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78] 큰못

 면에 있는 철물점에 들러 큰못 하나 얻습니다. 새 도서관 샤시문에 다는 자물쇠는 구멍을 뚫어 못 하나 넣은 다음 채웁니다. 자물쇠는 장만했는데 큰못이 없어, 철물점에서 다른 물건 하나 사며 얻습니다. 큰못 하나 얻으며 말씀을 여쭐 때에 “대못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큰못’이라 말하고 싶으나,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大못’ 아닌 ‘큰못’으로 말해야 옳다고 나오기는 한데, 정작 이처럼 옳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나이든 분이든 나어린 사람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못과 망치를 들어 일하는 사람이든 연필이나 볼펜을 쥐고 일하는 사람이든 노상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못이 아닌 커다란 못을 쓰면서 ‘큰못’이라 말하지 않아요. 그나마, 국어사전에는 ‘큰못’ 한 가지만 실릴 뿐, ‘작은못’은 아예 안 실려요. 슬픈 노릇인데, 말을 말다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길을 국어사전부터 보여주지 못하니까,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말을 말다이 돌보거나 어루만지는 길을 걷지 못해요. 큰사람이 없어요. 큰마음이 없어요. 큰사랑이 없어요. 큰일을 몰라요. 큰꿈을 몰라요. 큰넋을 몰라요. (4344.11.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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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7] 뒷종이

 한쪽은 이런저런 그림과 글이 잔뜩 찍히지만, 뒤쪽은 말끔하게 하얀 종이가 있습니다. 신문 사이에 낀 광고종이가 되든, 우체통에 꽂히는 광고종이가 되든, 한쪽만 쓰는 종이가 있어요. 시골에서는 집집을 돌며 광고종이 꽂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우체통이건 집 둘레이건 광고종이 흩날리는 일이 없습니다. 시골집 들어오는 신문에 광고종이 잔뜩 꽂힐 일 또한 없어요. 읍내 밥집이나 관공서에 놓인 신문을 들추어도 광고종이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광고를 해서 물건을 팔려 하는 사람들은 도시에만 있을 테니, 시골에서 광고종이를 돌리거나 붙여 본들 다리만 아프리라 봅니다. 앞뒤가 온통 하얀 종이가 되든, 한쪽만 하얀 종이가 되든, 그예 도시에서 넘칠 뿐이겠구나 싶어요. 초콜릿 껍데기를 뜯습니다. 비닐로 싸인 벽종이를 뜯습니다. 껍데기 겉은 이런저런 그림과 글로 꽉 차지만, 껍데기 뒤는 하얗습니다. 종이 구경하기 힘든 시골에서는 이런저런 종이들을 잘 간수해서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앞은 못 쓰고 뒤만 쓰는 종이일 테니까, 이들 종이는 뒷종이가 되겠다고 느낍니다. 앞종이는 광고하는 종이요, 뒷종이는 요모조모 적바림할 때에 알뜰히 쓰는 종이로 삼으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4344.11.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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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6] 벽종이

 새로 얻은 보금자리를 꾸미려고 헌 벽종이를 뜯습니다. 우리로서는 새 보금자리이지만, 이 집은 퍽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림집 하나 꾸리면서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나중에 저희끼리 새로운 살림을 일구면서 제금을 납니다. 벽종이에 풀을 바르면서 생각합니다. 풀을 바른 벽종이를 차곡차곡 접어서 살짝 말리묘 헤아립니다. 지난날 이 집을 곱게 꾸미면서 벽종이를 바르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내 어린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집에 벽종이를 새로 바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헌 벽종이를 뜯어 마당 가장자리에서 불을 붙입니다. 새 벽종이는 한 장씩 차근차근 붙입니다. 불이 붙은 벽종이는 금세 까맣게 재로 바뀝니다. 새로 붙인 벽종이는 조금씩 마르면서 시나브로 하얀 빛이 돕니다. 문득, 먼먼 옛날 벽종이 없던 때에는 살림집 방을 어떻게 꾸몄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 살던 궁궐은 방마다 벽이 어떠했을까요. 임금님을 모신다는 사람들 커다란 기와집 방은 벽을 어떻게 마감했을까요. 흙을 일구는 여느 사람들 흙집은 방마다 벽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벽종이는 언제부터 발랐고, 벽종이는 왜 발라야 했을까요. 이제 모든 집을 시멘트로 짓다 보니 벽종이 없이는 안 되는구나 싶지만, 시멘트 아닌 흙과 나무로 집을 짓던 멀디먼 옛날을 그립니다. (4344.11.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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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5] 학교옷

 아이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 학교옷을 맞춥니다. 똑같은 모양과 빛깔로 맞춘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버스나 자가용이나 두 다리나 자전거로 학교에 갑니다. 옷을 똑같이 맞춘 만큼, 학교에서 이 아이들한테 베푸는 앎조각이란 모두 똑같습니다. 똑같은 대학교에 시험성적 더 잘 받은 아이가 들어가게끔 힘씁니다. 아이들은 학교옷을 똑같이 맞춰 입기에 한결 예뻐 보이는지, 아니면 학교 밖에서 미운 짓이나 못난 짓을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지키거나 다스리려고 틀에 맞추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옷을 따로 맞추지 않을 때에도 끔찍한 입시지옥이 그대로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 다른 옷을 입고, 다 다른 꿈에 걸맞게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어른한테서 배울 수 있다면, 이리하여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며 다 다른 삶을 예쁘게 일굴 수 있으면, 우리한테 대학교란 어떤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있을까요. 학교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뒹굴 수 없습니다. 땀내 물씬 나는 옷을 한 주 내내 입기 어렵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논밭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어린 갓난쟁이 동생을 돌볼 수 없습니다. 학교옷 똑같이 입은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만 걷습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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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4] 김씨가게

 고흥읍에서 과역면 쪽으로 가는 길에 퍽 커다란 가게 옆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얼핏 고개를 돌릴 때에 보는데, 가게이름은 ‘킴스마트’입니다. 문득, 서울인가 어디에서 ‘킴스클럽’이라는 퍽 커다란 할인매장 이름을 본 듯합니다. 전라남도 고흥읍에 있는 ‘킴스마트’는 이곳 이름에서 가지를 쳤을까요. 꽤 큼지막하게 짓는 할인매장은 이마트나 롯데마트처럼 ‘마트’라는 영어를 붙입니다. 우리 말 ‘가게’를 붙이지 않습니다. 지난날처럼 한자말 ‘상회(商會)’를 붙이지도 않습니다. 곰곰이 헤아립니다. ‘킴스클럽’이건 ‘킴스마트’이건 ‘김씨가게’입니다. “김씨네 가게”예요. 우리가 한겨레붙이가 아닌 서양사람이라면 서양말로 ‘킴스마트’라는 가게이름을 붙이는 일은 얄궂거나 슬프지 않아요. 한겨레붙이이면서 한겨레붙이답지 못하게 이름을 붙이기에 얄궂거나 슬픕니다. 김씨라서 ‘김씨가게’이고, 장씨라서 ‘장씨가게’라 하면 될 텐데요. 나들이하듯 즐거이 찾아가기에 ‘나들가게’요, 조그맣기에 ‘구멍가게’나 ‘작은가게’입니다. 골목에 깃들어 ‘골목가게’이고, 마을에 있어 ‘마을가게’이며, 섬에 있을 때에 ‘섬가게’입니다. 작은 시골마을 도화면 닭집에 들러 튀김닭 한 마리를 사서 식구들이 맛나게 먹습니다. (4344.9.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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