가 못 되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 돈을 더 악착같이 벌겠다는 마음이 모자라지는 않았을까요? 아니면, 스스로 만화가로 살겠노라는 꿈을 제대로 못 꾸지는 않았을까요?


  사이바라 리에코 님은 술집 접대원으로 한창 일하던 어느 날부터 겨우 그림을 어느 잡지사에 내밀면서 ‘성인만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성인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 테지만, 입에 풀을 바르려면, 또 만화를 그리려면, 사이바라 리에코 님으로서는 ‘할 수 있는 힘’을 다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어요. 부끄러움을 챙기거나 이것저것 가릴 살림이 아니었어요. 밑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나날이었고, 밑바닥 밑에 또 어떤 밑바닥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나날이었다고 할 만해요.




그 뒤로는 제일 싼 맥주 하나 시켜 놓고, 가게에 오던 그 여자애들 흉내를 냈다. 크게 웃고 떠들도 다리도 몇 번씩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신나는 인생처럼 보일 수 있도록, 계속 그런 궁리만 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25화)


꼼꼼하게 한 장 한 장 살펴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일 자신 있는 터치로 한 장만 더 그려 오시면 안 될까요?” 제일 자신 있는 터치라니, 그런 거 없다고요. (29화)



  밑바닥 밑에서 기면서 만화가로 일어서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가 상경기》라고 할 만합니다. 밑바닥 밑에서 기는 동안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리고, 괴로우면 짜증도 부리면서 살던 나날을 고스란히 담되 ‘언제나 이녁 둘레에서 상냥하게 웃는 낯으로 이녁 마음을 달래 주던 이웃님을 떠올리면서 그린 만화’를 찬찬히 그러모은 《만화가 상경기》라고 할 만합니다.


  지나고 보니 다 괜찮아서 지나온 나날을 그린 만화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제 좀 걱정이나 시름을 덜었기에 《만화가 상경기》를 그렸다고도 느끼지 않아요. 사이바라 리에코 님은 만화책 끝자락에 만화를 그리는 까닭을 차분하게 밝힙니다. 쉰한째 이야기에서 이 까닭을 밝히는데, 힘들거나 괴롭거나 짜증이 날 적에 이녁한테 스승이 되는 분이 그린 만화책을 읽는다고 해요. 이 만화를 그리면서 마음이 풀리고 한바탕 웃음이 난다는데, 만화 한 권을 읽으면서 이토록 기쁜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사이바라 리에코 님 만화가 이웃들한테 기쁨을 길어올리는 징검돌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한다고 해요.




어느 날, 평소대로 성인잡지 4컷을 편집부에 가지고 갔더니, “그럼 사이바라 씨, 이건 이번 회로 끝냅시다. 아니, 그러니까, 사이바라 씨, 청년지에 연재 시작했잖아. 이제 성인지 연재는 그만해야지. 그래도 혹시 일이 또 끊어지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이런 일쯤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어느 큰 출판사의 유명한 잡지에서 연재를 시작할 무렵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 신세 많았습니다. (41화)



  웃을 일도 울 일도 언제나 나 스스로 짓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언제나 내가 스스로 지어요. 반찬을 가득 올려야 맛있는 밥상이 되지 않아요. 반찬이 한 가지만 있어도 내가 스스로 맛있게 먹을 적에 맛있는 밥상이 돼요. 내가 스스로 맛없게 먹으면 수십 가지 반찬이 있어도 맛없는 밥상이 될 뿐이에요.


  밤마다 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재우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어버이로 살면서도 스스로 골을 내며 자장노래를 안 부르면 아이들이 괴롭지 않아요. 어버이인 내가 괴롭지요. 스스로 활짝 웃으면서 아이들하고 신나게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놀이노래를 부르면 다 함께 즐겁고 신나요.


  밑바닥에서도 또 밑바닥으로 나아가기만 하다가 어느새 밑바닥이 아닌 삶자리와 보금자리를 깨달으면서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만화가 상경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내가 나를 참답게 사랑하는 길’이지 싶어요. 어느 곳에 있어도 내 마음을 스스로 지키고, 어느 일을 맞닥뜨려도 내 꿈을 스스로 키우면, 스스로 맑게 짓는 웃음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 작으면서 앙증맞은 만화책에 흐르지 싶어요. 4349.1.2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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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5 토성 맨션 5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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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7



아버지 뒤를 따라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

― 토성 맨션 5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일본에서는 2006년에 진작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2012년에 4권까지 나온 뒤 뒤엣권이 더 나오지 않다가 2015년에 비로소 5권이 나온 《토성 맨션》(세미콜론)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미쓰’라는 아이는 아버지 뒤를 이어서 ‘창문닦이’ 일을 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집이나 건물에 붙은 창문을 닦지 않습니다. 지구별에서 떨어진 우주에 지은 커다란 시설물 바깥에 있는 창문입니다.


