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31] 이야기

 사람들이 아무 데에서나 부질없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일을 보면 무척 슬픕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않고 어렵게 한자말로 껍데기를 뒤집어쓰거나, 고운 우리 말글은 젖히고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을 즐기는 모습을 보아도 몹시 서글픕니다.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착하면서 곱고 참다이 말을 섞기가 힘든 나날입니다. 나는 책을 읽지만 나보고 ‘책읽기’ 아닌 ‘讀書’를 여쭙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나는 사진을 찍으나 나한테 ‘사진’ 아닌 ‘photo’를 들먹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며칠 뒤, 서울마실을 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마련된 자리에서 사진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이 자리에서 나를 부른 사람들은 나보고 ‘토크’를 한다고 말합니다. 말문이 턱 막혀 차마 이 사람들이 어설피 외는 ‘talk’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는지 모르겠고, 이 사람들 말투를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자고 못하는가요. 왜 수다를 떨자고 못하는가요. 왜 생각을 나누자고 못하나요. 왜 말꽃을 피우자고 못하나요. 왜 마음을 주고받자고 못할까요. 왜 이야기보따리를 풀지 못할까요. (4344.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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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니다’와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새해를 맞이합니다. 새롭게 맞이한 해인 만큼 나이는 한 살 더 먹어 서른일곱이 됩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이란 대단한 숫자가 아니요, 그리 많은 숫자 또한 아닙니다. 서른일곱이라면 서른일곱에 걸맞게 살아가면서 서른일곱에 걸맞게 생각하고 서른일곱에 걸맞게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올바릅니다.

 새해 첫날, 내 글투는 어떠한가 하고 새삼스레 곱씹어 봅니다. 지난날 내 글투가 어떠했는가 가만히 헤아립니다. 1998년에 한글학회에서 주는 ‘한글공로상’을 참 어린 나이에 받기는 했으나, 이때에는 신나게 팔뚝질을 하듯이 운동을 했을 뿐, 참다이 말사랑이나 글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가 사회이다 보니 팔뚝질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귀나 눈을 열지 않기도 했다지만, 차분하게 말사랑 글사랑을 펼치지 못했어요. 이무렵 제가 쓴 글을 돌아보면 ‘것’을 얼마나 자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것도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마는 것인지” 같은 글을 곧잘 썼어요. 이제는 이렇게 글을 쓰지 않고 말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 또한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마는지”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아니면 “이마저 한낱 지나간 일로 삼고 마는지”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해요.

 1998년에 쓴 글을 되짚으니 “먼저 풀어야 한다. 더불어,” 같은 글투도 보입니다. 이 대목도 엉터리입니다. ‘더불어’를 글 맨앞에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더불어”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2007년부터 2009년 첫머리 사이에는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래도록 머리앓이를 했습니다. 이러한 낱말은 한자말 아닌 우리 말로 삼아서 그대로 써야 하지 않겠느냐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쓰고 다시 쓰다 보니 어쩐지 저 스스로 초라하지 않느냐 싶더군요. 고작 이런 낱말조차 우리들이 지난날부터 곱게 쓰던 말투를 살피어 새로운 오늘날에 알맞게 담아내지 못한다면 말사랑 글사랑이란 덧없지 않겠느냐 생각했어요. 이러는 동안 ‘자신’이나 ‘자기’라는 낱말이 깃드는 자리를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 자신은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 나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나로서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당신은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그때에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


 적잖은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뿐 아니라 다른 낱말을 옳게 다듬거나 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과 말은 1:1로 맞추어 고치거나 다듬을 수 없는데, 이 낱말이 이런 자리에 쓰이든 저런 자리에 쓰이든 1:1로만 생각해 버릇하거든요. ‘자신’ 한 가지를 다듬을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맨 처음으로는 ‘나’로 다듬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다 보면 ‘나로서는’처럼 ‘-로서’를 사이에 넣어야 한결 부드럽기도 하고, ‘당신’이나 ‘이녁’이나 ‘그 사람’이라고 넣어야 알맞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때에는’이나 ‘그무렵에는’을 넣어 줍니다. 그야말로 때와 곳에 따라 다듬을 말투가 다릅니다.

 ┌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
 │→ 이름을 소담스레 여기고
 │→ 이름을 대수로이 여기고
 │→ 이름을 알뜰히 여기고
 │→ 이름을 아름다이 여기고
 │→ 이름을 고맙게 여기고
 │→ 이름을 보배로이 여기고
 └ …


 ‘소중(所重)’이라는 한자말을 놓고도 퍽 오래도록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이만 한 한자말 또한 구태여 한자말로 갈라야 한다면 사람들이 ‘우리 말 운동이라더니 아주 막 나가는군’ 하고 여길까 싶었습니다.

