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63] 하루맞이

 첫 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날부터 하루맞이는 남다릅니다. 첫 아이를 맞아들이고부터 아이보다 훨씬 일찍 깊은 새벽에 일어나 아이 기저귀를 살핍니다. 이러고 나서 밤새 쌓인 오줌기저귀를 천천히 빨래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한 기저귀와 옷가지가 어느 만큼 말랐는가 만지고는, 다 말랐으면 개고, 이 자리에는 새벽에 새로 빤 기저귀와 옷가지를 넙니다. 이윽고, 아침맞이 글쓰기를 조금 하다가, 곧 일어날 식구들 먹일 밥을 어떻게 차릴까를 생각하며 쌀을 씻어 불립니다. 머잖아 아이가 깨어나면 이때부터 쏜살같이 흐르는 하루는 온 넋과 얼을 쏘옥 빼며 해가 하늘 높이 떴는지 저쪽으로 기울었는지 모르는 채 휙휙 흐릅니다. 저녁이나 밤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돌아보면서 하루마감을 해 보고 싶지만, 내 몸에 남아난 기운이 거의 없어 어느새 아이 곁에서 폭 고꾸라집니다. 오늘 하루도 여느 날과 똑같이 엽니다. 하루맞이는 새벽빨래부터입니다.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비벼서 물기를 짜고 탕탕 텁니다. 손에서 물기 마를 틈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낳아 어버이로 살아온 이 땅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맞이를 이렇게 했겠지, 하고 돌아봅니다. 고마운 하루맞이입니다. 퍽 힘에 부치지만 보람차면서 아름다운 하루마감을 꿈꿉니다. (4344.7.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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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2] 우리들 친구

 혀가 짧아도 애쓰다 보면 혀짤배기 소리를 안 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혀가 짧기에 더 힘쓰면서 혀짤배기 소리에서 벗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혀가 짧기에 혀짤배기로도 낼 수 있는 소리를 찾아 나한테 걸맞거나 즐거울 말마디를 찾기도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국어를 배우는 때에 으레 책에 적힌 글을 읽도록 시키는데, 나로서는 “우리의 무엇무엇” 하고 나오는 대목이 읽기 힘들었습니다. 천천히 똑똑 끊어 읽으면 읽을 만하지만, 어느 교사이든 이렇게 읽지 못하도록 했고, 동무들은 깔깔거리며 놀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웃음소리와 꾸지람을 무릅쓰고 빨리 읽을라치면 소리가 새거나 혀가 꼬였어요. 이때에 내가 했던 생각은 ‘책에 적힌 글을 그대로 읽으라면 어찌할 수 없지만,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이렇게 안 하겠어.’였어요. 어린 날 동무들이 많이 듣고 부르던 노래 〈빨간머리 앤〉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목을 나는 혼자서 조용히 “우리들 친구”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제 네 살 된 딸아이한테도 아버지는 〈빨간머리 앤〉 노래 끝자락을 “우리들 친구”로 고쳐서 부릅니다. 아이 어머니는 “우리의 친구”로 똑똑히 부를 줄 알고, 아이도 이렇게 배우지만, 아버지가 “우리들 친구”라 하니, 요새는 아이도 이렇게 부릅니다. (4344.7.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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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옮기는 일본 만화책