  만화책이니 우주 이야기라든지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터전이 된 뒤’ 이야기를 그릴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사회를 돌아보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릴 만하다고 여길 수 있고요. 전쟁무기를 줄이지 않고, 원자력 발전소도 없애지 않는 문명사회 흐름이라면 틀림없이 지구별을 온통 망가뜨려서 지구에서 사람이고 풀이고 나무이고 짐승이고 벌레이고 아무것도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으로 바꿀는지 모르니까요.



“자연이란 게 뭘까요? 저는 눈동냥으로 시작해서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남편이 말한 자연이 지상의 식물과 동물과 대지라면, 그렇다면 우리들은 본 적이 없는 거잖아요.” (19쪽)


“그렇게 큰 일은 실감이 잘 안 와서요. 눈앞에 있는 일만으로 벅차지만,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충실히 살고 있어요.” (94쪽)




  만화책 《토성 행성》을 보면, 지구 바깥에 세운 커다란 시설물은 ‘위(상층)·가운데(중층)·아래(하층)’로 나뉩니다. 이곳에서는 아주 빈틈없이 계급을 나누어서 위층하고 아래층은 서로 오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러면서 가운데층을 두어 겉치레로 ‘계급이 없는 사회’인 듯 꾸미지요. 막상 위아래층이 하나되어 움직이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아래층에 살면서 위층 창문을 닦는 ‘미쓰’라는 아이는 창문닦이를 퍽 보람찬 일로 여깁니다. 다른 창문닦이 일꾼도 미쓰하고 비슷한 마음입니다. 아래층 사람들이 위층 사람들 심부름꾼 노릇밖에 못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디로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시설물에 ‘갇히다’시피 사는 사람으로서, 시설물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 바람을 쐬고 지구를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기에, 이러한 일은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 준다고 여겨요.


  위층 사람들은 위에 있다고 할 테지만, 이들도 시설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시설물 바깥에서 살아남을 만한 과학이나 문명이나 솜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위층 사람은 드넓은 우주를 ‘창문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에요. 아래층 사람은 우주고 뭐고 내다볼 틈조차 없이 깜깜한 데에서 전깃불만 밝혀서 살고요.



“굉장하네요. 번쩍번쩍하는데요.” “음? 번쩍번쩍해진 걸 알아본다는 건, 제대로 보고 있다는 거네요.” “예?” “잘못된 것도 알죠? 조금 더 제대로 해 주세요.” “어, 죄송합니다.” (113쪽)


‘어깨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았을까? 나도 언젠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143쪽)



  창문닦이 일을 하는 아이는 창문닦이 일을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져서 죽고 만 아버지를 그리면서도 그저 차분하게 아버지 뒤를 밟습니다. 아니, 이 아이가 짐짓 차분해 보일 수 있고,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좀처럼 바깥으로 못 꺼낸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창문닦이 아이는 ‘창문닦이 동료’인 어른들을 마주하면서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함께 일했을 어른들하고 어떤 마음이 되었고 어떤 삶이 되었으며 어떤 말짓과 몸짓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짓는 살림을 가만히 그려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깨닫습니다.



“소타, 잃고 나서 알게 되면 늦는다고.” “음.” ‘하지만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게다가 가요는 내가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니까. 일단 이렇게 생각하지만.’ (153쪽)




  만화책을 읽으면서 내가 걷는 길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걸은 어떤 길을 뒤따라서 걷는다고 할 만한지 되새깁니다. 내가 걷는 길을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즐겁게 바라보면서 배우거나 맞아들일 만한지 되짚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똑같지 않으니, 내가 걷는 길은 여러모로 다를 만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하고 똑같지 않기에, 아이들이 걸을 길은 여러모로 새로울 만합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오늘을 살면서 내 나름대로 새롭게 사랑을 짓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오늘을 꿈꾸면서 아이들 나름대로 기쁘게 사랑을 가꿀 테지요.