 이태쯤 앞서부터 ‘소중’이라는 낱말은 되도록 안 쓰지만, 서너 해쯤 앞서까지는 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곤 했습니다. 이제는 이 낱말을 아예 안 써요.

 처음에는 ‘소담스럽다’라는 낱말을 써 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소담스럽다’는 두 가지 뜻풀이가 달립니다. 첫째는 “생김새가 탐스러운 데가 있다”이고 둘째는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한 데가 있다”입니다. 왜 이 낱말 ‘소담스럽다’를 ‘소중하다’와 맞추었느냐 하면, 어느 날 ‘탐(貪)스럽다’라는 외마디 한자말 뜻풀이를 헤아리니, “마음이 몹시 끌리도록 보기에 소담스러운 데가 있다”로 나오더군요. 이 말풀이에 나오는 ‘소담스러운’이라는 낱말이 눈에 확 들어왔고, “소담스럽게 쌓인 눈”이라는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하니까, “소담스럽다 : 마음이 몹시 끌리도록 좋다”라는 느낌으로 쓸 만한 낱말이구나 싶었어요.

 “소중하다 = 매우 귀중하다”입니다. “귀중하다 = 귀하고 중요하다”입니다. “귀하다 =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입니다. “중요하다 = 귀중하고 요긴함”입니다.

 여느 사람들은 ‘소중하다’가 무슨 뜻이요 어떤 쓰임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그냥저냥 쓰는 낱말입니다. ‘보배롭다’가 토박이말인 줄 모르는 사람도 아주 많아요. 아니, 생각조차 않겠지요. 그래, ‘보배로이’는 ‘소중하게’하고 거의 똑같은 낱말이에요. 이 낱말을 쓰면 ‘소중하게’는 퍽 말끔히 털어낼 만합니다.

 다만, 모든 자리에 ‘보배로이’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때에는 ‘보배로이’를 쓰고, 어느 자리에는 ‘소담스레’를 씁니다. 국어사전은 예나 이제나 ‘소담스럽다’ 말풀이를 두 가지로 못박지만, 얼마든지 세 가지 네 가지 말풀이와 쓰임새가 늘어날 만합니다. 우리 스스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말풀이와 쓰임새를 북돋우면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소담스럽다’ 같은 낱말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느껴요. 그리고 ‘알뜰히’나 ‘살뜰히’나 ‘알뜰살뜰히’를 쓰면서 ‘소중히’를 털 수 있고, ‘아름다이’나 ‘고이’, 여기에 ‘대수로이’를 쓰면 거의 모든 자리에서 깔끔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 펼쳐 보이고 있으니까요 (x)
 └ 펼쳐 보이니까요 (o)

 지난 2010년 여름께부터는 ‘있다’라는 말투를 되짚습니다. “하고 있다” 꼴로 쓰는 ‘있다’를 톺아봅니다.

 “보이고 있으니까요”처럼 적는다 해서 이 말투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거의 모두라 할 만한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이렇게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말투가 영 낯설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학교교육이라든지 책이나 방송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오던 사람들 ‘말을 담은 글’을 읽으면서 이런 말투를 하나도 찾아보지 못했어요.

 ┌ 바깥말 자리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x)
 └ 바깥말 자리에만 머뭅니다 (o)

 제가 쓴 예전 글을 다시금 읽으며 “하고 있다”나 “-고 있다” 꼴 말투를 살펴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말법을 영어 말법에 끼워맞추면서 이런 말투가 자꾸 퍼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들이 영어를 널리 배우거나 가르치면서 이런 말투를 스스럼없이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말글을 조금 배운 사람은 알 텐데, 우리 말에는 ‘지난날 때매김’이 없습니다. ‘현재진행형’ 또한 없습니다. 영어이든 다른 서양말이든 때매김이 똑부러지게 나뉘고, 현재진행형 말투가 참 잦아요. 서양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현재진행형 말투인 “하고 있다”와 “-고 있다”가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 토박이말로 짓고 있다면 (x)
 └ 토박이말로 짓는다면 (o)


 어찌 보면, 이제는 우리 말글에도 ‘지난날 때매김’을 넣거나 ‘현재진행형’을 달아도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예스러운 말투로 말해야 할 까닭이 없다 여길 수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 이웃하고 우리 말글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넋과 얼을 보듬으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넉넉합니다. 괜시리 서양 말법처럼 우리 말법을 다루어야 하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글로 글을 쓰면 되고, 일본사람은 일본땅에서 가나로 글을 적으면 돼요. 서양사람은 로마자라 하는 알파벳을 쓰면 되겠지요.

