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1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80



함께 지어서 부르는 노래

― 순백의 소리 11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9.25. 4800원



  목소리가 곱기에 노래를 곱게 부르지는 않습니다. 목소리가 곱더라도 노랫가락을 살피지 않으면 고운 노래가 흐르지 못합니다. 노랫가락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살펴서 목소리를 가만히 얹을 적에 비로소 고운 노래가 흐릅니다.


  소리를 잘 내기에 노래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리에 마음을 얹기에 노래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이야기를 실으며 노래에 두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꿈이랑 사랑을 담으며 노래에 세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삶을 여미며 노래에 네 발짝 다가섭니다.


  그냥 태어나는 노래란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빚는 숨결일 때에 노래가 태어납니다. 전문가 몇 사람이 꾸미기에 노래가 태어나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노래를 빚습니다.



“우승과 입상의 차이는, 사실 종이 한 장밖에 안 돼. 네 실력은 충분하니까, 그 약간의 차이를 대회에서 극복해야지.” (3쪽)


“분명한 건 말이지, 그걸 극복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거야.” (18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5) 열한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을 이끄는 주인공 아이가 샤미센으로 ‘다른 이 노래에 반주하기’를 합니다. 이제껏 ‘반주로 샤미센 켜기’는 한 적이 없던 아이였지만, 일본 전통 술집에서 ‘샤미센 반주자’로 일하면서, 이 악기로 켜서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익혔고, 이 소리를 바탕으로 스스로도 새로 거듭나려 합니다. 이러면서 노래꾼한테도 노래를 스스로 거듭나게 하는 길을 북돋아 주지요.



“난 노래하는 게 좋아. 그 마음을 끌어내 줄래?” “마니 씨, 지는 마니 씨의 노래도 목소리도 가락도 좋습니더. 그러니까, 그 개성을 죽이지 않아예. 살릴 깁니더! 반주는 도핑같이 몸에 나쁜 기 아이라, 양분입니더.” (37∼38쪽)


“카미키 세이류는 노래꾼을 봐 가며 연주해. 노래꾼보다 눈에 띄려 하지 않으니까, 노래꾼의 실력이 딸리면 자기도 힘을 발휘하지 않는단 말이야.” (75쪽)



  노랫가락은 함께 지어서 부릅니다. 나 혼자서 지어서 부르는 노래란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짓기는 하되,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결이 되기에 내 목에서 새로운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이제껏 살면서 나를 둘러싼 해님이랑 바람이랑 빗물이랑 눈송이랑 흙이랑 풀이랑 나무랑 벌레랑 …… 이 모두를 가만히 얼싸안는 손길이 되기에 새로운 노랫가락이 시나브로 샘솟아요.


  모든 것이 노랫가락 하나로 모입니다. 모든 것을 노랫가락 하나로 모읍니다. 오늘 하루 누리는 삶도 노랫가락 하나로 모으고, 어제까지 살아온 발자국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노랫가락 하나에 담습니다.



‘노래와 샤미센의 가락이 딱 맞아떨어져, ‘마음’이라는 단 한 개의 단어가, 20초가 넘는 현란하게 빛나는 소리가 되었다.’ (115쪽)


“사와무라 씨도 마츠고로 씨 소리를 듣고 컸다 아이가.” (178쪽)



  바람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은 노래를 부를 적에 바람소리를 싣습니다. 물결이나 구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은 물결이랑 구름이 들려준 소리를 이녁 노래에 싣지요. 자동차나 승강기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면 이러한 소리를 노래에 싣습니다. 따사로운 품으로 따사롭게 돌본 어버이 품을 누린 사람은 이러한 결을 노래에 싣고, 차갑거나 매몰찬 손짓을 받아야 한 사람은 이러한 삶대로 이러한 결을 노래에 실어요.


