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36] 새봄맞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온 투박한 사람들은 늘 우리 말을 사랑했습니다. 다만, 우리 말을 사랑해 온 여느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삶에는 ‘우리 글’이 없었을 뿐입니다. 글은 없으나 얼마든지 즐거웠고, 글은 쓰지 않았어도 말과 넋으로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이 아닌 ‘중국사람 글’을 아끼며 섬기던 사람들은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야 옳습니다. 새해를 맞이했으면 ‘새해맞이’라 하면 될 뿐인데, 이제껏 ‘謹賀新年’ 언저리에서만 맴돌았습니다. 새로 맞이하는 봄을 기쁘게 나누려는 마음을 ‘새봄맞이’라든지 ‘새봄사랑’이라든지 ‘새봄새날’이라든지 ‘새봄한빛’이라고 글월을 적어 붙이지 않았어요. 이 또한 조금 더 생각하면, 가을걷이를 마친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여느 수수한 사람들 살림집 문에는 ‘立春大吉’ 같은 글월이 붙지 않습니다. 중국사람 글을 우러르며 돈과 이름과 힘을 거느리던 사람들 기와집 대문에만 붙은 한문입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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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5] 이름없음

 요사이는 손전화 쪽지가 올 때에 ‘이름없음’이 뜰 때가 꽤 있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면 으레 광고 쪽지인데, 광고를 낸 쪽은 저희 전화번호를 알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하겠지요. 문득 생각해 보니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이런 광고 쪽지는 ‘발신번호제한’이라는 이름이 붙어 왔구나 싶은데, 왜 이렇게 ‘이름없음’으로 바뀌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내가 내 손전화에 적히는 말을 내 나름대로 예쁘거나 살갑거나 쉽거나 알맞거나 좋다 싶은 말마디로 고칠 수 없으니, 틀림없이 전화회사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바꾸었는지 모르고, 나라법이라든지 무엇으로 이와 같이 바뀌었을는지 모르지요. 새로 나오는 손전화 기계는 영어인지 무슨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모조리 알파벳으로 이름이 붙는데, 뜻밖에도 ‘발신번호제한’ 같은 말마디는, 뭐랄까, 손전화 만드는 사람들이 보기에 ‘멋스럽다’ 할 만한 영어로 바꾸지 않으니,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 그래도 이런 낱말 하나 쉬운 말로 고쳐 준 대목을 반가워 해야 할는지 고마워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쉽게 쓰려 애쓴 말인데, 왜 이제서야 이렇게 쓰는지요. 이 대목 하나만 잘 다듬는다고 손전화 말삶이 한껏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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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4] 눈맞춤

 서로 마음을 맞추며 살아가기에 마음맞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을 보듬기에 사랑맞춤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으니 책맞춤입니다. 서로 마주 바라보는 눈높이를 맞추려고 키맞춤을 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소리맞춤을 합니다. 생각을 나누는 동안 어느새 뜻맞춤을 합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나 푼푼이 그러모으면서 다 같이 돈맞춤을 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우리들은 이야기맞춤을 합니다. 비좁은 자리라 할지라도 서로 마음을 기울여 다리가 덜 아프도록 자리맞춤을 합니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우리 꿈을 헤아리면서 꿈맞춤을 합니다. 나와 네가 날마다 꾸리는 이 삶을 아끼고자 삶맞춤을 합니다. 어깨동무하는 좋은 일이기에 일맞춤을 하다가는, 함께 일하고 함께 놀자며 놀이맞춤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어버이는 아이하고 눈맞춤을 합니다. 맞춤 가운데에는 입맞춤이 있어요. 좋아하는 사이이기에 입술과 입술을 맞닿아 따스한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거닐면서 생각하고, 다리가 아프다 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생각합니다. 어떠한 맞춤이든 맨 먼저 눈을 맞추지 않고서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4344.1.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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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3] 손닦는천

 어릴 때부터 ‘수건(手巾)’이라는 낱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지만, 뾰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딱히 다른 낱말을 쓰는 어른도 없었습니다. 손을 닦든 낯을 닦든, 닦는 천인데, 어쩐지 ‘수건’은 제 쓰임새를 옳게 나타내지 못한다 싶었어요. ‘손수건’은 어떤 천일까요. ‘손수건’이란 말이 될까요. ‘발수건’은 또 어떤 천인가요. ‘발수건’이란 말이 될 수 있는가요. 아이를 씻기고 나서 물기를 훔칠 때에 아이한테 “저기 수건 가져오셔요.” 하고 말은 하지만, 아이한테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늘 아리송합니다. 아이 머리카락과 몸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생각합니다. 먼 옛날 농사짓던 사람이나 고기잡던 사람은 어떤 물건을 쓰면서 어떤 낱말을 주고받았으려나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건’이라 할 뿐 아니라 ‘타올(타월/towel)’이라고도 하지만, 우리 아이한테 참말 이 말을 고스란히 그냥 그저 그예 가르쳐야 하나 알쏭달쏭합니다. 깊어 가는 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손닦는천’이라 하고 ‘발닦는천’이라 하며 ‘접시닦이천’이라 말해 볼까.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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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2] 앞마당

 큰도시에 새로 들어서는 커다란 아파트숲에서도 으레 ‘놀이터’라는 이름을 붙이는 줄 압니다만, 아직도 놀이터를 ‘놀이터’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놀이하는 터니까 ‘놀이터’인데, 이 낱말만큼은 고이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자그맣게 꾸민 쉼터이니 ‘작은쉼터’라 하면 되지만, 아파트숲 사이에 낀 좁다란 쉼터는 ‘근린공원(近隣公園)’이라고만 하거든요. 큰도시 아파트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분들은 몇 억이니 몇 십억이니 참으로 큰돈을 들입니다. 살 만하기에 이러한 집에서 살림을 꾸리실 텐데, 아파트숲 보금자리 가운데 마당 있는 집은 없습니다. 마당 들어설 수 없고 마당 꾸밀 수 없는 아파트숲이 차츰 넓어지면서, 우리네 살림집이면 꼭 있던 마당이라는 터뿐 아니라 ‘마당’이라는 낱말마저 쓰임새가 확 사라집니다. 동네 골목집 가운데 제법 가멸찬 살림이라면 손바닥 마당쯤 있을 테지만, 마당 있는 집은 시골집만 남겠구나 싶어요. 집 앞이라 앞마당이고, 집 옆은 옆마당이며, 집 뒤는 뒷마당입니다. 마당은 일마당이면서 놀이마당입니다. 잔치를 벌이면 잔치마당, 춤을 추면 춤마당, 노래를 부르면 노래마당인 한마당이었어요.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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