  잘한다거나 못한다고 하는 모습을 가리는 삶은 아니라고 느껴요. 기쁨인가 아닌가 하는 대목을 살필 삶이라고 느껴요. 내가 우리 어버이한테서 지켜본 모습을 기쁨으로 삭히면서 가다듬을 노릇이고, 오늘은 내가 어버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마주할 적에 새로운 기쁨하고 웃음하고 노래가 되도록 추스를 노릇이에요. 아름답게 웃고 사랑스레 손을 맞잡으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다마치 군, 살아 있다면 울어도 되고, 웃어도 돼요. 당신이 당신을 용서해 줘요.” (174쪽)



  만화책 《토성 맨션》에 나오는 ‘다마치’라는 어른은 ‘미쓰네 아버지’가 창문닦이 일을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져서 죽던 날에 미처 잡아채지 못했다고 스스로 몹시 괴로워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마치라는 어른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기지만, 아주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않아서 미쓰네 아버지를 잡아채지 못해서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다마치라는 어른은 늘 머리가 아프고 가위에 눌려요.


  가까운 일벗이 죽었기에 웃지도 울지도 마음을 열지도 못하는 굴레에 빠진 다마치 씨예요. 참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채 그대로 머리가 아프고 가위에 눌려야 할까요. 아니면, 다마치 씨도 죽음길로 뛰어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다마치 씨 스스로 웃음도 울음도 함께 되찾아서 ‘내 곁에 있는 이웃하고 벗님’을 느끼는 길로 가야 할까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탓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저희를 나무란다고 해서 어버이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버이를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합니다. 나도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이 부엌에서 뛰놀다가 물을 쏟든 뭔 말썽을 일으키든 이런 일이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나도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한테는 서로 아끼면서 바라보고 돌아보고 ‘봐줄(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지 싶어요. 나는 우리 어버이 뒤를 따라서 새롭게 어버이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내 뒤를 따라서 새롭게 어른으로 자랍니다. 다 같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씩씩하게 서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49.1.21.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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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3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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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6



어떤 마음으로 배우니?

― 은수저 13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0.25. 5500원



  만화책 《은수저》 열셋째 권을 보면 ‘말’을 탈 적에 어떤 마음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놓고 두 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두 아이는 말타기를 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이야기는 말타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리에서도 똑같이 흐를 만하다고 봅니다. 어버이하고 아이하고 놀 적에, 아이들이 동무들하고 놀 적에, 밭을 갈아 씨앗을 심을 적에, 쌀을 일어 밥을 지을 적에, 비질이나 걸레질을 할 적에, 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칠 적에, 바람을 마시면서 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늘 언제 어디에서나 느낄 만한 마음이지 싶어요.



“말의 기분에 맞춰야지 생각하며 온 신경을 동원해서 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있잖아? 아, 물론 진짜로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그런 자세로 타면 가끔 이렇게, 엉덩이가 플러그가 돼서 콘센트에 척 들어맞는 감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럴 땐 ‘내 움직임이 말의 움직임, 말의 움직임이 내 움직임’처럼 느껴져서, 무척 즐거운데, 그 ‘신난다’는 게 말의 느낌인지 나 자신의 느낌인지 분간이 안 돼. 그럴 때가 있지 않니?” (21쪽)



  어떤 마음이 되느냐에 따라 무엇을 배우는지 갈립니다. 골을 내거나 짜증을 내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못 배워요. 웃으면서 노래하는 마음이 될 적에 새롭게 배워요. 가만히 지켜볼 줄 알 때에 넓고 깊게 배워요. 오래도록 살펴볼 줄 알 때에 차근차근 또렷이 배워요.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일 때에 사랑스레 배워요. 기쁨으로 삶을 지으려는 마음일 때에 그야말로 넉넉하게 배워요.


  상냥한 마음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 가꾸기도 합니다. 착한 숨결은 어버이가 물려주기도 하고, 나 스스로 일구기도 합니다. 고운 넋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 북돋우기도 합니다. 맑은 생각은 어버이가 물려주기도 하고, 나 스스로 살찌우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마음씨를 꼭 타고나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어떤 마음씨가 되기를 바라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지으면 돼요. 돈이든 무엇이든 어버이가 잔뜩 벌어서 선물처럼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돈을 벌어도 되고,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됩니다.