  더 낫거나 바보스레 떨어지는 노래는 없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고, 저런 노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있고, 저런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가꾼 삶결을 노랫결로 가꿉니다. 저마다 일군 꿈결을 노랫결로 가다듬습니다.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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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의 나라 3 - 애장판,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8



외계인과 초능력,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

― 칠석의 나라 3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6.25. 9000원



  가을을 맞이하면 나무마다 잎을 하나둘 떨굽니다. 겨울을 앞두면 나무마다 잎을 우수수 떨구고, 네 철 푸른 나무도 틈틈이 가랑잎을 떨구어요. 한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구어 앙상한 나무가 많은데, 이렇게 나무가 떨군 나뭇잎은 어느새 삭아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나무는 햇볕이랑 바람이랑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흙을 먹으면서 잎을 내놓지요. 그리고 이 잎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요. 흙에는 지렁이를 비롯해 수많은 풀벌레가 있기에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습니다. 풀벌레 주검도, 숲짐승 주검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흙이 되어요.



“아니, 저, 다들 어떤 길로 가려나 싶어서.” “그야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겠죠, 뭐.” “그것뿐이야?” (8쪽)


“마루카미 고을에 사는 작자들은 옛날부터, 마음속으로는 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결국은 자신을 옭아매어 좁은 산골짝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28쪽)



  흙으로 바뀐 나뭇잎은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죽고 남은 껍데기도 흙으로 모습을 바꿀 뿐,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먼먼 옛날부터 우리 몸이 흙을 이루고, 또 우리는 흙에서 밥을 얻으며, 다시 흙에 똥이랑 오줌을 돌려주고, 새삼스레 몸을 흙으로 보내고, 다시 이 흙에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칠석의 나라》(학산문화사,2014)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칠석의 나라》는 어느 마을에 옛날부터 내려온 두 가지 ‘숨은 힘’을 쓰는 사람들 삶을 보여줍니다. 두 가지 힘 가운데 하나는 “보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쓰는 힘”입니다. 여기에서 “보는 힘”은 이곳이 아닌 다른 저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힘입니다. “쓰는 힘”은 이곳하고 저곳 사이를 이으면서 이곳에 있는 것을 감쪽같이 없애는 힘이에요.



“뭐랄까, 세상이 너무 넓어졌어요. 사회생활의, 흔히 놓치기 쉬운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며 노력이며 생각들이, 담겨 있는지 깨달아 버렸다고나 할까.” (52쪽)


“이대로 물러나면 다인 줄 알아!” “아냐, 우린 도망갈 필요도 없어. 단지, 그 사람은, 마음속의 응어리와 담판을 짓고 싶댔어.” (70쪽)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보는 힘”이든 “쓰는 힘”이든 이러한 힘을 타고난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힘을 타고난 이들은 언제나 두려움에 휩싸인 채 삽니다. 이러한 힘 때문에 몸이 달라지니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러한 힘이 없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도 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요.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은 손을 움직여서 기운을 일으킵니다. 동그란 구슬처럼 생긴 기운을 일으켜서 이 기운을 날리는데, 이 기운이 날아가면 이 구슬이 지나간 자리가 모두 사라져요. 마치 폭탄 같은데, 어떤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않고 싹둑 자르거나 도리듯이 없애 버려요.


  이리하여 이 “쓰는 힘”은 예부터 마을을 군대한테서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몰래 죽이는 데에 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쓰는 힘”을 다루는 사람은 이 힘을 다루어 손을 놀릴 적마다 몸에서 구슬 같은 것이 튀어나오면서 커지고, 어느덧 새(까치라 할는지 외계인이라 할는지)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뀝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분명, 그다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4쪽)


“부모 형제의 죽음, 연인의 죽음, 자식의 죽음, 여러 죽음과의 만남이 있지만, 하지만 그건 모두 ‘창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창?” “정말 슬픈 것은 아아, 자신의 죽음, 자기만 그곳에서 없어지는 자기 혼자만 ‘창 밖’으로.” “창 밖!” (167쪽)


‘그래도,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죽어도, 별 같은 점이 되어 혼자 오도카니 있을 텐데도, 누군가가 있어요. 은하수 저편에.’ (170∼171쪽)



  만화책에서 나오는 두 가지 힘을 다루는 사람은 오늘날 사회에서는 ‘초능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초능력을 쓰는 사람을 바라보는 ‘초능력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무서워합니다. 초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회를 어지럽히리라 여기고, 초능력으로 사회를 뒤집어엎을는지 모른다고 여겨요.


