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45] 개수대

 부엌에서 밥그릇이나 수저를 씻는 물을 일컬어 ‘개수’라 합니다. 부엌에서 쓴 물이 흘러 나가도록 마련한 곳을 ‘수채’라 합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씽크대(sink臺)’와 ‘하수도(下水道)’라는 낱말만 들었습니다. 어린 날부터 ‘싱크대’조차 아닌 ‘씽크대’와 ‘하수도’라는 낱말만 들었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으레 ‘씽크대’와 ‘하수도’라고만 말할 뿐, 달리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어버이 집에서 나와 홀로 살림하며 살아가던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들 입에서 ‘개수대’와 ‘수채구멍’이라는 낱말을 듣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낱말이니 낯설었지만, 낯설다고 느끼기 앞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온 사람인지 뿌리부터 궁금했습니다. 이제 나는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한테 ‘개수대’와 ‘수채구멍’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 말을 귀담아들으며 “응, 개수대.”나 “응, 수채구멍.” 하고 되뇝니다. 오늘날에는 어릴 적부터 ‘개수대’나 ‘수채구멍’이라는 말을 들을 또래는 없을 테지만, 애 아버지인 나는 설거지를 개수대에서 하고 수채구멍에 개수를 쏟는걸요. (4344.3.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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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3] 맑은터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떠나 열 몇 해쯤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여러모로 놀랐습니다. 그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골목동네 모습을 보면서도 놀랐으나, 도무지 알아볼 수 없도록 바뀐 학교이름을 보면서도 놀랐습니다. ‘정보산업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뀐 학교는 예전부터 이 이름이 아니었는데 어느덧 이런 이름이 되었습니다. ‘비즈니스고등학교’라는 데는 아마 인천에만 있는가 하며 놀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 곳곳에 이런 이름으로 바뀐 학교가 수두룩한 줄을 깨닫습니다. 아무래도 영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지구별인 만큼 학교이름을 ‘푸른배움터’라든지 ‘푸른학교’로조차 붙이지 않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셈이겠지요. 학교라는 데는 머리에 지식을 가득 집어넣거나 시험점수 잘 치르도록 내모는 곳이 아니었는데, 우리 나라만큼은 아이와 어른 모두 삶을 느끼며 사랑을 북돋우는 맑은 터전이 못 됩니다. 생각해 보면 “배우는 터”가 학교라기보다 “맑은 삶터”가 학교여야 올바를 테고, ‘배움터’로 풀어쓰기보다 ‘맑은터’로 새 이름을 붙여야 알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런데 인천에는 어느 ‘공업고등학교’가 올해부터 ‘유비쿼터스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는군요. (4344.3.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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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4] 먹는빵

 먹지 않는 빵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식빵은 ‘먹는빵’이라 이름이 붙습니다. 어릴 때부터 식빵이라는 이름이 참 얄궂다고 느꼈습니다. 한자로 ‘먹을 食’을 붙여 ‘食빵’이라니, 밥을 가리켜 ‘食밥’이라 하지 않는데, 빵 가운데에서 ‘식빵’은 아주 다른 빵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고 맙니다. 밥처럼 먹는 빵이래서 식빵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모릅니다. 여느 빵과는 다르게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빵이기에 식빵이라는 이름이 걸맞는지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놓고도 굳이 ‘먹는물’이라 따로 가리키기도 하고, 이를 한자말로 옮겨 ‘食水’나 ‘食用水’라고도 합니다. 물이라면 으레 마시기 마련이지만 ‘마실물’이라 하는 한편, 한자말로 거듭 옮겨 ‘飮料水’나 ‘飮用水’라고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음료수’는 여느 마실거리가 아닌 탄산음료 같은 마실거리를 가리키는군요. 어떻게 바라본다면 딱히 얄궂다 하기 어려운 낱말인 ‘식빵’일는지 모릅니다. 우리 말삶에서는 이런 말마디 아니고는 좀처럼 알맞다 싶은 낱말을 빚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밥처럼 먹는다면 ‘밥빵’일 텐데, 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면 우습거나 안 어울린다고 여겼을까요. 예쁘면서 잘 어울릴 이름은 ‘식빵’뿐일까요.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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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2] 푸른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들어서는 길목, 멧자락마다 푸른 풀싹이 돋습니다. 아직 눈이 안 녹은 자리에도 새 풀이 납니다. 푸릇푸릇한 빛깔로 바뀌는 들판을 바라봅니다. 머잖아 이 멧자락이며 들판이며 푸른빛이 가득하겠지요. ‘푸른들’이 될 테지요. 겨울이 지나가는 들머리에서 비가 내리니 하늘은 더욱 새파랗습니다. 파랗디파란 시골자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밤과 새벽에는 까맣디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헤아립니다.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까만하늘이구나. 이 넓은 파란하늘이 끝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아마 땅끝하고 만날 테고, 저기 끝에는 바다하고 만나겠지요. 바다는 사람들이 어지럽히는 쓰레기가 아니라면 파란 빛깔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하늘도 파랗고 바닷물도 파랗습니다. 파란하늘이고 파란바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늘도 바다도 들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도시가 커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만, 우리 푸른들을 모르니 ‘綠色’ 같은 일본말에 ‘풀 草’라는 한자를 덧단 ‘草綠’에 얽매인다든지 영어로 ‘green’을 말하기도 하지만, ‘파란들’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쓰기까지 합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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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1] 박시내

 가톨릭환경연대라고 하는 아주 작은 환경사랑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이름에 드러나듯 천주교를 믿는 분들이 이룬 환경사랑모임입니다. 처음에는 이 모임이 한국땅 천주교회에서 만들었는가 생각했습니다. 찬찬히 알고 보니 인천땅에서만 조그맣게 꾸려 한국땅 환경사랑을 살피는 모임입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광주이든 대전이든 경기이든, 곳마다 환경을 사랑하거나 아끼자 하는 모임은 따로 없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온 나라에 있기에 전국모임이 있을 법하지만 막상 전국모임은 없습니다. 서울이나 경기 같은 데는 따로 환경사랑모임이 있을 만하지만 되레 큰도시에는 없습니다. 서울에 곁딸린 도시라 하는 인천에만 꿋꿋이 홀로서는 천주교 환경사랑모임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천은 일제강점기부터 수많은 군수공장이며 갖은 중화학공장에다가 기계공장 들이 잔뜩 들어섰고, 요즈음에도 발전소이니 공항이니 하면서 공기와 바닷물이 끔찍하게 더럽습니다. 한국땅 어느 곳보다 환경이 무너진 인천이니까, 한국과 지구별 환경을 사랑하자는 모임이 꼭 천주교 테두리에서만이 아니라 씩씩하게 태어날 곳입니다. 아주 작은 모임이요 고작 285 사람이 도움돈을 내는데, 우리 말 이름 ‘시내’를 쓰는 분이 셋이나 있어 놀랐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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