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60] 가위

 네 살 아이는 둘레 사람들 말투를 쏙쏙 빨아들입니다. 둘레 사람들이 예쁘게 말하든 밉게 말하든 아이 귀가 쫑긋할 만한 말을 하면, 이 말이 입에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바이바이’라 하면 아이도 ‘바이바이’라 하고, 어른들이 ‘안녕’이라 하면 아이도 ‘안녕’이라 하며, 어른들이 ‘잘 가’라 하면 아이도 ‘잘 가’라 합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될 무렵부터 〈감자에 싹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손놀이를 보여줍니다. 아이는 이내 이 노래와 손놀이를 좋아해 주었고, 툭하면 “감자에.” 하면서 함께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자고 불렀습니다. 이제 네 살이 되면서 “감자에.”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자고 부르지는 않는데, 이 노래와 손놀이를 즐길 무렵, 둘레 언니나 오빠가 사진에 찍힐 때, 또 어른들이 사진을 찍으며 ‘브이’를 만드는 모습을 익히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는 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때에 저도 ‘브이’를 따라한다고 시늉을 해서 되게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하면서 입으로는 ‘가위’라 말합니다. 두 살부터 세 살을 거쳐 네 살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가아위!” 하면서 손가락 둘을 쪽 펼쳐서 얼굴에 댑니다. 그래 그래 가위야, 그렇지만 가위 좀 치워 주겠니?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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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9] 오줌그릇

 오줌그릇을 씻는다. 옆지기가 쓰는 오줌그릇을 씻고, 첫째 아이가 쓰는 똥오줌그릇을 씻는다. 옆지기가 쓰는 오줌그릇은 오줌을 여럿 눈 다음에 비우고 나서 씻는다. 첫째 아이가 쓰는 똥오줌그릇은 오줌을 두 번쯤 눈 다음에 비우고 나서 씻는다. 똥을 누면 곧바로 비운다. 오줌그릇을 비우고 나서 물로 헹구고 수세미로 오줌 기운이나 똥 기운을 닦곤 한다. 비가 내리고 나서 냇물이 불었으면 냇가에 흐르는 물에 오줌그릇을 대고는 맨손으로 훌훌 휘저으며 닦는다. 집안 씻는방에서도 수세미를 안 쓰고 그냥 맨손으로 닦곤 한다. 오줌그릇 닦은 손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한 손으로 쌀을 씻으며, 쌀을 씻은 손으로 밥을 하고, 밥을 한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갈며, 둘째 기저귀를 간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 손으로 젓가락을 쥐며, 젓가락을 쥐던 손으로 책을 겨우 집어든다. 모처럼 낱말책을 펼쳐 ‘요강’이라는 낱말을 살핀다. ‘요강’은 한자를 빌어 이래저래 적기도 한다지만 토박이말이란다. 토박이말이면 토박이말이지 왜 굳이 한자를 빌어서 적어야 할까. 밥을 밥으로 적으면 되지 애써 ‘食事’로 적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오줌이 마려운 사람한테 “요의(尿意)가 있다”고 일컫는 병·의학 전문가들이 무섭다. (4344.6.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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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8] 거스러기

 거스러기는 아주 작습니다. 거스러기는 딱히 생채기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거스러기 하나가 나면 손을 쓸 때마다 따끔거립니다. 거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떼어내든 손톱깎이로 자르든 해야 합니다. 짐을 나르건 설거지를 하건 빨래를 하건 아이를 안건 아기 기저귀를 갈건 책을 읽건 거스러기가 자꾸 걸립니다. 몸이 튼튼할 때에는 거스러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몸이 여릴 때에는 거스러기가 시나브로 생깁니다. 몸이 힘들거나 고단한 날 무언가를 하다가 자꾸 걸리적거리기에 손가락을 들어 바라보면 거스러기가 생겼습니다. 엊저녁,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나서 손톱깎이를 찾습니다. 거스러기를 똑똑 자릅니다. 오른손가락에는 하나도 없으나, 왼손가락에는 예닐곱 군데가 있습니다. 뭐에 살짝 긁히더라도 물이 닿으면 쓰라리거나 따끔합니다. 집밖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뭐에 살짝 긁힌 만큼이라면 아무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끝에 거스러기가 생기더라도 호미질과 낫질과 괭이질을 할 때에는 마음쓰이지 않을 뿐더러 실장갑을 끼면 됩니다. 집안에서 밥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빨래를 하다가는 설거지를 하는 틈틈이 걸레를 빨아 닦든지 치우든지 하는 살림꾼은 아주 자그마한 생채기나 거스러기 하나 때문에 힘들거나 아픕니다. 거스러기는 사투리라 하고, 서울말은 거스러미입니다. (4344.6.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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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6-05 22:37   좋아요 0 | URL
거스러기라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
 

[함께 살아가는 말 57] 어머니젖

 옆지기는 두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입니다. 첫째 아이는 네 살이고 둘째 아이는 한 살입니다. 갓 태어난 둘째 아이는 어머니인 옆지기가 물리는 젖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옆지기인 어머니한테서 젖을 얻어먹으며 자라는 둘째는 날마다 마흔 차례쯤 노오란 똥을 기저귀에 눕니다. 세이레가 지나면 똥기저귀는 스무 차례쯤으로 줄어들리라 생각하고 백 날쯤 되면 똥기저귀는 하루에 열 차례가 안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젖을 물며 자랍니다. 두 아이는 가루젖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가루젖을 먹으며 크는 아이도 노오란 똥을 눌는지 궁금합니다. 똥기저귀를 빨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한테 천기저귀가 아닌 종이기저귀를 댄다면 날마다 기저귀 쓰레기가 수두룩하게 나올 테고, 기저귀 쓰레기를 버리느라 쓰레기봉투도 써야 하며, 새 종이기저귀를 사느라 돈 또한 꽤나 들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날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 바깥으로 돈 버는 일을 하러 다니니까, 천기저귀를 대고 틈틈이 갈면서 빨래할 겨를이 없습니다. 돈을 더 벌어 종이기저귀 값을 댄다고 합니다. 어머니젖을 물린대서 모두 천기저귀를 쓰지는 않겠지만, 어머니젖을 물리고 천기저귀를 쓰며 시골자락에서 호미를 쥘 때에 사랑이지 싶어요. (4344.6.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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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6] 갓난쟁이

 갓난아기를 바라봅니다. 요 갓 난 아기를 바라봅니다. 이 땅에 갓 나온 아기는 어머니젖을 물다가는 잠이 들다가는 잠이 깨다가는 할머니나 아버지 품에 안겨 두리번두리번 멀뚱멀뚱하다가는, 곁에서 누나가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열 달을 사는 동안 늘 듣던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는 갓난아기한테는 어떠한 느낌이었을까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들 무렵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피아노를 치지 말라 했지만, 갓난아기가 제법 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고는, 동생이 듣도록 피아노를 쳐 주렴, 하고 말하니 금세 피아노 뚜껑을 살며시 열면서 신나게 또당또당 두들깁니다. 누구한테서 딱히 배운 적이 없는 아이 마음대로 가락에 따라 이 소리 저 소리 부드러이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고작 세 해 앞서만 하더라도 어린 누나는 제 어린 동생과 마찬가지로 갓난쟁이였습니다. 갓난쟁이에서 제법 큰 아이는 이제 어엿하게 누나 노릇을 하고, 누나 노릇을 하는 어린이를 키우는 어버이 또한 이제는 늙수그레한 나이로 접어드는 아버지요 어머니이며, 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은 분들은 갓난쟁이였을 적에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기 힘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살아갑니다. (4344.5.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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