  그러면, “보는 힘”이나 “쓰는 힘”이 있는 이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거나 뒤집으려는 뜻이 있을까요? 외진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뒤엎어서 새로운 임금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있을까요?



“쓸 곳은 모르지만 딱히 곤란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것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208쪽)


“지금부터 천 년 정도 전, 상공에 나타난 ‘까치’들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곳은 팔백만 신들의 나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이나 그 모습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야말로 ‘신’의 것이었겠지. 적어도 거역할 자는 없었어.” (246쪽)



  만화책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초능력을 쓰는 사람’은 먼 옛날에 지구별을 찾아온 외계인이 남겨 놓은 씨앗이라고 합니다. 엉성하거나 어수룩하게 사는 지구별 사람들을 가엾게 여긴 어느 외계인이 이 작은 마을에 내려와서 ‘어떤 힘’을 몇몇 사람한테 남겨 주었고, 이 힘이 찬찬히 대물림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외진 작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다는데, 이 제사란 하늘을 기리는 몸짓이라기보다 ‘먼 옛날에 우리를 도와준 외계인’한테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다’고 알리는 몸짓이면서 ‘부디 다시 이곳으로 찾아와서, 우리를 그대가 있는 그 별(외계)로 데려가 달라’는 몸짓이라고 해요. 이 지구별에서 겪거나 치러야 하는 고달프고 아프며 괴로운 일이 너무 많기에, 고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삶터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비는 제사(칠석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보는 힘”이 있는 사람이 보는 모습은 바로 그 외계별 세계라 할 테고,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이 구슬을 다루어 무엇이든 싹둑 자르듯이 없애는 재주란, 이곳(이 지구별)에 있는 무엇이든 저곳(외계별)으로 보내는 수수께끼 같은 힘이라고 여긴다고 할까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저승이건 이승이건 상관없단 말이야! 이 세상이 어떤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 됐어요.” “다들, 다들 이 세상의 넓이를 너무 몰라! 넓고,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에이,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세상 일들을 TV로 대충 보고 아는 체하지 마! 그런 건 다 가짜라구!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주 작은 곳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 실패나 새 출발이 모여 있어.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의 백 배 천 배는 넓다구! 그에 비하면 무서운 꿈도, 보이지 않는 사슬도, 요란한 초능력도 작은 거야! 겨우 일부라구! 그런 것에다 목숨을 왜 맡겨!” (299∼301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꿈을 찾지 못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려 할 만합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머나먼 길을 떠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라는 별에서 아무런 꿈을 찾지 못한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이 지구별에서 어느 곳에 가든 전쟁이 그치지 않고, 불평등과 반민주와 독재와 그악한 몸짓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이 지구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아름다운 지구별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힘이 센 나라이든 힘이 여린 나라이든 하나같이 전쟁무기 키우는 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바보짓을 그치지 않는다면, 따돌림과 푸대접이 자꾸 불거지기만 한다면,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빈 껍데기 같은 허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는 꿈은 너무 부질없거나 덧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를 어떻게 떠날까요? 우주선을 만들어서 우주선을 타야 할까요? 지구를 떠난다면 어느 별로 가야 할까요? 사람이 살 만한 다른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별 문명으로 드넓은 우주에서 새로운 별을 찾아낼 수 이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구를 떠나서 새로운 별을 찾는 길을 열 만할까요, 아니면 씩씩하고 당찬 마음이 되면서 이 지구별을 새롭게 가꾸자는 뜻을 펼칠 만할까요? 아니면 그냥그냥 이 지구별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면 될까요?