 셈틀을 쓰며 인터넷으로 국어사전을 살필 때에는 국립국어원에 들어갑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창을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다양한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답변은 드리지 않습니다.” 하고 적혔습니다(지난해 첫머리까지만 해도 저는 이 대목에서 “적혀 있습니다”라 글을 썼으나, 이제는 “적혔습니다”라 글을 씁니다). 말글을 다루는 공공기관이자 정부부터 글을 이렇게 써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란 무엇이려나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말투이고, 이런 글은 어느 나라 글이라 할 만한가요.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떠한지 여러분 생각을 들려주셔요. 따로 답변하지는 않습니다.”처럼 적어야 할 글이 아닌지요. 그나저나 답변도 안 해 주면서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떠한가 하고 알려 달라고 적은 모양새가 쓸쓸해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으면 대꾸를 해야 할 텐데, 귀는 있되 입이 없으면 어떡하나요. (4344.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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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0] 시골버스

 도시에서 다니는 버스를 가리켜 ‘도시버스’라 하는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로 ‘시티버스’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골에서 다니는 버스를 일컬어 누구나 ‘시골버스’라 이야기합니다. 굳이 영어로 ‘컨트리버스’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시내버스’입니다. 자그마한 시이든 커다란 시이든 시내버스입니다. 빨리 달리는 버스라면 ‘빠른버스’라 할 만하지만 언제나 ‘급행버스’라는 한자말 이름을 붙입니다. 그나마 영어로 ‘스피드버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도시를 둘러볼 때에 ‘도시마실’이라 하면 어쩐지 낯섭니다. 시골에서는 으레 ‘시골마실’이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마실’이 아닌 ‘시티투어’라 할 때에 잘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도시를 오가는 기차길이니까 ‘철도공사’라는 이름보다는 ‘코레일’이라는 영어 이름이 어울리겠지요. 시골보다는 도시로 커지려 하는 경기도이기에 ‘g bus’라는 이름을 지어서 쓸 테고요. 흙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흙내음 물씬 묻어나는 말이요, 아스팔트랑 시멘트하고 살 부비며 지내는 동안에는 아스팔트 빛깔과 시멘트 느낌이 짙게 스미는 말입니다.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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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9] 무지개아파트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을 찾아가서 먹을거리를 잔뜩 장만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왼편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살피다가 문득 읍내 아파트 한 곳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 이름은 ‘무지개아파트’입니다. 시골 읍내에 선 아파트라 서울 한복판에 서는 아파트들마냥 갖가지 영어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참 예쁜 이름을 붙였구나 싶고, 이십 층이든 삼십 층이든 하는 아파트들도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이면 한결 나으리라 싶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며 생각합니다. 무지개아파트도 좋고 흰구름아파트도 좋으며 실개천아파트도 좋습니다. 솜구름아파트라든지 소나기아파트라든지 사마귀아파트도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보금자리가 아닌 아파트한테 이러한 이름을 붙일 때에 참말로 어울릴까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니다 싶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자전거를 멈춥니다. 가방 무게에 눌려 안장이 조금 낮아졌다고 느껴 안장을 삼 밀리미터쯤 올립니다.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며 춥지만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시골 읍내 아파트이니까 무지개아파트란 이름을 붙일 만하지만, 시골 읍내 아파트라도 그냥 영어로 이름을 붙여야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아파트이니까요. 아파트라서요.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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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8] 눈밭

 시골집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시골아이인 우리 사랑스러운 딸아이 손을 맞잡으며 서울 마실을 나오는 길입니다. 시골버스가 천천히 달리는 시골길까지 눈이 쌓이지는 않으나, 온 시골 멧자락에는 눈이 하얗게 덮입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마다 눈구름이 걸쳤고, 눈구름 걸친 둘레는 마치 딴 나라인 듯한 모습, 아니 그예 눈나라로구나 싶은 모습입니다. 스위스 눈나라도 이런 모습일 테고 일본 맨 위쪽 섬나라 또한 이런 모습이겠지요.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도 매한가지일 모습이 아니랴 생각합니다. 아주 높거나 깊은 멧자락만 눈나라는 아닙니다. 조그마한 멧기슭과 야트막한 멧부리야말로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멧길 멧숲 멧터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도 아빠도 시골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밭을 바라봅니다. 문득, 서울 마실을 하지 말고 잿고개 이 예쁜 터에서 내려 도로 집으로 눈길을 밟으며 눈밭을 누리며 눈꿈을 꾸면서 천천히 한 발 두 발 씩씩하게 거닐며 온몸이 꽁꽁 얼어붙더라도 호호 입김을 불며 돌아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닿으니 눈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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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0-12-09 19:52   좋아요 0 | URL
눈밭만 없다 뿐입니까..
풍경 살벌하죠, 공기도 나쁘죠..-_-

저는 볕도 안들고 공기도 안좋은 동네 살다가
외곽지로 나와서 공기도 전보다 좋고 안방에 볕이 잘드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져요.
집은 전보다 더 늙은 집이지만 주변환경 덕에 전보다 기분 좋게 지내요.

숲노래 2010-12-10 12:22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삶터 좋은 이야기로 좋은 책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