 일본사람은 한국사람보다 영어를 즐겨쓴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은 웬만한 낱말을 으레 영어로 적어 버릇한다고까지 합니다. 일본말을 배우는 이는 따로 ‘일본 외래어 사전’을 곁에 두지 않으면 일본말을 익히지 못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네 살 아이하고 일본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노라면, 어린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끌고 다니면서 거두어 도시로 가져가는 것은 ‘우유’ 아닌 ‘미루크(milk)’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이 그린 만화책을 읽을 때에도 엇비슷합니다. 일본 만화책을 한글로 옮긴 이들은 일본사람이 쓰는 영어를 고스란히 옮겨 적기 일쑤입니다. 《네가 없는 낙원》(학산문화사,2006) 11권 106쪽에 “내 휴대폰으로 메일 주세요.”라는 대목이 나오고, 107쪽에는 “머리 위에서는 지금 지상의 눈보라로 인한 3D 아트 전개 중. 타이틀은, 으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손전화’까지 바라기는 힘들다지만, ‘휴대전화’라 적을 수 있었을 테고, ‘쪽지’나 ‘쪽글’까지 바라기 힘들더라도 ‘문자’라 적을 수 있어요. 그나저나 “3D 아트 전개 중”은 어떻게 살펴야 할까요. 어쩌면, 번역하는 분마저 이런 말은 도무지 어쩔 수 없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놀라운 예술이 펼쳐진다”라든지 “꿈 같은 예술이 펼쳐짐”이라든지,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면 좋겠습니다. 122쪽에는 “한 장밖에 티켓을 구하지 못했어.”라는 대목하고 “이 메모 순서대로 병원으로 가.”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꽤 흔히 쓰는 낱말이라지만, ‘티켓(ticket)’은 우리 말이 아니에요. 영어예요. 들온말이니 아니니를 따질 수 없는 바깥말인 영어입니다. ‘메모(memo)’야 워낙 자주 많이 쓰니 바깥말이라 느끼는 사람이 적다 할 텐데, 한국말은 ‘쪽글’이나 ‘쪽지’입니다.

 《치무아 포트》(대원씨아이,2011)라는 만화책 69쪽에서는 “나라는 샘플을 원하고 있지.”라는 대목을 봅니다. 한자말 ‘견본’이나 한국말 ‘보기’를 쓰지 않습니다. 123쪽에서는 “서비스로 드리지요!”라는 대목을 봅니다. “덤으로 드리지요!”나 “더 드리지요!”나 “그냥 드리지요!”라 적지 않아요.

 《봄으로 가는 버스》(대원씨아이,2007) 4권에 나오는 “선생님! 나이스 슛이에요!”는 일본사람만 흔히 쓰는 영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도 이제는 이런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아주 보드랍게 써요. 농구를 하건 축구를 하건 “나이스 슛”이라고만 해요. “멋진 슛”이나 “멋져”라 하지 않습니다.

 《조폭 선생님》(대원씨아이,2011) 완결편 185쪽에서 보는 “어쩌고 하는 작업멘트를 날리다 그만”에서는 ‘작업멘트’라는 대목이 돋보입니다. “어쩌고 하며 작업을 거는 말을 날리다 그만”처럼 적지 않을 뿐더러, “작업을 거는 말”을 ‘작업말’이라 이야기하는 일이 없어요. 으레 영어로 ‘멘트(ment)’라 해야 어울린다고 여깁니다. 더 들여다보면 ‘作業’이라는 낱말부터 알맞지 않게 쓴 셈인데, ‘꼬드기다’나 ‘꾀다’라 적어야 하는데, 이렇게 엉뚱한 낱말을 쓰면서 영어 또한 얄궂게 들러붙는구나 싶어요. 180쪽에서 보는 “내 휴대폰 벨소리인데?”에서는 어느덧 한국말로 뿌리를 내렸다고 할 만한 ‘벨소리’가 보입니다. “휴대전화 소리”나 “손전화 울림소리”나 “손전화 노랫소리”처럼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1) 5권 114쪽에 나오는 “아니, 오버야.” 같은 말 또한 어느새 영어로 느끼지 않는 한국말처럼 받아들입니다. “아니, 지나쳤어.”나 “아니, 김치국 마시지 마.”나 “아니, 헛물 켜지 마.”처럼 주고받던 말씨는 이제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는 듯합니다.

 《아빠는 요리사》(학산문화사,2011) 112권 107쪽에는 “둘이서 크리스마스 & 해피 버스데이 파티를 여는 거 어때?”라는 대목이 보이고, 111쪽에는 “몽자들은 이웃의 홈파티에 간 모양이다.”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그나마 ‘생일파티’조차 아닌 ‘버스데이 파티’라 하고, 꾸밈말을 덧달아 “해피 버스데이 파티”라 말하는군요. 일본사람이 이렇게 영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더라도, 한국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이 보는 만화책에는 “둘이서 성탄맞이와 즐거운 생일잔치를 열면 어때?”처럼 적기란 어려웠을까 궁금합니다. ‘홈파티’라는 말도 그렇지요. 집에서 여는 잔치라면 ‘집잔치’일 텐데요.