  만화책에서만 흐르는 외계인과 우주 이야기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이 지구에서 우주를 더 너르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키울 노릇이요, 무엇보다 이 지구별이 지구사람한테도 외계사람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이 되도록 가꿀 노릇이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스려야지 싶어요. 삶을 밝히는 길은 남(외계인이나 어떤 권력자)이 아닌 바로 내가 스스로 갈고닦기 때문입니다. 4348.11.3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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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특고 아이들 5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7



남다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 강특고 아이들 5

 김민희 글·그림

 서울문화사 펴냄, 2009.7.31. 4000원



  김민희 님이 빚은 만화책 《강특고 아이들》(서울문화사)은 2007년에 첫째 권이 나오고, 2010년에 일곱째 권이 나오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강특고’는 서울 강남이 아닌 강원도에 있는 ‘특고’이고, ‘특고’에서 ‘특’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가 아니라 ‘특별한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입니다.


  ‘강특고’ 아이들이 펼치는 남다른 재주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흔히 ‘초능력’이라고 일컫는 재주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모이는 아이들이 쓰는 남다른 재주는 여느 사람들이 좀처럼 받아들여 주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여느 사회에서 여느 사람들이 받아들여 주지 못하다 보니 강원도 깊은 멧골에 숨듯이 있는 강특고로 모인다고도 할 만합니다.



‘도시는 너무 시끄러워. 인상이 절로 써지는걸. 외롭다. 고등학교 때는 모두에게서 사랑받았는데.’ (31쪽)


“새랑 쥐가 불쌍해! 나 정말 채식주의자가 될 거야!” “앞으로 야채 반찬 먹기 글렀네.” “그럼, 세나 피부가 좋아진 건 새랑 쥐를 먹어서 그런가? 그럼 나도 새나 쥐를 먹어 볼까! 내 피부!” (37쪽)



  중학교는 고등학교로 가는 징검돌이라 하고, 초등학교는 중학교로 가는 징검돌이라 합니다. 고등학교는 대학교로 가는 징검돌이거나 사회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는 징검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든, 대학교까지 더 다녀서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를 마친 뒤 집에서 놀거나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집에서 놀면 미움이나 손가락질을 받지요. 일자리를 얻지 않는 아이들을 가리켜 ‘흰손’이라는 뜻으로 ‘백수’라고도 합니다.


  강특고를 다닌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로 간 몇 안 되는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은 ‘소리를 아주 잘 듣’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몹시 괴롭지요. 온갖 자질구레한 소리가 다 들리니까요. 더군다나 강특고에서는 저마다 ‘남다른 재주’가 있기는 하지만 이 남다른 재주 때문에 여느 사회에서는 이웃하고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들이 모였어요. 다시 말하자면, 강특고 아이들은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스히 헤아리면서 즐겁게 지낼 만한 이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귀엽다고 한 소리는 내게 한 게 아니구나. 어째서 그런 걸까. 그 동물들도 다 나인데.’ (58쪽)


“지문이가 내 인간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호숙이(멧짐승인 범)는 귀엽지만 이 몸(사람으로 바뀐 몸)은 늙은이니까.” (61쪽)



  만화책 《강특고 아이들》은 어렵거나 골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남다른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깊은 멧골에서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웃음이 터질 만한 이야기가 흐르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이야기가 흘러요.


  어느 모로 본다면 ‘초능력이 있는 녀석들이 참 바보스럽게 구네’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보스럽게 굴거나 노는 모습은 ‘초능력이 있다는 사람’뿐 아니라 ‘초능력이 없다는 사람’도 매한가지예요. 그냥 사람으로서 누구나 보여주는 모습이니까요. 강특고 아이들한테는 남다르다는 재주가 하나씩 있을 뿐이거든요.


  그리고, 강특고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남다른 재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바느질 솜씨가 좋다든지, 걸음이 빠르다든지, 노래를 잘 부른다든지, 된장국을 잘 끓인다든지, 밥물을 잘 맞춘다든지, 비질이나 걸레질을 잘 한다든지, 심부름을 잘 한다든지, 저마다 즐겁게 누리는 솜씨나 재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저 잘 노는’ 모습으로도 재미있으면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공기놀이를 잘 할 수 있고, 저 아이는 딱지치기를 잘 할 수 있으며, 그 아이는 연날리기를 잘 할 수 있어요.



