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40] 작은조개

 여덟 살 어린이가 ‘미니쉘’이란 글월을 보면서 묻습니다. “‘미니쉘’이 뭐지?” 옆에서 어른 한 사람이 말합니다. “초콜릿 이름이야.” 아이가 말합니다. “아, 나도 초콜릿 먹고 싶다.” 아이는 ‘초콜릿’이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초콜릿은 초콜릿이고,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초콜릿이란 언제부터 우리한테도 초콜릿이었으며, 이러한 먹을거리를 우리 스스로 언제부터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을까요. 해마다 2월 14일에는 초콜릿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초콜릿 만드는 회사에서 장삿속으로 하든 어떻게 하든, 사람들은 내 마음을 담아서 초콜릿 주고받기를 합니다. 내 마음을 담아 주고받는다 한다면 50원짜리 초콜릿이든 내가 손수 빚어서 나누는 초콜릿이든 마음이 살포시 담기기 마련입니다. 내가 만들어 살며시 건네는 초콜릿 선물이라면 아마 ‘미니쉘이야!’ 하고 말하면서 건네지는 않겠지요. 아니, 이렇게 영어로 이름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나 스스로 절로 튀어나오는 말이 달라지니까요. ‘작은조개야!’라든지 ‘작은사랑이야!’라든지 ‘작은꿈이야!’라든지 ‘작은잎사귀야!’라든지 ‘작은풀씨야!’ 같은 말마디를 헤아려 봅니다. (4344.2.24.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39] 감나무

 감을 열매 맺는 감나무입니다. 고욤을 열매 맺는 고욤나무입니다. 도토리를 열매 맺으면 도토리나무로 생각할 만하지만, 도토리는 참나무나 떡갈나무나 신갈나무 같은 나무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배가 나니까 배나무이고, 포도가 나서 포도나무이며, 능금을 얻으니 능금나무입니다. 늘 푸르대서 늘푸른나무요, 어느 나무이든 푸르기 때문에 푸른나무라는 말도 곧잘 씁니다. 씨앗이 터서 자란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어린나무나 애기나무입니다. 한창 자라면 어른나무라 하고, 오래되었으면 늙은나무라 합니다. 이들 나무를 쓰려고 베니까 나무베기입니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기에 나무집이고, 나무를 깎아 배를 무으면 나무배입니다. 빨래할 때에 쓰든 다른 자리에 쓰든 나무방망이입니다. 지난날 밥을 먹으려고 곡식을 빻을 때에 나무방아를 썼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나무로 만든 신인 나무신, 곧 나막신을 신었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하고 노래했습니다. 햇볕과 물과 바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은, 나무가 없어도 살아가지 못합니다. 나무마음을 읽고, 나뭇가지 하나 함부로 꺾지 않았어요. 고마운 나무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나무가 될 테고, 내 말을 알뜰살뜰 여미어 말나무를 돌아봅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38] 물짜기

 설을 맞이해서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랑 할아버지 사는 집으로 찾아갑니다. 집안일을 얼추 마무리짓고 가려 했으나, 이러다가는 너무 늦어질까 싶어 빨래감은 그냥 들고 가서 눈치껏 쉴 때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는 물이 세 차례 얼어 콘크리트까지 깨서 물을 녹였답니다. 물이 다시 얼지 않도록 씻는방에 꽤 세게 물을 틀어놓으셨기에 이 물로 손빨래를 할까 생각하는데, “그냥 세탁기 돌리지?” 하고 말씀하셔서 빨래하는 기계를 써 보기로 합니다. 빨래하는 기계에는 ‘세탁·헹굼·탈수……’ 같은 말이 적힙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빨래하는 빨래틀이나 빨래기계나 빨래통이 아닌, 세탁하는 세탁기니까 세탁이라고 적겠구나.’ 저녁나절, 아이가 입던 겉옷도 빨래하자고 생각하며, 모두들 쉬며 텔레비전을 보는 때에 신나게 빨아서 널어 놓습니다. 어머니가 보시고는 “탈수라도 하지?” 하십니다. “그럴까요? 물이라도 짤까요?” 씻는방에서 손으로 더 짠 다음 빨래통에 넣습니다. ‘탈수’ 단추를 누릅니다. 스무 해 훨씬 앞서는 집에 짤순이가 있었기에 으레 ‘물짜기’를 말했지만, 이제 ‘세탁기’ ‘탈수’ 단추가 있는 만큼, 어머니 말씨는 ‘탈수’로 굳어집니다. (4344.2.3.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37] 사흘거리

 지난 십이월 첫머리부터 꽁꽁 얼어붙던 날씨가 이듬해 이월 첫머리에는 비로소 풀리는지 궁금합니다. 이토록 꽁꽁 얼어붙으면 기름값부터 걱정이지만, 한 번 까딱 잘못해서 물이 얼어붙으면 도무지 녹을 줄 모르기에 근심입니다. 처음부터 집을 잘 건사해서 기름을 덜 먹어도 되도록 하고, 물이 안 얼도록 하면 가장 훌륭합니다. 이렇게 못하면서 날씨 탓만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아무래도 바보로 살다 보니 바보스레 생각하거나 바보스레 말하는구나 싶은데, 바보스러운 삶이니 바보스러운 굴레에서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추운 겨울날 문득문득 이제 참말 ‘사흘거리’는 끝나고 없는데, 이 언제 적 이야기인 사흘거리를 자꾸 떠올리는가 싶어 또다시 바보스럽다고 느낍니다. 사흘거리로 찾아오던 따뜻한 날씨를, ‘나흘거리’로 거듭 추위가 찾아들던 날씨를, 그러니까 이 나라 이 땅에 자동차가 많지 않고 공장 또한 적었으며 고속도로며 기차길이며 어마어마하게 뚫리지 않던 지난날 날씨를, 오늘날처럼 자동차에다가 공장에다가 비행기에다가 고속도로며 고속철도며 큰 아파트며 수두룩한 터전에서 무슨 사흘거리나 나흘거리를 찾겠습니까. 텔레비전 기상캐스터들은 三寒四溫을 주절주절 읊습니다. (4344.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14] 어른

 어린 날 제 꿈은 어른이 되기였습니다. 몸집이 커지고 나이가 늘어난 어른이 아닌, 어린이 앞에서 슬기롭고 똑똑하며 올바르고 아름다운 가운데 참되고 착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 둘레 어른이 못났다거나 엉터리라든가 어설펐다든가 짓궂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이분들 가운데 어린 나한테 어른다운 매무새로 하루하루를 알차고 아름다이 가꾸는 분으로 누구를 손꼽을 수 있을는지 몰랐습니다. 제 둘레뿐 아니라 우리 터전을 두루 돌아볼 때에도 어른다운 어른을 찾기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제 둘레에 좋은 어른이 곳곳에 조용히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한 권 두 권 읽는 책이 늘며 제 먼발치에서 몹시 힘내고 땀흘리는 당차고 씩씩한 어른이 꽤 있음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제가 꿈꾸던 어른은 아직 만나지 못합니다. 제가 꿈꾸던 어른이란 없을는지 모릅니다. 저 스스로 제가 꿈꾸던 어른으로 살아내어 우리 아이를 비롯하여 이 땅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라는 사람은 왜 ‘어린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닌 ‘어른’이라는 이름인가를 살갗으로 느끼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4343.6.2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