 《신의 물방울》(학산문화사,2005) 1권 37쪽에는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고의 빈티지였어.”라는 말마디가 나옵니다만, ‘빈티지(vintage)’는 포도술을 가리킵니다. 어느 해 어느 곳에서 만든 좋은 포도술을 가리킨다고 하는 만큼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고의 빈티지였어”는 말이 될 수 없어요. “포도술을 빚기에는 가장 좋은 해였어.”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나저나, ‘빈티지’라는 영어를 ‘구제(舊製)’라는 한자말과 같은 뜻으로 쓰면서 “오래되면서 무언가 멋이 있는 옷이나 물건”이라 여기곤 하는데, 이렇게 쓰는 일은 알맞지 않아요. 빈티지이든 구제이든, 한국말로는 ‘헌옷’입니다. 낡은 옷이거나 오래된 옷이에요. 헐거나 낡거나 오래되었으나 빛이 난대서 달리 영어로 나타내려 하는지 모르나, ‘헌책’이든 ‘헌집’이든 값이나 뜻을 찾는 사람은 나 스스로입니다. 물건은 물건 그대로 꾸밈없이 가리키면서 내 마음을 따스히 돌보아야지 싶어요. 41쪽에는 “신의 솜씨 같은 그의 디켄팅이 쇠사슬에 묶여 있던 떨떠름한 리쉬부르를 해방시켜 줬고”라는 말마디를 봅니다. ‘디켄팅(Decanting)’이라고만 해야 전문 낱말인 듯 생각하기에 그대로 영어로만 적는구나 싶은데, 한국말 ‘옮겨따르기’나 ‘옮겨담기’로 적으면 됩니다. 번역하는 일이란 ‘옮기기’나 ‘옮겨적기’입니다. 옮기어 따르는 동안 찌꺼기를 거르는 만큼, 이렇게 ‘옮겨따르기’라고만 하면서 얼마든지 포도술 거르기를 보여줄 수 있어요.

 《미녀는 못 말려》(서울문화사,2004) 3권 85쪽에 “자아, 클린 스태프는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하는 말이 나옵니다. ‘클린 스태프’라 해서 무언가 했더니 ‘청소 일꾼’, 곧 ‘청소부’를 가리킵니다. 말놀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청소하는 분”이나 “청소를 맡는 분”으로도 옮길 수 있고, ‘맑음이’나 ‘깔끔이’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8쪽을 보면, “집에서 얘랑 디너하기로 했거든.” 하고 나옵니다. ‘저녁’이나 ‘저녁잔치’처럼 쓰지 않아요. 영어로 겉멋이나 겉치레를 부리는 아이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111쪽에는 “빅뉴스야, 빅뉴스!” 하고 나옵니다. “대단한 소식이야!”나 “놀라운 이야기야!”처럼 이야기하지 않아요. ‘빅’이든 ‘뉴스’이든 가볍게 써요.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1) 2권 6쪽에서는 “하루카의 걸프렌드 사호구나!” 하는 글월을 봅니다. 여자인 친구이니 ‘여자친구’이지만, 이렇게 영어로 가리키는 일을 더없이 마땅하다는 듯 여깁니다. 143쪽에는 “모처럼 즐거운 피크닉에 와서” 같은 글월을 볼 수 있어요. “즐거운 나들이”나 “즐거운 들놀이”나 “즐거운 봄나들이”라 적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제아무리 영어로 온갖 삶과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만화책은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즐기도록 해야 할 테지만, 한국말을 어떻게 가다듬으면서 알맞게 적바림해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거의 돌아보지 못한다고 하겠어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이러하며 이듬날도 이와 마찬가지가 되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깊이 담아 주고받는 말이 되지 못합니다. 생각을 알뜰히 기울여 나누는 글이 되지 못합니다. 즐거이 놀이하듯이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뻗지 못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여기에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즐겨 읽는 만화책에서도,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곱게 아로새기기란 너무 힘듭니다. (4344.6.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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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1] 막대기빵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아 읍내 장마당으로 가는 길에 옆지기한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옆지기는 사올 수 있으면 ‘막대기빵’도 사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장마당에 나오는 김이니, 사올 수 있으면이 아니라 이곳저곳 뒤져서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네, 막대기빵이요?” 하고 묻습니다. 옆지기는 “막대기빵. 바게트빵.” 하고 덧붙입니다. “아, 바게트빵.” 손전화를 끊고 앞가방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니, 옆지기는 곧잘 ‘막대기빵’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막대기처럼 생겼기에 막대기빵이라 할 수 있겠구나 싶은데, 집에 와서 더 얘기를 들으니, 프랑스사람이 구워서 먹는 ‘바게트빵(baguette  pain)’에서 바게트는 ‘막대기’를 뜻한다더군요. 그러니, 프랑스사람으로서는 삶말로 ‘막대기빵’이라 이름붙인 셈이고, 한국에 있는 빵집 이름을 돌아보자면 ‘파리 막대기’예요. 다음 장날에 다시금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에 나가 막대기빵을 둘 사옵니다. 아이 손을 잡고 빵집에 들어서며 막대기빵을 한손에 하나씩 집고는 썰어 달라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이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응, 막대기처럼 생긴 이 녀석은 막대기빵이야.” “응, 막대기빵. 막대기빵 맛있어?” “응, 맛있어.” (4344.6.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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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를 사랑하는 배두나 씨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배두나 씨는 2006년에 《두나's 런던놀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이윽고 2007년에는 《두나's 도쿄놀이》라는 책을 내놓고, 이듬해인 2008년에는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배두나 씨를 좋아하는 분이건 배두나 씨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건, 세 가지 책을 가만히 살펴본 분은 잘 알아차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배두나 씨는 ‘놀이’라는 한국말을 쓰지, ‘play’라는 영어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배두나 씨는 ‘play’를 쓰지 않으나 ‘두나's’라고 하면서 영어 말투를 씁니다.