‘이상하네, 싫지가 않아. 여전히 좋아! 정말 좋아하면 겉모습은 상관없나 봐.’ (80쪽)


“선배, 뭘 믿고 새로 변신 안 하셨어요? 제가 없었음 떨어져 죽었어요!” “변신하면 옷 찢어질까 봐!” (86쪽)



  아이들은 남달라서 남달리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남다르지 않아서 수수하게(남다르지 않게) 사랑스럽습니다. 말솜씨가 없든 글재주가 없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말솜씨가 없는 아이는 말솜씨가 없는 대로 사랑스럽습니다. 글재주가 없는 아이는 글재주가 없는 대로 사랑스러워요. 개구진 장난을 즐기는 아이는 개구진 장난을 즐기는 대로 사랑스럽고, 말썽꾸러기라는 아이는 말썽꾸러기 모습이 사랑스럽지요.


  나는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면서 이 대목을 늘 느낍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쉬지 않고 놉니다. 지칠 줄 모르는 기운이 솟아서 끝없이 놀고 또 놀고 새롭게 놉니다. 때때로 두 아이가 놀이를 그치고 얌전히 있을 때가 있는데, 문득 낮잠이 오거나 살짝 힘이 들 때입니다. 한 아이라도 낮잠이 들면 집안이 아주 고요해요. 마치 사람이 안 사는 집 같습니다. 이때에 이런 기운을 느끼면서 새삼스레 돌아보지요. 참말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기에 아이들이요, 무슨 놀이가 되든 실컷 누릴 수 있어야 아이다운 숨결을 북돋우는구나 싶어요.



‘동물로 변신 못하는 나는 아무 힘이 없구나. 이런 건 싫어. 힘을 되찾으려면 손을 놓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 하지만 손을 놓고 싶지 않아.’ (111쪽)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토끼 중에 날 골라 이름을 붙여 줬지. 민수랑 지내면서 난 정말 오래 살고 싶어졌어. 즐거운 게 뭔지, 슬픈 게 뭔지, 괴로운 게 뭔지,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어서 … 나, 능력을 잃어가나 봐. 몇 년 전부터 늙어가는 게 느껴져.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지금처럼 민수가 힘들어 하면, 그게 나에게도 느껴져서, 너무 아파.” (148, 149쪽)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배웁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삶을 배우고, 집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놀면서도 삶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려고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에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졸업장을 선물하려고 아이를 학교에 넣을 까닭은 없습니다. 대학교를 잘 보내 주는 학교라든지 일자리를 잘 얻게 이끄는 학교에 아이들을 넣지는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을 가꾸도록 이끄는 학교를 다닐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이러면서 다 다른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좋아하고 아끼는 숨결을 따스히 북돋아 주어야지요. 대학교나 취업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떠밀지 말고,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이야기를 배우도록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으니,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려 하든 일자리를 얻으려 하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안 가도 됩니다. 아이들은 몇 해쯤 일자리 없이 집에서 쉬어도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꿈을 찾아서, 이 꿈을 사랑스레 이루려는 뜻에서 태어납니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스물다섯 살쯤에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대학생이 되어도 좋고,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쳐도 좋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도 좋고, 집에서 집살림을 도우면서 지내도 좋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흙을 가꾸어도 좋고, 도시 한복판에서 텃밭을 가꾸어도 좋아요.


  남다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대목을 재미나게 보여주는 《강특고 아이들》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이 나라 모든 학교가 ‘강특고’만큼은 아니어도, 멧자락 하나쯤 끼거나 냇물이나 골짜기를 옆에 끼면서 있으면 무척 좋으리라고. 아이들이 버스나 전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다니기보다, 들길이나 숲길이나 냇길을 거닐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리라고. 교과서보다는 사랑을 배우고, 시험공부보다는 꿈을 그릴 수 있으면 더없이 아름다운 학교가 되리라고.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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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76



‘사진 만화’에서 ‘짝짓기 만화’로 바뀐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1.25. 4500원



