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50] 산들보라

 둘째 아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째 아이 이름 또한 애 엄마가 짓습니다. 애 아빠가 곁에서 거들며 함께 지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 이름을 놓고 ‘눈보라’나 ‘봄눈보라’도 생각해 보았으나, ‘산들보라’로 마무리짓습니다. ‘산들’이란 산들바람에서 나오는 ‘산들’이요, 산들바람이란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입니다. ‘보라’는 눈보라에서 나온 말인 한편, “이 사람을 보라” 할 때에 나오는 ‘보라’이기도 합니다. ‘산들’이라는 이름은 “산과 들”을 일컫는 산들이 되기도 합니다. ‘보라’는 보라빛 보라이기도 합니다. 뜻이야 이밖에도 여러모로 더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한결 깊어지거나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뜻이나 더 사랑스러운 느낌이나 더 고운 결에 걸맞게 붙이는 이름은 아닙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갈 어버이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떤 매무새로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지내려 하느냐 하는 꿈을 담는 이름입니다. 둘째 아이 또한 첫째 아이처럼 어쩔 수 없이 아버지나 어머니 성을 붙여야 할 테며, 의료보험증에는 끝 이름 하나가 잘리겠지요. 그래도 우리 둘째는 그예 ‘산들보라’일 뿐이고, 산들보라처럼 어여삐 이 땅으로 찾아오리라 믿고 기다립니다. (4344.4.1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49] 봄꽃

 봄에 피어 봄꽃을 시골자락에서 쉬나무 꽃으로 처음 마주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지난날에는 개나리를 보며 봄꽃을 처음 느꼈으나,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쉬나무 꽃이 맨 먼저 우리들을 반깁니다. 텃밭에 거름을 내려고 풀을 뽑고 흙을 갈아엎다 보니 아주 조그마한 풀에 곧 맺히려는 풀잎 빛깔 작은 꽃망울이 보입니다. 이 꽃망울이 활짝 터지면 풀빛 꽃이 조그맣게 흐드러지려나요. 사람 눈으로는 아주 작다 싶지만, 개미한테는 무척 함초롬한 꽃이 되겠지요. 봄날이기에 봄꽃을 봅니다. 멧자락 집이기에 멧꽃입니다. 시골마을인 터라 시골꽃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꽃이었고, 도시에서도 골목동네였기에 골목꽃이자 동네꽃이었습니다. 시골마을 들판에서는 들꽃이며, 도시자락 길바닥에서는 길꽃입니다. 종이로 만들면 종이꽃일 테고, 나무에는 나무꽃이요, 풀은 풀꽃입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마음꽃이 필까요. 사람들이 사랑을 나눈다면 사랑꽃이 흐드러질까요. 사람들이 서로를 믿거나 아끼면 믿음꽃이 소담스러울 수 있나요. 그렇지만 요즈음 도시내기들로서는 돈꽃과 이름꽃과 힘꽃에 자꾸 끄달릴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참꽃과 삶꽃과 말꽃과 꿈꽃을 사랑하면서 일꽃과 놀이꽃과 아이꽃과 살림꽃과 글꽃과 그림꽃을 피우기란 힘든 나날입니다. (4344.4.1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48] 쌀나무

 ‘쌀나무’란 참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고추나무’ 또한 몹시 어이없는 말입니다. 도시내기란 이런 엉터리 말을 하는구나 하고 여길 만합니다. 쌀나무 아닌 ‘벼포기’입니다. 고추나무 아닌 ‘고추포기’입니다. 마땅한 삶을 마땅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마땅한 자연을 마땅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삶이며 넋이며 말이며 뒤죽박죽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로서는, 아주 시골 아이가 아닌 여느 아이로서는, 때로는 시골 아이로서도, 벼포기 아닌 쌀나무를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으리라 하고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벼가 무럭무럭 자라 우리가 먹을 쌀을 이루는 포기포기란, 나무가 사람한테 소담스런 열매를 맺어 나누어 주듯 고마운 나눔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고추를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조그마한 고추포기에 주렁주렁 달린 붉거나 빨간 고추알이란 참말 고추열매라 해도 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쌀나무 아닌 벼포기요, 고추나무 아닌 고추포기입니다. 어른으로서 옳지 않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면서 아이들마저 엉터리 말에 길들도록 하는 일이란 딱하며 슬픕니다. 다만, 올바로 말하든 아직 올바른 말매무새를 깨닫지 못했든, 내 마음밭에 착하며 너른 생각나무를 한 그루 심어 보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4.2.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47] 낱말책

 오늘날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습니다. 애써 셈틀을 안 켜더라도 손전화로 인터넷을 씁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어도 낱말뜻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셈틀을 켜서 인터넷을 열지 않더라도 손전화로 영어 낱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손전화에는 영어 낱말 찾아보기는 있어도, 우리 낱말 찾아보기는 없기 일쑤입니다. 한국말을 배우거나 한국말을 살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요.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을 모를 까닭이 없으니, 굳이 우리 낱말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가요. 낱말이 가득 적힌 책이기에 낱말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 이야기책입니다. 그림으로 빚어 그림책이요, 동화를 실어 동화책이며, 사진으로 일구어 사진책입니다. 구태여 새로운 낱말을 빚으려고 ‘낱말책’ 같은 이름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글자수를 줄여 ‘말책’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괜히 글자수를 줄이기보다는, “낱말 담은 책”이라는 느낌이 잘 살도록 ‘낱말책’이라 할 때에 한결 알맞으면서 좋다고 느껴요. 이리하여 우리는 한국 낱말책입니다. 일본사람은 일본 낱말책이에요. 중국사람은 중국 낱말책을 쓰겠지요. 책상맡에 종이로 된 낱말책을 여러 가지 올려놓고 뒤적여 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46] 손잡기

 아이하고 빨래하러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아이는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하러 간다기보다 아버지는 빨래를 하러 가고, 아이는 놀러 갑니다. 아이하고 집에서 길을 나설 때에 아이는 아버지를 보며 “손!” 하고 외칩니다. 손 하나를 저한테 내놓으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두 손에 빨래짐과 설거지거리를 가득 들었으니 내줄 손이 없습니다. 새끼손가락 하나를 펼쳐서 달랑달랑 흔듭니다. 아이는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넉넉합니다. 아이 조그마한 손은 아버지 새끼손가락 하나를 잡아도 걱정없습니다. 멧자락 멧길을 아이하고 손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 오릅니다. 웃마을 집에서 돌보는 짐승우리 둘레에 까마귀가 내려앉습니다. 짐승한테 주는 밥을 얻어먹으려는가 봅니다. 아이도 고개를 들어 까마귀를 바라봅니다. “까마귀야.” “까막이?” “응, 까마귀.”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멧길을 거닐며 아침바람을 쐽니다. 아이는 새소리를 듣고 까마귀 까만 빛깔을 바라보며 차츰 밝으며 파란 빛깔 짙게 물드는 시골하늘을 느끼겠지요. 여기에, 아버지하고 손잡고 걷는 오늘 이 길을 마음으로 받아안을 테고요. 무럭무럭 자라면 아버지하고 어깨동무도 해 줄까요. (4344.3.27.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