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55] 눈고양이

 

 읍내 장마당에 마실을 가든, 도시에 있는 헌책방에 나들이를 가든, 우리 식구들은 가방과 장바구니를 챙깁니다.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때에는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으로 모자라면 장바구니를 꺼냅니다. 장바구니라 하지만, 천으로 짠 바구니라 할 테니까, 천바구니라고 해야 옳습니다. 가방을 쓰든 천바구니를 쓰든, 따로 환경사랑이나 자연사랑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가방과 바구니를 쓰는 일이 옳고 바르며 한결 즐겁다고 느낄 뿐입니다. 가방과 천바구니를 쓴대서 이 천바구니가 ‘에코백’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천으로 만든 바구니일 뿐입니다. “GO GREEN”이라 새겨진 예쁘장한 ‘눈고양이 천바구니’를 잡지 선물로 끼워 주기도 한다던데, “푸르게 살자”라거나 “푸르게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살자”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또 ‘스노우캣’이나 ‘SNOWCAT’이 아니라 ‘눈고양이’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스노우 퀸’이나 ‘스노우스 퀸’이라 안 하고 ‘눈의 여왕’이라 했어요. 조금 더 생각했으면, ‘눈 색시’나 ‘눈 아가씨’라 이름을 붙였겠지만. (4344.5.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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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4] 온누리

 온누리를 적시는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은 두릅나무 잎사귀에도 내리고 단풍나무 작은 꽃망울에도 내리며 화살나무 잘디잔 꽃봉오리에도 내립니다.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과 꿈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두 손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온누리 사람들이 즐거우면서 해맑게 살아가도록 하자면, 평화를 지킨다는 군대가 아니라 평화를 이을 만한 논밭을 건사할 노릇입니다. 무기를 손에 쥐는 군인이 있대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낫과 쟁기와 호미와 가래와 삽과 곡괭이와 보습을 쥐고 힘껏 땀흘리며 두레와 울력과 어깨동무를 해야지 싶어요. 아름다운 나라에는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으며, 전투경찰뿐 아니라 교통경찰까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범죄자를 다스린다는 경찰이라지만, 범죄자가 태어나는 밑뿌리를 캐내어 다스리도록 사람들 여느 삶자락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보듬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너무 가난해서 괴로운 사람이 없도록, 너무 넘쳐서 아무렇게나 퍼지르며 바보짓하는 사람이 없게끔, 서로서로 도우며 나누는 삶을 가르치면서 즐길 때에, 비로소 온누리에 미움과 아픔이 가시면서 웃음과 기쁨이 꽃피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는 저마다 작디작은 조용한 마을로 이루어져야지 싶습니다. (4344.5.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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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3] 참살길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바라보고 느끼면서 생각합니다. 착하며 아름다운 사람들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착하며 아름다운 삶을 늘 마주하면서 바라보고 느낄 뿐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꽉꽉 미어터지는 전철에서 부대껴야 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착하며 예쁘게 마음을 다스린다 하더라도 지치거나 고단한 몸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나날이 ‘마음 다스리기 하는 쉼터’가 늘어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며 제아무리 ‘마음 다스리기 하는 쉼터’에 다닌들 무엇이 나아질 수 있을까 궁금해요. 도시에서 살아가니까 정수기를 쓰고 공기정화기를 쓸밖에 없다는데,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을 마셔야 한다면, 스스로 맑게 흐르는 물과 스스로 깨끗하며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마실 곳으로 내 살림살이를 옮겨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훌륭하거나 좋다거나 멋지거나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는다 해서 훌륭해지거나 좋아지거나 멋져지거나 아름답게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삶을 바꾸어야 바뀌고, 삶을 고쳐야 고쳐집니다. 삶이 거듭나도록 땀흘려야 삶이 거듭나겠지요. 좋은 글, 좋은 책, 좋은 밥, 좋은 집 따위가 아니라, 참답게 살아갈 길을 즐기면서 누려야 해요. (4344.5.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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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2] 긴치마

 아이 어머니가 뜨개질로 아이 입을 치마를 떠 줍니다. 길다 싶은 치마로 뜨지 않았을 테지만 아직 아이한테는 퍽 깁니다. 아이는 긴치마를 입고는 즐겁게 뜁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한복을 사 줄 때에 치맛자락이 자꾸 발에 밟히니 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잡고 걷거나 뛰라 말했더니, 아이는 이 말을 곧바로 알아듣고는 긴치마를 입고 다닐 때에는 으레 치맛자락을 잡고 움직입니다. 치마라면 다 좋으니까 긴치마이며 짧은치마이며 깡똥치마이며 다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웃도리를 입으면 웃도리를 보고도 치마라 말하며 두 손으로 꼭 잡고는 밑으로 죽 내리려고 합니다. 아침에 문득 어느 한국어사전 하나를 펼치다가 ‘롱스커트’라는 낱말이 실렸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봅니다. 한국어사전이라 하지만 ‘롱스커트’와 ‘미니스커트’ 같은 영어는 실으면서 막상 ‘짧은치마’ 같은 한국말은 안 싣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입은 치마가 길면 ‘긴치마’라 말하고, 아이가 입은 치마가 짧으면 ‘짧은치마’라 말하지만, 이런 치마 하나조차 한국말로 옳게 밝히며 적기가 힘들구나 싶습니다. 바지도 그래요. 아니, 바지는 아예 ‘긴바지’도 ‘짧은바지’도 한국어사전에 못 실립니다. (4344.4.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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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1] 흙일꾼

 집에서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살림꾼은 집일만 하는 사람을 일컫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일꾼이에요.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이라고 따로 일컫습니다. 흙을 만지면서 일을 한다면 흙일꾼입니다. 아직 어설프면서 어리숙하게 텃밭을 돌보는 저 같은 사람은 흙일꾼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럽기에, 섣불리 흙일꾼이라 밝히지는 못하고 흙놀이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덧 스무 해 즈음 글을 쓰며 일을 했기에 글일꾼이라 할 만한데, 사진으로도 일을 하니까 사진일꾼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일을 한대서 일꾼이지만, 일만 한다면 나 또한 기계와 마찬가지로 맥알이 없거나 따스함 없는 목숨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집일꾼에서 집살림꾼으로 거듭나는 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려 합니다. 흙놀이에서 흙일꾼으로 거듭난다면 나중에는 흙살림꾼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합니다. 집일꾼에서 집살림꾼이 되고, 책일꾼에서 책살림꾼으로 다시 태어난다든지, 글일꾼에서 글살림꾼으로 거듭 꽃피운다면, 나한테 고운 목숨을 베풀어 준 우리 어버이한테 기쁨과 사랑을 갚는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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