  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처음에 ‘사진 만화’로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첫째 권을 보면 온통 사진 이야기입니다. 사진 이야기 사이사이에 ‘풋사랑’ 이야기를 조금 곁들였지요. 둘째 권을 보면 사진과 풋사랑 이야기가 반쯤 섞입니다. 셋째 권은 사진 이야기가 크게 줄어들면서 풋사랑 이야기가 훨씬 넓게 자리를 잡고, 넷째 권에 이르면 온통 풋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제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그녀와 카메라’가 아니라 ‘그녀와 그녀’로 이야기가 바뀝니다. 누가 누구하고 짝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가 이 만화책에서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학교에 갈 마음도 사라지고, 늘 가던 공원, 늘 가던 카메라 가게, 사진관도. 내가 얼마나, 사진 중심으로만 살았는지 실감이 나. 그래도, 달리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아.’ (6쪽)


‘신기하다.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힘을 주는 것 같아.’ (38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넷째 권에서는 두 가시내 사이에 얼키고 설킨 응어리를 푸는 징검돌로 사진을 끼워넣습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두 가시내)이 바라보는 사진 이야기는 곁두리 노릇일 뿐입니다. 사진하고 얽힌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사진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흔한 사진 이야기에다가, 흔한 풋사랑 이야기로 흐릅니다.


  그렇다고 흔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만 흐를 수 있는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고, 그냥 흔하게 어느 만화책에서든 어슷비슷하게 흐를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린타로도 그랬지. 우리는 시간이 없어. 이 교복을 입을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고.’ (125쪽)


‘어떤 기분으로 이 사진을 찍었는지, 왜 내게 보여주고 싶어했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어.’ (147쪽)



  아이들한테는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어른들한테도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시간은 왜 없을까요? 스스로 시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선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제대로 모르기에 시간이 어떠한 줄 모릅니다. 열다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나 열아홉 살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나 스물다섯 살도 오직 한 번뿐이에요. 서른다섯 살하고 마흔다섯 살하고 쉰다섯 살도 늘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우리한테 시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이 언제나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시간이 없으면 앞으로도 늘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 번 누리는 삶에 즐겁게 마음을 쏟지 않으면, 앞으로도 꼭 한 번만 마주하면서 누릴 삶에 제대로 즐겁게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구나, 유키. 나는 어떨까. 혼자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뿐인 세계에 뛰어들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유키라도 문득 불안해지진 않을까?’ (150∼151쪽)


‘어느 쪽이든 좋아. 시간이 지나면, 유키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 도쿄에 와서, 유키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렇지는 않겠구나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도리 없이 유키를 떠올리고 있겠구나라고, 쭈욱. 앞으로도 쭈욱, 내 안에서 유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겠구나 하고.’ (169∼171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저마다 알맞게 짝을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찾으면 됩니다. 제 삶에 따라 제 짝은 눈부시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눈부시거든요.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눈부시고, 저 아이는 저 아이대로 눈부셔요. 그리고, 사진기를 더 오래 쥐었기에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키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진을 찍었으나,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못 되었기에, 사진기를 손에 쥔 지 몇 달이 안 되는 미야마처럼 사진을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미야마는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사진 한 장을 찍을 적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되거든요.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니, 이 만화는 셋째 권에서 마무리를 짓는 쪽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은 어떠할는지 모르지요. 다섯째 권에서 이야기가 사뭇 달라지면서, 이 만화를 이루는 뼈대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되살릴는지 모르지요. 부디 두 가시내하고 한 사내가 맺고 풀고 얼키고 설키는 풋사랑 이야기가 사진이라고 하는 징검돌 사이에서, 또 사진이라고 하는 삶이랑 나란히, 고우면서 애틋한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사진’하고 ‘풋사랑’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쥐려고 하면서 외려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어설픈 길을 가는 듯하다는 느낌이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에서는 사라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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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9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5



왜 너하고만 놀아야 하니?