 더 들여다보면, 배두나 씨는 여느 지식쟁이처럼 ‘-의’를 붙이지 않습니다. “두나의 런던놀이”가 아니라 “두나's 런던놀이”예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얄궂겠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입니다. 가게이름은 ‘Kim's club’이지, ‘김씨의 가게’나 ‘김씨 가게’가 아니에요. 그러나, ‘김가네 김밥’이요, ‘김가의 김밥’이나 ‘김가's 김밥’이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주고받을 한국말을 옳게 살피면서 쓸 줄 아는 곳에서는 ‘김가의 김밥’이나 ‘김가's 김밥’이 아닌 ‘김가네 김밥’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두나's 런던play”라고 이름을 붙여야 알맞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duna's London play”처럼 모조리 알파벳으로 적든지요. 《두나's 런던놀이》를 사서 읽거나 즐기는 분 가운데 이 책에 붙은 이름을 얄궂다고 느낀다거나 잘못됐다고 여긴다거나 알맞지 않다고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책을 내놓은 출판사부터 그래요. 책마을 일꾼 스스로 가슴으로 우리 말글을 느끼지 않습니다.

 《두나's 서울놀이》를 들여다봅니다. “배두나의 취미는 베이킹과 꽃꽂이다(21쪽).” 하는 글월이 있습니다. 배두나 씨는 ‘베이킹’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빵굽기’ 아닌 ‘베이킹’을 좋아한다면 ‘꽃꽂이’ 아닌 ‘플라워잉’을 좋아해야 걸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배두나는 타고난 패셔니스타다(21쪽).”라고도 하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배두나 씨는 ‘옷을 잘 입는 사람’이거나 ‘옷을 멋있게 입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배두나 씨는 “최근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친구가 스케치북에 드로잉하는 것을 보았는데(5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무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드로잉’을 하기 때문에 배두나 씨가 ‘드로잉’을 좋아하겠지요. 그런데, 드로잉을 하지만 ‘미술’에 눈길을 둔다고 말합니다. 드로잉을 한다면 ‘아트’나 ‘페인텅’에 눈길을 두어야 알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헤아린다면, 사람들 누구나 그림을 그리는 종이를 묶은 것을 가리킬 때에 ‘스케치북’이라고 합니다. ‘그림책’이나 ‘그림종이책’이나 ‘그림그리기책’이라 하지 않아요.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기 모으기 또한 좋아한다는 배두나 씨는 “취미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의 재미를 더욱 다양하고 느끼고(78쪽)” 싶어 한답니다. ‘하드웨어의 재미’란 ‘사진기 모으는 재미’라는 소리일 테지요.