‘이 녀석도 참 깔끔하구나. 누가 정성들여 돌봐 주고 있나 봐. 눈에 안 띄는 일이지만 이 녀석을 돌봐 주는 사람은 믿을 만하겠다.’ (38쪽)


“그렇게 일해서 뭐하려고?” “저금하죠.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시골은 일자리가 별로 없어서 도쿄에 나온 겁니다.” “그 나이에 도시로 돈벌이를. 동갑내기 친구들은 학교에서 청춘을 만끽할 텐데.” “글쎄요? 저희 학교는 학생은 곧 노동력이란 생각이라서. 아, 그래도 코시엔을 목표로 야구할 땐 재밌었어요!” (64쪽)



  만화책 《은수저》를 보면 학교 한쪽에 화덕을 신나게 짓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에 넓은 땅을 둔 농업고등학교이기에 화덕쯤이야 가볍게 여럿을 새로 마련합니다. 그런데 화덕을 마련하는 까닭은 ‘배움’이라는 핑계를 들어 ‘맛난 것을 더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바보스러운 짓일 수 있지만, 맛난 것을 손수 심고 가꾸어 거둔 뒤에 다시 손수 지어서 먹으면 아주 기뻐요. 이러한 삶짓기랑 밥짓기를 어른과 아이(교사와 학생)가 함께 한다면 저절로 교육이 되기도 해요. 교과서에 나와야 교육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살펴서 한 걸음씩 나아갈 적에 그야말로 즐겁게 가르치고 배웁니다.



“면학을 위해서라면 하는 수 없죠!” “예! 더 많은 사람에게 맛보여서 정확한 데이터를 얻으려 합니다!” “하는 수 없죠! 그럼 화덕을 더욱 늘려야겠군요!” “예! 샘플이 많을수록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90쪽)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공부만 하지 않습니다. 농업고등학교이니 ‘실습’을 많이 한다고도 할 테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생이기 앞서 저마다 저희 집안에서 일꾼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앞서 집에서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줄 알고, 밥도 스스로 지을 줄 압니다. 스스로 제 앞가림쯤 얼마든지 하지요.


  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까닭은 더 깊이 배워서 삶을 한결 기쁘게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 모르는 대목을 새롭게 배우려 하고, 앞으로 스스로 ‘새로 지을 살림’을 꿈꾸면서 차근차근 배우려 해요.


  손으로 움직이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꿈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일 적에 배울 수 있느냐 하면, 손하고 마음하고 꿈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몸짓일 적에 배울 수 있습니다. 4348.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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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5
히구라시 키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95



어떻게 하면 서로 곁님 마음을 읽을까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5

 히구라시 키노코 글·그림

 최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2.31. 5000원



  시골은 도시와 사뭇 달라서 해가 떨어지면 그야말로 캄캄합니다. 요새는 마을마다 등불을 곳곳에 세워 주기는 하지만, 불빛이 닿지 않는 자리가 훨씬 넓습니다. 시골은 모름지기 밤에 어두워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마당이나 집 둘레를 밝히지 않습니다. 밤에는 풀도 나무도 꽃도 모두 자야 하니, 마을도 집도 밤에는 고요하게 잠듭니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은 밤에 손전등을 들면서 놀고 싶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씩씩하게 별바라기를 하면서 놀기도 하지만,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놀이도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손전등 놀이를 하면 건전지가 빨리 닳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건전지 닳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게 놀이를 합니다. 건전지 걱정을 하는 사람은 오직 어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밤에 마당이나 잠자리에서 등불 놀이를 하고픈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옛날을 아스라이 떠올립니다. 나도 이 아이들만 한 나이에 손전등으로 밤놀이를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손전등 밥 닳는다’는 걱정이나 꾸중을 들으면서도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손전등을 켰지요. 불빛을 받은 이불 속은 낮에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새로운 빛깔이고 빛결입니다. 이런 모습을 느끼고 싶으니 걱정이나 꾸중을 아무리 들어도 손전등 놀이를 합니다.



‘이젠 부모님 마음을 충분히 알겠어. 마음은 아직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사회나 인간관계에 얽히며 겨우 어른이란 걸 자각하지만, 금전 감각은 완전히 어른이 됐구나.’ (17∼18쪽)


‘앞으로도 지금 내가 상상조차 못 할 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접어두고, 그저 즐겁게 기다리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다.’ (24쪽)



  히구라시 키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5)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2013년 11월에 첫째 권이 한국말로 나온 지 이태 만인 2015년 12월에 다섯째 권이 나오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이 만화책은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사이가 ‘함께 사는 두 사람’으로 거듭나는 열네 해 이야기를 짤막하게 간추려서 들려줍니다. 그저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때에는 서로 어떤 마음인지 읽으려 하지 않거나 못했다면, ‘함께 사는 두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동안에는 서로 어떤 마음인지 읽으려 애씁니다.