― 경계의 린네 19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0.25. 4500원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오늘 뭐 하고 놀까?” 하고 묻습니다. “오늘 나랑 놀자!” 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오늘 뭐 하고 놀겠느냐고 물으면 “그래, 네가 한번 생각해 봐.” 하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해?” 하고 되물으면 “놀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어떤 놀이가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쿠로스 6단은 평가가 짜기로 유명해.” “그럼 반대로 저분에게 인정받으면 독립할 수도 있단 말이군요!” “뭐, 그렇죠.” (9쪽)


“당연한 결과지. 훔친 초콜릿은 어차피 남의 것이니, 네 마음의 구멍을 메워 주진 못해.” (36쪽)



  놀이는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놀이는 얼마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피고 찾고 빚고 누릴 수 있습니다. 남이 놀아 주어야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일 적에 놀이가 되어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덧 열아홉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는데, ‘린네’를 둘러싸고 여러 아이들이 하나하나 새삼스레 나타납니다. 그런데, 린네 둘레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린네를 혼자 차지하면서 놀고’픈 마음이기 일쑤입니다. 다른 동무하고 린네랑 함께 놀기보다는, 오직 저 혼자서 린네를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린네 아버지는 가난한 린네조차도 등쳐서 조금이라도 돈을 가로채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린네는 아버지 때문에 자꾸 빚쟁이가 되어야 하기에 아버지를 ‘못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무랍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아이가 아버지를 나무라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건 할 수 없지만, 새전 도둑 같은 질 떨어지는 범죄를 저지르다니!” “자판기 밑을 훑는 건 괜찮고?” “거기까진 괜찮겠죠.” (85쪽)


“내게 감사해라, 로쿠도 린네. 덕분에 동창회 회비 3천 엔을 내게 됐잖아?” (128쪽)



  아이들하고 놀다가 힘들면 자리에 벌렁 눕습니다. 아이들은 놀고 놀아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렁 자리에 누운 아버지 배에도 올라타고 다리에도 올라탑니다. 이때에 이불을 재빨리 돌돌 말아서 아이들을 감쌉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더러 “요 김밥 먹어야지!” 하고 외치는데, 아이가 돌돌 몸이 말린 이불에서 손을 빼려 하면 “아니, 단무지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손을 야금야금 먹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손을 도로 넣고, 다시 손을 빼내려 하면 “아니, 시금치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또 손을 냠냠 먹는 시늉을 해요.


  한참 김밥말이 놀이를 하다가 두 아이는 아버지 배나 등을 ‘물살을 가르는 배’로 여겨서 뱃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나는 눕거나 엎드린 채 몸을 실룩실룩 움직이지요. 이때에 아이들은 아버지 배나 등을 타고 거친 물살을 헤친다고 여깁니다.



“결과적으론 잘 됐잖아.” “그 노력도 모두 오늘을 위해서야.” ‘로쿠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나를 보고, 그때 심술부리지 말걸, 하고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152∼153쪽)


‘이제 과거에 연연하는 건 그만두자. 하지만 로쿠도, 너는 역시 그 시절 그대로 상냥한 로쿠도였구나.’ (165쪽)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린네는 무척 상냥한 아이입니다. 다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엄청난 빚을 갚느라 늘 쫄쫄 굶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린네는 아버지하고 달라서, 빚에 허덕이더라도 돈에 홀리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야 해도 피눈물을 삼키면서 제 넋을 지키려고 해요.


  가만히 보면, 린네만 상냥한 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린네를 둘러싼 여러 동무도 상냥한 넋입니다. 이모저모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스럽거나 너무 똑똑한 동무들이라고도 할 텐데, 이 아이들은 저마다 따스한 마음으로 삶을 짓고 놀이를 누리기에 도란도란 모일 수 있어요.



“팬시 배후령이 보고 들은 상황은, 영적 통신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러면 나는 언제나 린네와 함께 있는 기분이지.” “그건 스토킹용 몰래카메라잖아.” (172∼173쪽)


“좋아하는 상대라면 좀더 소중히 해.” “오호.”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그런 초커는 그저 스토킹용 아이템일 뿐이야.” (184쪽)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무슨 놀이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삶을 지을 적에 기쁠까요? 나 혼자서만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즐거운 놀이가 될까요? 나 혼자서만 배부르면 다른 사람도 배부른 삶이 될까요?


  나는 너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너도 나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는 어깨동무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아이하고도 즐겁고 기쁘며 반가운 사이입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마주보는 동안 새로운 놀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놀이를 누리면서 삶도 살림도 사랑도 새롭게 가꿉니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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