 배두나 씨한테는 ‘절친’과 함께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131,133쪽)고 하는데, 베스트 프렌드 가운데에는 ‘넘버원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고 해요. ‘친구’와 ‘동무’와 ‘너나들이’ 같은 낱말이 있으니, 이런 낱말을 알뜰살뜰 잘 써야 한다 이야기할 수 있고, ‘사랑동무’나 ‘으뜸동무’나 ‘참동무’처럼 말할 수 있는데, 연기하는 사람들 말씨가 참 얄궂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기하는 사람에 앞서, 이 나라 행정을 다스리는 분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같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읊어요. 누구를 탓한다거나 아무개를 더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상 & 연우(130쪽)”처럼 쓰는 글월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and)’는 우리 말이 아닌 줄 느끼지 않거든요. 우리 말로 옳게 하자면 “원상과 연우”나 “원상이랑 연우”나 “원상하고 연우”라 해야 하는 줄 생각하지 않아요.

 “그외의 FAVORITE LIST(121쪽)” 같은 글월 또한 무어라 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인터넷창에는 ‘FAVORITE’ 아닌 ‘즐겨찾기’라는 말마디만 적히지만, 영어로 이야기하고 영어로 들으며 영어로 생각하는 멋을 찾는 사람들한테 영어를 아무 데나 쓰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삶자락이니까요.

 “엄마가 자갈로 박아 놓은 아버지의 이니셜 J.D.BAE(203쪽)” 같은 글월을 곱씹습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지식인이든 여느 사람이든, 제 이름을 ‘한글 머릿글’을 따서 쓰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ㅊㅈㄱ’처럼 쓰는 사람은 참으로 적어요. 그저 ‘CJG’처럼 적습니다. 책등에 적는 이름이든 공책이나 수첩에 적는 이름이든, 으레 알파벳이에요. 한글이 아닙니다. 한글이 아닌 알파벳을 적으니 ‘이니셜’이 되겠지요. ‘머릿글’이 아닙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한테 밥을 먹기 앞서나 밥을 먹고 나서 ‘입가심’이나 ‘주전부리’를 줄 때가 있어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말을 하니까요. 배두나 씨로서는 “두나's 서울놀이”라 말하는 삶이기 때문에 “디저트로 마신 핫초코의 맛(227쪽)”이라고 말할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들로서는 그저 ‘디저트’예요. 한자말로 ‘후식’이라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배두나 씨는 “난 이곳의 브런치를 좋아한다(227쪽).”고 말하면서 무엇이 어떻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가를 헤아리거나 살필 수 없습니다.

 먹는 이야기를 덧붙이면 “산마 얹은 참치를 애피타이저로 먹은 후, 메인 메뉴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265쪽).”에서 ‘애피타이저’라는 낱말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먹기 앞서 애피타이저요, 먹은 다음 디저트예요. 이럴 때에는 먹기 앞서 입씻이라 하거나 먹고 나서 입가심이라 할 수 있겠지요. 먹고 나서 주전부리라 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런데, 한국사람 스스로 ‘메인 메뉴’와 ‘사이드 메뉴’를 생각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이러한 밥차림을 가리켜야 좋을는지를 알 길이 없어요.

 이렁저렁 책을 마무리지으면서, 배두나 씨는 ‘EPILOGUE’를 쓰고 ‘THANKS TO’를 붙입니다. ‘맺음말’이나 ‘끝말’이나 ‘마무리말’이 아닙니다. ‘고마운 분’이나 ‘고마운 이름’이나 ‘고마운 사람들’ 또한 아니에요. 책 맨 마지막에는 “Written by Hooney”가 붙습니다. “since ○○○○”처럼 간판 옆에 적바림하는 글씀씀이하고 같습니다. “아무개 적음”이나 “아무개 씀”이 아닌 “Written by 아무개”예요.

 영어를 사랑하는 배두나 씨라 할 만하지만, 오늘날 사람들 말매무새를 톺아본다면 딱히 영어를 사랑한다기보다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을 배두나 씨도 똑같이 쓸 뿐’이라 할 수 있어요. 배두나 씨 책을 내놓은 출판사 이름은 ‘중앙books’입니다. (4344.6.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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