  어버이가 아이 마음을 읽거나 느끼듯이, 어버이가 저마다 제 어릴 적 모습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거나 살피듯이,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에 나오는 사내와 가시내는 아주 천천히 서로서로 마음을 읽고 느끼면서 한집살이를 이룹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이런 날도 길고 긴 연표 위를 걷는 것에 불과하겠지.’ (40쪽)


‘나는 지금 나 이외의 무언가를 책임져서 나를 성장시키고 싶은 거구나.’ (59쪽)



  마음읽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마음읽기는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을까요? 뭐,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울 텐데, 참말 마음읽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겉으로 스치면서 지내는 하루라면 마음을 도무지 못 읽을 테고, 속으로 아끼면서 사랑하는 삶이라면 마음을 찬찬히 읽을 테지요.


  말을 해야 마음을 알기도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느낍니다. 아니, 말을 할 적에는 마음을 열어서 서로 나누고, 말을 하지 않을 적에는 마음이 고이 흐르면서 서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아는 마음이 있고,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요.



‘날 위해서도 아니고, 리츠코를 위해서도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해.’ (102∼103쪽)


‘리츠코 마음을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갑자기 화내거나 갑자기 울리는 일도 없었겠지.’ (141쪽)



  두 사람 사이가 한낱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무렵에는 마음읽기는 거의 생각조차 안 하다 보니, 이때에는 다투는 일도 잦았을 뿐 아니라 서로 마음에 송곳을 찍듯이 생채기를 내는 일마저 있습니다. ‘먹고 자는’ 사이로만 머물 수 없다고 여기면서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되는 길을 걷는 사이 어느덧 다툼은 잦아듭니다. 다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고 다툼이 줄어요. 다툼이 줄면서 이야기가 늘고, 이야기가 느는 동안 어느새 스스럼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딱히 마음을 말로 털어놓지 않아도 느낌으로 헤아립니다. 함께 있어서 즐거운 나날을 누리고, 함께 있기에 새롭게 가꾸는 살림을 깨달아요.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에서는 “우리 앞날”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얘기가 흐릅니다.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고 걷는 길이라는 대목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서로 손을 맞잡고 걷는 길이라면, 이러한 길이 바로 “우리 앞날”이라면, 참말 이러한 길은 참답게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되리라 느껴요. 한쪽으로 치우친 길이 아니기에 사랑이요, 한쪽을 그냥 한쪽이 아니라 곁에 있는 님, 곧 ‘곁님’으로 느끼는 길이라고 할까요.


  곁이 있는 아름다운 숨결이기에 곁님이 됩니다. 그리고, 곁에 있으면서 서로 따사로이 보살피고 지켜 주는 사이가 된다면 곁지기가 되어요. 곁에 있는 사랑인 만큼 곁사랑일 테고, 곁에 있는 너른 꿈이라면 곁꿈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진심으로 느낀다. 리츠코와 부부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156∼157쪽)


‘아, 그렇구나. 어쩌면 부부야말로 어떤 의미로 궁극적인 남녀의 우정이 아닐까?’ (180쪽)



  사내와 가시내 사이가 되든, 사내와 사내 사이가 되든, 가시내와 가시내 사이가 되든, 마음으로 아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어깨동무나 우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아끼지 못한다면 어깨동무도 우정도 아닐 테고, 마음으로 아끼지 못할 적에는 ‘함께 사는 두 사람’이 아니라 ‘먹고 자는 두 사람’이기만 할 테지요.


  겉으로 드러내는 몸짓도 뜻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함께 사는 사이라면 겉치레가 아닌 즐거운 몸짓이 되어 마음으로 포근히 안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겉모습이나 생김새를 아예 안 쳐다볼 수 없다고 합니다만, 함께 삶을 지으면서 나아갈 사이라면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을 곱게 가꾸면서 활짝 웃는 살림을 지어야지 싶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그치는 사랑이 아니라,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사내와 가시내가, 또 수많은 짝꿍하고 동무가, 따사로운 숨결로 거듭나는 하루를 지으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곁님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상냥한 손길로 서로 어루만지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을 이제 고요히 덮습니다.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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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6-01-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책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됩니다.
여기에 악플 달 겨를이 있으면
그대가 좋아하는 만화를 읽기 바랍니다.
괜히 엉뚱한 곳에 와서 악플 달지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